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녀를 위해 연기하라-114화 (115/121)

114. 큰 거 온다

좋은 배우가 되고 싶었다. 유명해 져서 돈을 많이 벌어 어머니와 현주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지금··· 지금의 꿈이 아니다.

20여 년 전의 내 꿈이다.

어머니와 현주가 환생한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

20여 년 전의 나의 꿈과 지금의 나의 꿈이 별반 다르지 않다.

모든 걸 한번 잃고 다시 깨달은 근본이다. 어머니와 현주를 행복하게 해주는 삶.

말투와 행동이 조금 변했다 하더라도 저 근본이 변하지 않았으니, 어머니와 현주는 그저 내가 성인이 되어 철들었다고 생각하고 말았다.

뭐, 20년쯤 연예계를 구른 ‘이지우’는 저 꿈 중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꿈 말고는 모든 꿈을 잊어버리긴 하지만··· 세월을 돌고 돌아 미래의 이지우는 20여 년 전의 꿈을 다시 꾸었다.

어머니와 현주를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꿈 말이다.

20여년전 ‘이지우’와 지금의 ‘이지우’의 꿈의 차이점이 있다면, ‘좋은 배우’가 되는 게 꿈이었다는 거다.

지금은 나는 잘하는 배우일지는 몰라도, ‘좋은 배우’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니 어떤 게 ‘좋은 배우’인지 모르겠다.

하··· 연기를 20년 넘게 했는데 어떤 게 좋은 배우인지 모르겠다는 게 말이 되나.

얼마나 직업관이 박살이 난 삶을 살았으면, 한평생 일한 직업에서, 스스로 꿈꾸는 직업의 이상 조차 없다.

과거, 현실에 부딪힌 이지우는 세월에 마모되며 가장 먼저 자신의 꿈을 버렸다.

20여년전, 꿈많은 소년이었던 ‘이지우’.

현주가 쓴 대본 안는 마모되기 전의 ‘이지우’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

씬#42 미술대전 떨어지고 나서 화실 안.

한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젊은 미술가들의 등용문. ‘한국 미술대전’.

그 결과 발표가 되었다.

불태웠다고 해도 좋을 만큼 애쓴 미술대전.

알고 있다.

인맥이 없으면 힘들다는 거.

갈라파고스화 된 미술계. 이미 그들만의 리그가 된 지 오래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강우는 어쩔 수가 없었다.

예술가가 아닌, 현대인의 감각으로 이대로 가다가는 곧 화실에서 굶어 죽을 것임을 직시했다.

그렇기에 일말의 희망을 걸고 접수한 ‘한국 미술대전’. 혹시나 누군가는 알아봐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도전했다.

자신이 좋아했던 그림을 죽였다. 화풍을 죽이고, 잘나가는 작가들의 경향을 연구했다. 그런 식으로라도 입상하고 싶었다.

입상하고, 그림을 판다.

세상 물정을 전혀 모르는 그림쟁이의 망상.

‘한국 미술 대전, 입선 김강우’

강우가 세상 물정을 전혀 모르는 철부지라 하더라도 ‘한국 미술대전’의 '입선'이라는 것이 그저 참가비에 대한 답례 정도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참가자들의 참가비로 운영되는 미술대전의 특성상, ‘입선’은 딱 참가상 정도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 정도 경력으로는 어디 그림을 팔대가 없음을 알고 있다.

불안신경증. 우울증, 강박증, 편집증 등, 불안한 정신. 대인관계가 힘든 강우는 대학을 졸업하는 것도 굉장한 역경이었고 고난이었다.

그런 강우가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그림 강사나, 미술 학원 선생을 하는 것은, ‘한국 미술대전’에서 대상을 타는 것만큼 아득한 일이었다.

강우는 미술대전에서 온 우편물을 던져버리고 화실 구석에 웅크렸다.

‘끼이익’

“강우야?”

반지하 화실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현아.

“무슨일 있어?”

“...”

