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나도 다 안다
[찬란하게 빛나는]의 배급 계약을 맺은 SJ엔터테인먼트. 4년 전 로카르노에서 대리였던 차준호가 이제는 한국영화 배급을 담당하게 된 차준호 팀장이 되었다. 그는 케이박스(고구려 일보 계열 극장)의 일방적인 통보에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아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에요.”
-내부사정상 어쩔 수가 없습니다.
“내부사정은 내부에서 알아서 하시고, 이러는 경우가 어딨습니까? 기존 상영관 수에 반을 줄이겠다는 게 말이 됩니까?”
칸 영화제의 시상식 이후, 바로 한국에 개봉하게 될 [찬란하게 빛나는]. 헌데 한국에서 첫 상영도 하기 전에 제동이 걸렸다.
가뜩이나 예술영화의 성향이 강해서 마케팅 측면에 애로사항이 많은데, 상영관수 기준 3대 멀티플렉스 극장인 케이박스에서 [찬란하게 빛나는]의 개봉관 수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일방적인 통보를 해온 것이다.
-저희도 유감입니다만··· 회사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는 걸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회사에서 수익률이 높은 블록버스터 밀어주라고 하는 바람에···
“솔직하게 말해봐요, 진짜 이러는 이유가 뭡니까? 이해를 못 하겠네.”
-저희도 잘··· 위에서 떨어진 지시라···
케이박스 측 실무자가 푸념이 이어가지만, 차준호 팀장은 받아주지 않았다.
이미 북미지역에 개봉하고 망한 영화를 밀어준다는 게 말이 되는 이야긴가. 회사의 방침이라며 일관하는 케이박스 직원과는 더는 말이 통하지 않음을 느꼈다.
극장인 케이박스가 배급사인 SJ엔터테인먼트에게 이럴 수는 없는 거였다.
배급사와 극장의 관계는 먹고 먹히는 관계이다.
대형 배급사는 중소형 극장에 일방적으로 계약조건보다 빠른 부금정산을 요구한다.
멀티플렉스 극장은 중소형 배급사의 영화를 일방적으로 조기 조영하거나 상영관 축소를 한다거나 부금정산이 안 되는 무료티켓을 마구잡이 배부한다거나.
서로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상대의 손해를 강요하는 식이다.
그런데 SJ엔터테이먼트는 갑질을 당한 만큼 작은 배급사가 아니었다.
SJ엔터테인먼트는 배급뿐만 아니라 자사 극장 GCV까지 가지고 있는 영화 공룡 기업이었다.
케이박스도 제작사인 케이콘 배급자인 케이박스 플러스등, 영화부문 수직계열화를 이루었지만, SJ엔터테인먼트의 규모에 비하면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게다가 이지우가 출연하는 [찬란하게 빛나는] 또한 SJ엔터테인먼트 상부에서도 기대하는 바가 컸다.
SJ엔터테인먼트의 자체 제작 및 배급한 영화가 모두 흥행참패 할 때, [폭력의 사슬]로 한 번, [악의 기록]으로 두 번. SJ엔터테인먼트의 체면을 세워준 작품 모두 이지우가 출연했다.
오죽하면 자체 제작으로 만든 손해를, 이지우로 메꿨다는 소리를 듣겠나.
그이전에 차준호 팀장은 화가 나기보다 안타까운 마음이 더 컸다. 로카르노에서부터 눈여겨 봐왔던 ‘이지우’라는 배우.
그 배우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거장과 만나 만들어 낸 좋은 영화. 그 영화의 상영관이 줄어든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칸 현지의 직원에게 실시간으로 반응을 보고받는 반응이 심상치 않다.
현지 매체 최고 평점을 기록하고 있고, 남우주연상이나 감독상 둘 중 하나는 나올 것 같다는 보고가 여러 차례.
차준호 팀장은 답답한 마음에 위압적인 말투로 밀어붙였다.
“위에서 떨어진 거면, 저도 위로 보고 할 수밖에 없는 거 아시죠?”
-하··· 네. 저희 측도 인지하고 있습니다.
차준호 국내 배급 팀장은 케이박스에서 걸려온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전화기를 들었다.
“실장님! 차준호입니다. 이번 [찬란하게 빛나는] 말입니다. 케이박스에서 태클을 거는데 뉘앙스가 묘하네요. 네네. 자료 올리겠습니다.”
***
프랑스 칸.
누구에게는 영화의 도시이겠지만, 나에게는 휴양의 도시다.
샤갈과 마티스가 여기서 여생을 보냈다지.
아마 회귀하고 난 이후 가장 데이트다운 데이트를 한 시기가 아닐까 싶다.
20살로 회귀를 한 후, 정신없이 달려오기만 했으니까.
