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녀를 위해 연기하라-25화 (26/121)

25. 여름이었다

25.

촬영장에서 눈치 없이 어슬렁거리며 사진 찍을 때는 엄청 눈꼴 시렸는데, 결과물을 받아보니 할 말이 없다.

포스터가 말도 안 되게 잘 나왔다.

포스터의 핵심이 뭔가?

궁금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영화는 어떤 내용일까?’

보는 사람에게 포스터를 보고 이런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것.

그것이 포스터의 본질임이 틀림없다. 장르를 드러내고, 주제를 보여주는 것은 부차적인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포스터는 잘 나왔다.

유난히 쨍한 햇빛 아래 두 남자의 모습은 평범한 일상의 모습 그 자체다. 거기에 기묘하게 일그러진 폭력의 배경과 더해져 균형 있게 부조화하다.

언어로 표현하면 이상한 말이 되어버리는 이 독특한 분위기.

궁금증이 절로 든다. 두 남자의 삶에 자연스레 호기심이 가는 포스터였다.

한마디로 예술이다.

이수한 감독과 나는 각각 연출과 연기를 했다.

그렇기에 캐릭터와 서사에 집중 할 수밖에 없었고 그 서사와 캐릭터가 주제 의식과 어떻게 맞아떨어지느냐에만 골몰했다.

이사진은 폭력의 사슬이지만 [폭력의 사슬]이 아니었다. 영화에만 국한되지 않은, 강진호가 생각했던 폭력의 사슬이라는 새로운 해석에 나와 김범, 그리고 촬영장 모두를 도구로 사용했다.

강진호, 그는 예술을 하고 있었다.

기술적인 면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 때문에 독립영화 포스터 특유의 어설픔이나 촌스러움도 없었고.

그리고 멋있다.

그 중의 내가 제일 멋있다.

멋있는 게 최고야. 늘 새로워. 짜릿해.

그날 사라진 500만 원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그럼 됐지 뭐.

이수한 감독과 조감독의 반응도 나와 다르지 않았다.

'이게 정말 우리 영화라고'

이런 반응이었고, 강진호 작가는 만족한 고객들을 보며 말없이 웃고 있었다.

"형 아는 후배 중에 캘리그라피 하는 사람 없어요?"

"캐 캘리, 뭐? 그게 뭔데?"

아, 아직 캘리그라피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시기다. 대중화되지도 않았고.

"그럼 서예가는?"

"서예 하시는 분은 한 분 있지. 예전 사극에 편지 같은 거 소품 써주시던 분."

"그럼 빨리 연락드려봐요. 우리 타이틀도 예쁘게 다듬죠. 음··· 서예 흘리는듯한 글씨체로, 세로쓰기? 아니면 가로쓰기? 이건 잘 모르겠네. 강 작가님이랑 상의해서 제목 이쁘게 박죠. 얼마나 걸릴까요?"

그때 옆에 있던 강진호 작가가 말했다.

"도안만 주시면 뭐 한 시간도 안 걸리죠."

"내가 서예가님 알아보고 작가님한테 보낼게."

"네. 형 영화제에 출품하는 것 잊지 마시고요. 포스터 채워야죠."

우리나라 포스터 특 : 상 받으면 포스터에 빼곡하게 채워놓음.

이걸 노린 영화제 출품이니까.

"그래. 오늘부터 또 촬영이지? 준호 작품."

"아뇨. 오늘은 리딩만."

정리를 마치고 일상적인 대화를 이어갈때쯤 편집실의 원주인이 왔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작품이 있다. 이수한 감독의 후배의 작품.

최근 내가 너무 바쁜 나머지 앞으로 작업하는 두 작품 모두 나 때문에 촬영이 조금씩 밀렸다.

특히 오늘 촬영 작품은 [폭력의 사슬] 미편집 본을 본 이수한 감독의 후배가 나를 캐스팅한 케이스다.

처음 보는 감독의 이름을 보고 기분이 싸했는데, 역시나. 대본이 엉망진창이었다. 기억에 없길래 상업영화 데뷔를 못했나? 싶었는데... 나 혼자 애쓴다고 살릴 수 있는 작품은 아니었다.

어디 국내 독립영화 영화제에 보내면 딱 참가상 정도 입상할 수준?

현주의 소개받은 작품도 딱 그 정도였고.

그래서 어디에 출품할지도 물어보지 않았다.

큰 기대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촬영했다.

그렇게 6월이 지나갔다.

여름이었다.

***

7월 중순까지 바쁘게 영화를 찍고, 이후 무리가 갔던 몸을 추슬렀다. 오랜 시간 깁스로 근육이 빠져버린 다리를 재활하기 위해 운동도 시작했고.

