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녀를 위해 연기하라-92화 (93/121)

92. 응답하라 119

류창진 PD는 방송준비실에 제출한 편집본을 회수하고 원래 완성품, 그러니까 최지연 씨를 편집하지 않은 원본을 다시 제출하였다.

“류 PD님 이거 진짜 문제없는 거 맞죠?”

“네. 문제없고,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제가 책임집니다. 이대로 제출해 주세요.”

미심적은 눈으로 테이프를 받아들이는 편집감독.

“국장님이 최지연 씨 빼라고 했던 거 같은데···”

“최지연 씨가 무슨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개인적인 스캔들이 난 것도 아니고, 타 방송사 보도내용 때문에 편집해서 내보내는 것 자체가 웃기잖아요. 그렇다고 방심위에서 경고받을 만한 장면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도···”

“걱정 마세요. 절대로 문제 안 생깁니다. 아니, 문제가 생기긴커녕 오히려 시청률 대박 날 거라 장담합니다.”

류창진 PD가 점쟁이도 아니고, 어떻게 미래의 일을 알겠나.

그저 자신을 믿고 최지연 선생님과 인터뷰를 하고 있을 배우를 믿을 뿐이었다.

항상 촬영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배우.

어떠한 상황에서도 무언가를 보여주는 배우.

[저승 카페]를 촬영하던 당시. 박현주 작가의 채용비리와, 이지우의 병역비리까지 동시에 터져서 정신없었던 시기가 있었다.

의혹과 불신으로 비난하는 대중들.

그때도 지금과 똑같았다.

정신 못 차리는 드라마 국장, 불안해하는 스태프들과 여타 배우들.

류창진 PD도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불안해하기만 했다. 류창진 PD가 한 것이라곤 이지우의 부탁을 받고 인터뷰를 한번 해준 것 말고는 아무 일도 한 게 없었다.

그때 뉴스에서 나오는 이지우를 봤다.

검찰청을 당당하게 걸어 들어가 인터뷰하는 모습.

압도적으로 불리하던 상황을 하나씩 돌파해나가는 이지우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바, 감동적이기 까지 했다. 그 상황에서도 연기력이 전혀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류창진 PD도 뭔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잘리면 잘리는 거지 뭐.’

KBC에서 TNN으로 이적한 지 1년도 안 되었기에 이번에 잘리면, 갈 곳도 마땅치 않은 상황.

하지만 이상하게도 류창진 PD는 두렵거나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이번에는 뭘 보여 줄 것인지 오히려 기대되었다.

***

[촬영 전 구명 활동. 이지우 배우 최지연 씨의 목숨을 살리다]

차지석은 처음에 이 기사가 떴을 때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쇼하고 있네’ 딱 그 정도로 생각했다.

어설프게 없는 일 지어내다가 진실이 밝혀지면 어떻게 하려고 이런 거짓말을 하나 싶었다. 아니, 거짓말인 것을 밝혀서 아예 이 귀찮은 일을 마무리 지으면 어떨까 그런 생각 까지 했다.

기사를 확인하고 ‘어쩌면’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영상을 끝까지 확인했을 때는 확실히 날조한 사실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작된 기사도 아니었고, 조작된 상황도 아닌 것 같았다.

‘정말 운이 좋군.’

시기적으로도 한참 옛날. 3개월 전에 있었던 일이 우연히 지금 터진 것일 뿐. 일부러 만든 이야기는 아닌듯했다.

하지만 그뿐 이었다. 단지 이지우가 응급조치해서 최지연의 목숨을 구했다는 내용 말고 다른 내용은 없었다.

그동안 잠잠했던 이지우라는 이름이 다시 전면으로 올라오는 것이 꺼림칙했으나 별다른 영향이 없을 거로 생각했다.

혹시나 후속기사가 또 있나 싶어, 새로 고침을 했을때, 못 보던 기사가 주르륵 올라왔다.

[이지우의 은밀한 비밀, 기부활동 화제]

[연기 천재 이지우, 기부도 천재적. 아동극 티켓 1억 원 쾌척!]

[이지우 [악의 기록] 이후 모든 활동을 접고, 봉사활동에 매진]

ㄴ 개부럽다 진짜 이지우로 하루만 살아봤으면 좋겠다. 얼굴 잘생겨, 돈도 많아, 키도 커. 착하기까지 하네.