현아는 아무렇게나 방치된 미술대전에서 보내 온 우편물을 집어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함께 해온 남자친구다. ‘한국 미술대전’의 ‘입선’의 의미를 강우만큼 잘 알고 있는 현주였다.

현아는 웅크린 강우의 어깨를 말없이 쓰다듬어 줬다.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탐하듯, 현실주의적인 현아는 몽상가인 강우를 좋아하면서도 싫다.

한참의 침묵 속, 끅끅거리는 울음 끝에 강우는 자조하듯 나직이 말했다.

“아버지는··· 아버지는 내 재능을 마법과 같은 거라고 했어. 남들이 못하는 일을 하는 놀라운 사람. 그게 나라고 했어. 마법사는 원래 이상한 거라고. 내가 이상한 건 마법사라서 그렇다고. 그런데 나한테 재능이 없으면 그냥 이상한 새끼인 거잖아.”

어렸을적 부터 예민한 성격의 강우. 사회성 장애를 우려한 강우의 부모는 어릴적부터 정신과 통원치료를 했다.

항상 그런 강우를 보살폈던 게 강우의 아버지였고. 통원치료 하원길, 강우의 아버지는 강우를 데리러 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죽고 만다.

그 이후, 강우의 정신병은 트라우마로 인해 심해진다.

그 과정을 모두 지켜본 현주.

강우에게 아버지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현아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문다.

한번만 더, 한번만 더.

몇 번 째인지 모른다. 하지만 현아는 다시 한 번 강우를 믿어보기로 한다.

“다시 한번 해보자.”

그 말에 강우는 고개를 든다.

미안함, 고마움, 부끄러움 등···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들이 눈에 떠오른다.

"다시 해보라고. 그렇게 불쌍한 티 내지 말고. 고작 미술 대전 떨어진거가지고."

"뭐?”

“대신 이번이 마지막이야··· 더 이상은 나도 더 못 기다려줘. 그러니까 후회 없이 했으면 좋겠어. 아쉬움 남지 않게. 제발 이번에 니가 원하는 그림 그려봐.”

“내가 원하는 그림?”

***

이 영화는 현주와 나의 자전적인 영화는 아니다. 상황도, 캐릭터도 많이 다르다.

그럼에도 내가 이 영화에서 나의 모습이 느껴지는 것은, 주인공 '강우'의 지독한 자기혐오 때문이 아닐까.

자신을 데리러 오다 죽은 아버지. 아버지를 사랑하는 만큼 자신을 증오하게 된 주인공.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은 주인공은 자신을 스스로 사랑하는 방법을 모른다.

자신을 스스로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삭막하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기에 취향이 없고, 취향이 없으니 취미가 없다.

마치 지금 사라진 딸 얼굴 그리는 것 말고는 아무런 취미를 가지지 못한 나처럼.

현주와 어머니를 위해 연기를 하는 나처럼, 극 중 '강우' 또한 하나 남은 자신의 사람인 '현아'를 위해서 그림을 그린다.

현주가 '현아'의 입을 빌어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너를 좀 사랑하라고.

너를 찾고,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그래도 된다고.

내가 되고 싶은 것?

나는 좋은 배우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야 조금씩 어떤 배우가 좋은 배우인지 알 것 같았다.

최소한의 자기애가 없다면, 좋은 배우가 될 수 없음을 느낀다.

나는 현주가 사랑하는 나를 사랑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

양찬호 미술감독은 이지우에게 개인적인 관심이 갔다. 이지우의 그림을 지도해주고, 그의 연기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 친구 미술을 했어도 잘했겠구나 하는 생각 말이다. 정확하게는 예술을 했어도 잘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림을 그리는 테크닉적인 부분은 입시 할 것도 아니고, 그럭저럭 잘 따라오는 수준. 그런데 그의 그림은 남다른 면모가 있었다. 단계별로 1과 2를 가르쳤는데 다음번에 만났을때 10이나 15를 혼자서 하고 있다.

예컨대, 사과를 그리라고 하면, 사과의 맛과 향을 표현하려고 한다고나 할까.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을 표현하여 전달하는 재능.

