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기사로 살아가기-7화 (7/222)

7

사교도

선술집을 나온 그들은 하수로를 향해 걸었다. 걷는 와중 털복숭이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자기소개를 했다.

“성심껏 모시겠습니다요. 나리. 제 이름은···”

밸로크가 귀찮다는 듯 팔을 내저었다.

“알아. 스니크. 아닌가?’

처음 보는 기사가 자신의 이름을 알자. 거한이 기겁했다.

“헙. 어떻게···”

“자네가 이곳 지하수로 토박이 출신이라는 것도 알고, 제법 실력 있는 도둑이라는 것도 알지.”

귀신걸음 스니크.

덩치에 걸맞지 않은 은밀한 발걸음 소리 덕택에 작지만, 현상금이 걸릴 정도로 실력도 있다. 벨로크가 전회차를 플레이할 때 직접 잡은 녀석을 심문한 적도 있었으니까.

‘그때 울고 불면서 자신의 내력까지 다 말했었지. 덩치는 산만하지만 피를 무서워한다고 했었나?’

거센 고문을 통해서 말한 사실이니 아마 맞을 것이다. 스니크를 고른 이유는 간단했다.

지하수로 출신이니만큼 길은 당연히 꿰고 있을 테고, 피를 무서워하니 날붙이를 휘두를 담력도 없을 것이란 생각 때문.

하지만 스니크의 생각은 아닌 모양이다.

그는 낯선 기사가 이름뿐이 아니라 자신에 대해서 속속들이 알고 있자 허허 웃으면서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그의 뒤에서 걸어가고 있던 아델이 그 모습을 보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가 스니크의 목을 턱 잡았다.

꽈아악

“커헉. 왜··· 왜 이러십니까.”

갑자기 숨이 턱 막힌 스니크가 버둥거렸다. 하지만 단련된 종자의 악력을 한낱 도둑이 이겨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델은 꿈쩍도 하지 않고 말했다.

“벨로크 님. 이자. 수상 합니다. 감히 도망을 치려 했습니다.”

혹시 거스트 일행의 첩자가 아닌가? 아델이 생각했다. 타당한 의문이었지만, 벨로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무고한 녀석이야. 풀어줘도 좋아.”

“그리 말씀하신다면.”

아델이 스니크를 내팽겨쳤다. 손을 한 번 턴 그녀가 새침하게 머리칼을 매만졌다.

“허억, 허억.”

풀려난 스니크가 목을 쓰다듬으며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는 두 사람을 공포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경계하고 있군. 아니, 이게 일반적인 반응인가.’

벨로크는 앞으로 미래의 지식이나 사건에 대해 접근할 때. 꽤나 조심스럽게 행동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겁에 질린 스니크를 어떻게 달랠지 고민하다가 손에 들린 금화를 냅다 던졌다.

“헉.”

스니크는 경계심도 잊은 채 반사적으로 팔을 뻗어 금덩이를 받았다. 돈을 손에 쥔 그가 싱글거리다가 아차하고 표정을 굳히며 두 사람을 바라봤다.

의아함과 공포심이 얼굴에 떠올랐다. 벨로크가 양손을 올리며 설득했다.

“나는 자네 목의 푼돈을 노리는 게 아니야.”

현상금이라고 해봤자, 길거리 도둑 수준. 은화 몇 닢 정도다. 그의 봉급 수준도 안 된다.

그래, 기사의 말이 맞긴 하다. 스니크가 손에 들린 금화를 슥 보고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대체···”

“아까 말하지 않았나. 지하수로의 길잡이가 필요하다고, 맡은 일만 해낸다면 금화 하나를 더 주지.”

자그마치 금화가 두 개!

한낱 좀도둑에게는 어마어마한 거금이었다. 하지만 좀 찝찝했다. 그는 귀족에게 이용만 당하고 처리당한 사람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

그렇다고 포기하기에는 너무 큰 돈인데?

