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녀를 위해 연기하라-91화 (92/121)

91. 저격을 저격하다

몇 년 후 [시사 저격]은 3대 시사보도 프로그램 중 하나가 될 정도로 영향력이 커진다.

KTVC는 고구려일보 계열의 회사. [시사 저격]은 신문사 계열의 종편방송이라는 이미지를 등에 업고 신뢰의 이미지를 꾸준히 쌓아올린 결과다.

그런데 그게 몇 년 후다. 지금은 그저 여러 종편방송국에서 방영하는 찌라시성 기사를 다루는 특색 없는 시사보도프로그램 중 하나일 뿐이었다.

지금 영향력이 얼마나 될까?

글쎄··· 지금부터 그걸 확인해 볼 생각이다.

“류 PD님. 혹시 이전 KBC 보도국에 아시는 분 있어요?”

“아는 사람? 있기야 있죠. 아무리 드라마국이랑, 보도국이 달라도 입사할 때는 같이 교육받으니까요. 연락하는 동기는 몇 있습니다. 왜요?”

나는 들고 있는 노트북을 류 PD에게 넘겼다.

노트북 화면에는 내가 최지연 선생님을 살리기 위해 하임리히법을 하는 모습이 재생되고 있었다.

“단독 인터뷰 관심이 있는지 물어봐 주세요.”

“네? 이게 뭐··· 어? 이거 혹시 지우 씨랑, 최지연 선생님 아니에요?”

“네 맞습니다.”

더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밑에 쓰여 있는 기사를 보지 않고 그 영상 자체만으로, 다 설명이 될 정도였다.

“제가 단독 인터뷰해준다고 하고, 인터뷰를 9시 뉴스 끝에 넣어달라고 딜 쳐보세요. 제 인터뷰가 로카르노 이후 최초 인터뷰라서 비싸게 먹힐 겁니다. 안 해준다고 하면 다른 방송사에 넘긴다고 말해보시고요.”

“네?”

반문하던 류창진 PD가 곧, 이해했다는 듯이 ‘아’ 하는 탄성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더니 급하게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류창진 PD도 KBC에서 눈칫밥 먹다 이직해서 그런지 눈치가 빠르다. 내가 하는 말의 요지를 금세 파악한듯했다.

아마도 KBC에서 보도해 줄 거라 예상됐다. 안해줄 이유가 없었다. 일반인이 지하철에서 사람을 구해도 9시 뉴스에 나온다. 하물며 구해준 사람과, 구명 당한 사람이 인지도가 높은 연예인.

그리고 결정적으로 CCTV 자료화면이 꽤 선명하게 잘 나왔다.

너도나도 스마트폰이 있는 미래와 달리 대부분 휴대폰 카메라 성능이 썩 좋지 못한 현재. 이런 식의 사고현장의 영상 자체가 귀한 시기다.

메인 뉴스로는 부족해도 중간, 혹은 끄트머리에 1분 정도, 만약 내 인터뷰까지 넣는다면 3분까지도 넣어줄 소스였다.

[민주를 기다리며]로 불편했던 나와 KBC와의 관계도 [저승 카페]에서 서로 윈윈하며 대박을 터트리며 좋아지지 않았나.

다른 방송사는 몰라도 KBC와는 충분히 해 볼 만한 딜이었다.

사실, 꼭 KBC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KBC가 거절하면 다른 지상파 방송사, 하다 안되면 종편 방송사의 9시 뉴스라도 상관없다. 뉴스 순서만 끝에 배치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김수호가 하던 전화를 끊고 다가와 말했다.

“지우 씨, 회사 홍보팀으로 연락해 봤는데, 지금 따로 인터뷰 섭외할 필요없이 섭외요청이 엄청나게 쌓여있다네요. 그 레스토랑에서 있었던 기사 때문에 회사로 문의전화 엄청나게 온다고 합니다. 골라서 하시면 될 거 같다고 합니다.”

“인터넷 언론사는 보도자료 등록량 순서대로 끊어서 인터뷰 순서 잡아놓고 일단 홀드 잡아 놔주세요.”

“우와, 이 정도면 순서만 있다 뿐이지 기자회견 수준인데요. 어디서 할까요?”

어디서··· 어디서라. 어디서 인터뷰를 해야 그림이 잘 나올까.

“최지연 선생님 입원하신 병원이 어디라고 했죠?”

