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녀를 위해 연기하라-120화 (121/121)

120. 저격수

칸영화제가 진행되는 뤼미에르 극장 한쪽에 마련된 한국 기자실.

그 기자실에는 각 매체의 기자들이 시상식 중계를 긴장하며 보고 있었다.

여기 모인 대부분의 기자는 모두 영화 관련 매체를 담당하는 기자들이다. 그렇기에 영화를 보는 수준 또한 보통 이상이었다.

그리고 다른 나라들의 기자들과의 교류도 활발한 편. 그렇기에 이번 칸 영화제에 더욱 기대하고 있었다.

기자들이 봤을 때, 올해 올라온 다른 경쟁작품에 비해서 작품성으로 보나 연기력으로 보나 [찬란하게 빛나는]의 수상은 유력했다. 특히 [찬란하게 빛나는]은 현지 매체 평점과, 기자 점수 모두 최고점을 기록했다.

평점, 수상, 흥행이 항상 같이 가지는 않지만, 전문가 평점이 높을수록 수록 수상에 유리한 것도 사실.

한국의 기자 중 진보적인 기자들은 조심스럽게 황금종려상을 논했고, 보수적인 기자들은 그랑프리(심사위원 대상/2등 상) 혹은 감독상을 논했다.

아무래도 기자밥을 오래 먹은 이들은 한국에서의 이름값에 기댈 수밖에 없었고, 한국 내에서 진권호와 이지우의 이름값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라 봐도 무방했다.

이지우의 연기가 좋았다는 것은 모두가 동의하는 바이나, 한 작품에 하나의 상을 고수하는 칸 영화제이기에 둘 중 한 명이 상을 받는다면, 진권호 쪽에 무게가 실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심사위원 상, 진권호!’

진권호의 이름이 호명되자마자 한국 기자실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럴 줄 알았어!'

‘와아아아아!’

‘해냈다!’

‘예스! 예스! 예스! 멋있다 진권호!’

주먹을 꽉 쥐고 치켜 올리는 기자, 소리를 지르며 인접 동료 기자와 얼싸 안는 기자 등. 마치 자신이 수상이라도 한 듯 기뻐하는 기자들.

원래 예상했던 황금종려상이나, 그랑프리는 아니었더라도 한국 최초 칸 영화제 본상 수상이라는데 의의를 둔다.

심사위원 상이 어딘가. 무려 3대 영화제, 그중 최고라 꼽히는 칸영화제 아닌가.

곧,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기자들은 자신의 본분에 충실히 한다.

기자들의 흥분과 환호가 가시고, 정신없이 송고를 위한 기사를 준비한다.

1초라도 먼저 송고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노트북을 두드리던 기자들. 이미 시상식은 관심에서 살짝 멀어졌다.

한 작품에 두 개의 상을 받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방금전의 소란이 거짓말인 듯, 기자실은 타이핑을 치는 소리만 울리고.

그 적막을 깨는 티브이 소리.

‘남우주연상, 이지우!’

프랑스인 사회자의 어설픈 한국 발음. 마치 미어캣이 고개를 드는듯이 일제히 머리를 들어 티브이를 보는 기자들.

‘어?’

‘뭐?’

‘진짜? 진짜 이지우라고?’

이전 진권호 감독이 상을 탔을 때의 환희나 기쁨이 아닌, 의아함이 감돈다.

웅성거리는 기자들. 곧 티비 화면에 가득히 잡히는 이지우를 보고 기자들은 현실을 직시한다.

이지우의 남우주연상 수상. 사실이었다.

이례적으로 칸 영화제에서 한 작품에 상이 두 개가 수여된 것이다.

그리고 이지우의 수상소감.

“현주야 사랑한다.”

이지우가 한국말로 저 말을 하는 순간, 카메라가 전환되며 [찬란하게 빛나는] 팀이 앉은 객석을 비춘다.

공교롭게도 거기에는 손으로 입을 가린 박현주가 있었다.

아름다운 드레스. 예쁘게 치장한 모습은 마치 여배우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오오오옷!’

‘꺄아아악!’

‘미쳤네, 이지우.’

기자실에서 아까와 느낌이 사뭇 다른 환호성이 뒤늦게 터진다.

‘칸 영화제에서 마지막으로 다관왕 수상한 작품 찾아봐! 언제지?’

‘방금 각본가 박현주 말한 것 맞지?’

다시 기자실에 타이핑 소리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진짜 제대로 된 기사는 지금부터였다.

