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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기사로 살아가기-9화 (9/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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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

죽일 듯이 처다보는 그 시선에 털복숭이 도둑 스니크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젠장. 너무 언짢게 생각하지 마시오. 나도 붙잡힌 거니까.”

사교도들의 의식을 본 스니크는 재빨리 도망쳤다. 딱 봐도 위험한 냄새를 풀풀 풍겼으니까. 하지만 지하수로를 빠져나가는 도중. 운 없게도 또 다른 무리들을 마주치고 말았다.

말콤과 거스트가 보낸 자객들을 만난 것이다.

스니크는 자연히 붙잡혔고, 자신이 빠져나왔던 그 장소로 다시 길 안내를 해야 했다.

‘빌어먹을. 어쩐지 예감이 안 좋더라니. 금화 한 개에 목숨을 잃게 생겼군. 아니, 이럴 줄 알았으면 도망치지 말 걸 그랬나?’

스니크는 토막이 난 사교도들의 시체와 그 사이에 서 있는 벨로크 일행을 보면서 과거의 선택을 후회했지만, 이미 지나간 일일 뿐이다. 그가 새로운 의뢰주에게 애원하듯이 말했다.

“나리들. 저는 이곳까지 저 두 사람을 안내했을 뿐입니다요. 더 이상 아무런 연관도 없어요. 이제 보내주십시오!”

그 말을 들은 복면인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그가 손짓하자 뒤에 있던 다른 복면인이 검을 내질렀다.

“이런 시발. 이 개새끼들. 내가 이럴 줄 알았다!”

하지만 눈치 빠른 스니크는 재빨리 피했다. 그리고는 벨로크와 아델에게 곧장 달려왔다.

“후우 후우. 나리들. 저 좀 살려주십시오!”

뻔뻔하게 외치는 그의 모습에 아델 역시 검을 휘두르려 했다.

“이런 박쥐 같은 새끼가!”

“히이익.”

분노한 종자를 벨로크가 말렸다.

“그만. 아델. 지금 그럴 때가 아니다.”

본인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 살고자 한다면 뭐든 못할까.

벨로크는 스니크의 생존본능을 이해했다. 아니, 애초에 믿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지금 그를 죽여봤자 얻을 것은 없었다.

두 사람은 지금 수십 명의 복면인들에게 포위된 상황. 그 포위망은 지금도 조금씩 조여들고 있었다.

오히려 한 명이라도 더 있다면 놈들의 시선을 분산시킬 수 있을 것이다.

벨로크는 스니크보고 알아서 살아남으라고 하고는 아델에게 말했다.

“아델. 등 뒤를 부탁한다.”

“맡겨주십시오.”

아델이 믿음직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소수가 다수를 상대할 때의 기본 원칙.

가능하면 운신의 폭이 좁은 장소로 상대를 끌어들이거나,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벽을 등지는 것이었다.

후방은 생각하지 않은 채 앞만 신경 쓸 수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 벨로크에게는 훌륭한 부하가 있었다.

등 뒤의 칼날은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될 터.

두 사람은 서로 자세를 잡으며 오히려 복면인들에게 다가갔다.

이를 보던 복면인들이 눈에 이체를 띠었다.

수십 명의 괴한들에게 둘러쌓였음에도 오히려 눈 하나 깜짝 안 하다니.

대체 무슨 자신감이란 말인가.

복면인들의 리더이자 거스트의 종자 샌슨은 이 년놈들이 지금까지의 목표와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뿐. 단둘이서 어떻게 병사 수십 명을 당해낸단 말인가.’

이곳에는 기사들의 밑에서 전문적인 전투술을 배운 종자들만 여럿에 훈련받은 병사들도 있다. 그리고 숫자 채우기라고는 하지만 거친 뒷골목 건달들도 있었다.

아무리 대단한 기사라고는 하나.

기사도 사람이다. 피와 살로 이루어진 이상. 이 숫자를 당해낼 순 없다.

일말의 불안감을 넣어둔 채, 고민을 마친 샌슨은 구구절절 말을 내뱉지 않았다.

그저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짧게 말했다.

“죽여.”

복면인들이 달려들었다. 벨로크도 아델을 뒤에 남겨둔 채 달려 나갔다.

부우웅

시퍼런 창날들이 궤적을 그리며 날아왔다. 무작위로 날아오는 것이 아닌, 일제히 뻗어오는 것이 꽤나 합을 맞춰본 솜씨였다.

그야말로 숙련된 기술.

‘병사들이군.’

갑옷도 없는 맨몸뚱이로 맞았다가는 곧 바로 구멍이 뚫릴 상황. 하지만 벨로크는 태연했다.

그가 가지고 있는 [검술 스킬]은 단순히 검에 대한 이해도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었다.

