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녀를 위해 연기하라-62화 (63/121)

62. 액션의 마스터 피스

씬# 226

산 중턱의 특별할 것 없는 창고.

이전 김 비서가 잡혀갔던 그 창고. 같은 구도이지만 전혀 다른 느낌이 든다. 달이 없는 밤, 산 중턱에 있는 창고 근처.

오늘따라 유달리 인기척이 많다.

'컹컹, 컹'

'으르르르'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 개들이 미친 듯이 짖는다.

경찰기동대를 포함한 중무장한 수십 명의 사람이 그 창고를 둘러싸고 조심스럽게 포위하고 있었다.

이윽고, 돌입 사인이 떨어지고, 연막탄이 창고의 창문을 깨고 날아들어 간다.

'통, 통, 통'

'푸쉬이이잉'

연기가 순식간에 좁은 창고를 가득 채운다.

동시에 근처에 대기하던 기동대 헬기가 순식간에 날아와 창고 입구를 향해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기동대가 창문과 정문, 그리고 후문을 부수고 동시에 진입하고.

무전을 타고 동시다발적으로 클리어 사인이 떨어진다.

'치직-정문, 클리어'

'치직-후문, 클리어'

'치직-브라보팀 요구조자 발견. 확인 중.'

십 여명의 기동대원들이 소총을 겨냥하고 조심스럽게 의자에 묶여있는 한 사람에게 다가간다.

'읍읍'

한 기동대원이 묶여있는 남자의 재갈을 조심스럽게 벗겼다.

재갈을 벗기자마자 다급히 외치는 남자.

"살··· 살려주세요. 저는 아닙니다. 저는 백호 그룹 직원입니다. 그 새끼 몇 시간 전에 벌써 도망쳤어요!!!"

연기와 기동대원들로 꽉 찬 창고 안.

그 중앙을 거칠게 비집고 들어온 실장이란 남자.

연막탄의 남은 연기로 얼굴은 보이지 않고, 실장이라는 것만 간신히 알아볼 정도였다.

그 실장이 창고를 훑었다.

납치된 김 비서의 휴대폰을 추적하여 여기까지 왔지만, 역시 예상대로였다.

흑제비는 없었다.

화이트보드에 남겨진, 최태호의 사진. 그리고 책상 위에 남겨진 김 비서의 휴대폰. 그리고 서류철 하나가 보란 듯이 올라와 있다.

서류철을 들어 펼쳐보는 실장.

그 서류철은 그동안 현수가 조사해온 백호 그룹과 최태호의 범죄와 비리에 관한 자료였다.

자세하게 자금 출처와 뇌물이 오간 정황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B팀 대호 그룹 본사로, C팀은 최태호 자가로 이동해서 최태호 신변 확보해. 그리고 경찰에 넘긴다. 집보다는 경찰서가 안전하겠지."

실장은 무전기로 간단한 지시를 내리고 서류를 챙겼다.

서류철에서 팔랑거리며 한 장의 사진이 떨어진다.

누나와 조카를 껴안고 있는 현수의 사진이었다.

씬# 235

"최 형사님, 이거 신원조회 불가 뜨는데요?"

최 형사(예기성)의 까마득한 후배인 이 형사가 최 형사를 찾아왔다.

아까 요청한 신원조회 결과가 안 뜬다며 굉장히 미안한 눈치였다.

"어? 그래··· 어쩔 수 없지. 고맙네.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괜찮아."

"이것 참··· 도움이 안 돼서 죄송하네요. 도와드리고 싶었는데. 반장님은 왜 이런 사건을 최 형사님한테 밀어서. 휴··· 최 형사님 그때 그 일만 아니었어도···"

"됐어. 쓸데없는 소리 말고. 가서 일봐. 어쨌든 고마워."

'신원 조회 불가라···'

최 형사는 이런 경우를 잘 알고 있었다.

오랜 경찰서 근무 간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

예전에는 이런 사람만 모아 놓고 따로 관리하기까지 했으니까.

북파공작원. 예전 같으면 전역한 북파공작원이 사는 곳 근처에 폭행이나 살인 사건이 일어나면 전역한 북파공작원의 위치를 1순위로 파악하곤 했다.

그때 강력반 사무실 입구가 소란스러워 지기 시작한다.

"거 누군데 경찰서를 막 들어와?"

고개를 들어보니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들 여럿이 경찰서에 들어오고 있었고, 몇몇 형사들이 그들을 막아서려고 했다.

척 봐도 일반인은 아닌듯한 모습들.

"국정원에서 왔습니다."

그 한마디에 다가가려던 형사들이 멈칫한다.

그 중 선두에 있는 다부진 체격의 훤칠한 남자.

역시 얼굴을 보여주지 않고 실루엣과 목소리만 보여준다.

사무실을 둘러보고 곧장 최 형사에게 다가오는 검은 정장의 남자.

"안녕하십니까. 김 실장이라고 합니다. 죄송한데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을까요?"

