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저 여자 곧 죽는다.
[응답하라 119]의 마지막 촬영을 앞두고 류창진 감독은 인터뷰했다.
PD가 인터뷰 하는 게 흔하지는 않지만, 이미 이슈를 몰고 다니는 드라마이기에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이미 드라마의 제작과정에서 이지우가 참여한다는 이유만으로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첫 방영부터 사고가 있지 않았나.
‘아동완구 환경호르몬 사건’ 최지연이 사장으로 있는 완구 회사가 기사가 떴다. 거기에 더해 이지우가 최지연의 목숨을 구한 사건과, 기부기사가 엮여서 나는 바람에 첫 방영부터 생각지도 못한 시청률이 나왔다.
드라마의 시작부터 이슈에서 시작한 셈이다.
온갖 이슈를 몰고 다니는 신인배우.
그 이지우의 차기작.
거기에 참여하는 작품마다 유례없는 흥행을 하니, 애쓰지 않아도 사람들의 관심이 쏠린다.
[응답하라 119]의 방영이 시작하기도 전에 업계 사람들에게는 말이 많이 돌았었다. 주요 방송사와 영화 제작사의 러브콜을 다 무시하고 선택한 작품이 [응답하라 119]. 종편 드라마였으니까.
도대체 류창진 PD가 뭘 가지고 딜을 쳤기에 출연을 결정했는지 사람들이 궁금해했다.
그리고 물음의 답이 [응답하라 119]의 시청률과, 바뀐 이지우의 이미지였다.
“이번 드라마 잘 보고 있습니다.”
“네 안녕하세요 류창진입니다.”
TNN 본사 근처 카페에서 기자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단정하지만 수수한 복장의 기자가 밝게 웃으며 악수를 건넸다.
“죄송한데 녹음을 좀···”
“네! 문제없습니다.”
기자가 녹음기를 켜고, 테이블 위 잘 보이는 곳에 올려두었다.
“먼저 축하합니다. 이번 주도 이정건 씨 주연의 [DR.헬기]를 제치고 동 시간대 시청률 1위 라면서요?”
“네.”
비록 근소한 차이지만 아직 [DR.헬기]에 비해서 시청률이 높게 잡히고 있었다.
상대 드라마 보다 몇 주 먼저 방송을 했다는 이점이 있다 해도 종편과 공중파의 차이를 생각하면 고무적인 성과였다.
몇 가지 안부인사가 더 오가고, 본격적인 인터뷰가 시작됐다.
“드라마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신 것 같아요. 저번 [저승 카페]에서 소박한 주변 사람들의 일상에 시선을 맞췄다면, 이번에는 그 시선이 소방관으로 옮겨간 느낌입니다. 작업을 하실 때 이런 걸 다 염두에 두시고 하시는 편인가요?”
“제가 그렇다기보다 이 자리에 없는 유수영 작가님의 작품 스타일이 그렇습니다.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람들의 관계에 대해서 풀어내는 것을 좋아하시죠. 그 공간이 카페에서 소방서로 옮겨간 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기에는 이전 [저승카페]에서는 고독사, 사회 취약계층의 안타까운 죽음 등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었고, 이번 [응답하라 119]에서도 소방관들의 열악한 근무 여건 등을 논하는 등 던지는 메시지가 묵직합니다. 전혀 생각지 않았다고는 보이질 않는데요.”
류창진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듯이 고민하다 말했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작가님이랑 많은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오늘날 미디어의 역할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뭔가를 의논하고 메시지를 받아들이기가 힘들죠. 뉴스는 사실만을 전하기에 감정이 없습니다. 하지만 드라마를 통해 삶이나 사회문제를 논할 수 있는 매개체 정도는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가님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를 하셨고요.”
기자는 몇 가지 중요한 단어를 수첩에 적으며 ‘매개체’라는 단어에 밑줄을 쳤다.
“그렇다면 드라마를 사회를 발전적으로 만드는 광장의 역할을 하겠다는 것으로 봐도 될까요?”
“아뇨 그런 거창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사회문제는 일종의 배경이었을 뿐입니다. 드라마의 주(柱)는, 인물이죠. 배경은 캐릭터를 표현하는 도구입니다. 어려운 상황, 역경 이런 것들을 극복하고 타협하는 인물을 그리고 싶었던 겁니다. 당장 [응답하라 119]도 주인공 6명이 각각의 상황을 헤쳐나가는 성장이 주요 스토리고요. 김 반장의 경우에는 트라우마 극복, 최지호의 경우에는 신입 시절 모두가 겪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극복하고요.”
