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우스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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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감독으로 데뷔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모르긴 몰라도 단편 독립까지 포함하면 세 자리 숫자는 될 것이다. 대학생들이 만드는 졸업작품까지 포함하면 네자릿수 근처까지 될 것이고.
그중에 상업영화를 찍는 사람은?
열에 한둘도 많다. 그 어려운 경쟁률을 뚫고 영화를 찍는다 해도 성공하기는 더욱 어렵고.
그렇다고 배우기는 쉽나.
노가다 판에 비유되는 험한 현장, 욕설과 인격모독을 받아도 어디 하소연 할 곳 없는 폐쇄적인 구조. 대학에서 배운 것과 괴리되는 작업. 쥐꼬리만 한 일당과 당연하게 무시되는 노동법. 그리고 4대 보험이 불가능한 일자리.
이야기만 들었을 때는 누가 저런 곳에서 일하겠냐 할 것이다. 하지만 저 열악한 상황을 견뎌내지 못하면 감독으로 데뷔조차 불가능하다.
열정을 강요하며 젊은이들의 피땀으로 돌아가는 영화판.
그런 영화판에 맨손으로 뛰어들어 20년 후에는 폭력의 거장이라 불리는 이수한 감독을 내가 낮춰봤다.
내가 [폭력의 사슬]을 선택했다는 건방진 생각을 수정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었고.
사람이 웃긴다고, 우스운 사람이 아니다. 아는 형 이수한 재미있고 좀 모자란 듯한 좋은 형이었지만, 감독 이수한 영화적 감각이 탁월한 멋진 감독이었다.
'짝짝짝짝'
"브라보."
뭐라 더 말할 게 있을까.
손뼉을 치며 그를 바라봤다.
"후아··· 좀 살겠다."
내 대답이 기대 이상이었는지 그가 크게 숨을 몰아쉬며 축 늘어진다.
"좋네요. 전반적으로 좋은데 특히 액션씬. 연출도 좋고, 촬영 감독님도 확실히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있어요."
"네 덕분이지 뭐."
내 탓이라고? 아니다. 말 몇 마디 듣는다고 영화 수준이 이렇게 높아질 리 없다.
"형, 그런데 진짜 연출 좋아졌어··· 좋아요."
전생의 [폭력의 사슬]과 비교해서 월등히 좋아졌다.
내가 조언 아닌 조언으로 이야기했던 연출에 관한 팁들이 녹아있었다.
액션 장면에서 카메라 흔들지 말고 롱테이크로 쭉 가지고 했었다. 우리 영화는 '제이슨 본'이 아니니까. 화려한 액션은 오히려 주제를 흐리게 한다. 또한 굳이 '진태'와 '석환'을 수평적 구도를 유지하지 말고 좌우의 할당은 하되, 미장센을 이용하여 의도적으로 나눈 듯한 느낌만 주자고 했다.
말로 들으면 모호하기 짝이 없는 코멘트들.
그런 내 팁이 완벽하게 연출적 역량으로 녹아 들어갔다.
액션씬의 화려함은 줄었지만 리얼리티와 처절함이 강조되었고 영화의 톤과 상승작용을 하는 것이 보였다. '진태'와 '석환'의 갈등의 연출은 바뀐 시나리오와 호응하여 좀 더 선악이 모호하게 바뀌며 '폭력에 선(善)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를 명확하게 보여줬다.
머릿속으로 원래 그렸던 그림을 폐기하고 누군가의 조언을 기반으로 더 나은 그림을 뽑는다고?
영화에 대한 열정이 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 결과물 또한 열정에 못지않은 성과였다.
하지만···
"그런데 형, 아까 118분에 다시 돌려봐요."
"응? 왜?"
"여기 붐 마이크."
"어? 시바, 저게 왜 저기서 나와?"
화면 끄트머리 살짝 삐져나온 마이크 봉.
"그리고 98분."
"하···"
한 손으로 머리를 싸매고 편집기를 조작하는 이수한 감독.
"여기 필름 빛 들어갔어요."
마찬가지 필름이 빛이 들어가는 바람에 화면의 오른쪽 위 끝 모서리의 명암이 뒤바뀌어 버렸다.
"하··· 티 많이 나냐? 그 리어카 창고에 필름 맡겼을 때, 누가 짐을 뒤졌나 봐."