올게 왔다는 듯, 최 형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그 남자를 따라나섰다.

이때 최 형사는 자신이 조사하던 '현수'라는 남자가 예의 그 사건의 범인임을 확신했다.

검은 정장의 요원들은 경찰을 믿지 않는다는 듯 보란 듯이 그들이 타고 온 차로 안내했다.

최 형사는 커다란 승합차를 개조한 그 차량에 탔다.

승합차에 타자마자 김 실장이라 소개한 남자는 서류뭉치를 건넸다.

"이··· 이건."

그 서류뭉치는 최 형사도 아는 서류들이었다. 최 형사가 특별 수사본부에 직접 제공했던 자료였기 때문이다.

"이 자료 외에 추가로 조사 하신 게 있습니까?"

선글라스로 눈을 가린 실장이란 사내. 눈이 보이지 않으니 감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없습니다. 이제 더 조사하고 싶어도 못하겠지만요."

"이야기가 빨라서 좋군요. 가능하면 그냥 모르는 척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서장님과는 이야기가 끝났고 경찰에는 피해가 안 가게 조치하겠습니다."

예의바른 말투와 다르게 위압감이 넘친다.

하지만 곧 은퇴를 앞둔 최 형사는 별 동요가 없이 조용히 물었다.

"이 강현수라는 청년. 제가 생각하는 그거 맞지요?"

잠시 고민하는 실장. 상황을 설명할 필요를 느꼈을까.

그는 그동안 실내에서도 절대 벗지 않던 선글라스를 벗었다.

드디어 관객과 마주하는 그의 얼굴.

한쪽 눈이 못쓰게 백안이 되어 있었다.

그동안 목소리만 들렸던 그 배우. 그는 최두호 무술감독이었다.

"제 후배입니다. 최고의 부하였으며, 우수한 요원이었고. 애국심이 투철하며 누구보다 조카를 아끼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잠시간의 침묵.

"그리고, 제 생명의 은인이기도 하고요. 비록 그때 눈을 잃었지만, 흑제비··· 아니 현수 덕분에 목숨을 건졌었죠. 어쨌든 조사하신 내용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 그런데 왜 저한테 그런 이야기를."

"죄송하지만, 혹시나 몰라 제가 최 형사님 뒷조사를 좀 했습니다. 우리 측 인원의 신상정보가 밖으로 돌면 안 되거든요. 어쨌든, 최 형사님 예전에 비리 경찰을 직접 고발하신 적 있더군요. 다른 모든 부분도 청렴하시고. 그래서 은퇴 다 돼가시는데도 좌천돼서 평형사로 계시는 거고요."

"이해가 안 가네요. 제게 이런 말씀을 하는 이유가."

실장은 앞에 놓여 있는 서류를 톡톡 두드렸다.

"최 형사님이 조사하신 내용에, 저희 측에서 입수한 내용을 조금 보충해 드렸습니다. 특별한 의미는 없습니다. 묻어 버리셔도 좋습니다."

"네?"

최 형사는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차에 오르기 직전만 해도, 입을 다물라, 혹은 발설하면 불이익이 있을 것이다. 이런 내용을 기대했건만.

하지만 어쩐지 저 묻어버려도 좋다는 이야기가 다르게 들린다. 묻어 버리라면서 왜 추가로 자료를 준 것일까.

알듯 모를 듯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끝내곤 자리를 피하려는 실장.

"죄송하지만 저희가 또 가봐야 할 곳이 있어서요."

실장이란 사내가 눈짓을 하자 옆에 있는 요원하나가 재빨리 승합차의 문을 연다.

최 형사가 승합차를 빠져나오고, 승합차는 빠르게 경찰서를 빠져나간다.

최 형사는 손에든 파일 철을 펼쳐 들었다.

그리고, 그 속에는 비리를 저지른 형사와 검사의 입출금 내역을 비롯한 최태호의 각종 비리가 모조리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파일 철에 잘못 끼어들어 간듯한 사진이 한 장 떨어졌다.

그 사진을 주어든 최 형사.

현수의 가족사진이었다.

***

최두호는 처음 스튜디오 나우와 계약할 때 출연할 의사가 전혀 없었다.

계약 내용도 개인적으로는 무술감독이었고, 코리아액션스쿨의 사장으로 스턴트 계약을 했을 뿐이었다.

몇달전.

한창 배우들이 [악의 기록] 액션 시퀀스를 위해 연습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렇게 배우들을 트레이닝 시키는 와중, 본 이지우의 연기.

평소 최두호가 생각했던 이상을 보는 것 같았다.

액션영화는 무술이나, 몸만 잘 쓰면 되는 것 아니냐고?

절대 아니다.

최두호는 철저하게 액션 또한 연기라고 생각했다.