“아···사회문제를 헤쳐나가는 성장···”
다시 기자는 수첩에 ‘성장 드라마’를 쓰고 동그라미를 쳤다.
“그렇다면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지금 같이 연기한 6명의 주인공이 화제입니다. 각 배우들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해주실 수 있을까요.”
“누구부터 할까요? 방창익? 김환동?”
“하하, 이지우 씨부터 어떨까요.”
기자는 인터뷰를 잘 안 하는 이지우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온 것이다.
이제부터 본론이라는 듯이 기자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류창진 PD님과 이지우 씨와 이전 작품으로 인연이 좀 있는 걸로 압니다. [저승 카페] 단막극에서부터, [저승 카페] 미니 시리즈까지이요. 그 이야기를 좀 들을 수 있을까요?”
류창진은 피식 웃었다. KBC에 있는 입싼 누군가가 썰을 풀었구나 싶었다.
이지우도 신인이었고, 류창진은 입봉조차 못한 이름만 PD였던 때. KBC 드라마국 사무실에서 큰소리치며 싸웠지 않았던가.
“악연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지. 인연은 인연이지. 혹시 재작년에 KBC에서 했던 [독립영화 특선]이라고 아십니까?”
“아뇨. 잘···”
“그럼 [민주를 기다리며]는 혹시 아십니까?”
“아! 네 알고 있습니다. 그 당시 100분 토론도 하고 막 그랬죠. 혹시 그럼···?”
“네 그 담당 PD가 저였습니다. 그 사건으로 경위서 쓰고 욕먹고··· 회사 그만둘까 생각까지 했으니까요.”
“하··· 배포가 크시네요 PD님. 그런 사건을 겪고 단막극에 이지우 씨를 캐스팅할 생각도 하시고.”
류창진은 쓰게 웃었다.
“아뇨 배포가 큰 건 이지우 씨였죠. 그때 이지우 씨가 드라마국에 저를 찾아와 크게 싸웠었습니다. 정확하게는 제가 화를 냈죠. 니가 어딜 오냐고, 절대로 배역 안 줄 거라고, 막 이지우 씨한테 삿대질하고··· 그런데 그런 저를 조용히 카페로 데려가서 자물쇠 하나를 주더라고요.”
“자물쇠요?”
“네 자물쇠요.”
“혹시 그럼 [저승카페]의 자물쇠 씬?”
“기자님이 [저승 카페] 애청자이셨나 보네. 바로 아시네요. 맞습니다. [저승 카페]이지우 씨의 마지막 대사. ‘자물쇠와, 열쇠는 같은 곳에서 만들어진다.’ 대본 분석까지 끝내놓고 저한테 찾아온 거 였어요. 자신으로 생긴 문제, 자신이 풀어보겠다는 자신감. 그 당시 지우 씨가 20살이었으니까··· 대단하지 않나요?”
기자는 놀라며 수첩에 ‘류창진과 이지우의 인연, 자물쇠’등을 쓴다.
“참 그런 인연을 가지고도 작업을 계속하다니 한편으로 대단하고, 신기하고 그렇습니다. 이지우 씨의 부담감이 상당했을 것 같은데요. 전작 [악의 기록]이 워낙 대박이 나서요. 아무래도 어린 나이이고, 전작보다 더 잘해야 한다는 그런 부담감을 보이진 않았나요?”
“음···신경도 안 쓸걸요.”
“네?”
“방금 그런 인연을 가지고도 작업을 계속한다는 게 신기하다고 하셨죠. 이지우 씨는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작품만 봅니다. [저승 카페]때도 그랬고, [응답하라 119]때도 그랬고요. 지금도 작품에만 집중하기에 오히려 부담은 저희 스탭들이 받죠. 좋은 작품 다 재끼고 우리 작품을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영상에 문제가 생기면 스태프들의 실수니까요.”
“아···”
수첩에 무언가를 덧붙여 쓰던 기자가 이제 막 생각났다는 듯 질문을 했다.
“[응답하라 119] 마지막 촬영만을 놔두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혹시 이지우 씨 차기작 관련 소식을 좀 들을 수 있을까요?”
“이지우 씨 차기작이요? 음··· 확실한 건 아니지만 준비 중인 작품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차기작은 영화라더군요.”
“영화라면··· 혹시 이수한 감독과 또 하나요?”
