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애매하다
[응답하라 119]는 전생에 종편방송사 중 최초로 유의미한 드라마 시청률을 기록했다.
소수점 까지는 기억이 안 나고 최고 시청률 8% 언저리. 이마저도 당시 종편드라마 최고 시청률이라는 타이틀을 따낸 수치다.
1화 시청률이 소수점 이하였던 것을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반등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게 참 아쉬웠다.
바로 이 아쉬움이 내가 이 드라마를 선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내가 [응답하라 119]를 선택한 이유는 단지 드라마 주인공을 할 수 있어서는 아니었다.
대본 수준에 비해서, 흥행이 너무 되지 않았다.
만약 이게 공중파였다면?
고증이나 세트에 투자하여 완성도가 높였다면?
좀 더 화제성 있는 배우가 캐스팅돼서 괜찮은 연기를 보여줬더라면?
그게 안 된다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초반 화제성만 좀 키웠다면···
확 하고 치고 나갈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 시작을 2~3% 정도에서 치고 나가서 화제 몰이를 했다면, 이후 제작된 [응답하라 111]처럼 종편드라마 최고기록인 20%를 넘어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대본수준이 유수영 작가의 자기복제에 가까웠던 [응답하라 111]에 비해서 [응답하라 119]가 훨씬 짜임새와 완성도가 높았거든. 이건 전생에 드라마 준비하면서 두 대본을 모두 공부해보고 난 뒤 느낀 점이다.
거기에다가 내 개인적으로도 [악의 기록]이 대 흥행을 해서 많은 곳에서 배역제안이 들어왔다. 지상파 3사에서 주로 들어온 역할은 악역, 혹은 주인공이더라도 캐릭터가 너무 센 배역이었다. 잘 만들어져있는 내 이미지를 이용하려는 의도가 다분했다.
영화 각본 중에는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많이 들어왔지만, 그 역시 지나치게 이미지가 강한 역할이 대부분이었다.
여기서 더 고려했던 사항이, 내가 알고 있는 미래의 상황이다.
어떤 작품이 흥행할지 뻔히 아는 상황에서, 내 나이대에 맞는 작품을 고르다 보면 오히려 선택지가 좁아진다.
거기에 몇 가지 더. 앞으로 내가 구축해나가야 할 이미지라던가, 배우로서의 커리어라던가···
이 모든 상황을 종합했을 때 가장 적합한 배역이 [응답하라 119]의 ‘소방대원’이었다.
가능성 있는 대본. 내게 유리한 배역.
내가 적당히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PD와 작가까지.
그 모든 요건이 들어맞은 작품. [응답하라 119]는 그래서 선택한 거였다.
“창익 선배, 오늘 폼 좋네요. 선생님도 커피 한잔하세요.”
“좋아야지. 내가 연습을 얼마나 했는데.”
“땡큐. 어휴, 나이 드니까 야간 촬영하면 겁부터 난다. 얘.”
커피 두 잔을 들고 최지연 선생님과 방창익 선배에게 다가갔다. 야간 씬. 이미 12시가 넘어가는 상황이었다.
두 사람 다 방금 촬영을 끝내고 잠시 쉬고 있었다. 늦게까지 이어지는 촬영인 만큼, 커피 한 잔이 간절해지는 시간이기도 하고.
최근 촬영장 분위기가 부쩍 좋아졌다. 갈등의 중심이었던, 나와 김환동, 그리고 방창익이 서로 커피 마시며 지내는 모습 몇 번 보이자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들도 대본리딩 때의 일을 잊었다.
그 이전에 내가 다가가려는 노력을 많이 했다.
스태프와 무명 배우들. 그들에게 먼저 커피를 들고 찾아가기도 했고, 대화의 화제를 찾기 위해 나름의 노력도 많이 했다.
진작에 이럴걸.
현주와의 대화, 그리고 지금 저기서 열심히 하는 배우들의 모습을 보며 깨달은 게 있다.
생각해보면 나 또한 저랬었다.
나 또한 저렇게 간절하고 절실했던 적이 있다.
그 간절함과 절실함을 열등감과 구분 못 하고 다른 사람을 시기 질투 했던 적이 있었다.
