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녀를 위해 연기하라-39화 (40/121)

39. 사람부터 챙기자. 어?

39.

이정건과 이지우, 김범이 사우나에서 몸을 풀고 있던 시간, 청운엔터테인먼트는 늦은 시간까지 불이 꺼지지 않고 있었다.

['스윗가이' 진정한 의미를 찾다. 백룡 영화제 배우 이지우 이색 수상소감]

['스위가이' 이지우. 현실에서도 스윗해]

[배우 이지우, 또 사고 쳤다. 백룡 영화제 이슈 모아보기]

[당돌한 신인, 이지우 백룡 영화제에서 사랑고백]

로드 매니저가 계속 올라오는 기사들을 정리하고 분류하고 팩트체크 한다.

느긋하게 집에서 백룡 영화제를 감상 중이던 장인호 사장은, 이지우가 수상소감을 끝낸 직후 바로 회사로 달려왔다.

어찌 됐건 회사의 배우가 생방송 중 튀는 행동을 했고, 소속사 차원에서 대응을 해야 하는데 담당인 김주하 실장이 백룡 영화제 현장에 가있는 상황.

회사에서 대응할 사람이 필요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도착한 회사. 이미 홍보팀장과 홍보팀 직원 몇몇이 전화를 받으며 대응하고 있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저 신인배우 하나의 돌발 행동에 대한 반응이라 생각지 못할 정도였다.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의 문의 전화가 빗발치고 있었고, 장인호 사장의 전화도 계속 울리고 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쯤, 계속해서 올라오는 기사들의 팩트체크를 하고 사실관계가 어긋난 기사들에 대해서 정정보도 요청을 했다. 그러던 중 계속 통화 중이라 연락이 안 되던 김주하 실장이 회사로 들어왔다.

"지우는? 괜찮아? 같이 온 거 아냐? 뭐 어떻게 된 거야?"

"아, 사장님 나와계셨네요. 지우 씨 이정건 씨랑 사우나 갔습니다."

"이정건? 오늘 남우주연상 받은 그 이정건? 그런데 웬 사우나야?"

"네. 정건 씨가 지우 씨를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더라고요. 이정건 씨가 술을 안 하잖습니까. 그래서 데리고 간 것 아닐까요? 일단 지우 씨한테는 내일 일찍 회사로 들어오라 했습니다."

살짝 고민하는 장인호 사장. 사생활도 클린하고 바른 이미지를 가진 이정건과 같이 갔다면 오히려 이지우에게 득이면 득이지 실일 건 없다 판단했다.

대응은 회사 차원에서 준비한 다음, 배우와 조율해도 되니까.

"그래? 잘했네. 일단 회의실로 홍보팀장 데리고 들어와 봐."

그렇게 시작된 대책 회의.

이지우 담당팀 중 로드 매니저, 김주하 실장, 홍보팀장, 그리고 장인호 사장이 회의실에 앉았다.

"이거 뭐 딱히 방법이 없겠는데요. 생방송 중에 말한 거라. 고등학교 때부터 만난 사이라고 하니까 그런 거 강조해서 보도자료 만들죠? 약간 20세 청년의 풋풋한 첫사랑 느낌으로 이미지 만들고 앞으로 행사에도 그런 식으로 코디랑 스타일 좀 만지고. [저승카페] 이후로는 그런 쪽으로 스케줄 잡아보죠. 10대 코어 팬덤 이탈은 어쩔 수 없더라도, 20대 노리고 당돌한 동생? 그런 느낌도 괜찮아 보입니다."

"나쁘지 않네요. 이번 기회에 [폭력의 사슬]의 거친 이미지랑, [민주를 기다리며]에서 묻은 이슈들도 털어버리게 차라리 잘 된 것일 수도 있어요. 그동안 만들었던 부정적인 이미지 한방에 털고 가는 것도 좋아 보입니다. 'ON스트릿' 쪽에도 내년 S/S브랜드 촬영 간에 20대 층 타게팅 하는 좀 밝은 브랜드 요청하고···"

김주하 실장과 홍보팀장이 의견을 교환하고, 로드 매니저인 이동수가 주요사항을 메모했다.