창이나 검도 어디까지나 날붙이의 일환. 상대가 어떻게 공격해오는지. 찔러 들어온다면 어떻게 튕겨내야 할지.

휘둘러 온다면 어떻게 막아야 할지. 이 모든 것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자연히 상대방의 공격들이 눈에 보였다.

벨로크는 빈손을 뻗어 상대의 창대 하나를 붙잡았다. 이어서 곧바로 짓쳐 드는 창들을 검으로 튕겨내고, 발을 슬쩍 움직여서 나머지를 피해냈다.

챙챙챙

그의 몸을 뚫지 못한 창들이 허무하게 교차되며 허공을 옭아맸다.

“뭣?!”

그 묘기 같은 움직임에 복면인들이 당황하는 것도 잠시.

뿌드득

벨로크는 쥐고있던 창대에 힘을 꽉 주었다. 강철로 만들어진 창대가 부르르 떨리더니 툭 부서졌다.

안 그래도 보통사람보다 기골이 장대한 벨로크였다. 거기다 스텟의 도움까지 더해지니 호랑이에 날개가 달린 격이었다.

범인은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강력한 힘!

벨로크가 자유로워진 양손으로 검을 잡았다. 교차되는 선들 사이, 날이 잘든 롱소드가 무지막지하게 쏟아졌다.

복면인들은 창을 쥐고 있는 채로 목이 잘리고 손목이 잘렸다.

“끄아아악.”

순식간에 넷이 죽고, 둘이 전투 불능이 되었다. 그야말로 귀신같은 몸놀림과 검 솜씨.

“괴···괴물!”

복면인들이 얼굴을 가린 천 쪼가리 사이로 눈을 크게 떴다.

그들의 움직임이 굼떠지고 사기가 떨어지려는 찰나.

“겁먹지 말고 포위해라! 녀석을 둘러싸!”

종자 샌슨이 적절하게 명령을 내렸다. 아무리 놈이라도 뒤에서 오는 칼날을 막기는 힘들 것이다.

그의 용병술에 규율과 행동이 잡혀있던 병사들이 슬금슬금 움직이며 다시금 방진을 짰다. 하지만 아델이 이를 두고 보지 않았다.

“비겁한 놈들!”

그녀가 재빨리 전장에 난입하며 벨로크의 뒤를 잡은 복면인들에게 달려들었다.

복면인들은 일순 방심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상대가 자신보다 체구가 작은 여자라서.

그 방심은 곧 죽음이 되어 돌아왔다. 벨로크 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검은 정확했으며 신속했다. 평범한 병사들은 맥을 못 췄다.

“이익. 죽어라!”

빈틈을 발견한 복면인이 아델에게 검을 찔러보았지만, 벨로크가 그 검을 막았다.

채앵

그리고는 복면인의 대가리를 단번에 쪼개버렸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벨로크에게 빈틈이 생겨도 아델이 그 틈을 메꿨다.

검과 검이 부딪히고, 방패와 창이 부딪혔다.

어두운 지하수로 안에서 금속음과 함께 불꽃이 이리저리 튀었다.

사방에서 비명이 울려 퍼졌다. 둘이 합을 맞추자. 샌슨이 데려온 병사들이 우후죽순 죽어 나갔다. 부정과 부패를 위해 용맹을 바치던 병사들은 곧 한줌 살덩이가 되었다.

“시발. 이런 말은 없었잖아! 우리보고 저런 괴물들을 상대하라고?!”

“이대로 있다가는 개죽음이야!”

상황은 순식간에 반전되었다.

병사들이 다 죽자. 자동적으로 돈에 고용된 건달들만 남은 것이다. 놈들의 무장이라고는 조잡한 단검 몇 자루가 끝.

그런 녀석들에게 충성심이란 것을 기대할 수 없었다.

“이런 비루먹은 새끼들이! 너희들이 그동안 받아먹은 것을 생각해라!”

놈들이 곧 몸을 빼려고 하자. 샌슨을 비롯한 종자들이 분노하며 건달들에게 검을 휘둘렀다.

건달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놈들은 살기 위해 그리고 자신들을 사지까지 끝고온 의뢰인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단검을 찔러댔다.

푹푹푹

차갑게 식은 사교도들의 시신 위로 뜨거운 피가 흩뿌려졌다.

쿰쿰한 지하수로의 냄새에 비릿한 혈향이 더해졌다.

어느 새 샌슨과 다른 종자 하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도망쳤거나 죽어있는 상태였다.

“하아,하아. 이건··· 이게 아닌데.”

샌슨이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들의 계획은 이게 아니었다.

지금쯤이면 이 떠돌이들을 죽인 후 그 포상금으로 신나게 놀았어야 했다.

여관에 가서 술을 시키고, 창녀를 부르고 가슴을 주무르며 질펀하게 즐겨야 했는데.