먼저 데뷔하고 성공한 연극영화과 후배.
나보다 연기력이 떨어졌다 생각했던 동기들의 성공 등.
내가 전생에 저 사람들의 나이였을 때, 나 또한 열등감과 패배의식에 쌓인 채 연기하지 않았던가. 그런 그들에게 열심히 하라고, 나처럼 하라고 압박하고 치사하게 눈치 주는 것에 현타가 왔다고나 할까.
저 사람들의 고민과 절망을 모르지 않는데, 환생했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그런 것과는 상관없는, 나고 자라길 연기 천재인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현주의 말대로 내려놓았다. 나 혼자 애쓴다고 안뜰 드라마가 뜨는 것도 아니고, 흥행할 드라마가 배우 하나 실수한다고 망하진 않을 거다.
그리고 내가 이 사람들 데리고 정치할 게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고 역사의 한 페이지 장식하는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시기, 질투 정도는 하게 내버려 두자. 어차피 그걸 극복하면 잘 될 거고, 극복 못 하면 뒤처지는 바닥. 나 아니더라도 힘들고 지칠 일이 수백 가지는 될 사람들, 나까지 나서서 다그치지 말자.
그렇게 마음먹고 사람들을 대하자 오히려 나를 대하는 사람 바뀌었다. 사람들의 눈빛, 그 기저에 깔렸던 열등감, 혹은 시기 질투가 오히려 줄어드는 것을 느꼈다.
후배로서 다른 배우들을 존중해주자 상대방도 내 커리어를 존중해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연기에 대해서, 배역에 대해서 물어보는 사람이 생겼다.
“야 방금, 그 상황에서 감정이 너무 튀지 않았나? 조금 죽이는 게 낮지 않았을까 싶은데.”
“이전 씬에서 이어오는 거라 크게 도드라져 보이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오히려 이전 씬에서 참았던 걸 터트리는 느낌이라서 좋았어요.”
“그래? 어이쿠, 벌써 내 차례네. 그럼 너 믿고 그대로 한번 가볼게. 커피 잘 마셨다. 지우야.”
그렇게 방창익이 다음 촬영을 위해서 자리를 비웠다.
방금 내게 자문을 구한 방창익 뿐만 아니라 다른 배우들도 마주 상대하다 궁금한 점이 있으면 사심 없이 물어왔다.
내가 입 꾹 닫고 혼자서 애쓸 때보다 촬영장 분위기가 좋아지고, 나를 대하는 배우들의 연기 또한 훨씬 자연스러워 진 게 느껴졌다.
이때 느꼈다. 같은 업종에서 시기와 질투라는 것 자체가 동경에서 비롯된다는 것.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시기와 질투가 인정과 기대로 변할 수 있다는 것.
전생에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훈훈한 분위기의 촬영이 이어졌다.
"사람 다루는 게 능숙하네. 사업하면 잘하겠다."
“에이, 배우는 연기를 해야죠.”
훈훈하게 웃으며 최지연 선생님께서 말했다.
촬영장에서 가장 큰 어른이자,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는 최지연 선생님. 몇 년간의 공백이 아무렇지 않은 듯, 원숙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 최지연 선생님께서 작정하고 나를 밀어주는 걸 알고 있다. 일부러 한 번 더 다가와 말 걸고, 다른 배우들 앞에서 보란 듯이 칭찬하고. 꼭 사업파트너라서 잘해준다는 느낌보다 판을 깔아줄 테니 촬영장 분위기를 주도해 보라는 생각이겠지.
예기성 선생님은 나를 믿고 함께 한다는 느낌이었다면, 최지연 선생님은 뒤에서 밀어준다는 느낌의 신뢰였다.
그렇게 최지연 선생님과 함께 잡담을 나누고 있을 때였다.
촬영장으로 한 남자가 헐레벌떡 뛰어오더니 최지연 선생님을 발견하고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최지연 선생님의 옆에 섰다.
가까이에 오자 누군지 기억이 났다. 이전 회사에서 미팅했을 때 최지연 선생님과 같이 들어왔던 회사 관계자였다.
“사장님. 크··· 큰일 났습니다.”
“박 과장, 이 시간에 여기에 어쩐 일이야. 전화하지··· 아참 전화기 꺼놨지?”
