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구조 1팀
[응답하라 119] 12화.
공단에서 일어난 대규모 화재.
그 현장에 투입된 소방서 대원들이 몇 차래 교차하며 클로즈업된다.
“대장님 지휘소 개소했습니다. 서장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김 반장이 구조대장에게 말했다. 구조대장은 곧 김 반장의 안내를 따라서 지휘소로 들어갔다.
화재 현장 한쪽에 마련된 간이천막. 구조대장이 그 천막을 들어가니 이미 경기 지방의 여러 소방센터의 센터장과 서장이 앉아 브리핑을 받고 있었다.
“공단에 잔업 하던 사람이 많았다고 합니다.”
“명단은.”
“...없습니다. 명단을 든 사람과 자료 모두 현장에 있는 것 같습니다. 연락이 안 됩니다...”
“하···”
천막 내부에 짙게 깔리는 한숨들.
넓은 공장에 크게 번진 불. 각종 자재와 비닐들이 타면서 나오는 유독가스. 열기를 이기지 못해서 무너지는 간이 건물들.
무엇보다 어려운 점은 몇 명인지 파악되지 않는 구조 요청자의 숫자다.
대참사의 조짐이었다.
“일단, 공단 전체 인원들 명단 추려서 모두 전화해. 전화 안 받는 사람들 다 체크해놔. 구조대장들 일단 모여보고.”
회의가 길어질 틈이 없다.
몇 가지 주요 사항만 체크한 뒤, 현장으로 달리는 구조대.
“김 반장이랑 지호랑 대만이, 먼저 박스 공장부터 들어간다. 응방팀에서 길 뚫는 거 확인되는 대로 바로 진입해. 그리고 최 반장···”
전쟁통을 방불케 한다.
사방에서 펌프차와 물탱크차가 현장으로 비집고 들어온다. 관창(소방호스)이 여기저기 굴러 다고 소방대원들의 비명과도 같은 외침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응방팀이 진입로를 뚫기 위해서 물줄기를 한쪽으로 집중한다.
최지호가 속해있는 구조 1팀은 현장안전점검관에게 인식표를 맡기고 불길이 잦아들길 기다린다.
인식표. 현장에서 대원들의 투입 여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시스템.
‘꼭 다시 받아가라.’
이런 말은 하지 않는다. 그저 눈빛으로, 굳게 다문 입술로 말없이 마음을 전할 뿐이었다.
최지호는 오늘 오후, 63빌딩 계단 오르기 대회에 출전한 여파로 다리가 후들거린다. 그 모습이 잠시 비치고 김 반장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최지호와 비교하면 별 표정이 없는 김 반장. 약간의 긴장만 있을 뿐, 최지호와 달리 힘든 기색이 전혀 없었다.
‘혹시나 출동이 있을지 몰라서 힘을 남겨둔 건가.’
그런 생각을 보여주는 듯이 최지호가 김 반장을 다시 한 번 흘끔 쳐다본다.
“구조 1팀 들어간다!”
김 반장의 지휘 아래 투입되는 구조팀.
진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쓰러져 있는 구조요청자.
천장의 잔해가 쏟아져 내려 문을 막고 있었다.
“뚫어!”
김 반장의 지시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최지호와 김대만 대원.
“요구조자 구출! 1조 계속 수색 진행함”
김 반장은 무전기에 짤막하게 말하곤 바로 이어 말했다.
“대만이는 이분 데리고 나가고 지호 따라와. 계속 수색한다.”
옆방, 그리고 다음 방까지 구조요청자를 수색한다.
“안 되겠다. 더 들어가 하면 탈출로 막히겠다. 일단 빠지고 반대로 들어가자.”
“김 반장님. 저기 저 문.”
최지호의 손끝에 아직 닫혀 있는 문이 있었다.
화장실인지, 창고인지, 확인이 안 된 상황.
짧은 고민.
불길이 점점 올라오고 있다. 응방팀이 뚫어놓은 진입로가 점점 막히고 있었다. 갈라지는 벽면과 녹아내리는 천장. 자칫 건물 붕괴가 일어날 수 있는 상황.