‘그런데···’

어째서 일이 이렇게 된 거지?

벨로크가 얼타고 있던 종자들을 비웃었다.

“남을 죽일 각오를 했다면 너 자신도 죽을 각오가 된 것이겠지?”

그가 검을 장난스레 빙빙 돌렸다.

“이이익. 웃기지 마라! 떠돌이 출신이 감히!”

여유로운 벨로크의 모습에 종자 한 명이 발악적으로 외치며 달려들었다.

균형 잡힌 발걸음과 검을 휘두르는 자세는 제법 안정감이 있었다. 하지만 벨로크의 눈에는 허점투성이로 보였다.

녀석의 검이 아래로 짓쳐들었다.

‘내려치기.’

단순하지만 정확하고 파괴적인 기술. 머릿속에서 저 검을 받아내기 위한 기술 수

십 가지가 떠오른다.

곧 그중에서 적당한 것 하나를 고른다.

벨로크는 오히려 한 발 크게 나아가며 검을 찔렀다.

가까워진 거리와 길이 만큼이나 검이 더 빨리 나아갔다.

푸시식

종자가 눈을 부릅떴다. 손이 화끈거렸다. 앞을 보자. 자신의 손가락이 허공을 날고 있었다. 분명 먼저 휘두른 건 자신이건만 어째서?

의문과 함꼐 주인을 잃어버린 검이 바닥을 굴렀다.

챙그랑

“크아아악.”

종자가 손을 부여잡으며 비명을 내질렀다. 벨로크가 고통스러워하는 종자의 목을 대번에 쳤다.

꼭 급소를 노릴 필요는 없었다. 그곳 말고도 베어낼 수 있는 곳은 많았으니까.

요컨대 전투불능만 만들면 된다.

“존!”

샌슨이 경악 어린 외침을 뱉었다. 하나 남은 동료마저 단칼에 죽었다. 어중이떠중이가 아닌 전문적으로 전투기술을 배운 종자가.

'이렇게 수준 차이가 난다고?! 거스트 님이나 말콤님이라고 하여도 이렇게 할 수는 없다. 도망을···’

“커어억.”

느닷없는 고통에 샌슨의 생각이 끊겼다. 그가 시선을 돌리자. 아델이 비뚜러진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검은 눈동자가 이글거렸다.

“너는?”

“익숙한 목소리야.”

그녀가 손을 뚜둑 거리며 풀었다. 그리고는 샌슨의 얼굴을 걷어찼다.

“끄르륵.”

아델이 신은 건 징을 박아넣은 전투용 부츠. 샌슨의 목이 팍 꺾이며 이빨이 후드득 떨어졌다.

“그으마...”

샌슨이 팔을 휘저었음에도 아델은 멈추지 않았다.

퍽퍽퍽

그녀는 연신 주먹과 발을 휘두르며 샌슨을 구타했다. 그는 벌레처럼 웅크리며 얻어맞았다. 아델이 눈을 사납게 빛내며 으르렁거렸다.

“또 창녀라고 불러봐. 개새끼야.”

아델은 그때 연회장에서의 일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

감히 주인의 앞에서 자신을 모욕한 그 건방진 새끼들의 목소리와 낱낱을.

곤죽을 만들어버릴 참이다. 그렇게 한참 동안 북 두드리는 소리가 공동에 울려 퍼졌다.

“후우, 후우.”

잠시 후 아델이 피투성이가 된 샌슨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구석에서 벌벌 떨고있던 스니크에게 던졌다.

“억. 왜?”

“놈을 들어라. 그리고 모가지들도 다 챙겨.”

“아···알겠습니다!”

졸지에 도둑에서 짐꾼이 되어버렸지만 스니크는 재빨리 움직였다.

피에 대한 공포증 따위는 지금 안중에도 없었다.

눈앞에 있는 두 명의 전율한 정도의 무력과 잔인함이 그를 휘감았다.

“놈을 증인으로 영주 성까지 데려가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녀가 샌슨을 가리키며 묻자. 레벨업을 해서 내면속을 살피던 벨로크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비열한 두 기사는 지금쯤 벨로크와 아델의 목을 가져오길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멀쩡히 돌아온다면? 보낸 부하들이 다 죽은 것을 알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잘못했다고 빌까? 아니면 끝까지 잡아뗄까?

마치 연극을 기다리는 관람객들의 마음이 이러할까. 벨로크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맴돌았다.

“녀석들 얼굴이 궁금하군.”

목 없는 시체더미를 남겨둔 채, 세 사람은 공동을 떠났다.

벨로크는 스텟을 찍느라, 아델은 샌슨을 구타하느라, 스니크는 겁에 질려있어서.

세 사람은 제각각의 이유로 공동 바닥의 마법진이 다시금 빛나는 것을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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