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고개 숙인 벼는 잘려나간다
나는 무신론자였다.
신을 믿지 않고 종교도 없다.
지금도 종교가 없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신을 믿는다.
정확하게는 신을 믿는다기보다, 신의 존재한다는 것을 믿는다.
내 존재 자체가 신의 증거니까.
신이 존재한다는 걸 알고,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당연히 삶이 변하더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런 사춘기에 할법한 자아 성찰을 다시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나 할까.
어찌됐건 다시 시작한 삶이다.
제대로 살고 싶었다. 솔직히 제대로 사는 게 어떻게 사는 건지 아직도 모르겠다.
최지연 선생님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제대로 살고 싶고, 그래서 좀 좋은 일을 하고 싶은데, 전생을 개판으로 살아서 어떻게 하는 게 제대로 사는 것인지 모르겠더라. 그러면 좋은 의도를 가지고 사업을 하는 사람에게 그냥 아이디어 정도는 줄 수 있는 게 아닐까.
“사업을 키워보다니요?”
“뭐 대단한 건 아니고요. 혹시 반다이라는 회사를 아시나요?”
“알죠. 저 완구업체 사장이라니까요. 일본 완구업체잖아요.”
“네 맞습니다. 제가 사업가도 아니고 정확하게는 모르지만요, 반다이가 회사를 키운 방법이 재미있더라고요. 방송, 제작자, 사업가가 연계되어서 철저하게 아동을 위한 컨탠츠를 만들더라고요. 예를 들어 선생님이 만든 완구제품을 홍보하기 위해서 광고를 만들면 제작비부터 시작해서 광고 송출할 때 광고비까지 지출하며 내보내야 하잖아요?”
“네 그렇죠.”
“그런데 해당 완구를 TV 시리즈로 만들면, 매일 25분짜리 광고를 방영료를 받아가면서 만드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더라고요.”
이건 [벡터맨]의 판권을 싸게 사오면서 들었던 이야기다. 원래 [벡터맨]의 판권을 가지고 있던 제작사도 반다이와 똑같은 전략을 한국에서 쓰려고 했다.
완구회사와의 협업을 통한 방송과 비지니스.
하지만, 특촬 드라마를 제대로 이해하는 스태프의 부재, 완구제품의 조악한 만듦새 등 때문에 [벡터맨]의 높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시즌2가 이어지지 못했다. 티브이 시리즈의 흥행에 비해서 완구제품은 망해버린 탓에 후속 투자가 이어지지 않았고.
뭐 그 덕에 싼값에 저작재산권을 통째로 가지고 올 수 있었긴 하지만.
“아! 저도 들어본 것 같아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힘들지 않나요? 제작환경도 다르고. 우리가 완구제품 준비해도 그걸 받아서 만들어줄 제작사가 없을걸요.”
“제가 이번 [벡터맨] 아동극에 한발 걸치고 있다는 말씀을 드렸잖아요. 그때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그 당시 다른 부분보다 완구업체 쪽에서 문제가 좀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투자유치나, 완구의 재질이나 그런 부분이요. 솔직히 영상물 제작사는 비용이 문제지 실력 부분은 우리나라가 더 나을 걸요.”
영화쪽은 일본보다 우리나라가 퀄리티가 앞서기 시작했다. 다만 소프트웨어라 할 수있는 IP가 한국에 없으니까 문제지.
그런데 청운 엔터테인먼트가 [벡터맨]의 저작 재산권을 가지고 있네?
“아··· 네. 그런데 이런 자리에서 사업 관련 이야기를 하시니까 좀···”
“하하, 저도 뭐 이걸 당장 결정해달라 그런 이야기는 아닙니다. 저도 이걸 결정할 권한 같은 건 없어요. 사업은 우리 회사 사장님이나 선생님 같은 분들이 하시는 거고, 저야 그냥 아이디어만 이야기한 것 뿐이니까요.”
나는 사업가가 아니라 배우다. 이런 사업을 내가 직접 할 생각도 없고, 한다고 해도 잘할 자신은 더 없었다. 이건 내가 ‘앞으로 스마트 폰이 대 유행한다.’, ‘태양광 사업이 비전 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스마트 폰이 유행하는 걸 알아도 내가 스마트폰을 만들려고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
이런 비즈니스는 전문적인 사람들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나 같은 배우가 아니라.