“세브란스··· 아!”

비록 레스토랑 사건으로 입원한 것은 아니지만, 때마침 입원해 있는 최지연 선생님. 병실을 배경으로 노배우가 나와 같이 인터뷰한다면?

노년 배우에게 유달리 관대한 대중들의 반응을 고려했을때 환자, 그리고 앞으로 만들어 갈 이미지까지 더해진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다.

KBC 9시 뉴스에서 취재를 나올지 안 나올지는 몰라도, 인터뷰 배경사진만으로도 그림이 충분히 나오는 상황이었다.

“어 종기야, 나 창진이. 너 이지우 씨랑 최지연 선생님 기사 나간 거 봤냐? 아 봤다고! 동기 좋다는 게 뭐냐, 안 그래도 지우 씨 지금 내 작품 하잖아. 그래서 내가 물어봤지. 이 소스 혹시 KBC 데스크에 물어봐도 되느냐고. 그래그래. 내가 이지우 씨 설득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지우 씨 원래 인터뷰 안 하는 거 알지? 내가 그 이지우를 설득했다는 거 아니냐. KBC에서 [저승 카페]로 맺은 인연 아니냐고 인터뷰 한 번 해줘야 하는거 아니냐고. 일단 너도 데스크에 물어보고 확답 주라. 전화줄때 시간 확실하게 잡고. 지우 씨랑 다리 놔 줄게. 너 이거 되면 최소 소고기다!”

옆에서 전화로 보도국 동기에게 약 치는 류 PD에게 ‘인터뷰하러 갑니다’하고 소리죽여 말하자, 류창진 PD도 고개만 살짝 끄덕이며 알겠다는 듯이 손을 흔들었다.

류창진 PD 입장에서는 꼭, 최지연 선생님의 일이 아니더라도 주연배우의 노출이 많아지면 무조건 유리하다. 드라마의 간접적인 홍보나 마찬가지니까.

어떻게든 따낼거라 생각됐고, 나는 바로 김수호와 함께 최지연 선생님의 병원으로 향했다.

웃음이 났다. 분명 나를 혹은 [응답하라 119]를 궁지로 몰려고 했을텐데.

오늘 드라마 방영은 10시.

9시 뉴스가 끝나는 시간도 10시.

미래에 쓰일법한 마케팅이다. 생활 정보 프로그램에서 간장게장을 소개하고, 홈쇼핑 채널을 틀면 홈쇼핑에서 간장게장 파는 식의 마케팅.

9시 뉴스의 마지막 기사로 나와 최지연 선생님께서 나오고. 타이밍에 맞춰 티브이를 돌렸을 때, 드라마에서도 나와 최지연 선생님께서 또 나온다면?

생각지도 못한 시청률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

배우는 연기를 해야지.

나는 배우이고 고로 연기를 해야 한다.

내가 버라이어티 쇼 프로나, 토크쇼에 나가지 않는 이유도 같은 이유다.

거기는 연기를 하는 곳이 아니니까. 드라마나 영화같이 내가 아닌 캐릭터를 연기하는 경우라면 즐겁게 웃고 떠들 수 있다. 하지만 버라이어티 쇼나, 토크쇼 같은 곳에서 이지우라는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웃고 떠드는 것은 못하겠더라.

티비 쇼에 나가서 죽을상하고 앉아있으면 시청자들에게도 죄짓는 일이고.

인터뷰도 비슷한 맥락이다. 검찰청 앞에서 하는 어쩔 수 없는 인터뷰 혹은 조상기 기자와 같은 영화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언론사, 혹은 기자가 아니면 인터뷰를 자제하는 편이다.

전생의 비극을 가진 채로 웃고 떠드는 게 정말 힘들었다.

오늘처럼 내가 인터뷰를 적극 찾아서 하는 경우는 다시 태어난 이후로 처음이다.

현주 때문이겠지.

내가 현재의 이지우로서 웃을 수 있게 된 건, 순전히 현주 때문이니까. [악의 기록]의 마지막 촬영. 미래의 어쩌면 과거의 이지우에게 먹히지 않고, 현재의 이지우로 남게 해준 게 현주였다. ‘강현수’라는 배역과 전생의 비극으로 표류하던 정신이 현주의 부름으로 제자리를 찾았다.

그때 이후로 내게 찾아온 변화.

조금씩 ‘지금 이 순간을 사는 법’을 배웠다.