이지우와 이지우의 이미지, 앞으로의 전략 등에 대해서 치밀하고 세세한 계획이 수립되고 있던 와중. 조용히 듣고만 있던 장인호 사장이 회의의 맥을 끊는 한마디.

"좋네. 다 좋은데, 주하야."

"네, 사장님."

"전략도 좋고, 이미지 메이킹도 좋은데 이 회의에서 제일 중요한 건 지우랑 현주 양 아니겠냐."

"네? 네. 맞습니다. 그런데 사장님이 말씀하시는 의도를 잘···"

굳은 장인호 사장의 표정을 보고 당황한 김주하 실장.

"배우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그리고 팬과 안티팬 모두한테 비난받을 현주 양을 어떻게 케어 할 것인지. 그게 먼저 나와야 하지 않겠냐?"

크지 않은 목소리로 담담히 말하는 장인호 사장.

하지만 힘이 실린 그 말에는 뼈가 있었다.

"주하야, 그리고 홍보팀장 오늘 좀 많이 실망이다. 이거 하나는 짚고 넘어가야겠다. 배우를 상품으로 보는거, 그거, 이 일 하면서 절대 하면 안 되는 거다. 그거 일 잘하는 거 아니다. 알겠냐? 그런 새끼 필요 없고, 필요하면 내가 지우 따라다니면서 케어할테니까."

화를 참듯이 한번 크게 한 숨쉰 장인호 사장이 말을 이었다.

"얘들아 사람부터 챙기자. 어?"

그러면서 벌떡 일어나는 장인호 사장.

"30분 후에 다시 회의하자."

장인호 사장은 그렇게 말하며 의자에 걸어 놓은 재킷에서 담배와 라이터만 챙겨서 휙 하고 나가 버렸다.

***

이정건과의 대화를 마치고 난 뒤, 집이 아닌 회사로 향했다.

아마 회사는 나 때문에 대책회의다, 대응이다 하면서 정신없을 것이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러 택시를 탔다.

로드 매니저인 이동수에게 와 달라 부탁해도 됐지만, 정신없을 회사를 생각해서 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바로 휴대전화를 들었다. 이미 현주한테 몇 개의 문자가 와있었다.

[현주 : 와! 대박 '신인 남우상' ㅊㅋㅊㅋ!]

[현주 : 야 너 정신 나갔어?]

[현주 : 우리 엄마가 저 현주가 우리 집 현주 맞느냐고 묻는데 어떻게 해!?]

[현주 : 안 자고 있으니까, 연락해줘.]

시간대별로 온도 차가 나는 문자메시지.

수상 직후부터 계속 연락하고 싶었지만, 주변 상황이 좋지 않아 못했었다. 박정태에, 이정건을 상대하느라 폰을 볼 틈이 없었으니까.

마지막 문자가 20분 전.

아직 잠들지는 않았겠지··· 신호가 좀 길어지면 끊을 생각으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몇 번 돌기도 전에 현주는 전화를 받았다.

"어? 안 잤어?"

-어, 안 잤어. 연락 올 거 같았어.

누워있어서 그런 것인지, 혹은 화가 난 것인지, 이도 저도 아니면 도둑이 제 발 저리듯 나한테만 그렇게 들리는지 몰라도, 살짝 잠긴듯한 그녀의 목소리.

"화났어?"

-아니, 궁금했어. 왜 그랬는지.

"숨기기 싫었어. 우리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숨어서 다니는 게 싫었어. 당당하게 박현주가 내 여자라고 말하고 싶었어. 이렇게 하면 편하지는 못해도 같이 다닐 수 있으니까.

-하, 그럼 나한테라도 미리 말해야지. 얼마나 놀랐는데···

"말했으면 말리지 않았을까?"

-당연히 말렸지.

그래 그럴까 봐 미리 이야기를 못 했다. 미리 말했다면 나를 말리고 설득하려 했겠지. 현주 자신이나, 회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그래서 말 안 했어. 괜찮을 거야."

-괜찮은 거 맞아? 나 때문에 회사에서 막 혼나거나, 너 잘리는 거 아냐?

내 걱정하지 마··· 내가 미안하잖아.

"내가 이지운데 어떻게 회사가 나를 짜르냐. 그리고 이게 왜 너 때문이냐? 나 때문이지."