ㄴ 제발··· 제발 꼬추는 3센치···

ㄴ 미친 새끼들아 우리 오빠 기사에서 꺼져

차지석 사장은 불안한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 같았다. 이상하게 [단군삼신기]를 촬영하는 박정태를 따라다닐 때 느껴지던 기분이 오버랩 되었다.

생각했던 것과 전혀다른 여론.

다시 한번 새로고침.

어느새 새로운 기사가 올라왔다. 이번엔 주제가 조금 다른 기사였다.

[이지우와, 최지연의 특별한 인연. ‘이지우 씨가 제 목숨을 두 번 구했죠’ 인터뷰[전문]]

[최지연의 생명의 은인 이지우. 심폐소생술에 이어 대장암까지 치료한 사연]

[반전매력. 차가운 남자 이지우, 아이들에게는 따뜻하겠지]

기사 상단에 박혀있는 병실에서 이지우와 최지연이 나란히 앉아 있는 사진.

그제야 차지석은 아차 싶었다.

이지우 선행에 관한 기사가 쏟아지고, 이어서 이지우와 최지연의 사연에 대한 후속보도가 쏟아졌다.

지난 [저승 카페] 이후 높아진 화제성과 반비례하여 전혀 언론에 노출이 없었던 이지우. 그동안 모아왔던 화제성을 모아놨다 터트리듯이 어마어마한 기사량이 쏟아지고 있었고, 반응도 뜨거웠다.

이런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지의 낙수효과라고 해야 하나. 혹은 이지우의 후광 효과라 해야 하나. 이지우의 여러 선행이 기사로 나오고, 최지연이 이지우와 계속 묶여서 기사가 나오니 마치 최지연이 좋은 일을 한 것과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실시간 검색어 순위를 빠르게 치고 올라오는 ‘이지우’라는 키워드. 그리고 따라 올라오는 ‘이지우, 최지연’, ‘하임리히법’, ‘벡터맨 티켓 값’등의 키워드.

혹시나 싶어 최지연을 검색해 보지만, 완구회사나 아동복에 관한 내용은 없고 대부분이 이지우와 사연, 그리고 드라마에 관한 내용 밖에 보이질 않았다.

어제 [시사 저격]에 최지연 회사의 보도가 나간 뒤, 생각보다 화력이 약하다 싶었는데 지금은 아동복과 장난감에 관한 내용은 한참 아래로 내려가야 찾아볼 수 있었다.

피곤했다.

벌써 9시. 본업인 연예소속사 업무를 쳐내는 와중에 귀찮은 일까지 떠맡아 퇴근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기사를 확인하면 철없는 사장의 아들이 또 징징거릴 것이다. 생각하니 벌써 짜증이 솟구쳤다.

그렇다고 이런 일을 부하직원을 시킬 수도 없는 노릇. 결국 차지석이 다 해야만 했다.

‘띠리리리’

발신자 정보 표시 서비스 : 본사 정종철 과장

“하···시바”

한숨을 내쉬며 자신도 모르게 욕을 내뱉은 차지석. 할 수 없다는 듯이 휴대폰을 열었다.

-차 사장 이거 뭐야? 무슨 이지우 기사가 이렇게 많이 올라와.

“상대 쪽에서 기획한 것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야 차 사장. 일을 이따위로 밖에 못해? 누가 기획했든 그게 뭐가 중요하냐고. 씨바 묻으라 그랬지 누가 띄우라 그랬어? 어떻게 묻어버릴 건지를 고민하라고.

“...일단 다른 방법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너 딱 기다려. 내가 지금 거기로 갈 테니까.

차지석은 10살 가까이 어린 정종철이 분을 못 이겨 반말하는 것을 듣고, 올라오는 분노를 삼켰다. 성격 같으면 어디 좋은 창고 대려다가 버릇 고쳐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십 번 했다. 스스로 불가능 한 일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

정종철이 사무실에 들어왔다.

“어이 차 사장. 뭐 좋은 아이디어 없어요?”

사무실 소파에 ‘털썩’하고 소리 내 앉으며 티브이를 켜며 말하는 정종철.

차지석은 자신의 사무실을 제집 안방처럼 쓰는 정종철이 짜증 났지만 내색 않고 마주 앉았다.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아, 그니까. 언제까지요.”