아마 현주가 각본을 쓴 아동극을 할 때쯤부터, 내 가면이 한 겹 벗겨진 듯하다. 아이들의 웃는 모습을 보고 웃는 법을 다시 배웠다.

내가 조금씩이나마 연기가 아닌, 진심으로 웃을 수 있게 된 것도 그때쯤 일 거다.

이렇게 용기 내게 된 건, 선생님을 돕고자 한 것 보다, 선생님께서 하는 자선사업 때문이다. 순전히 드라마를 띄우기 위해서라면 이렇게까지 안 했을 것 같다. 드라마야 또 찍으면 되니까. 이거 하나 망한다고 내 커리어에 심각하게 타격을 입는 것도 아니고, 내 연기력이 사라지는 게 아니니까.

드라마는 망해도 나는 살아남을 자신 있다.

하지만 최지연 선생님의 회사가 망하면, 예전처럼 자선사업을 하며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까?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좋은 일을 뭘 어떻게 할지 모르는 나라면, 나보다 잘할 수 있는 사람을 돕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아이들에게 배운 웃음에 대한 수업료를 지불하는 방법이라 생각이 들었고.

“선생님. 괜찮으세요?

“지우 왔니?”

가볍게 인사하고 침대 옆 의자에 앉았다.

“촬영장 분위기 안 좋지?”

“네. 선생님이 안 계셔서 너무 안 좋아요. 그래서 얼른 오셨으면 해요.”

“미안하다. 돌아갈 수 있을까 싶네. 류 PD는 아직 말 없지?”

“네···”

핏기가 사라진 새하얀 입술을 달짝이며 말하는 최지연 선생님. 스트레스가 심한 것 같았다.

“회사는 좀 어때요?”

“글쎄. 박 실장이 뛰어다니고 있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 풀린 물량 반품되고 있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자세한 사항은 일단 퇴원해봐야 알 것 같아. 박 실장이 잘 안 알려주네.”

원래의 역사대로 2~3년 뒤에 이 보도가 터졌다면 지금처럼 이렇게 최지연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 사건으로 입원한 최지연 선생님은 대장암을 진단받고, 얼마 버티시지 못한 채 돌아가셨으니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번에 사업을 키울 작정으로 중국에 공장 매입 추진 중이었는데 그걸 못하게 됐네. 이제 겨우 시장에 반응 오는 제품 풀어서 회사 좀 키워보려고 했더니.”

“건강이 중요하죠. 회사나 돈보다.”

“그렇지. 알지 나도 돈이 안 중요하다 는 건. 그래도··· 이번 중국건 잘 풀리면 [벡터맨] 완구랑 같이 돌려서, 조그마한 장학재단이라도 하나 마련하려고 했었거든. 나는 그걸 못하는게 아쉬워서 그러지.”

“선생님 지금은 그런 생각 마시고 지금은 선생님 생각만 하세요. 선생님께서 건강하셔야, 회사도 키우고, 애들도 돕고 하는 거잖아요.”

2~3년 후라면 훨씬 더 큰 규모의 회사로 성장할 ‘레드켓’. 아마도 방금 최지연이 말한 중국공장을 매입으로 덩치가 커지는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전생에 [시사 저격] 보도 후 사회적 파장도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이 컸었던걸로 기억한다.

“선생님. 혹시 오늘 선생님과 제 기사가 난 것 보셨나요? 우리가 처음 만난 레스토랑에서 있었던 사건. 그게 기사로 났더라고요.”

“아 그래? 그때 나 기절했던 거? 어휴 참, 추레하게 나왔으면 어쩌니···이쁘게 나왔어야 하는데. 어쨌든 잘하면 기사가 났을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잘됐네. 드라마도 너한테도.”

화면빨 부터 신경 쓰는걸 보니 나이가 많으셔도 여배우는 여배우다.

최지연은 그 기사가 나 혹은 [응답하라 119]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거라 생각했는지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선생님 그래서 말인데요. 이 기회에 선생님 기사를 좀 더 내보는 건 어떨까요? 레스토랑에 있었던 사건도 그렇고, 기부하셨던 내용도 그렇고요.”