***

[(포토)칸의 여왕(?)은 나야 나! 각본가 박현주]

[(속보)진권호 감독, 칸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

(내용 없음)

[(속보)이지우 사고 쳤다! 칸영화제 남우주연상 쾌거!]

(내용 없음)

[(종합)칸영화제, [찬란하게 빛나는] 심사위원상, 남우주연상 쾌거!]

···(중략) 보수적인 심사위원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주인공 이지우의 연기였다. 지난 10여 년 경쟁과 비경쟁 부문을 가리지 않고 작품을 출품했던 진권호 감독에 대한 예우와, 작품성을 끌어올린 배우 이지우에 대한 평가에 대한 칸의 해답은 2관왕이었다.

황금종려상이 유력했던 작품이었지만, 그에 못지 않게 배우 이지우의 연기 또한 훌륭했다. 황금종려상과 남우주연상의 동시 수상이 불가능한 만큼, 심사위원단의 고민이 느껴지는 수상이다. 두 사람 모두에게 수상의 영광을 나누려는 방법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예상해 본다.

또한 한국영화에서 의미 있는 상이 아닐 수 없다. 특히 한국영화의 거목이며, 세계적인 거장인 진권호 감독과, 이지우라는 신예 배우가 동시에 수상의 영예를 얻었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가진다.

이는 한국영화가 세계 무대의 한 축이 되었음을 의미하며, 이 영광이 끝이 아닌 앞으로의 미래가 더욱 밝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략)

‘고맙다, 지우야. 감사합니다 지우 아빠.’

새벽 4시가 넘은 시간. 하지만 이지우의 어머니는 잠을 자지 못했다.

서툴게 스마트폰을 조작하여 아들의 기사를 검색한다.

이내 눈물이 뚝뚝 흐른다.

혹시라도 말실수 할까 봐 찾아오는 기자들에게 공짜로 음식을 내어주며 죄송하다고만 했다.

아들의 팬을 자처하며 몇 시간씩 가게에 앉아있는 손님들도 그저 감사했다.

너무 자랑스러운 아들이다. 그 앞길에 혹시라도 문제가 될까 싶어 어디 나가 자랑 한 번 해본 적 없다.

부정 탈까 봐. 말도 행동도 조심했다. 천성이 무뚝뚝한 아들이다. 20살이 되고는 더 감정표현을 안 한다.

그래도 고등학생 때는 아쉬운 표정 정도는 지을 줄 아는 아들이었는데, 지금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어미 걱정할까 봐 말없이 웃기만 한다.

1년에 두 번씩 하는 건강검진에, 어머니가 조금이라도 편하라고 집에 가전제품 하나하나 꼼꼼하게 챙긴다.

너무 일찍 철든 아들이 고맙고 미안했다.

촬영장에서 다쳤다는 소리가 몇 번이었다. 그때마다 억장이 무너졌다. 연기가 뭐길래, 다른 일 하면 안 되겠느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온 적도 몇 번이었다.

20살때는 다리를 분질러 오더니, 얼마 전에는 촬영장에서 기절했을 때는 가슴이 철렁했다.

가십과 소문에 전전긍긍하고, 검찰에 출두한다고 했을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하늘에 있는 제 아비가 도왔는지, 아무 일 없이 돌아왔을 때는 놀란 가슴을 수없이 쓸어내렸다.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하는 체중. 때때로 섬뜩할 정도로 우울해 보이는 아들의 표정을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면 어머니 걱정한다고 아프고 힘든 티도 못 낼까 봐, 거짓으로 의연한 척했다.

잘하면 잘해서 걱정, 못하면 못해서 걱정.

그게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이른 새벽까지 그녀는 잠들지 못했다.

***

대상 격인 황금종려상과 타 부문의 상은 원칙적으로 금지.

다만 심사위원상, 감독상, 각본상과 남/여우주연상 중, 심사위원의 권한으로 딱 한 작품만 가능하다는 예외적인 룰이 있다.

2001년 [피아니스트] 이후에 룰이 개정되어, 한 작품에 여러 상이 수여되는 경우가 드물었기에 나도 기대하지 않았던 거였다.

배우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상.

정신없이 기자회견을 끝내고, 일부러 진권호 감독과 함께, 한국 기자들이 모여있는 프레스 센터를 방문했다.

수상실적과, 영화의 흥행과는 큰 관계가 없다. 그렇기에 기자들에게 나름의 정성을 보이는 것이다.

기자실에 들어서자마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진다.

사방에서 터지는 함성과 축하소리에, 이제야 최고의 상을 받았음이 실감 났다.