최지호는 느낄 수 있었다. 누가 봐도 사람이 없을 것 같지만··· 이 일은 만에 하나, 천에 하나라는 게 없다. 목숨은 하나다.
김 반장은 반대쪽을 뚫어서, 이곳으로 다시 오자고 했지만, 만약 그전에 붕괴하여 다시 오지 못한다면.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김 반장이 결심한 듯 말했다.
“...저기만 확인하고 가자.”
“네.”
현장에서는 이미 개인적인 감정은 남아있지 않았다.
내가 아니면 김 반장이 죽을 수도 있다. 김 반장이 아니면 내가 죽을 수 있다.
극한의 상황에서 피어나는 연대의식이 두 사람을 묶었다.
문을 열고, 먼저 진입한 김 반장.
자재를 쌓아놓은 창고. 아직 불길이 번지지 않았다. 하지만 연기 때문에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상황.
한 발, 두 발. 앞으로 걸어 들어가고.
‘우두두둑’
“오지마아아아아아!”
창고 양옆에 쌓아놓은 자재가 쏟아지며 깔리고 마는 김 반장.
비명 대신, 오지 말라는 외침.
동시에 ‘빠지지직’ 하며 들어왔던 입구 쪽 천장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붕괴 조짐이었다.
“빠져, 도망가라고. 새끼야 빨리 빠져. 무너진다.”
최지호의 시선을 빌어 카메라로 담는다.
자재에 깔려 움직이지 못하는 김 반장. 화면이 움직이며 조금씩 무너져 내려가는 탈출구를 보여준다.
그리고.
다음 이 시간에.
***
[[응답하라 119] 12화 순간 시청률 10% 돌파!]
[종편드라마의 순기능. [응답하라 119] 중고 신인의 재발견! 무명배우 방창익, 김환동, 서소혜]
[종편드라마의 새로운 시도. 소방관들의 일상과 사투![응답하라 119] 화제몰이]
ㄴ 현직 소방관입니다. 보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웃기도 많이 웃었고요. 드라마 디테일이 정말 좋았습니다. 그리고 배우들 연기도 훌륭하고요. 배우들 연기 보면서 죽은 우리 선배 얼굴 생각나서 오랜만에 현충원 갔다 왔습니다. 제작진들 고맙습니다.
[응답하라 119]의 화제에 편승해 속속 올라오는 기사들.
그리고 [응답하라 119]의 흥행으로 의외의 재발견이 이슈가 됐다.
[웃음과 감동 속에 날카로운 풍자. [응답하라 119]에서 보인 소방대원들의 현재]
[소방대원들의 현실. 방화 장갑이 없어 목장갑을 끼고 화재진압]
[열악한 소방대원의 처우. 실효성 없는 3교대 근무정책. 대부분 2교대 근무로 매일 한계와 싸우는 소방대원들!]
소방대원의 처우를 풍자하듯이 개그 장면으로 나왔던 열악한 소방대원들의 현장.
드라마의 효과로 소방대원들의 대우에 관한 문제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다.
단지 나라는 배우 하나가 이슈가 되는 게 아니라, 드라마의 사회적 여파와 소방공무원들 처우까지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고된 현장에서 시민의 안전을 위해 봉사하는 소방대원’이라는 이미지가 내 뒤에 따라붙었다.
12화의 방영이 끝나는 시점. 촬영은 15화까지 모두 끝이 났다.
편집하는 시간을 고려해도 2주 동안 1편 분량만 찍으면 모든 촬영이 끝난다는 계산이었다.
드라마의 가장 하이라이트였던 12화 공단 화재사고. 6화 시청률이 7%를 넘기는 순간 TNN에서 통 크게 제작비를 올려줬다. 그래서 원래 시나리오에서 상가 건물 화재사고였던 작품 중 화재사고가 공단 화재사고로 사이즈를 키울 수 있었던 것이다.
제작비의 규모가 커진 만큼 좋은 영상이 나왔고, 시청률로 보답 받았다.
그 이후 13~16화는 그동안 쌓아왔던 인물들의 갈등이 풀어지는 과정이 주가 되기에 더 이상의 큰 출동 장면은 없었다.