“지금? 아니야. 음··· 마음은 고마운데, 지금 같은 때에 괜히 기사를 냈다가 오히려 역풍 맞을 수 있단다. 그때 식당에서의 일과, 레드켓의 일은 상관없는 일이기도 하고, 레드켓 기사가 나간 상태에서 그 사건을 강조하면 되레 사건을 은폐시킨다는 인상을 줄 것 같아. 레드켓의 대표가 나라는 건 인터넷 조금 검색해보면 바로 알 수 있는 거니까. 우리도 제품 성분분석 의뢰해서 반박기사 준비 중이니까, 나는 그때 가서 기사 내면 돼. 지금 타이밍에 기부했던 기사 내봐야 물타기 기사밖에 안될 테고. 걱정 마. 잘 해결 될 거야.”

고상하게만 보이는 노년 여배우의 입에서 ‘사건의 은폐’, 물타기’, ‘반박기사’ 등의 단어가 나오니까 묘하게 이질감이 느껴진다.

이게 짬이라는 건가. 나이가 많으시기에 이런 쪽에는 관심이 없으실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사업가의 기질인지, 그녀의 기질인지 몰라도 언론의 방향과 대중의 속성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맞습니다. 선생님께서 메인이 되면 아무래도 티가 나고 은폐하려 한다는 인상이 강하겠죠. 그런데 그 기사의 메인은 저이잖습니까. 선생님을 구한 것도 저고요. 저를 메인으로 기사를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지금 당장 레드캣에 관한 안좋은 보도가 나간 상태에서 반박기사를 낼 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요. 그리고 반박기사를 낸다고 해도 사람들이 관심을 줄까요?”

어제의 [시사 저격]에서 방영되었던 ‘우리 아이 장난감 환경호르몬 범벅’을 나도 퇴근 후에 확인했었다. 각종 처음 보는 단위, 각종 수치와 숫자를 거론하면서 환경호르몬의 위험성을 강조하는 자료화면. 그리고 어느 대학교의 교수가 환경호르몬에 대해서 경고하는 인터뷰. 영상 말미에 완구 업계 관계자라는 사람이 음성과 모자이크 된 화면으로 인터뷰하는 내용까지.

장난감에 관한 내용과 환경호르몬에 관한 내용을 교묘하게 교차 편집하여, 비전문가가 봤을 때 장난감에 있는 환경호르몬 때문에 아이들의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식의 편집. 논리적인 비약이 심함에도 편집으로 흐지부지 넘긴다.

공익을 위한다는 시사보도 프로그램치고는 너무나 치졸하고 자극적인 방식이다.

저런 사람들 때문에 MSG를 기피하는 풍조가 생겨 라면 맛이 변했고··· 내가 좋아하던 대만 카스테라도 없어졌다.

“그건 그렇지만···”

“선생님도 잘 아시겠지만, 이슈는 이슈로 덮는 게 맞습니다. 그 이슈가 선생님과 관련된 긍정적인 이슈라면 더 좋을 테고요. 반박기사는 그 이후에 내도 충분합니다. 그리고 저는 선생님을 믿습니다.”

“뭐?”

“아이들이 좋아서 그렇게 애쓰시는데, 애들 가지고 노는 장난감에 그런 장난 하지 않았으리라 믿는다고요.”

설득을 위해서 일부러 감성을 자극했다.

사실 내가 믿는 건 최지연 선생님께서라기 보다 미래의 내 지식을 믿는다. 원래 역사에서 레드켓에서 완구제품이 이상 없다는 결과를 가지고 허위사실 유포로 상대 피디를 고소하니까. 비록 공익목적을 위한 방송이었다고 무죄 판결을 받긴 하지만.

어쨌건 완구제품에는 이상이 없을 거라는 의미다.

“하··· 내가 이렇게 몇 번씩이나 지우 군한테 도움음 받아도 되는 건지 모르겠네. 내가 뭘 어떻게 하면 되니?”

“인터뷰 좀 해주시죠.”

“인터뷰?”

“네. 수호 씨, 리스트 좀 보여줘요.”

나는 문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김수호를 불러 홍보팀에서 섭외들어온 인터뷰 리스트를 최지연 선생님께 보여드렸다.

아직 새것의 느낌이 다 빠지지 않은 다이어리 한 페이지에는 각종 언론사 리스트가 빼곡히 적혀있었다.

“어머? KBC에서도 나오는 거야?”

“네. 류 PD님이 섭외했습니다. 9시 뉴스, 제일 끝에 보도될 겁니다. 기자들에게 연락 돌리기 전에 일단, 인터뷰 전략 짧게 말씀드려도 될까요?”