촬영을 위해서 전화기를 일부러 꺼놓은 최지연. 그 때문에 박 과장이라는 사람은 회사 일로 급하게 찾아온 듯했다.
“지금 티비에서 회사 제품에 문제 있다고 나오고 있습니다. 큰일 났어요!”
“무슨 소리야 그게?”
어? 어디서 한번 봤던 스토린데
“KTV 있잖습니까. 얼마 전에 새로 개국한 종편방송. 거기 시사 보도 프로그램에서 첫 방송을 오늘 했는데··· ‘우리 아이 장난감 환경호르몬 범벅’ 거기에 메인으로 다루는 제품이 우리 제품입니다. 이 새벽에 거래처에서 계속 전화가 - 여보세요? 레드켓 박 과장입니다. 김 사장님 저희 제품이 아니라, 아니 저희 제품은 맞는데 우리 회사가 그런 물건 만들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 와중에서도 박 과장이라는 사람은 갑자기 온 전화를 받고 황급히 돌아섰다. 그 상태로 전화로 상대를 설득한다고 정신이 없었다.
“어? 어!”
“서···선생님!”
박 과장의 말을 듣고 벌떡 일어섰던 최지연 선생님.
박 과장이 전화를 받느라 돌아서는 순간, 뒷목을 붙잡고 쓰러졌다.
***
빠르다. 빨라도 너무 빠르다.
‘최지연 장난감 환경호르몬 사건’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이 일은 몇년 뒤에 터져야 한다.
내가 연극판에서 한창 구를 때 이 사건이 터졌으니까, 최소 3년 이후에 졌어야 정상인 사건이다.
나비효과?
내가 일으킨 나비효과라면 도대체 어디서였을까.
이걸 터트린 방송사가 KTVC라고 했다. 언론재벌 고구려 일보 계열의 방송사. 박 과장이란 사람의 입에서 KTVC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백룡영화상 뒤풀이에서 봤던 정종철의 웃음이 떠올랐다.
이성적으로는 아니라고 말한다. 앞뒤가 맞지 않았다. 동기가 부족하다.
자신의 회사도 아니고, 계열회사의 연예기획사로 들어오지 않는다고 이런 식의 보복을 한다고? 그것도 나를 직접 공격하는 것도 아니고, 드라마에 출연하는 배우를 공격한다니. 과해도 너무 과하다.
수법 자체는 딱 차지석 사장의 수법이다. 사람 조지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니까.
생각이 거기까지 이어지자, 예전 현주의 채용비리 터트린 것도 박정태가 아니라 차지석이 한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고, 군대 간 박정태를 재기 불가능 하도록 쐐기를 박아버린 것이 나란걸 알기라도 한 것일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신문사에 메일을 보낸 것도 익명이었고, 메일주소, 피시방 등을 내 이름, 동선과 관련 없도록 신경 써서 작업했었다.
모든 정황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게 정종철과 차지석이 나를 노리고 한 일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는 상황.
그런 의심을 품은 채, 하루가 지나갔다. 오늘은 스튜디오 촬영이 있는 날이다.
어제의 그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거짓말인양 촬영하는 내내 축축 쳐지는 분위기였다.
최지연 선생님은 어제 그 자리에서 쓰러진 뒤, 응급실행. 그대로 입원하셨다고 했다.
배역은 조연 일지 몰라도, 촬영장에서 중심축 중 한 명이었던 최지연 선생님께서 빠진 빈자리는 그만큼 컸다.
류창진 PD와 유수영 작가가 한창 대본을 붙잡고 의논 중이었다. 오늘 예정되어있던 최지연 선생님의 분량을 새로 채워야 했다. 그래서 작가까지 현장으로 불려 나와 쪽대본 아닌 쪽대본이 되어버렸다.
“최지연 선생님 괜찮으신 거죠?”
내가 다가가서 묻자, 동시에 고개를 돌리는 두 사람.
당연한 이야기지만 최지연 선생님의 건강상태가 궁금해서 물어본 건 아니었다.