스니크의 망설임을 아델이 해결해주었다.

차르릉

울리는 검명소리에 스니크가 뒤를 슥 돌아보았다. 아델이 시퍼렇게 눈을 뜨며 검집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굳이 말을 안 해도 그 행동거지에서 명확한 뜻이 전해져왔다. 수틀리면 목을 잘라버리겠다는 뜻. 스니크가 침을 꿀꺽 삼켰다.

“맡겨만 주십시오··· 나리.”

처음부터 그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지하수로.

로벤의 아래에 존재하고 있는 이 거대한 물길은 증축을 거쳐 이제는 하나의 도시라고 부를 정도였다. 예컨대 지상의 도시 아래에 또 하나의 도시가 있는 셈이다.

그 드넓은 크기 덕택에 까딱 잘못하면 길을 잃는 것은 예사였으며, 사람들의 눈을 피하는 범죄자들이나 조그마한 괴물들의 보금자리도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벨로크 일행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지하수로 태생의 사내가 충실히 길 안내를 자처하고 있었으니까.

횃불이 꼬랑지를 지글거리며 당장 한 걸음 앞의 돌바닥을 비추었다. 옆에서는 쪼르륵 물소리가 들려왔으며 축축하고 습한 기운이 사방에 가득했다.

사실 그것보다도 더 큰 문제는 악취였다. 분뇨와 음식물 쓰레기가 섞인 듯한 냄새에 아델이 코를 막았다.

“지독하군요.”

“살기 좋은 곳은 아닌데.”

벨로크도 인상을 쓰며 걸었다. 지하수로 출신인 스니크만이 자조적으로 웃었다.

“살고자 하면 뭔들 못하겠습니까요. 그래서 찾으시는 장소가 어디라고 하셨지요?”

스니크의 물음에 벨로크가 잠깐 머리를 굴렸다.

뒤틀린 미래.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신 스스로 지혜를 짜내야 했다. 벨로크는 전통적인 오컬트 방식으로 접근해볼 생각이었다.

악마를 숭배하는 사교도들의 모임. 이는 자연히 악마들은 무엇을 좋아할까로 귀결된다. 유황불이 타오르는 지하 밑바닥. 뿔 달린 괴물들이 좋아하는 것...

‘타락, 피, 고통, 쾌락?’

벨로크는 옛날에 책이나 영화에서 봤던 내용 중 한 장면을 떠올렸다.

어두침침한 지하. 로브를 뒤집어쓴 사교도가 단검을 들고 사람의 배를 찌르는 기괴한 의식이 그려졌다.

상상력 한 번 빈곤하군. 전형적이야. 벨로크가 헛웃음을 지었다.

“여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요상한 의식을 치를 만큼 넓은 장소가 있나?”

벨로크의 물음에 스니크가 난감한 기색을 내보였다.

“그런 공간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요.”

“그런가?”

이 넓은 공간을 다 뒤져야 하나? 아니면 이곳에 사는 주민들 중 한 놈을 잡아서 물어야 하나. 벨로크가 그런 고민을 하던 차에 무언가를 생각하던 스니크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예상가는 바가 있습니다.”

“무엇이?”

“나리는 지금 이 지하수로에서 무얼 찾고 계신 겁니까?”

“그건···”

“감히 네가 알 것이 아니다.”

벨로크가 턱을 쓰다듬으며 말해야 하나 고민할 때. 아델이 탁 잘라서 말했다. 그 격한 반응에 스니크가 살짝 식은땀을 흘렸다.

“말하기 힘드시다면 안 말해주셔도 됩니다. 다만 제 스스로 생각하기에 매우 기괴하며 요상한 짓거리를 일삼는 무리를 찾으시는 게지요?”

직접적으로 언급은 안 했지만 스니크는 이 일과 관련된 자들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는 듯 했다. 사교도들이 진짜 있나 본데. 벨로크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라고 생각한 스니크가 말했다.