촬영도 세트 촬영 위주로 좀 편하게 찍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동안 빡빡한 야외 촬영스케줄에 광고촬영까지 더해서 숨도 못 쉬게 바쁜 일정이었고, 15화 촬영이 끝나면서 한숨 돌릴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한숨 돌릴 수 있을 때는 뭐한다?
현주 본다.
청운 엔터 테인먼트의 현주 작업실로 갔다. 겸사겸사 광고 건 관련해서 마무리할 일도 있었고.
현주에게 가기 전, 먼저 이동수 실장을 찾았다. 이동수 실장은 책상에 놓인 서류들 더미에서 큰 몸을 놀리며 일을 하고 있었다.
“동수 씨, 이번 광고-”
“아! 지우 씨. 어서 와요. 이번 광고 대박! 광고 나가고 광고주들의 문의가 두 배 이상 들어왔어요. 처음에 콘티보고 이래도 되나 싶었는데 확실히 전문가들이 다르긴 달라요. 그죠? 영상이 콘티랑 느낌이 완전히 다르네.”
내가 오길 기다렸다는 듯이 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자신의 말을 신나게 쏟아낸다.
“이번에 찍은 광고 있잖아요. 그 수익금.”
“네 회사에서 공제할거 하고 바로 입금될 겁니다.”
“아뇨. 그거 다 기부로 돌려주세요.”
“네? 어디···로요?”
[악의 기록] 투자수익금과 러닝게런티가 모두 입금되었다. 그리고 그 모든 수익금을 비트 코인과 테슬라 그리고 화장품 주식에 몰빵했다.
코인에 몰빵하지 못했던 이유가 코인의 시세가 단 몇십억으로도 출렁일 정도로 아직 초기 단계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충 계산했지만, 중국발 화장품 주식이 급등하고 그 수익을 다시 코인에 투자하는 게 더욱 큰 이득이라는 계산이 나왔다.
당분간 코인이 큰 폭으로 오를 일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고.
어쨌건 경제적인 자유가 예정되어있는 상황.
지금의 흐름을 돌릴 필요가 있었다.
“소방장비나 그런쪽으로요. 방화복도 좋고 방화 장갑도 좋고. 우리나라에서 못 구하는 거면 수입해서 드려도 좋고요. 어쨌건 제일 좋은 거로 최대한 구매해서 근처 소방서라도 뿌리죠.”
“네?”
신문과 방송에서 소방대원들의 처우에 대해서 계속 때리고 있었다. 이슈의 중심이 드라마에서 소방대원들의 열악한 처우로 옮겨가고 있는 지금. 이슈에 편승하던, 더 크기 키우던 할 필요가 있었다.
어느 쪽이건 나와 드라마에 긍정적이었다.
그리고 소방대원을 연기하기 위해 자료조사를 하던와 중 나름 느낀 바도 있었고.
이 정도로 열악할 줄 몰랐다.
지금의 [응답하라 119]의 인기, 그리고 내 긍정적인 이미지가 모두 소방대원들의 희생과 봉사에 의한 것이니만큼, 조금이라도 갚고 싶었다.
“전에 소방서에 가서 인터뷰 할 때 보니까 따로 보급 나오는 장비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부탁해도 될까요?”
“하이고, 이런 거 하라고 회사가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어려운 것도 아니고요. 전에 이틀 밤새워서 스케줄 짰을 때 얼마나 미안했는데요. 제가 제품 알아보고 비용처리 싹 해서 보내드릴게요.”
“감사해요.”
시원스럽게 대답하는 이동수 실장. 그리고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내게 말했다.
“아참. 오늘 [벡터맨]식구들 회식 있는 거 아세요? 오늘 스튜디오 나우에서 [벡터맨]에 출연했던 배우들이랑 스탭들이랑 만나기로 했거든요. 오랜만에 모인 김에 사장님이 [벡터맨] 스태프랑 배우들 모아서 회식하라고 카드 주셨고요.”
기억났다. 스튜디오 나우에서 제작할 [벡터맨] TV판에서 연극판 [벡터맨]에서 연기했던 배우들을 우선하여 채용하기로 했던 내용.