현주는 겉으로는 왈가닥처럼 보여도 속이 참 여리다. 내 돌발행동 때문에 당황했을 텐데도 내 걱정을 먼저 하는 게 또 미안하고.

-치··· 장 사장님이나, 김 실장님이 사람이 너무 좋으셔. 너 이렇게 오냐오냐하는 것도 다 받아주시고.

청운에서 너 잘 챙겨주시고 나한테도 너무 잘해주셨는데, 혹시나 나 때문에 회사랑 너랑 사이 나빠 질까 봐 걱정했어. 좋은 회사잖아.

"다~내가 잘해서 그런 거야. 내가 난데 어떻게 회사가 나한테 뭐라고 하겠어."

내 속마음이 어떻든 현주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허세를 부렸다.

-어휴, 니가 잘해서 그런 거지. 세상이 다 아니라 해도 나는 잘했다고 해줘야지. 잘했어! 이지우!

더 잘 할 거다.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되니까.

"나 때문에 이제 많이 불편할 거야. 기자가 따라다닐 수 있고, 원치 않은 관심들도 따라다닐 수 있어. 그래서 말인데 내가 하는 이야기 들어보고 잘 생각해 봐···"

한참동안 내 계획을 설명했다.

***

현주와 통화가 끝날 때쯤 맞춰서 도착한 청운 엔터테인먼트 앞.

역시나, 회사 건물은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편의점에서 마실 것들과 간단한 주전부리 한가득 샀다.

사무실 문을 여니 김주하 실장을 비롯한 내 담당 팀원들이 대기하고 있었고, 뜻밖에 장인호 사장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 지우 씨 왜 벌써 왔어요. 내일, 아니 오늘 아침 일찍 와도 되는데."

이미 12시가 훌쩍 넘어 새벽 2시가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내 돌발 행동으로 늦은 시간까지 남아있어 피곤하고 짜증이 날 법도 한데, 그런 내색 없이 나를 맞이하는 김주하 실장.

미안한 마음에 사온 음식을 건네고 사무실 한 쪽에 앉았다. 그리고 비어있는 컴퓨터를 조작해서 작성한 계약서 한 부를 출력했다. 백룡 영화제 '신인 남우상' 후보에 올라갔을 때부터 작성했던 계약서였다.

장인호 사장까지 회사에 있다면 이야기가 더 빠르겠지, 잘 왔다 싶었다.

몇 번 간헐적으로 울리는 전화 몇 번. 차츰 잦아지더니 사무실도 곧 적막해졌다.

그리고 김주하 실장이 나를 불렀다.

"지우 씨, 사장님이 잠시 부르시네요. 커피?"

"아뇨, 먹고 왔습니다. 사장실로 가면 되나요?"

"아, 사장님 회의실에 계세요, 사장님 커피 만들어서 들어갈게요. 먼저 가 있어요."

그렇게 들어간 회의실. 그곳에는 장인호 사장이 전화를 받고 있었다.

"네네, 아이고 늦은 시간까지 고생 많아요. 저야 뭐 이게 일이죠. 나중에 김 실장 통해서 보도자료 돌리게요. 네네 들어가세요."

기분좋게 통화하는 목소리와 달리 굳어있는 표정의 장인호 사장.

곧 김주하 실장이 커피를 들고왔다.

전화를 끊고, 커피를 받아든 장인호 사장이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이미 몇 달간 소속사 생활을 하면서 장인호 사장과 자주 대화했기에 편하게 말했다. 나는 특히 다른 배우들과 달리 시청각 자료실 때문에 매일 회사에 출근하다시피 했으니까. 오며 가며 자주 마주치기도 했다.

"지우야, 음··· 니가 회사에 들어와서 그동안 너무 어른스럽게 행동하다 보니, 우리도 좀 그런 부분에 소홀 했던 거 같긴 한데··· 워낙 자기관리도 잘하고 연기도 잘하고. 우리 지우 프로페셔널 하잖아. 그런데 오늘 상의 없이 그런 말을 한 이유가 궁금하네. 니가 한 말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 잘 알고 한 말 맞니?"

무겁게 첫 대화를 시작하는 장인호 사장.