사람이 바쁘다 갑자기 안 바쁘면 좀 그렇다.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지고.

못 나가는 연예인 특 : 백수와 딱히 구별이 되지 않음.

"괜찮아 아들. 엄마는 아들 믿어."

어머니와 함께 마감하고 퇴근하는 길. 어머니의 저 말이 살짝 아프게 느껴진다.

내가 무릎을 꿇고 있는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라 말하면 이해하실까?

사실 요즘 분식집에서 일하기가 좀 힘들다.

다리가 다쳤을 때는 아파서 못했고, 요즘 들어 여고생이 극성이라 일을 할 수가 없다.

여고생 팬덤으로 인해 ‘ON스트릿’에서 모델 일을 하는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그 ‘ON스트릿’에 상품 사진으로 올라간 내 사진을 계기로 여고생 팬층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얼짱’카페에서 독립해 내 개인 팬카페가 생길 정도로 말이다.

그만큼 ‘ON스트릿’의 내 사진이 잘 나오긴 했다. 몰래 찍는 사진과 연출되고 잘 다듬어진 사진이 가진 파괴력의 차이는 컸다.

여고생 1명이 특수전 부대원 3명과 맞먹고, 여고생 3명이면 전차를 제압할 수 있다는 개드립이 마냥 농담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여고생은 모이면 모일수록 강해진다. 그리고 몇몇 여고생들의 진상짓은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행해졌다.

4명이 떡볶이 한 접시 시키고 점심부터 마감까지 앉아 있다거나, 사진 찍어 달라고 하면 다행이고 몰카에 성추행에···

나는 그런 일을 수십 년 했으니 괜찮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옳고 그름, 그리고 도덕과 법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할 나이니까.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라 성숙과 미성숙의 차이다. 이해한다. 게다가 지금의 시대상은 공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지 않으니까.

관심 받는 게 연예인은 숙명이고 일인데 그걸 불편하다는 이유로 거절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내가 필요할 때만 관심을 요구하는 그런 연예인은 아니었다.

나는 괜찮다.

그런데 그런 모습을 어머니가 봤을 때 어떤 심정이었겠는가.

게다가 내가 일하면 오히려 몇몇 진상들 때문에 일반 손님들에게까지 피해가 갔다. 장사를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 일을 도와주고 싶어도 못 도와주는 상황이 됐다. 영업시간 내에 어머니를 도와주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나마 야생의 여고생들이 출몰하지 않는 이른 아침과 늦은 저녁에 장사 준비와 마감만 내가 도와드리는 중이다.

얼마간 아침저녁만 도와드리니 시간이 남는다. 현주와 매일 만나고 있지만, 그녀도 대학생이다. 그녀의 대학 생활까지 내가 뺏고 싶지 않았다. 대학 생활뿐만 아니라 그 무엇도 뺏고 싶지 않았기에, 자연스레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한 달쯤. 이렇게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니 뭔가를 해야겠다는 강박 같은 것이 들었다.

그래 취미 같은 거.

회귀 전에는 이렇다 할 취미가 없었다.

영화가, 드라마가 그리고 연기가 내 직업이고 취미이자 특기이며 인생이었다.

유일한 여가가 몇몇 지인들과 술 마시면서 연기나, 예술에 대해서 논하고 고민하는 게 다였다.

참 쓸모없이도 살았구나.

취미를 가져보려 했다. 술은 마시고 싶지 않았고, 지금에 와서 나와 대화가 통할 사람은 없으니까.

그래서 찾은 취미가 미술이다.

사실 회귀 직후부터 계속 미술을 배우고 싶었다. 다만 시간과 금전적인 문제 때문에 엄두가 안 났을 뿐이지. 하지만 앞으로 지금처럼 여유 있을 시간이 없을 것 같아 무작정 시작했다.

그림을 잘 그리고 싶은데 안됐다.

그림을 그리고 그리다 답답해서 미술학원을 찾았다. 거기에 더해 혼자 있는 시간을 줄이고 싶었던 것도 있다.

나보다 4~5살이 많을까? 젊은 선생이 나를 맞이했다.

“어떻게 오셨어요?”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서요.”

“네? 혹시 입시? 아니면 취미반? 아니면 학생이세요?”

“취미반이요.”

많이 봐줘도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내가 취미반을 한다는 게 이상해 보였던 걸까. 질문이 길어졌다.

“미술도 종류가 많은데 혹시 어떤 걸 배우고 싶으세요?”

“음··· 인물화. 인물화를 배우고 싶어요. 예전에 어디서 본 거 같은데 극사실주의? 그림으로 막 사진처럼 그리는 거요.”