“아뇨아뇨, 저는 아는 게 별로 없고요. 감독은 누가 될지 모릅니다. 대신 그 영화 작가분이랑 제가 인연이 좀 있어서 아는 것 뿐입니다. [저승 카페] 공동작가이신 박현주 양의 장편영화 중 첫 번째 단독작품입니다.”
“이 내용 기사 써도 되나요? 업계에 소문이 파다해서요. 박현주 양 기사를 쓰면 이지우 씨가 고소한다는 소문이 있어서요.”
류창진은 문제없다는 듯, 손바닥을 위로 향한 채, 어깨와 양팔을 살짝 드는 제스처를 했다.
류창진은 웃었고, 기자도 웃었다.
일부러 던진 떡밥. 그리고 떡밥에 신이 난 기자.
가장 크게 웃는 건 이지우라 하더라도, 옆에서 같이 웃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나.
“그럼 다른 배우들 이야기도 좀 해볼게요. 방창익 배우는 어떤가요? 주연으로 첫 발탁인데.”
“아! 그러고 보니 방창익 씨도 이지우 씨와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대본리딩 날이었죠···”
***
드라마 관련 가장 큰 인터넷 커뮤니티.
밤낮 가리지 않고 드라마 관련 소식이 올라오는 곳이다.
신작 드라마, 혹은 방영 중인 드라마의 소식이 가장 빠르게 올라오고 공유된다.
그리고 지금 그 커뮤니티의 가장 큰 이슈는 단연코 이지우였다.
류창진 PD의 인터뷰 기사가 편집되어 장문으로 올라왔다.
그 기사를 접한 코어 드라마 팬들이 게시글을 채웠다.
- 류창진이 확실히 연출 능력이 괜찮은 거 같긴 한데, 내가 봤을 때는 유수영 작가 빨임.
ㄴ 배우빨이지. 데뷔작부터 이정건 데리고 찍었는데.
ㄴ 그렇게 따지면 이지우 빨이지. 이정건 나오는 [DR. 헬기] 지금 응구(응답하라 119)한테 밀리는데.
ㄴ 류창진 이번에 겨우 2번째 작품임. 위에 말 다 맞는데 장래성 있음.
ㄴ 그렇게 따지면 이지우 데뷔 만 2년 안됐음ㅋㅋ
- 와 20살짜리 신인이 PD한테 찾아가서 말 한마디 안 하고, 자물쇠 하나로 설득하는 것 실화냐?
ㄴ 깡 좋아 보임. [악의 기록] 보면 진짜 지림. 사람 죽여본 눈빛임.
ㄴ 사람 죽이면 눈빛이 달라짐?
ㄴ ㅇㅇ 다름.
ㄴ 와, 나 20살 때 술만 ㅈㄴ 처먹고 다녔는데.
- 이지우 기사는 ㄹㅇ 좋은 기사만 올라오네. 기자한테 돈 먹인 거 아님?
ㄴ 좋은 기사 쓰라고 돈을 먹이는 게 아니라, 나쁜 기사를 쓰면 고소를 먹이니까 그렇지.
ㄴ 나 같아도 여친 건들면 눈 뒤집힌다. 그리고 그 아버지가 국가를 위해 헌신하셔서 받은 국가유공자인데 병역비리라고 기사 써 갈기면 나라도 고소하지.
ㄴ 이지우 이야기만 나오면 꼭 이걸로 싸우더라.
- 22살짜리 커플. 남친은 배우하고, 여친은 작가고. 둘이 합치면 영화 한 편 뚝딱이겠네.
ㄴ 감독은?
ㄴ 이수한이 찍으면 되겠네. 백룡영화제 못 봄? 이지우 남우주연상 못 받고 이수한 감독상 받을 때 상 받는 표정이 아니라 똥 밟은 표정임.
ㄴ 이지우가 나온다는데 감독 못 구할까. 나이만 맞으면 대부분 역할 소화 가능한데. 못생긴 역할 빼고는 다 가능 할걸.
***
오늘 촬영을 끝으로 [응답하라 119] 촬영이 끝난다.
저번 주 방영분이 14화. 이번 주 15, 16화가 방영되고 나면 [응답하라 119]도 끝나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나온 류창진 PD의 인터뷰 기사.
저번 촬영 간에 류창진 PD가 인터뷰한다는 이야기를 듣긴 들었다.
저번 촬영 때 류창진 PD가 배우들을 모아놓고, 인터뷰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배우들 이야기가 나올 수 있으니 양해해 달라고 말이다.
그런데 이건 뭐··· 이지우 간접 인터뷰 아닌가.
방금 류창진 PD가 나를 보고 엄지 척 하고 지나가길래 뭔가 싶었는데.