어떤 영향이라···

안다. 여기 있는 그 누구 보다 잘 안다. 언론의 생태계와 동작방식, 그리고 대중을 움직이는 원리까지도.

그게 내게 얼마나 불리하게 작용할지도.

내가 단순히 현주 옆에서 찝접거리는 애들 몇 떨구려고 시상식에서 그런 말을 했겠는가.

"네··· 압니다."

"음, 그러면 이유를 좀 들을 수 있을까?"

"제가 연예인이지, 현주가 연예인이 아니니까요."

나는 그녀에게 평범한 삶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찬란한 20대를, 그녀의 청춘을 즐기게 해주고 싶었다.

매일 남자친구와 어두컴컴한 시청각 자료실에서 있는 것.

그래, 그녀는 괜찮다 했다.

만족한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그게 안 된다.

이기적이라고 해도 소용없다. 이 부분에서는 양보가 안 된다.

봄이면 벚꽃 보고, 여름이면 바다 가고, 가을이면 단풍 구경가고, 겨울에 썰매장 한 번 같이 가는 것.

평범한 사람이 삶을 즐기는 방법들.

이전 생에 가난할 때는 가난하다고, 성공하고 나서는 바쁘다는 핑계로 못 즐겼던 삶을 그녀에게 주고 싶었다.

어디를 가나 꽁꽁 싸매고 마치 죄인처럼 그녀를 숨기고 싶지 않았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그녀와 교제 사실을 밝히고 관심을 받되 당당하고 싶었다. 불편함이 있겠지만, 그녀를 숨기고 죄인 취급하는 것 보다는 나을 것으로 생각했다.

나는 어차피 스타가 될 것이다. 그 방식과 실행은 내게 너무 쉬운 일이다. 전생에 아무것도 없는 나도 올랐던 길이니까.

어떤 작품이 흥행하고, 어떤 사고가 일어나며, 어떤 이슈를 피해야 하는지 모두 아는 내가, 국내 최정상급 연기력을 가지고 있다.

오히려 실패하기가 힘든 내 조건들.

내게는 그녀를 행복하게 하는 방법들이 더욱 어렵게 느껴졌다.

연기라는 기술밖에 없는 내가 이제 와서 다른 기술을 익힐 수도 없다. 다른 일로 성공하기 위해서 기회비용을 날린다면, 어머니의 발병을 놓칠 수도 있는 상황.

그렇기에 1년 전의 나는 다시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연예인이라는 수단을 가짐과 동시에 그녀를 행복하게 해줘야 하는 대의를 저울질 해야 했다.

그렇기에 지금었다.

연예인라는 무게추가 더 무거워 지기 전. 나를 중심으로 한 이해관계가 더 복잡해지기 전.

소속사와의 관계만 신경 쓰면 되는 지금, 그녀와의 관계를 터트리고 갈 수밖에 없었다.

"음··· 일단 지우야. 오늘 내가 중대장이라도 된 것 같은데··· 좀 실망이다."

실망이라는 말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후회스럽진 않았다.

"아마 우리가 현주 양과 교제사실을 밝힌다고 하면 막을 줄 알고 독단적으로 저지른 것 같은데, 일단 다음부터 이런 일이 있으면, 먼저 우리를 설득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장인호 사장은 비난하려는 의도보다 나에게 조언하려는 투였다.

"그리고··· 지우 니가 연예인이지 현주 양이 연예인이 아니라 그랬지? 현주 양은 연예인이 아닌데 이런 상황에서 얼마나 당황했겠니. 미리 말했다면, 우리도 현주 양을 케어할만한 준비를 미리 했지 않았겠냐 이 말이야. 방금 니가 들어오기 전 내가 통화하던 사람이 누군지 아니?"

"네? 모르겠습니다."

"고구려 일보 주필이란다. 다른 건 다 좋은데 현주 양의 신상에 관한 건 덮어주기로 합의했다. 내가 뭘 말하고 싶은 거냐면, 일단 이런 일이 있으면 우리랑 상의해 주렴. 어려운 것 아니잖아. 문제가 있으면 해결하고, 기사가 나가면 대응하고. 우리가 이런 일하려고 수수료 받고 일하는 것 아니겠니?"