이건 그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이긴 했다. 채권자가 뭐 돈 될 만한 것 없나 뒤져보다 필름을 건든 모양이다.
"네.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뭘 어떡하긴 어떻게 하냐. 그냥 이대로 가야지. 생각해봐, 극의 감정선을 봐야지 어떤 미친놈이 화면 구석에 붐대(마이크) 보고 있냐. 그리고 빛 들어간 건 일반인은 몰라."
잠시 갈등했다. 틀린 말은 아닌데···
이수한 감독의 의도를 모르는 건 아니었다. '독립영화치고는 잘 만들었다.'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촬영의 막바지에는 스텝을 못 구해서 5명이 채 되지 않은 인원으로 촬영했으니까. 그나마 5명 중 한 명은 엑스트라 대역으로 배경 채웠고.
이건 이수환 감독이 부족했다기보다 부족한 환경 때문이 맞다.
그를 탓하고 싶지 않았다.
독립영화치고 잘 만든 거 맞고.
하지만 내가 봤을 때 영화 수준이 너무 높아 아쉽다. 애매하게 잘 찍었으면 그냥 웃고 넘기겠지만, 너무 영화가 잘빠졌다.
상업영화 중 웬만한 누아르 물을 가져다 붙여도 밀리지 않을 정도니까.
하루 날 잡고 재촬영하면 딱 좋긴 하는데.
문제는 이수한이 그럴만한 돈과 의지가 있냐는 문제였다.
"형 이거 재촬영 한번 가죠?"
"안 돼. 나라고 재촬영 안 하고 싶겠냐. 그런데 현실적으로 힘들어.“
좋다. 의지는 있고. 문제는 돈인데.
전생에 돈 귀신이었던 내가 봤을 때, 이거 돈 냄새가 난다. 잘하면 대박이 터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지금은 돈이 없다는 게 문제지.
"비용 얼마나 나올까?"
"포스터 촬영도 어차피 해야 하니까 주연 배우들 한번 모아서, 그때 하죠? 그 계약사항에 홍보를 위한 활동에 협조한다는 조항 있죠?"
"어? 있을걸? 그거 아니라도 계약금 나간 배우들은 재촬영까진 원래 나오게 돼 있어."
"아, 그러면 단역들 불이고 장비 대여하고··· 쓰다남은 필름 있죠? 랜트 봉고 두 대, 하루 날 잡아서 로케 두 곳, 6개 장면. 300정도 들까요?"
"글쎄, 스태프 중 후배 몇 명 잡아 오면 더 싸게 될 거 같긴 한데."
둘이서 머리를 맞대고 한참을 고민했다.
아 참, 영화제.
영화를 찍어놓고 시기를 놓쳐 출품하지 못하면 낭패니까.
"형, 피프(PIFF 이후 2011년도에 BIFF로 변경/부산 국제 영화제) 출품 기한 언제죠?"
"언제였더라··· 6월 말이었을걸?"
"로카르노나(로카르노 국제 영화제:Locarno Film Festival) 선댄스는요?"(선댄스 영화제:Sundance Film Fastival)
"거긴 왜? 너 다른 영화 찍은 거 있냐? [민주를 기다리며] 선댄스 보낸대?"
"정신 차려요. 형, [폭력의 사슬] 보내야죠."
"어? 우리 영화가 선댄스에 간다고?"
"형이 보내야죠."
"내가?"
"형, 빨리 경수형(조감독) 불러요."
아··· 이렇게 보면 그냥 우스운 사람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일단 국내외 가리지 않고 찔러볼 만한 영화제는 다 찔러볼 예정이었다. 원래부터 이수한 감독도 국내 영화제는 다 넣어볼 생각이었다고 했고.
한국인의 정서상 해외 영화제에서 상을 탔다? 국뽕 유전자가 자동으로 반응한다.
미래의 일이지만, 베니스나 칸에서 영화가 수상하기라도 하면 '한국 영화 가 끝나고 8분 동안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이딴 기사가 도배된다.
쓸데없이 과장하고 부풀리는 건, 내가 기자들을 싫어하는 이유지만, 또 이걸 이용하지 않을 순 없다.
어설픈 홍보보다 해외 영화제 수상 하나가 마케팅 적으로는 훨씬 도움 된다는 이야기다.