TV판 [벡터맨]과 연극판 [벡터맨] 스탭들끼리 특수효과나 미술분야에 의견이나 아이디어를 공유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규모가 좀 더 큰 청운에서 미팅을 한번 하기로 했던 것까지 기억이 났다.
“현주가 가면 저도 가야죠.”
“하하, 그럴 거 같았어요. 현주 씨도 지금 회의실에 있을 거예요.”
회사에 있는 회의실. 가보니 [벡터맨] 연극판의 주요 배우, 스태프들과 현주, 그리고 스튜디오 나우의 제작 1팀 스태프들과 이수한이 동석해서 회의하고 있었다.
아직 [벡터맨] TV판의 감독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었고, 이수한이 대신해서 제작 1팀을 이끌고 온 것으로 보였다.
그러고 보니 나는 저기 있는 대부분의 사람과 안면이 있네.
나와 좋은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이 호응해서 다시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것에 묘한 만족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현주가 있는 것에 뭔가 행복함이 느껴졌다. 현주가 더 이상 내 꿈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꿈을 가지고 뭔가를 하고 있다는 그 느낌이 좋았다.
통유리로 막혀있는 회의실. 그 유리의 가슴 높이까지는 반투명이라 얼굴이 보이는 상황.
현주가 어디있는지 확인 하기위해 회의실을 살피자 고개를 든 현주와 눈이 마주쳤다.
가볍게 눈인사를 했다.
숟가락을 들고 퍼먹는 시늉을 했다. 끝나고 같이 밥 먹자고. 아마 다 같이 가는 회식이 되겠지만. 살짝 웃으며 나에게만 보일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현주.
얼마 지나지 않아 회의가 끝나고 나오는 현주에게 다가갔다.
“끝났어? 뭐 TV판 시나리오도 니가 쓰는 거야?”
“아니. 나는 [찬란하게 빛나는]에 집중하고 싶어서 거절했어. 수한이 오빠도 정 사람이 없으면 자기가 써도 된다고 하고.”
“어··· [벡터맨] 아동용인데 수한이형이 쓴다고? 피와 폭력의 [벡터맨]뭐 그런 거는 아니겠지?”
우리 ‘폭력의 거장’께서 이번 생에서는 벡터맨으로 ‘폭력의 트릴로지’를 채우시려나.
“야 인마, 니가 바이오맨을 알아? 후레쉬맨 아냐고. 나 그런거 보고 자란 세대야.”
나와 현주의 대화를 들었던 건지, 뒤에서 이수한이 서류철을 들고 다가왔다.
“수한이 형. 솔직히 형 필모만 봤을 때, 형이 찍으면 피와 폭력의 [벡터맨] 맞지 뭐.”
“오! 수한이 오빠의 피와 폭력의 [벡터맨] 버전도 나름 괜찮을 것 같은데? 가면라이더 처럼.”
“역시, 현주 니가 뭘 좀 아네. 특찰물의 근본은 가면라이더지.”
현주가 [벡터맨]을 쓰기 위해서 각종 일본과 미국판 특촬물을 모조리 섭렵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나도 틈틈이 같이 봤거든.
거기에다가 한 번씩 이수한네 만화방 가면 몇 시간씩 만화책을 같이 보기도 했었고.
이수한과 그렇게 잠시 대화를 하던 중, 회의실에서 [벡터맨] 연극판의 배우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지우 씨! [응답하라 119] 너무 잘 보고 있어요. 대박!”
“지우 너 오늘 회식 가냐? [벡터맨] 연극판 사람들 다 모이는데.”
연극 배우들 중 여이수와 김범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네 가야죠. 형도 같이 갈래? [벡터맨] 회식? 여기까지 온 김에 밥이라도 먹고 가.”
이수한에게 아동극 회식에 함께할 것을 물었다. 어차피 김범과 현주, 그리고 나까지 함께하는 자리이기에 특별히 어색할 것도 없는 자리였다.
게다가 연극배우들 대부분 TV판 [벡터맨] 오디션을 보기로 예정된 사람들이었다.
이수한은 이름난 감독이었으니 [벡터맨] 출연진들도 좋아할 듯 싶어서 한 권유였다.
“형?”
이수한은 멍한 표정으로 대답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이수한의 시선의 끝에 여이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