칸 영화제에서 최고의 작품에 수여하는 ‘황금종려상’.
왜 열대성 식물인 종려나무에서 모티브를 찾았는지 이해가 갈 정도로 훈훈한 바람이 불어오는 칸의 해변.
훈풍을 받으며 함께 걷던 현주가 물었다.
“내일 무슨 상 받을 것 같아?”
“글쎄. 나는 아무래도 좋아.”
진심이었다.
내일 무슨 상을 받든 간에, 혹은 [찬란하게 빛나는]이 아무상을 받지 못하더라도 좋았다. 지금 이 순간 현주와 칸에서 한때를 보낸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했거든.
최소한 내게는 그걸로 충분했다.
주변의 시선과 관심에서 자유로워진 것을 느꼈다.
“그건 그래. 사실 나도 이제 와서 상은 뭐 의미가 있나 싶어. 여기 와서 좋은 영화보고, 스크린이나 티브이에서만 보던 배우나 감독들 실컷 본 것만으로 이미 꿈을 이룬 것 같은 기분이니까. 그것도 공짜로.”
“그러게 서울 촌년 박현주가 칸 카펫도 다 밟아보고. 많이 컸네. 오빠가 또 여기 데리고 와줄게. 공짜로.”
“또또또!”
“엌, 농담이야.”
현주가 팔짱을 낀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퍽하고 친다.
이렇게 받아치는 스물 네 살의 유쾌한 박현주가 좋다.
칸에 있는 내내 이런 식이었다. 일정을 끝내고 난 뒤, 노천카페에서 커피를 마신다거나. 일몰 이후 함께 거리를 걸으면서 함께 이야기한다거나. 더는 평범과는 거리가 멀어져 버린 소중한 일상을 되찾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가끔 한국인 유학생이라던지, 일본 영화 관계인이 다가와 사인이나 사진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한국에서 활동할 때와는 비할 바 없는 자유로움이었다.
즐거워하는 현주의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행복이었다.
“얼마 전까지 죽을 것 같은 얼굴로 연기 안 한다더니, 이제 좀 살만한가 보지? 칸에 다시 올 생각도 하고.”
“내가 언제 그랬다고··· 그냥 돈도 벌만큼 벌었는데, 치열하게 연기하기보다 너만 보고 살려고 했지 뭐. 그런데 이제 좀 알겠더라고. 나도 연기를 좋아하는 거.”
“그래서, 은퇴는 안 하는 걸로?”
“어··· 좋은 배우가 되어보려고. 나한테도, 너한테도.”
"좋은 배우인지는 심사위원단이 평가할 거고, 넌 좋은 남자 친구야."
“좋은 남편은 어때?”
“또또또! 오바한다.”
농담인듯 진심인 내 말을, 현주는 농담처럼만 받아넘긴다.
다 안다.
집에서 살림이나 하라는 네 말도.
하고 싶은 연기하고 살라는 네 말도.
다 현주의 진심이라는 것 말이다.
전생에도 이번 생에도 현주는 현주다.
나를 믿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보라는 현주의 마음.
그렇기에 아직 결혼은 이르다고 생각하는 니 마음도.
혹여나 결혼했다가, 작품 안 들어올까 걱정하는 니 생각.
내가 다 안다.
***
다음날, 늦은 점심.
프랑스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위해 [찬란하게 빛나는]의 배우들과 감독이 모여있을 때였다.
진권호 감독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디렉터 진? 칸 영화제 사무국입니다.”
“네 진권호 감독입니다.”
-오늘 저녁, 폐막식에 [찬란하게 빛나는] 일행이 꼭 참석해주시길 바랍니다.
“네 알겠습니다.”
칸 영화제 측에서 폐막식에 꼭 참석해달라고 전화했다. 이는 [찬란하게 빛나는]이 영화제에서 반드시 수상한다는 말과 다름없다.
시상식에 수상작 일행이 불참하는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되기에, 미리 연락하는 것이다.
“오늘 폐막식에 꼭 참석해 달라는군요.”
진권호 감독은 배우들과 인터뷰어에게 전화기를 들어 보이며 짧게 말했다.
“축하드립니다. 진권호 감독님.”
프랑스 매체의 인터뷰어가 먼저 축하의 말을 건넸다.
다른 배우와 스태프들 사이에도 안도의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어차피 [찬란하게 빛나는] 일행은 수상과 관계없이 폐막식까지 모두 참석할 예정이었다. 칸영화제의 경쟁작 진출.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거니까.
헌데, 수상까지 확실하다면 그저 자리를 채우는데 그치지 않고, 자리를 빛내는 일이다. 모여있던 배우 들고 스태프들 사이에 화색이 돈다.
그때부터 의상과 분장 담당자들이 바빠졌다.