“선생님께서 좋은 일 하신다기에, 그냥 좀 더 힘내서 하시라고 응원하고 싶어졌어요. 나중에 저희 사장님 만나면 특촬드라마를 제작할 생각이 있는지 물어볼게요. 저희 사장님도 이왕 돈 주고 산 판권을 여러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좋아할 것 같아서요.”
그렇게 최지연 선생님과 한참 이야기를 했다. 처음 대화의 물꼬를 텄던 기부와, 봉사활동 이야기.
[벡터맨] 아동극과, 이번에 불러들인 특수효과팀. 이수한이 제작사 사장으로 있는 스튜디오 나우의 제작 여건 같은 것들.
그리고 이어진 개인 사담까지 더해져서 많은 대화를 하게 되었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는 최지연 선생님도 말을 편하게 할 정도로 친해졌다.
“지우야, 그런데 아까 대본 리딩장에서 그거, 일부러 그런 거니?”
“아··· 그거요? 조금 과했나요?”
“아니 멋있었어. 내가 지금까지 해온 작품이 몇개가 될거 같니?”
“글쎄요··· 한 50개는 넘지 않았을까요?”
환갑이 다 돼가는 그녀의 나이를 생각하면 이것도 살짝 작다. 일부러 최지연 선생님의 입에서 나온 숫자에 놀라는 리액션을 보여주기 위해서 작게 불렀던 거다.
“100 작품 이후로는 안 세어봤다.”
“네?”
과장된 표정을 지으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무리도 아니지. 내가 전생에 영화판 들어오고 15년 좀 넘게 활동하면서 찍은 작품이 30 작품 쯤 된다. 1년에 영화 2개씩은 꼬박꼬박 찍은 셈이지.
활동 초반에 단역과 조연으로 1년에 서너 작품 씩 들어갔던 것을 생각하면 실제로 주연 작품으로 내 영화다라고 말할 수 있는 건 활동 후반부의 십여 작품 정도밖에 되지 않겠지만.
그리고 지금 작품을 찍는 페이스를 봤을 때는 아마 전생의 15년과는 비교도 못 하게 많은 작품을 찍을 테고.
지금 최지연 선생님의 경력을 생각하면, 그리고 과거의 제작환경을 생각하면 저 100 작품 이후로 안 세어봤다는 건 거짓말이 아닐 거다.
“100편 넘는데도 대본리딩 때 이만큼 준비해온 후배는 처음 보네. 재밌네. 정말 오랜만에 촬영이 기대되는 기분이야. 잘했어. 그리고 그 정도로 준비한 것도 대단하고. 니가 그런 식으로 안 했으면 내가 먼저 한소리 했을 거야.”
***
5 시간 전. [응답하라 119] 대본리딩장.
어수선한 분위기 사이에서 연출자인 류창진 PD와 유수영 작가가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응답하라 119] 감독, 류창진입니다. 이쪽은 책(대본) 쓰신 유수영 작가님.”
“안녕하세요. 유수영 입니다.”
그때부터 이어지는 간단한 자기소개. 배우들이 한 명씩 일어나서 자신의 이름과 역할을 간단하게 소개했다.
이후 곧바로 이어진 대본리딩.
사건은 대본리딩이 시작하자마자 일어났다.
"환자분? 환자분? 정신 차리세요."
첫 마디부터 끊어버리는 류창진 PD.
"잠시만요. 방창익 씩, 톤 조금만 낮출게요. 진짜 위급하다는 느낌보다 분명히 환자가 아닌데 환자인척하는 화자를 대하는 구조대원 느낌으로 부탁할게요."
대본리딩의 스타트를 끊은 배우 방창익.
30대 초반으로 서브 남자주인공이나 조연급으로 활발하게 활동을 하는 배우였다.
연차도 쌓이고 들어가는 작품도 꽤 쌓인 배우지만··· 대본리딩의 태도는 정말 별로였다.
대본 첫 장의 내용은 구조대원이 환자를 깨우기 위해서 애쓰는 내용.
실상은 술 취한 취객이 구급차를 불러 집까지 태워달라 하여 실랑이 벌어지는 내용이다. 구급대원들의 애환을 코믹하게 보여주는 첫 장면이다.
그런데 방창익이 그 대사를 마치 위급한 환자를 대하는 것처럼 쳐버린 것이다.