영화 개봉 전, 해외 영화제에 출품하고 입상하면 포스터에 큼지막하게 'OO 영화제 입상' 써놓고, 기사 몇 개 올린 다음 평론가 위주로 좋은 평 골라내고···
짧은 순간 떠오르는 몇 가지 아이디어.
요점은 해외 영화제에서 최대한 수상을 하고, 그걸로 마케팅한다. 이게 내 계획이었다.
영화가 잘 나왔으니 할 수 있는 일이고,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수단이기도 했다.
사실 뭐 특별한 이야기도 아니었다. 영화판 마케팅 수법은 몇 가지로 한정되니까. 이수한 감독 또한 충분히 아는 이야기였을 테지.
다만 그들은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낮에는 일, 밤에는 편집. 당장 먹고살 돈 아껴서 영화를 찍는 그에게 먼 미래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은 버거운 일하였을 테니.
아무래도 이런 부분에서 커버해줄 제작사가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하나의 회사가 달라붙어 시작과 끝의 계획을 세우고 조율해 나가야 하는 일을 한두 명의 개인이 처리하는 격이니 감히 상상도 못 했달까.
그렇게 밤새 편집과 자잘한 후반 작업, 앞으로의 계획을 토론 하며 밤을 새웠다.
조감독과 이수한 감독은 앞으로 일주일간 돈 벌어 오고, 그 돈으로 재촬영하고 불꽃 편집 후, 그나마 기간이 넉넉한 부산국제영화제와 로마 영화제에 먼저 출품하기로 했다.
8월 중순에 시작하는 로카르노는 재촬영에 드는 돈을 벌기 위해 포기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고.
나는 다리를 다쳤기에 같이 일하기에는 무리였고, 편집에 훈수 정도 밖에 둘 수 없었다.
세 명이 해장국집에서 한국밥 하고, 살짝 노곤해 있었을 때쯤, 조감독이 말했다.
"아, 로카르노 정말 아깝다."
로카르노 국제 영화제. 사실 [폭력의 사슬]에 가장 잘 맞는 영화제는 로카르노 국제 영화제다.
대중적인 인지도는 낮지만, 베니스, 칸, 베를린으로 통하는 3대 영화제 바로 아래 등급의 위치로 영화판에서의 위상은 결코 낮지 않다.
게다가 로카르노 국제 영화제 자체가 예술성을 중시하고 혁신적인 작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으니 지금의 우리에겐 딱 맞는 영화제이긴 했다.
하지만···
"그러게··· 일주일 정도만 더 있었어도 거기도 보내 보는 건데."
"내년에 보내면 되죠."
출품하기에 여유 기간이 보름이 채 안 되는 상황. 아쉽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아쉽다.
어디서 돈 300만 떨어졌으면···
'띠리리리'
내 전화기가 울렸다.
-이지우 씨 저 기억하시죠? 'ON스트릿' 마케팅 담당.
"네? 아, 네. 당연히 기억하죠. 잘 지내시나요?
-네. 혹시 모델 일 다시 한번 더 하실 생각 없나요?
"네?"
그 짧은 순간, 온갖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것과 동시에 이 영화에 내 지분을 조금 더 늘리는 것.
둘 중 어떤 마음이 더 컸는지 모르겠다.
어쨌건 당일 입금 되는 모델 일한다면 로카르노 영화제에 출품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다친 다리는 안중에도 없었다.
"아··· 죄송한데 제가 촬영이 다음 주부터 빡빡하게 잡혀서요. 당장 찍어야 하는데 괜찮을까요?"
블러핑이 아니다. 당장 다음 주부터 이수한 감독이 소개해준 단편영화와 현주가 소개해준 단편영화 촬영이 2주가 넘게 빡빡하게 잡혀있었다.
-음··· 빠르게 준비하면 내일이나 늦어도 모레까지 가능할 것 같긴 한데 괜찮으시겠어요?
오케이, 다음은 금액인데 이건 만나서 하는 게 좋겠지?
"그전에 만나서 이야기하시죠?"
'탁' 하는 소리와 함께 폴더폰이 닫았다.
조감독과 이수한 감독이 무슨 일 있느냐는 듯이 쳐다봤다.
"형 일단, 스텝 모으죠. 내일 모래 날짜로. 그리고 형, 준비해줄 게 있어요."
그래··· 돈 300이 없어서 영화제 출품 못하는 게 말이 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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