이걸 고맙다고 해야 하나. 아마도 내 차기작에 관한 관심을 끌어올려 주기 위해서 밑밥을 깔아준 것 같은데.
물론 그것만은 아니겠지.
류창진이 괜히 이런 인터뷰를 했다고 생각지 않는다. 현주와 나, 단순히 신인배우와 신인작가의 공개연애가 아니지 않은가. 현주의 채용비리 기사 이후, 내가 관련 기사를 썼던 기사를 모조리 고소했던 보람이 있었는지, 그 이후 현주에 관한 기사가 아예 올라오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올라온 나와, 현주를 엮은 기사.
아마 이 내용을 받아쓴 기자 조회 수 달달하게 뽑았을 것이다.
류창진은 이런 공개 안 된 이슈를 던져주면서 마지막 [응답하라 119] 15화 ,16화의 관심을 끌어 올릴 생각을 했을 거고, 기자는 당연히 신나서 받아적었겠지.
마지막 촬영, 내 리허설을 끝내고 다른 배우들 리허설 하는걸 구경할 겸 커피를 만들고 있었다.
"지우 씨, 고마워요. 잘 마실게요."
이제는 내가 커피를 만들어놓으면 자연스럽게 집어가는 스태프들.
그렇게 스태프들이랑 농담 따먹기를 하면서 리허설을 구경하는데, 류창진 PD가 대기실에서 나온 이지혜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라 말했다.
"이지혜 씨, 얼굴 왜 그래요?"
"계단에서··· 굴렀어요. 죄송합니다. 메이크업 다시 할게요."
광대쪽이 시퍼렇게 멍들어 두꺼운 화장을 했음에도 티가 났다.
계단에서 굴렀다니, 거짓말을 해도 왜 꼭 저렇게 티가 나게 할까. 누가 봐도 맞은 얼굴인데.
류창진 PD의 말에 당황하며 이지혜는 다시 대기실로 돌아가 버렸고, 리어설은 시작도 못 하고 다시 중단돼버렸다.
잠시 촬영장에 휴식시간을 걸어놓고, 류창진 PD가 다가왔다.
"하, 큰일이네. 배우 얼굴을 저래놓으면 어쩌자는 건지."
커피 한잔을 류창진 PD에게 건넸다.
"어떻게 하나요? 저대로 못 찍을 것 같은데."
"일단 메이크업 다시 한다고 하니까 찍어보고요, 편집할 때 수정하던가··· 안 되면 유 작가한테 말해서 빼고 찍을 수 있겠냐 물어봐야죠."
잠시 고민하던 류창진 PD가 이제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아참, 인터뷰 봤어요? 괜찮았죠? 신나서 인터뷰하긴 했는데. 지우 씨 너무 팔아먹은 거 같아서 미안하더라고요. 현주 양 이야기도 살짝 나왔고.”
“아뇨 기분 나쁠 게 뭐 있겠습니까. 다 좋은 이야기만 해주셨던데요.”
“에이··· 그래도 지우 씨 없는 곳에서 지우 씨 이야기하면 좀 그렇잖아요.”
“일인데요 뭘··· 이해합니다. 그리고 드라마에 도움되는 일이고요.”
“크··· 도도해. 프로페셔널하고. ”
그렇게 류창진은 다시 리허설 준비를 하러 가고, 나도 내 촬영 전까지 잠시 쉬려고 돌아서는데, 이지혜와 딱 눈이 마주쳤다.
움찔하는 모습. 가뜩이나 조연인데 자신 때문에 촬영이 지연되니 민망하겠지.
"커피 한잔하실래요?"
"아뇨··· 리허설 때문에···메이크업도 다시 해야 하고."
"아 맞다. 힘내요."
돌아서서 나오는데. 생각해보니 좀 이상했다.
메이크업 한다고 간 사람이 메이크업은 안 하고 내 뒤에서 이야기를 엿듣는다고?
예전부터 느끼던 건데, 이지혜 이름이 익숙하다.
배우로 어느 정도 성공했다면 내가 모를 리가 없을 텐데.
기억에 없는 걸 보니 그런 건 아니고. 그럼에도 익숙한 이름.
그때 김수호가 다가왔다.
"지우 씨, 회사에서 광고 리스트 뽑아 놨는데, 지금 확인하시겠어요?"
"네? 네···잠시만요."
'리스트'라는 말을 듣자마자 순간 사건 하나가 번뜩이듯이 생각났다.
'이지혜 리스트'
저 여자 곧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