첫 대사부터 톤 조절 실패. 대본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만 읽었어도 하지 않았을 실수였다. 아니, 뒷장만 읽었어도 이러진 않았을 거다. 대본리딩장에서 대본을 처음 읽어본 듯한 대사처리였다.
"하하, 죄송합니다. 다시 할게요."
헛웃음 지으며 다시 대사를 치는 방창익.
이후로도 몇 번.
류장진 PD의 계속되는 디렉팅으로 대본 리딩의 흐름이 계속 끊어졌고, 그렇게 1화의 끝까지 대본리딩을 끝내고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오늘 계획되어 있는 대본리딩은 4화까지. 2화까지 대본리딩을 끝마쳐야 했을 시간에 겨우 1화밖에 대본리딩을 못 끝낸 것이다.
덕분에 리딩장 분위기는 딱딱하게 굳어갔다.
나도 살짝 짜증이 났고.
잠시 화장실을 갔다가 돌아가는 길. 세미나실 입구로 옆 음료수 자판기 옆에서 남자 배우 몇몇이 이야기하는 것이 들렸다.
"하씨, 류 PD 생각보다 빡빡하게 구네. 좋게좋게 좀 넘어가지."
"아니, 형 진짜 대본 한 번도 안 보고 온 거야?"
"못 봤지. 어제 새벽에 [별빛 소나타] 촬영 끝나는 바람에. 이래서 내가 류 PD한테 리딩 좀 늦출 수 없냐고 한 건데. 사정 뻔하게 알면서. 딱히 중요한 배역도 아니구만. 많이 티 나냐?"
나이와 연차가 있는 방창익 중심으로 모여 이야기하는 배우들, 그들의 말을 무시하고 세미나실로 들어가려는데.
"이지우 씨 그래도 리딩은 하러 오셨네요. 하도 얼굴 보기 힘들다 그래서 궁금했는데."
그 무리 중 한 명이 말을 걸었다. 내가 [악의 기록] 촬영 후 공식석상에 나서지 않고 모든 인터뷰를 거절한 것 때문에 하는 소리 같았다.
몇몇 기자들이 내 인성을 걸고 기사를 써갈겼다.
기사가 아닌 루머로는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는둥, 촬영 마지막에 큰 부상이 있었다는 등의 퍼지고 있었다. 루머와 기사에 대해서는 회사 차원에서 무시하다가, 최근 [벡터맨]의 서울공연이 끝나는 시기에 맞춰 대응하고 있는 중이었다.
살짝 고개만 끄덕여 인사만 하고, 그냥 무시하고 가려고 했다.
저 말의 의도야 어쨌건, 작품에 집중하지 않고, 가십에 신경쓰는 저들의 말이 좋게 보이지 않았다.
40대의 나라면 저 꼴을 보고 잡담 나눌 시간에 대본을 읽으라고 잔소리했겠지만, 지금의 나는 20대 초반의 2년 차 배우일 뿐이니까.
그런데 방창익 옆에 있던 배우 한 명이 내 걸음을 멈추게 했다.
"잘난 척 존나 하네."
평소 같으면 그냥 웃어넘겼을 저 말에 나도 발끈하고 말았다.
이미 대본리딩장에 들어설 때부터 올라왔던 짜증, 그리고 대본리딩 할 때의 그 불성실한 태도까지.
문고리를 잡았던 손을 놓고, 말을 했던 배우에게로 다가갔다.
"잘난 척 아니라 그냥 잘난 건데요."
"뭐? 싸가지 없는 새끼가. 근데 눈깔을-"
내가 싸움이라도 할 줄 알았나. 근처에 있던 김수호가 다급하게 내 옆으로 달려왔다. 상대쪽의 매니저도 멀리서 있다가 급하게 뛰어왔고.
방창익을 비롯한 다른 배우들이 급하게 욕을 한 배우를 붙잡았다.
"지우 씨, 보는 사람도 많은데 들어가죠."
살짝 내 팔을 잡아 끄는 김수호.
"네. 걱정하지 마세요. 수호 씨. 급 떨어지게 이런 걸로 안 싸웁니다. 싸움이 돼야 싸우죠."
일부러 들으라는 듯이 살짝 크게 말하고 리딩장으로 들어갔다.
"겸손해라. 이 새끼야. 얼마 못 간다."
내 뒤통수에 대고 분풀이하듯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 나 잘났다. 그게 왜.