“네 알겠습니다. 오늘부터 바로 시작하시나요?

“네.”

“오늘은 첫날이니까 먼저 선 긋는 것부터 배울게요.”

8월 초 더운 여름날 오후. 나는 처음 그림 그리는 법을 배웠다.

내 그림 그리는 재능이 연기하는 것의 반만큼이라도 따라와 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이다.

연필로 가로와 세로를 무수히 왔다 갔다 하며 흰 종이를 검은 종이로 만드는 와중 전화가 왔다.

"네, 형. 별일 없죠?

-미쳤다. 지우야. 우리 로카르노 경쟁 부문 진출했다. 씨바 메일로 초청장 날아왔어.

"네? 와 씨. 정말요?

-어어! '현재의 감독' 섹션에 경쟁 초청이야. 무려 경쟁 부문이라고! 인마. 형 대감독 된다. 진짜. 기다려라 투자금 상환 얼마 안 남았다.

한껏 기대감에 들뜬 그의 목소리.

일단 진정을 좀 시킬 필요가 있었다.

"형형 일단 영진위에 빨리 지원금 신청해요! 그거 못 받으면 우리 참석도 못 해. 나랑 김범? 아니면 경수형?(조감독) 누구 갈지 정해서 필요서류 빨리 알려줘요."

로카르노가 아마 B급이었지? A급이 베를린, 칸, 베니스에 토론토 까지였을 거다. 아마 B급부터는 영화제 참석 3인까지 영진위, 그러니까 영화진흥위원회에서 항공료와 숙박비가 지원되는 것으로 안다.

시작이 좋다. 꼭 수상이 아니라도 초청만으로도 포스터에 한 줄 박을 수 있으니까.

기쁜 마음도 잠시, 다시 선 긋기에 집중했다.

***

스위스 로카르노 에스플러네이드 호텔. 로비에 마련된 카페에 동양인 남자 두 명이 대화하고 있다.

8월, 이 시기쯤에는 특별 할 것도 없는 일이다. '로카르노 국제 영화제'가 개막한 지 이틀이 지났을 뿐이니까. 유럽은 물론이고, 아시아 각지에서 많은 영화인이 로카르노를 찾는다.

키 작은 남자는 영화제 마켓 배지, 키 큰 남자는 프리패스 배지를 달고 있다. 영화제에 참가한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임이 분명했다.

"기자 짓 때려치우고 배급사로 이직하니까 좋냐?"

"아직 모르겠어요. 이것도 영화와 관련된 일이라 하기는 하는데, 그냥 회사원이랑 다를 바 없는 것 같기도 하고요. 대기업이라도 별거 없네요. 형은 요즘 어때요?"

"나야 맨날 똑같지 뭐. 영화 보고, 글 쓰고. 기사 올리고."

"본 것 중 괜찮은 거 있어요? 아, 죽겠네. 팀장이 계속 쪼으는데."

키가 작은 남자가 묻자, 키가 큰 남자가 답했다.

"글쎄, 너는? 좀 관심 가는 거 있어?"

"있으면 안 물어봤죠."

그러자 키가 큰 남자가 들고 있던 팜플렛의 목록 중 하나를 가리키며 홍보지 하나를 건넨다.

"이거 한번 볼래?"

"음···. Chain of violence··· 폭력의 사슬? 일본 영화에요? 중국?"

"영화 마케터가 왜 이리 정보가 느려? 한국 영화야 인마."

"엥? 진짜 그러네. 그런데··· 이게 왜요?"

"너희 회사 이번에 독립영화 특별관 기획한다며. 내가 어제 보고 왔는데 재밌어. 한번 봐봐. 굳이 해외 영화 찾지 말고. 이거 오늘 오후에 한 번 밖에 안 남았어. 음··· 지금 출발하면 바로 볼 수 있겠는데?"

"음··· 월드 프리미어네..."

(월드 프리미어 : 전세계 최초 개봉)

앞에 있는 기자가 누구던가. 영화 전문 잡지 기자 중 영화 감독에게 가장 욕을 많이 먹는 기자가 아닌가. 그 악독하고 엄격한 평가로 몇몇 감독들은 그를 만나면 주먹질을 불사할 사람이 많았다.

그런 그가 무려 '재밌다'라며 추천하는 영화다. 실패할 리가 없었다.

"그건 우리 부서 파트가 아니라 국내 영화 담당 파트긴 한데. 일단 볼게요. 아까 봤던 거 너무 별로라서."

그렇게 말하곤, 그 키 작은 남자는 [폭력의 사슬]을 보기 위해 자리를 일어났다.

영화가 끝났다.

그리고 그는 시차를 고려하지 않고 바로 한국으로 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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