계획된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모든 배우는 호텔로 돌아갔다. 시상식에 입장 전에 모든 준비를 마쳐야 하니까.
나도 마찬가지. 현주를 데리고 급하게 호텔로 돌아왔다.
청운 엔터테인먼트의 지원으로 같이 오게 된, 한 실장도 더불어 바빠졌다.
“한 실장님! 저는 알아서 입을 테니까, 현주부터 빨리요!”
“오케이, 현주 씨는 걱정 마요. 완벽하게 준비했으니까. 지우 씨, 그런데 목걸이는 준비 아직 안 됐어요?”
“지금 프런트에 와있데요. 지금 가서 픽업 해 와야죠.”
호텔에 들어가자마자, 현주는 영문도 모르고 한 실장 손에 끌려갔고, 나는 바로 프런트로 달려갔다.
미리 주문했던 물건을 들고 기다리고 있는 두 명.
흰 장갑을 끼고 목걸이에 대해 설명하려는 걸 말리고, 시상식에 갈 준비를 했다.
턱시도를 대충 입고, 케이스를 열어 목걸이를 확인한 뒤, 현주의 방을 찾았다.
“한 실장님?”
문을 열자마자 소리치는 현주.
“이 새끼야! 아직 덜 입었어. 오지 마!
아··· 나 이미 다 봤는데··· 한 20년 전에. 흐음···
현주에게 욕을 먹고, 문 앞에서 한참을 기다리다가 문을 빼꼼이 열리면서, 현주가 수줍게 고개를 내밀었다.
“야··· 이런 거 준비했으면 진작 말 좀 하지. 살 좀 빼게.”
“살은 무슨, 지금도 예뻐.”
문을 확 열어젖힌 후, 들어갔다.
하··· 고생한 보람이 있네.
베이지색에 은은한 은빛이 감도는 생로랑 드레스. 글을 쓰는데 불편하다는 이유로 뎅겅 묶고 다니는 머리도, 오늘은 잔뜩 힘을 줬다.
예쁘다.
“수박에 줄 긋자.”
“뭐래, 이 정도면 엔간한 여배우들보다 낫지.”
“그러니까, 수박이지. 호박이 아니라.”
“아?”
“아?는 무슨, 뒤로 돌아봐.”
선선히 뒤돌아서는 현주의 목에 목걸이를 채웠다. 전생에도 이번 생에도 이런 걸 해줘 봤어야 알지. 목걸이를 풀고 채우는 데에 익숙지 않은 내가 겨우겨우 그녀의 목에 목걸이를 걸어줬다.
“이거 뭐야? 웬 목걸이야?”
“까르띠에 본사 닦달해서 방금 받은 거야. 칸 시상식 때 쓸 거라고 직접 주문 제작한 목걸이.”
드레스와 목걸이를 준비하기 위해 나와 한 실장이 한 고생을 이루 말할 수 없다.
내 지론상, 그저 돈만 쓰는 선물은 선물이 아니었다. 그래서 생각한게 맞춤 제작이었다. 맞춤 제작만 아니었으면 사실 한국에서 사서 가지고 와도 됐었다.
그런데 나는 어떤 브랜드가 좋은지 모른다. 그렇기에 한 실장이 추천해 주는 브랜드 중에서 고를 수밖에 없었고, 촉박한 일정을 맞추기 위해 프랑스 브랜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까르띠에와 생로랑이었다.
새로 맞춤으로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 시간을 아끼기 위해 목걸이와 드레스 둘 다 파리 본사의 부티크에 직접 주문 제작을 넣었다.
드레스는 그나마 일찍 나와서 한 실장이 직접 파리까지 가서 픽업을 하고, 목걸이는 방금 까르띠에 직원이 직접 호텔 앞까지 가지고 온 참이었다. 이것도 오늘 한국의 여배우가 상을 받을지도 모른다고 뻥을 쳐가면서 받아온 거였다.
"아우, 참. 내가 이렇게 꾸미고 가도 되나 모르겠네."
거울에 비친 목걸이를 이리저리 돌려보는 현주. 내심 마음에 들었다가 보다.
"왜? 각본가는 예쁘면 안 돼?"
"아니, 다른 여배우들 기죽을까 봐 그러지."
“에이, 그건 좀···”
“팍, 씨.”
다시 한번 옆구리를 툭 하고 친다.
목걸이 사줘서 그런지, 어제보단 살살 때리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생로랑이랑 까르띠에에서 이런 것도 협찬해줘? 여기 엄청나게 비싼 브랜드 아닌가?”
“무슨 협찬이야. 직접 주문 제작 한 건데.”
“뭐?”
순식간에 표정이 싹 바뀌는 현주.
“왜?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들어?”
“얼마?”