현장에서 구급차에 타시기 전에 정신을 차리셨었고, 얼마 전에 건강검진 결과 큰 문제가 없다고 했었으니까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위에서도 아직 갈팡질팡하는 것 같네요. 만약 통째로 들어내라고 하면 정말···”
머리가 아프다는 듯이 흔드는 류창진 PD
통째로 들어낸다···
아마 최지연 선생님께서 나오는 분량은 전부 들어내고 재촬영을 하겠다는 말이다.
“당장 오늘이 첫 방영인데 가능해요?”
“불가능하니까 갈팡질팡하는거죠. 이번 주 분량 편집하고, 다음 주 분량은 재촬영분량으로 나갈지, 아니면 그냥 그대로 방영할지. 일단은 오늘 방영분은 최지연 선생님 다 짜른 분량으로 넘기긴 했어요.”
어제 KTVC의 시사보도 프로그램 [시사 저격]에서 방송한 ‘우리 아이 장난감, 환경호르몬 범벅’의 방영 여파로 오늘 아침 몇몇 아침 뉴스와 조간신문에 관련 기사가 떴다. 인터넷에는 최지연 선생님의 회사명인 ‘레드켓’과 제품들이 공공연하게 노출되어 공유되고 있었고.
TNN 측에서도 [응답하라 119]를 정상적으로 방영해야 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듯했다.
하루 정도 충분히 머리를 식히고 오니 문제가 보인다. 어제 정종철과 차지석이 왜 그랬는가에 대해서 생각하느라 놓쳤던 부분.
갈팡질팡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애매하다.
최지연 선생님께서 현재 인기가 많은 톱스타여서 드라마의 주연으로 출연하고 있다거나, ‘레드켓’이 모두가 알만한 큰 완구회사였다면 방송사도 아마 이렇게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혹은 방영했던 시사보도 프로그램이 [PD 수첩]이나, [그것이 알고싶다] 같은 사회적 영향력이 큰 보도 프로그램이었다면 마찬가지로 고민 안 했을 것이다.
그런데 배우는 노배우, 배역은 조연.
저격했던 보도프로그램은 신생 종편방송국의 신생 프로그램.
화제가 되었다기보다 그저 알려졌다고 표현되는 상황.
이전 박정태가 연루되었던 병역비리 건처럼 검찰에서 기획 수사를 하다가 한 번에 확 터트린 것 같은 폭발력은 없었다.
그럼에도 방송사가 고민하는 것은 TNN 또한 신생 종편 방송사에, [응답하라 119] 또한 방송사에서 진행하는 첫 드라마이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질 일이, 최지연이 계속 방송에 나와서 일 자체가 커지면 어쩌나 하는 그런 걱정들.
“지우 씨가 많이 애써줬는데 참··· 일이 이렇게 되네요.”
“뭘요. 류 PD님이 잘못한 일도 아닌 걸요.”
류 PD가 협찬이나, 상부를 설득할때 내 이름을 많이 팔아먹은 걸로 안다. 드라마를 위해서 필요하면 맘껏 내 이름 가져다 쓰라고 했었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내 개인적 이미지가 까칠한건 사실이니까. 검찰창 런웨이 짤로 유명해졌을때의 인터뷰도 그랬고, 이후에 일체 버라이어티 쇼나, 토크쇼 등의 홍보활동도 전혀 하지 않았던 탓에 이미지 노출이 적었다. 결국 [악의 기록], [폭력의 사슬]등 내 대표작이 내 대외적인 이미지가 된 탓에, 까리칠한 이미지가 자리 잡았다.
아마도 상부에서 들어오는 태클을 막는 용도로, ‘이거 안 해주면 지우 씨 하차한답니다. 지우 씨 성격 알잖습니까?’ 이런 식으로 써먹었겠지.
그에 반에 촬영장에서 매번 야외 스케줄 있을 때마다 커피차 불러서 촬영장 분위기를 조성했으니, 류 PD 입장에서는 고마울 수밖에 없을 거다.
그렇게 앞으로 작품 방향에 대해서 잠시 류창진 PD와 이야기하고 있는데, 스튜디오 한쪽에서 대기하던 김수호가 내 휴대폰을 들고 찾아왔다.
“지우 씨, 사장님 전화 왔는데요. 슛 안 들어갔으면 잠시 바꿔보라고.”