배우가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신체와 이성과 감성을 총동원하듯이, 액션 또한 그래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악의 기록] 마지막 격투 씬. 수백합의 맨손 액션을 짧은 시간에 보여줘야 하기에 복잡한 컷 분할과 동선으로 무술감독인 본인조차 쉽게 표현할 수 없을 그런 전투씬.

배우 이지우는 한 씬을 찍기위해 복잡한 동작을 밤새 연습하는 것을 봤다.

개인적으로 준비한 카메라로 그 모습을 찍고, 확인하고, 다시 찍는 것의 반복.

며칠 뒤, 오히려 상대하기 위해 세웠던 스턴트맨이 손이 꼬이는 모습을 봤다.

전문 스턴트 배우가 이지우가 표현하는 감성에 눌러 그림이 살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최두호는 처음에는 그저 후배 스턴트맨을 가르치려는 의도로 다가갔다.

"여기서 팔을 당기라고! 허리 세우고. 그래야 시선이 맞지. 이 부분에서 감정을 실으라고. 실장역이 어떤 역이야? 아끼는 후배와, 나라에 대한 충성. 그사이를 고민하는 캐릭터 아냐? 그런 걸 보여줘야지. 어?"

그렇게 말하고 이지우 앞에 선 최두호.

"지우 씨. 들어와봐요."

마지막 '실장' VS '현수' 액션씬에 대한 최두호의 시범.

마치 실전처럼 들어오는 이지우에 맞서 최두호는 자신도 모르게 전력을 다했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최두호는 직접 [악의 기록]에 대한 대본 분석을 모두 했었다. 그리고 직접 캐릭터의 개성과 감성을 분석해서 모든 액션씬을 설계했으니까.

'실장'의 대검이 현수의 어깨를 스치는 씬.

이어지는 이지우의 말에 크게 흔들렸다.

"방금 실장이 어깨 베는 거 이거 일부러 설계하신 거 맞죠? 실장이 현수의 경동맥을 베려다가 감정이 올라와서 어깨로 칼날을 트는 거죠? 감독님 감정되게 좋으신데요? 감정이 실리니까 바로 액션이 이해가 되네요. 그동안 이 동작에서 왜 목이 아니라 어깨를 베었을까 싶었는데."

최두호가 후배 스턴트맨들에게 수백 수천 번을 강조했던 말.

액션에 감정을 담아라. 그리고 액션을 감정표현의 수단으로 삼아라.

코리아액션스쿨에 온 지 일주일도 안 되는 21살 어린 배우가 한 번의 리허설로 자신이 만든 액션을 모두 꿰뚫었다.

이지우의 상대 스턴트 배우를 몇 번 지도 하던 최두호 무술감독은 한숨을 쉬고, 훈련장을 빠져나왔다.

영 성에 차지 않는 스턴트 배우의 몸동작.

전화기를 들고 잠시 고민하는 최두호 무술감독.

이수한 감독이라면 어쩌면 이해해 줄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액션에 대해 진심인 감독이었으니까.

오프닝 액션에서부터 마지막 액션 시퀀스까지. 명확한 철학을 가지고 완성된 시나리오.

액션의 흐름에 감정을 섞어 보여주는데 능하다.

오프닝에서 녹색 철문과 사운드로만 보여주는 감정 없는 액션.

최 형사가 CCTV로 확인하는 조폭 VS '현수' 항만창고 액션.

도망치는 조폭이 목격한 국정원 요원 VS '현수'의 액션.

그리고 마지막 짙은 감정과 감정이 부딪치는 '실장' VS '현수'의 액션까지.

액션과 감정이 영화의 큰 틀 안에서 조여들듯 밀착시켜 간다.

주인공 '현수'의 감정이 격해 질수록 액션 또한 현수에게 가까워진다. 끝끝내 마지막 액션 시퀀스에서 '현수'가 가진 모든 감정을 액션으로 터트린다.

액션에 이 정도로 이해하고 고찰한 감독이 있었을까?

헐리우드의 모든 영화를 가져다 대도 이 정도의 구상을 한 감독은 없었다.

그런 이수한 감독을 믿고 최두호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이 감독님. 최두호입니다. 전화 괜찮으신가요? 다름이 아니라 이번 실장역 배우 말입니다. 그 배우분 캐스팅 무산됐다고 하셨죠? 혹시 가능하면 저도 오디션 가능할까요? 네? 오디션 필요 없다고요. 아··· 감사합니다. 네네, 그리고 후반부 액션 시퀀스 조정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 촬영장에서 뵙겠습니다."

최두호는 더는 영화 출연을 하지 않고 본업인 무술 감독직에 충실하겠다는 다짐을 깼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액션 장면을 다시 구상했다.

부상이 걱정돼서, 혹은 배우나 스턴트맨이 따라오지 못할 것 같아서 폐기했던 액션 시퀀스였다.

배우로서 진짜 마지막 은퇴작이 될, [악의 기록].

최두호는 어쩐지 자신의 무술감독과 배우로서의 마스터 피스를 마주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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