장인호 사장의 말을 잠자코 들었다. 내가 연예계의 생리를 몰랐겠는가. 다만 현주에 관해서는 어떠한 타협도 하고싶지 않았기에 질러버린 것이다.

나 때문에 이 늦은 시간까지 고생을 한 소속사 직원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었고.

"실망하신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에게는 꼭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아마 다시는 이런일 없을 겁니다."

내 말이 끝나고, 잠시간의 침묵.

다행스럽게도 분위기가 험악하지는 않았다.

내 말이 먹혔는지 몰라도 장인호 사장도 고개 몇번 끄덕이며 이해한다는 눈치였고.

속된말로 내가 마약이나 도박을 걸린 것도 아니고, 오늘 사건 자체만 보면 연애 스캔들에 가까운 것이니까. 회사에서 충분히 대응이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난 좀 편한 마음으로 내 주장을 말할 수 있었다.

"안 그래도 현주 일 때문에 상의드릴 것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방금 뽑은 계약서 한 부를 내밀었다.

현주에게 말했던 내 계획.

지금이야 난 신인 배우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길면 몇 년, 빠르면 몇 개월 후면 배우로서 완전히 자리를 잡을 것이다.

그러면 덩달아 현주도 각종 기사나 가십에 시달릴 것이고.

그때 최소한의 방패가 필요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내가 나서서 변호사를 찾아다닐 수는 없으니까.

"이게 뭔가요?"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김주하 실장이 물었다.

"현주의 전속 계약서입니다."

"네?

"뭐?"

장인호 사장과 김주하 실장이 동시에 반문했다.

그런데, 그 놀라는 반응이 이상했다. 뜻밖의 일에 깜짝 놀란다기보다, 약간 의외라는 느낌.

"현주 양이 연예인이 아니니까, 연예인으로 만들어 버리겠다. 뭐 그런 건 아니죠?"

피식, 웃으며 말하는 김주하 실장.

그럴리가. 현주가 내 대사 연습 받아주는 걸 못 봐서 그런 소리가 나오는 거다. 완전 국어책 읽긴데.

장인호 사장이 내가 내민 계약서를 검토하는 동안, 김주하 실장이 또 다른 계약서를 내밀면서 말했다.

"저 계약서 제가 생각하는 그 계약서 맞나요?"

얼떨결에 받아든 계약서.

그 계약서는 내가 내민 계약서와 거의 유사한 현주의 전속 작가 계약서였다.

"아!"

내가 사우나에서 땀 빼는 몇 시간 동안 내가 내린 결론과 똑같은 결론을 내린 장인호 사장과, 김주하 실장.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몇 년 내로 신사업을 준비 중입니다. 연극이나 뮤지컬 제작으로요."

"네, 알고 있습니다."

"어, 뭐 이게 갑작스러운 건 아니고요. 혹시나 오해 할까 봐 말씀드리는데, 현주 양을 위해서 급하게 신사업을 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사장님도 그렇고, 우리 회사 소속 배우들 일부도 그렇고 기본적으로 연극을 베이스로 하는 분들이 많거든요. 그래서 연극이 됐든 뮤지컬이 됐든 몇 년내로 제작사업을 추진 중이었고, 그 일환으로 현주 양을 영입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나도 이쪽을 염두 해놓고 한 제안이었다.

계약서를 들고 쭉 읽어 내렸다.

일반적인 신인 배우 수준의 케어에 작가활동을 보장하는 계약.

내 계약서보다 더 꼼꼼히 읽고 있는데, 옆에서 김주하 실장이 말을 보탰다.

"다행스럽게도 현주 양의 이전 활동이 꽤 화려하더라구요. [폭력의 사슬], [민주를 기다리며] 공동 각본가. 지금 대학 생활 중이라는 게 좀 걸리긴 하는데 원래 이쪽 예체능은 학벌보다 결과물만 좋으면 다 오케이 하니까요."

현주로서는 손해 볼 게 없는 계약이었다. 내가 제시한 계약서보다 더 꼼꼼하게 보장 내용이 적혀있었다.

서로가 서로의 계약서를 확인하던 중, 장인호 사장이 말했다.

"지우야···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현주는 케어를, 청운 엔터테인먼트는 작가를 얻었다.

이런 게 '윈윈'이라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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