현주의 표정을 보니 왠지 말하면 혼날 거 같은데. 살짝 귀띔한 가격에 현주가 한 손으로 뒷목 잡고, 한 손으로 등짝 스매싱을 날린다.
“인간아, 내 원고료가 천만 원인데, 원고료의 세 배를 여기다 태워?”
와··· 드레스값만 말한 거였는데··· 목걸이값 알려줬으면 큰일 날뻔했네.
사실 현주는 아직 실감이 안 날 수도 있다.
지금 [벡터맨]으로 얼마를 벌어들이는지 정확하게는 모르니까. 그리고 그 벡터맨 수익이 코인으로 환산될 수익은··· 나도 모르니까.
“하하, 괜찮아. 늦겠다. 어서 출발하자.”
현주를 겨우 달래가며 도착한 뤼미에르 극장.
2,400석 규모의 초대형 극장. 그리고 1년 365일 항상 레드카펫이 깔린 곳.
차에서 내리자마자 눈이 멀어 버릴 것 같은 플래시 세례가 쏟아진다.
그 빛을 뚫고 현주를 에스코트해 나아갔다.
가늘게 떨고 있는 현주의 손. 나도 모르게 꼭 잡아주었다.
‘어? 저 여자는 누구야?’
‘저거 각본가 박현주 아니야?’
외신들은 남자배우와 여자배우 사이에 끼어 있는 박현주가 누구인지 모른다. 관심도 없고.
영화광이라 하더라도 20편이나 되는 경쟁부문 진출작들 배우들의 얼굴을 다 외우기는 힘드니까.
거기에다 [찬란하게 빛나는]의 배우들은 모두 20대 초반. 칸에 초청받은 것도 처음인 세계무대에서는 신인이나 다름없는 배우들.
하지만 한국에서 온 기자들은 달랐다. 배우들이 포토라인에 서서 사진을 찍기 시작하자, 스태프들과 함께 극장 안으로 들어가는 박현주를 놓치지 않고 집중적으로 찍었다.
***
폐막식이 시작됐다.
무대 전체가 붉은 카펫이 깔린 시상식. 왼쪽에는 사회자를 위한 단상이, 오른쪽에는 심사위원을 위한 단상이 마련되어 있었다.
각본상에 이어 심사위원 상이 호명된다.
“심사위원 상은 [찬란하게 빛나는]”
손을 흔들며 일어서는 진권호 감독.
내가 악수를 권하자 악수하던 손을 당겨 와락 안아버린다.
우리가 그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예기성 선생님 때문에 너무 가까이 지네기에는, 좀··· 그래.
어쨌건, 진권호 감독은 3번째 칸 진출 만에 처음으로 수상하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칸은 한 작품에 하나 이상 상을 주지 않는다. 이전 [피아니스트]가 그랑프리(2등 작품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을 모두 휩쓸며 개정된 룰이다.
그 때문에 한 작품에 상이 수여되면 다른 상은 받을 수 없다.
기본적으로는 말이다.
여우주연상에 이은 남우주연상의 호명 차례가 다가왔다.
기대지도 않았기에 실망도 없었다.
오히려 편안한 마음으로 수상자를 축하해 주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심사위원단의 숙고가 느껴지는 결정입니다. [찬란하게 빛나는]의 이지우!”
와아아아아!
24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뤼미에르 극장에 함성이 가득 찼다.
물개 박수 준비 중이던 나는 얼떨결에 일어났고, 주변의 축하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 내가 수상을 했음을 실감했다.
양옆의 배우들이 일어나 길을 터주었고, 의자 끝 진권호 감독이 다시 한번 포옹을 시도하는 걸 살짝 피하고 현주에게 달려갔다.
“갔다 올게.”
뭐가 그리 좋은지 입을 막고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수상소감을 준비하긴 했는데, 기억이 안 났다.
진권호 감독이 심사위원 상을 받는 것과 동시에 다 날아간 것 같다.
거대한 극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
잠시 수상소감을 생각하는 사이, 통역사가 내 옆 단상에 섰다.
보이지 않게 톡 치며 이제 해도 된다는 사인.
“감사합니다. 영광입니다. 존경하는 진권호 감독님께 이 영광을 돌리고자 합니다.”
잠시 통역사분이 내 말을 전달하고.
“지금 아마도 이 영상을 보고 계실 어머니. 사랑합니다. 모두 어머니 덕분입니다.”
다시 한번 통역사가 내 말을 전달하는 짧은 사이 현주와 눈이 마주쳤다.
멀리서 봐도 예쁘네.
그녀는 벌써 내가 뭘 할지 예상한듯했다.
현주는 나와 눈이 마주친 걸 의식한 듯 작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 말라고?
응 아니야. 할 거야.
“현주야 사랑한다.”
“풉.”
방금 통역사가 살짝 웃은 거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