“저는 비록 도둑이지만 한 번씩 지하수로의 아이들에게 식량을 좀 나눠주고는 했습니다. 저도 누군가의 도움으로 살아남았거든요.”

“하. 꼴에 양심적인 도둑이라 이건가?”

아델이 비아냥거렸다. 스니크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요. 저도 제 죄를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최근 동시다발적으로 지하수로의 난민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얘깁니다.

제가 돌봐주던 아이들에게 들은 얘기입니다.”

“실종이라.”

“로브를 뒤집어쓴 괴한들이 난민들을 끌고 갔다는군요.”

이거 확실한 것 같은데? 짜 맞추어지는 퍼즐이 확신을 더 해주었다.

“위치도 알고 있나?”

“혹시나 싶어서 들어는 두었지요.”

기분이 좋아진 벨로크가 흔쾌히 말했다.

“그곳까지 안내를 부탁하지. 우리가 찾는 놈들이 맞다면 금화 두 개를 주고 바로 보내주도록 하지. 어때.”

스니크가 더욱 깊이 고개를 숙였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런 괴인들의 집단이라니. 저도 이곳 출신으로써 마음이 조금 불편하던 참입니다요.”

목적지를 정한 세 사람은 곧 이동을 개시했다.

화르륵

횃불이 다시 길을 비췄고, 스니크가 이리 꼬이고 저리 꼬인 길을 안내했다. 불빛에 놀란 생쥐들이 찌익 거리고 박쥐와 들개들이 스스슥 자리를 피했다.

그 괴상한 무리가 수로에 자리 잡았기 때문인지. 지하수로는 평상시 돌아다니는 난민이나 고블린 같은 놈들은 하나도 안 보였다.

지성이 있는 존재는 이미 자리를 피한 것 같다고 스니크가 말했다.

그렇게 한참을 걸었을까. 먼저 들린 것은 중얼거리는 듯한 요상한 소리였다.

“%&$#*”

“불 꺼.”

벨로크가 낮게 읊조리자 아델과 스니크는 재빨리 들고 있는 횃불을 물길에 던졌다. 치이익 거리면서 시야를 밝혀주던 불꽃이 사라졌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눈앞에는 어두컴컴한 공간을 비추고 있는 다른 횃불들이 산재해 있었으니까.

세 사람은 숨소리도 내지 않은 채 통로 저편으로 보이는 공동을 살폈다.

불빛에 비치는 음영 때문에 사방이 온통 주황색으로 보였다. 그 사이로 검은색 그림자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대체.”

아델이 눈을 크게 떴다.

눈앞의 광경은 교회가 금한 사교모임이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구석에 쌓여 썩어가는 시체들을 뒤로한 채, 검은색 로브를 쓴 인영들이 제단 앞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그들의 중심에는 피처럼 붉은 로브를 쓴 인영이 양팔을 벌리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가녀린 체구로 보아 여성으로 보였다. 그녀가 뭐라 말하면서 손바닥을 짝 쳤다.

그러자.

“사··· 살려줘. 제바알!”

로브인영 몇이 어디선가 한 남자를 끌고 왔다. 사내는 애원하며 거칠게 버둥거렸다. 하지만 로브 인영들은 무미건조한 눈빛으로 그 사내를 돌로 된 제단위에 올릴 뿐 이었다.

“이러지마··· 제발. 으흐흑.”

등 뒤에 와닿는 돌 특유의 냉기에 사내가 몸을 구부리며 울었다.

붉은 로브녀는 마치 귀여운 동물을 보듯 그런 사내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입술을 핥으며 다정하게 속삭였다.

“아무 걱정말거라. 너는 바호메트님의 피와 살로써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니.”

감미로운 음성이었지만 사내의 눈은 더 없이 커졌다. 그가 쌓여있는 시체들로 시선을 돌렸다. 불과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같이 살아가던 이웃들. 그리고 이제는 들끓는 구더기와 파리의 쉼터가 된 존재들.