기자들도 다 같은 기자들이 아니고, 여기에 있는 기자들 대부분 영화계와 깊은 관계를 맺은 기자들이 대부분.

그들의 얼굴에는 자랑스러움과 뿌듯함이 보였다.

"현지 매체 평점 1위라서 황금종려상이 유력하다는 평이 많았는데요, 아쉽지 않으십니까?"

한 기자의 질문에 진권호 감독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수상자체가 저에게는 영광이었고 이지우 씨의 남우주연상을 함께 받을 수 있어서 더 기분이 좋습니다. 왠지 저만 받으면 빚지는 것 같아서요."

진권호 감독다운 말이었다.

아마도 예기성 선생님의 소개를 받아 찍은 작품이라 그렇지 않을까.

또 다른 기자가 진권호 감독에게 질문했다.

"한국 영화 팬에게 한마디 해주십시오."

"좋은 상을 받고, 많은 관심을 받아 그저 감사 할 뿐입니다. 하지만 상을 받기 위해 영화를 찍는 감독은 없습니다. 상이 중요하지도 않고요. 칸영화제에서 몇 분간 기립박수, 혹은 여러 상을 받은 것이 영화를 대변하지 않는다 생각합니다. 다양한 영화를 즐겨주십시오."

와 이 양반 노빠꾸.

영화감독들은 하나같이 이상한 쪽으로 대쪽 같은 면이 있다.

작가주의 감독으로 스트레스가 상당했는지 그대로 돌직구를 날려버린다.

다행히 훈훈한 분위기는 이어졌고 마이크가 내게 넘어왔다.

"이 자리에 없는 박현주 양에 대해서 한마디 해주실 수 있을까요? '현주야 사랑한다' 말고요."

음··· 어려운데.

"박현주 작가님. 고맙습니다."

"..."

왜? 뭐? 다른 거 하라며.

작가 박현주라면 할 이야기가 이것밖에 없다.

전생의 내 커리어보다 이번 생의 내 커리어를 단숨에 몇 단계 올려준 사람이다.

작품과 배우의 궁합이 있듯이, 작가와 배우의 궁합이 있다. 현주는 세상에서 나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이고, 나를 펼쳐놓은 듯한 캐릭터를 만들어 주는 작가이고.

고맙지. 너무 고맙지.

내 진심을 오해한 기자가 재차 물었다.

"다른 말씀은 없으실까요?"

"사···사···"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기자.

"사··· 사는 동안 계속, 작품을 써주세요."

아까 진권호 감독을 보던 눈빛보다 더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보는 기자들을 뒤로하고, 인터뷰는 끝이 났다.

바쁘고 정신이 없는 와중에, 조상기 기자에게 다가갔다.

이 말은 꼭 해야 했다.

"조 기자님."

내가 먼저 아는 척을 할지 몰랐던 듯, 조상기 기자가 깜짝 놀라며 다가왔다.

"아! 네, 지우 씨. 축하합니다. 저는 지우 씨가 받을 줄 알았어요. 하하!"

"감사합니다. 조 기자님, 한국 들어가시면 식사나 한번 하시죠?"

"어이쿠, 저야 너무 좋죠. 회사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아뇨아뇨, 제 휴대전화 번호 드릴게요."

그렇게 조상기 기자와 번호를 교환했다.

의외라는듯 전화번호를 받아 돌아서는 조상기 기자.

칸 영화제, 수상소감으로 사랑 고백을 했다.

물론 현주를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백룡영화제에서는 현주에게 달라붙은 녀석을 쳐내기 위해서였지만, 이번에는 끌어내기 위해서였다.

이지혜의 유서와, 그 빌어먹을 새끼의 그동안 행적을 봤을 때 내가 화제가 되는 걸 병적으로 싫어한다는 걸 알겠다.

지난생의 백룡영화제. 그리고 이번 생의 백룡영화제.

지난 생에 내가 화제가 될 때마다 같이 올라오던 악성루머와, 이번 생에 내가 화제가 될 때마다 누르려던 모습들.

20년쯤 당하니까 알 것 같다.

이번 내 남우주연상으로 정종철이 반드시 움직일 거란 걸 말이다.

그리고 그 정종철을 저격할 저격수.

언론인이라기보다 영화인에 가까우면서, 기사를 쓰는 사람.

기성 언론사와 연관이 없으면서, 주변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제 할 말은 하는 사람.

그리고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

정종철의 저격수로 내가 선택한 사람.

바로 조상기 기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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