아까 전화 받을 때에 비해 많이 누그러진 정종철의 모습. 말투가 변했다. 높임말도 아니고, 그렇다고 반말도 아닌. 차지석은 참 설레는 반 존대라고 생각했다.

“[응답하라 119]가 끝나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자꾸 기대가 꺾이려고 그러네. 우리 차 사장님. 실장 때는 날아다니더니.”

‘틱, 틱, 틱, 틱’

무심한 표정으로 리모컨을 조종하여 채널을 바꾸며 말을 하는 정종철.

차지석은 정종철과 마주앉아 있는 게 부담스러웠다. 실수로 주먹이 날아가면 안 되니까. 표정관리가 안 되어, 손가락으로 이마를 긁으며 말했다.

“어차피 [응답하라 119]는 종편 방송사의 드라마 아니겠습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시고 제가 방법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주시면···”

‘틱’

그러다가 어느 순간 멈춰버린 리모컨을 누르는 소리

너무 조용한 정종철의 모습에 의아함을 느낀 차지석은 고개를 돌려 정종철이 틀어놓은 티브이를 봤다.

뉴스에는 이지우와 최지연이 나란히 앉아 인터뷰를 하는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곧, CCTV 화면이 나오며 하임리히법과 심폐소생술을 하여 최지연이 정신을 차리는 모습까지 나왔다.

차지석은 슬그머니 리모컨을 주워들어 다른 방송을 틀었다.

“이 바닥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저런 얄팍한 수로 인기몰이 해봐야···”

그렇게 채널을 돌렸으나.

티브이에는 여전히 이지우와 최지연이 있었다.

[응답하라 119]의 첫회 방영이었다.

***

“엄마, 다녀오겠습니다.”

“그래그래, 차 조심하고.”

“알았어요 알았어. 내가 뭐 초등학생이야. 내가 나이가 몇 갠 데 아직도 차조심하라는 소리를 해요. 어련히 잘 알아서 할까 봐.”

쇼파에 있던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가 힐끗 보더니 짐짓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이 먹고 교통사고 나면 안 죽는다니? 오는 건 순서 있어도 가는 건 순서 없다. 내가 현장에 있을 때는 어린애들보다 어른들 교통사고가 더 잦았어. 인마.”

“어휴··· 또 그 이야기. 조심할게요. 오늘 나 퇴근하면 가족끼리 밥이나 먹어요. 첫 출근기념으로 내가 쏠게.”

기분좋게 웃음을 띠고 출근을 하는 청년. 자전거 페달을 밟는 모습이 경쾌하다.

어쩐지 밝은 분위기의 드라마 톤.

‘끼이이이익-쾅’

지나가는 구급차에 살짝 치였는데, 과장된 연출로 날아가는 듯이 묘사된다.

시트콤에서나 쓰일법한 연출이었지만 경쾌한 드라마 톤과 오히려 잘 맞아떨어진다.

“어머어머 어떻게해! 반장님 빨리빨리. 환자분 실어요!”

구급차에서 내린 구급대원이 부산스럽게 환자를 구급차에 태워서 출발했다.

구급차 안에서는 대원들끼리 정신없이 대화를 주고받는다.

“뭐야뭐야! 이거 어떻게해! 어떻게 된 거야? 산지직송이야? 무슨 구급차가 환자를 만들어서 호송하냐. 박 반장 돌았어?”

“아니, 커브 틀자마자 자전거가 튀어나오더라고···”

“환자분 정신 차려보세요! 제 말 들리세요?”

달리는 구급차 안, 병원 응급실이 차례로 화면 전환되고 정신을 차린 청년의 바스트샷.

청년은 눈을 뜨자마자 전화기부터 찾는다.

“휴··· 휴대폰 좀··· 제 휴대폰 혹시 못 보셨나요?”

“환자분 괜찮으세요? 하··· 정말 죄송합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는 구급대원.

“네네··· 일단 전화 좀 하겠습니다.”

청년이 전화하자 구급대원은 몇 발 뒤로 물러서 송구하다는 식으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청년이 전화기를 들고 몇 초 후.

‘띠리리리리’

구급대원의 품에서 울리는 휴대폰 소리.

“여보세요? 안녕하십니까. 반장님. 오늘 출근하기로 했던 최지호 입니다. 제가 출근길에 교통사고가 나서요.”

“네? 교통사고요?”

그렇게 서로의 음성을 듣고 두 사람이 눈이 마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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