이런 예술분야에서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사람을 보통 사람들은 천재라고 한다.

이지우의 그림은 그런 천재성이 보였다. 전달력, 표현력.

미술이라는 언어를 사용하는 재주가 남다르다고 할까.

그 남다른 전달력으로 보여준 이지우의 연작. [소녀].

왜 여자아이의 그림을 그리느냐 물었을 때 이지우는 그저 웃었다.

그림 속의 소녀는 꽃밭에서, 놀이터에서, 차 안에서, 울고, 웃고, 생각하고, 잠들고 있었다.

그림 속 소녀가 가진 감정은 제각각인데도 불구하고 그림 속 개념은 분명히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었다.

어린 나이 작가가 그렸다고는 생각되지 않은 성숙한 감정이 풍부하게 느껴진다.

그림 전반에 깔린 풍부한 감정이 평면회화의 한계를 뚫어버리는 듯하다.

그 충만한 전달력과 표현력으로 말이다.

[찬란하게 빛나는]의 편집실.

진권호 사단의 한 명인 편집감독은 작업 중 놀러 온 양찬호 감독을 반갑게 맞이했다.

한두 작품을 같이 한 게 아니다 보니 사적으로 친한 사이였다.

전경호 편집감독. 하지만 전 감독 혹은 편집감독이라고 불리기보다 접 감독이라고 더 많이 불리는 사람이다. 처음 편집을 시작할때부터 편집 실력에 두각을 나타낸 전 감독은 어느정도 경력이 쌓이고 접귀라고 더 많이 불렸다. 접어 붙이는데 귀신이라고···

접귀가 접 감독이 되는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만큼 편집을 하는 실력과 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력자였다.

그리고 양찬호 감독은 전경호 감독이 보여준 편집된 [찬란하게 빛나는]을 보고 다시 한번 놀라게 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다고 했던가.

ㅊ[찬란하게 빛나는]의 이지우는 말 그대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주인공 ‘강우’가 울면 ‘슬픔’을 증명하고, 주인공이 웃으면 ‘즐거움’을 증명한다.

화면을 뚫고 관람객에게 전해지는 감정의 경험.

이지우가 그린 그림과는 비할 바 없는 전달력과 표현력이었다.

한 장면, 한 장면.

양찬호 감독은 매 장면이 개념미술의 작품을 보는 듯했다.

매 장면마다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전달한다. 그 장면들이 모여 영화의 주제를 만든다.

이지우의 연기로 캐릭터의 생각과 관념이 온전히 전해진다.

예술이었다.

“편집감독님, 와 진짜 편집 기가 막히네요.”

“어?”

“장면 장면이 예술이라고요.”

“크크크, 이거 임시편집본이야. 본격적인 편집은 시작도 안 했다고.”

“네? 이게 임시편집본이라뇨?”

본격적인 편집은 시작하지 않았다는 편집감독의 말에 양찬호 미술감독은 매우 놀랐다.

놀라는 양찬호 감독을 보고 편집감독은 웃으면서 편집 기계를 조작했다.

“자 이거봐. 씬42 테이크 6번이랑, 7번.”

편집감독은 같은 대사의 두 개의 장면을 번갈아 보여줬다.

대사는 같지만, 전혀 다른 느낌의 두 장면.

“신기하지 않냐? 내가 편집 오래 했는데, 이런 배우는 처음 봤다. 분명 전혀 다른 연기를 하는데 앞뒤로 잘라 붙여보면 기가 막히게 연결돼. 신기하지 않냐? 어떻게 이런 연기를 하지?”

“어? 진짜 그러네.”

감독의 주문대로 감정의 변화를 주며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연기한다.

헌데, 어떤 연기도 앞뒤의 장면과 매끄럽게 연결되는 연기를 보여준다.

“진 감독님 이번에 칸에서 기대해도 되겠다. 올여름 큰 거 온다.”

편집감독이 접귀라 불리우는 또하나의 이유.

그가 예측한 영화의 성적은 100% 확률로 들어 맞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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