당연히 잘났지. 니들보다 경력이 20년은 더 됐을 텐데.
보수적으로 잡아서 20년이고, 대학에서 배웠던 걸 합치면 많게는 경력이 22~23년도 차이 날 거다. 최근 2년간 나 또한 노력했으니까. 새로운 걸 계속 배워나갔으니까.
그냥 경력만 채웠나? 자만이나 자기도취가 아니라 내가 활동할 당시 원톱 배우였다. 내 나이대에서 대체 불가능, 그리고 호불호 갈릴지언정 어디서 연기 못 한다는 소리는 안 듣고 활동했다.
사생활을 가루가 되도록 까여도, 연기 하나만큼은 인정받고 활동했단 말이다.
내가 커리어 하이를 찍었을 당시 이정건도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었고, 이정건과 동시대를 이끌어온 황금세대라 불렸던 다른 3명의 배우도 비슷한 나이대였다. 그렇기에 주루와는 살짝 거리를 둔 상태, 지금의 예기성 선생님처럼 존재감 있는 조연에 더 관심을 많이 두던 상태였다.
비슷한 나이대에 배우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해외에서 더 활발하게 활동한 배우도 있었고, 나와 비슷한 커리어를 쌓았던 배우들도 있었지만, 결국 몸값으로 증명했다.
확실한 상업영화 위주로 작업했고, 감독, 제작사, 관객이 원하는 연기를 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거기까지 올라가는동안 나는 뭐 편했겠나.
여기 앉아있는 사람들이 지금 겪고 있는 질투, 시기, 좌절, 시련 등을 다 겪은 뒤 실력만을 남긴 채 다시 태어난 게 나다.
그래서 불편하다. 저 들을 보는 게.
나도 다 겪어봤던 거니까. 그리고 그런 열등감을 지우기 위해 연기에 더 매진했던 것이고.
최근에 이정건과 나누었던 대화를 생각하니 더 화가 난다. 최고의 자리에서 더 노력하는 배우. 그런 배우가 칼을 갈고 연기를 준비중인데.
내가 불편할 수 있겠지. 아마도 나를 불편하게 보는 사람은 두 종류. 나처럼 할 수 없거나 나보다 더 잘난 사람들.
나보다 잘난 사람이 있겠지. 그래 그런 사람이 있을 수는 있겠지. 그러면 나처럼 증명하면 되는 거다.
연기로, 실력으로 말이다.
짧은 쉬는 시간이 끝나고, 모두 자리에 앉아 2화 리딩에 들어갔다.
류 PD와 유 작가 모두 쉬는 시간에 있었던 일을 못 들었던 듯, 아무렇지 않게 리딩을 시작했다.
배우들 모두 대본을 본다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상황.
나는 대본을 덮고 고개를 들었다.
프로는 프로답게 성과만 내면 된다.
나는 그걸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 어머니가요, 밤이고 낮이고 아버지 출근하실 때마다 저를 깨워서 인사를 시키는 거예요. 그게 저는 정말 싫었거든요. 좀 더 자고 싶고, 쉬고 싶고, 놀고 싶고. 어릴 때는 다 그렇잖아요. 어느 날 새벽 어머니가 저를 막 깨우시더라고요. 아버지 출근하신다고요. 강원도 고성에 산불 났는데 거기로 지원 나가신다고 저를 깨운거드라고요. 정신없이 아버지 배웅하고 어머니 얼굴 딱 보는데 그때 처음 알았어요. 방금 출근하신 아버지의 얼굴이,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보는 거일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요. 요즘 따라 그때의 아버지가 많이 그립네요. 진짜 멋있었는데."
"아··· 그럼 아버지께서? 혹시? 순직···?"
방창익이 대사를 치고, 고개를 들어 나를 봤다.
나는 그런 방창익과 눈을 마주치며 대사를 쳤다.
"아뇨. 지금은 은퇴하시고 치킨집하시다가 망하셔서 집에서 노세요. 지금은 안 멋있다는 말이었는데요."
원래라면 상당히 웃긴 대사. 코믹한 대사를 자연스럽게 처리했고, 여기저기서 입을 막은듯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방창익은 웃지 못했다.
그렇게 4화까지 대본리딩이 끝날 때까지 나는 단 한 번도 대본을 펼치지 않았다.
겸손하라고?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고개 숙인 벼는 잘려나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