끝까지 부정하고픈 미래가 저곳에 있었다.

“흐으으. 싫어, 싫다고. 나는 죽기 싫···컥.”

사내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로브녀는 사내의 말을 무시했다. 그리고는 뱀처럼 구부러진 단검으로 가슴을 푹 찔렀다.

찌이익

선혈이 낭자하며 여인의 로브에 핏자국이 후드득 묻었다.

“하하하하!”

그녀는 미친 듯이 웃으며 단검을 찔러댔다. 광소가 커질수록 요란하게 튄 피가 바닥으로 주륵 흘렀다. 그러면서 아까전의 요상한 주문도 웅얼거렸다. 그러자 돌바닥에 피가 스며들며 제단을 중심으로 마법진 같은 것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목소리에 호응하듯 기도를 올리던 검은 로브들도 합창했다.

“%&$#*”

주문의 소리가 커질수록 사내의 시체도 급속도로 말라붙었다. 한동안 피처럼 붉은 마법진이 여러 번 반짝거렸다. 여인의 얼굴이 희열로 물드려는 순간.

피시식

돌연 마법진이 불 꺼진 양초처럼 팍 꺼졌다.

“아직인가?”

맥이 탁 빠진 그녀가 콧방귀를 꼈다.

"흐음."

무언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인상을 찌푸린 여인이 단검을 품에 넣었다. 그리고는 미라가 되어버린 제단 위의 시체를 퍽 걷어찼다.

“제물이 더 필요해. 아직 그분을 불러오기에는 부족하구나.”

불안전한 소환 의식은 영혼만 불러들일 수 있을 뿐. 좀 더 만전을 기해야 했다. 역시나 약해빠진 난민들의 피와 살로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보다 강자들의 피륙이 필요했다. 어딘가 병사라도 잡아와야 하나? 아니면 기사?

로브녀가 허공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를 보고 있던 아델이 입을 뻐끔거렸다.

“산제물···”

아델은 스니크를 따라 이곳까지 오면서도 가슴 한 편으로는 설마···하는 마음가짐이 있었다. 악마를 섬기는 사교도라니 꽤나 현실감이 없는 소리처럼 들렸으니까.

하지만 그들만의 기괴한 의식을 마주하자 용맹한 그녀도 일순 몸이 떨렸다.

진짜 사교도다. 악마에게 영혼을 판 괴물들. 아델은 병사가 몇이 달려들든 잡아 죽일 자신이 있었지만, 요상한 사술을 다루는 놈들은 두려웠다. 마법사가 아닌 이상에야 저 괴현상에 대해서 알지 못하니까.

미지에 대한 공포는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

이는 한 지역을 다스리는 지배자들이나 용감한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많군.”

그런 아델과 달리 벨로크는 얕은 인상만 찌푸렸다. 끔찍한 광경임에도 공포감은 없다. 그저 자신의 빈곤한 상상력이 딱 맞아떨어지자 어이가 없을 뿐.

왜 그런지 짐작은 갔다. 이 육체의 타고난 정신력과 마음을 안정시키는 스킬.

[꺼지지 않는 투지] 덕분이겠지.

벨로크는 자신이 점점 인간을 벗어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렴 어떤가 싶었다.

겁에 질려 벌벌 떠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으니까.

침착한 주인의 모습에 아델은 떨리는 마음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어디서나 덤덤한 사람 옆에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안심이 되는 것이다.

“···임무 완료로군요. 일단 영주께 아뢰는 것이?”

아델이 조용히 물으면서 뒤를 돌아봤다. 스니크는 잔금도 안 받고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 위명답게 발소리도 없이 도망쳤다.

그녀의 물음에 벨로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교회의 밀고는 사실이었으며 사교도들의 규모는 상상 이상 이었다. 저들을 일거에 토벌하려면 수많은 병사들이 필요하리라.

두 사람이 몸을 빼려는 찰나. 붉은로브녀의 시선이 둘에게 향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