촬영을 시작하면서 잠시 맡겨놨던 내 휴대폰을 김수호에게 건네받았다.
“사장님. 무슨 일 있어요?”
-어 지우야! 이거 혹시 네가 한 거냐?
“네? 뭐 말씀하시는 거세요?”
밑도 끝도 없는 장인호 사장의 물음.
-기사가 뜬 타이밍이 이상해서, 이거 혹시 니가 일부러 이랬나 싶어서 전화했지. 진짜 너 아무것도 안 했어?
“뭔지 말씀을 해주셔야 저도 알죠.”
-지금 네 기사가 하나 떴거든. CCTV 영상도 올라오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 인터뷰까지 따서 올린 기산데, 준비가 잘 된 거 보니 하루 이틀 만들어 올린 기사는 아닌데? 타이밍이 너무 좋네.
“기사 제목이 뭐죠? 지금 확인해 볼게요.”
- 이지우의 촬영 후 구명 활동? 이거 너 맞지? CCTV에 현주도 잡히는 거 보니까 너 맞는 거 같은데.
휴대폰을 귀와 어깨로 끼고, 유수영 작가가 사용하고 있는 업무용 노트북을 눈짓으로 써도 되느냐고 양해를 구했다.
내 통화내용을 듣고 있던 유수영이 재빨리 문서편집 프로그램을 내리고, 인터넷 브라우저를 켜서 노트북을 넘겼다.
내 이름과 구명 활동이라는 키워드를 넣고 검색.
곧, 최상단에 장인호 사장이 말한 기사가 있었고, 아래에 이어서 보도된 후속기사까지 빼곡히 올라왔다.
현주에게 차를 선물하여 같이 레스토랑 갔던 그날, 그러니까 최지연 선생님을 구했던 그날의 일이 CCTV 영상을 포함하여 기사가 올라왔다.
그제야 대충 상황이 이해가 갔다.
기사가 화제를 부르기도 하지만, 어떨 때는 화제가 기사를 부르기도 한다.
무슨 말이냐면, 결국 인터넷 기사는 조회수가 높을수록 더 많은 돈을 받는 형태이고, 오늘 올라온 이 기사처럼 독점이라는 것이 확실하다면 급하게 올리기보다, 나라는 인물이 화제가 되는 시점에 공개되는 것이 돈이 된다는 의미이다.
마치 오늘 저녁 이지우 주연의 드라마 복귀작이 방영되는 것처럼.
나라는 인물이 가장 화제가 되는 시점. 연관기사로 가장 많은 조회수를 당길 수 있는 시점.
그동안 대외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아, 내 소식에 굶주린 대중들을 만족하게 할만한 기사. 트레픽을 가장 올릴 수 있는 기사.
이 기사를 쓴 기자가 판단하기에 지금은 전에 없던 타이밍이었을 것이다.
“사장님 방금 확인했는데요, 저 인터뷰 좀 빨리 잡아 주실 수 있나요? 그리고 최지연 선생님 회사랑도 좀 같이 기사 만들어야 할 거 같은데. 연락 가능하시죠? 완구회사 말고, 매니지먼트요.”
-어, 가능이야 하지. 니가 웬일이냐, 인터뷰를 다 하고. 너가 한다고만 하면 ‘연예가 보도’나 ‘한밤의 티브이연예 쇼’도 가능하지.
“녹방(녹화방송)은 안 되고, 신문이나 인터넷 기사··· 하여튼 빠르게 기사 나갈 수 있는 것 위주로 부탁드려요. 저 촬영 곧 끝나니까 인터뷰 스케줄 나오면 수호 씨한테 알려주세요. 바로 그쪽으로 갈게요.”
-어··· 어? 갑자기?
“네, 그리고 최지연 선생님 소속사에도 그동안 기부했던 규모랑, 지금 후원 사업 자료 싹 모아서 보도자료 만들어 달라고 하세요. 제가 했던 것도 같이 준비해주시고요.”
차라리 잘 됐다.
몇년뒤 크게 터지는 것보다, 지금 애매할 때 확실하게 묻고 가는 게 더 나을 것이다.
'탁' 하고 소리 내 폴더폰을 닫았다.
"류 PD님. 편집본 말고, 원래 계획했던 대로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