최지연은 침대에 기대어 있던 몸을 조금 세우며 미소 지었다.

나도 마주 웃으며 여기까지 오면서 구상했던 전략을 풀었다.

“먼저 우리 회사는 제가 한 기부 기사 위주로 쏠 겁니다. 아동극 티켓을 보육원에 기증한 거나, 제 개인적으로 보육원 봉사활동을 다닌 거 위주로 기사가 날 겁니다. 이미 회사를 통해 보도자료가 뿌렸으니··· 지금쯤 올라가지 않았을까 싶네요. 이런 걸 하려고 기부를 한 건 아니지만, 상황이 여의치가 않네요...”

“뭐라고?”

최지연 선생님의 뜬금없다는 표정. 하기야, 방금까지 최지연 선생님과 드라마에 관한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갑자기 내가 한 기부에 관한 기사를 쓴다고 하니 의아할 만도 했다.

“그리고 오늘 9시 뉴스 마지막 뉴스로 선생님과 제가 나란히 이 병실에 앉아 인터뷰하는 모습이 나갈 겁니다. 오늘 제가 여기에 온 것도, 선생님께서 허락해주시면 기자를 이 자리로 부를 예정이거든요.”

최지연 선생님은 잠자코 듣고 있겠다는 듯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과 저와의 연결고리를 기자가 만들어줬습니다. 레스토랑 사건 말이죠. 자연스럽게 같이 뉴스에 나와서 훈훈한 미담으로 소개가 될 겁니다.

저를 드라마와 선생님과 함께 엮어서 기사가 나가면, 드라마 홍보처럼 보일 테고, 저 혼자 기부했다고 기사가 나 봐야 선생님에게도, 드라마에도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겠지만··· 이런 식으로 뉴스에 함께 나간다면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겠습니까.”

“지우야, 다 좋고 어떤 걸 말하는지 알겠는데 사람들의 인식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단다. 너랑 같이 뉴스에 나간다고 사람들의 인식은 간단하게 바뀌지 않아.”

“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꾸지 않고 덮어씌울 생각입니다. 그럴듯한 스토리를 덮어씌우는 거죠. 레스토랑 사건 이후로 선생님과 저는 꾸준히 기부를 통해서 친분을 유지했다, 생명의 은인으로 맺은 인연을 기부로 이어왔다, 그 기회에 종합검진 받아보니 대장암이었다. 뭐 그런 식으로 KBC 인터뷰를 진행할 겁니다. 디테일은 기자가 오기 전에 잠시 저와 맞춰 보시면 됩니다.”

“그런 연예인들 기부 관련 기사가 나 봐야 식상할텐데. 그리고 지금 레드켓 이미지가··· 물타기 하는 걸로 보이지 않을까?”

“물론 여기서 끝나면 안 되겠지요. 선생님. 뉴스가 끝나고 어떤 방송을 하죠?”

“드···라마?”

“네 맞습니다. 인터뷰를 끝내고 채널을 돌리면 선생님과 제가 어머니와 아들 역할을 하는 드라마가 나오는 거죠. 그렇게 저와 선생님과 묶어서 기부라는 이미지를 만들 생각입니다.”

최지연 선생님은 머릿속으로 셈을 하듯이 생각에 잠겼다.

더는 선생님은 내게 반문하지 않았고, 나는 그런 선생님에게 나직이 보충설명을 했다.

“그리고 끝으로 선생님께서 그동안 한 선행들··· 미혼모 지원사업, 보육원 지원사업, 장학재단 설립 등의 기사가 나가야 됩니다. 장인호 사장에게 말해서 선생님 소속사에 미리 준비해놓으라고 해놨습니다. 선생님만 오케이 해주시면 소속사에서 알아서 할 겁니다. 선생님은 이런 걸 보도자료로 뿌리는 게 탐탁지 않으시겠지만··· 선생님께서 잘 풀리셔야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전 기사들과 함께 분명히 시너지 효과가 날 것입니다. 그리고 반박기사던, 분석자료를 가지고 법적 대응을 하던. 그건 그때 가서 하시면 되는 거고요.”

내가 이야기를 끝내자 최지연 선생님은 약간 얼떨떨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진짜 내가 22살짜리 배우랑 이야기하는 것인지, 22년 차 배우랑 이야기 하는건지 헷갈리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