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녀를 위해 연기하라-20화 (21/121)

20. 장하다. 이수한. 영화제를 네 손으로 정복해 버리렴.

20

"이거 로맨스 영화입니다."

촬영 중 진지하게 어떻게 방송국 설득했냐고 물었을 때 이태환 감독이 했던 말이다.

방송국에 제출한 기획서 시놉시스에는 '장애가 있는 고아 청년의 순애보적인 사랑'이라고 해놨다고 했다.

시놉시스의 구라를 그대로 믿은 방송사 관계자들에게 애도를···

아, 뭐. 따지고 보면 구라는 아니다.

장애인 고아 청년의 순애보적인 사랑이 맞긴 하는데···

화면에 곳곳 나오는 숫자의 미묘한 뉘앙스, 상징물들이 의미하는 메타포 제외하면 이태환 감독이 말한 '장애가 있는 고아의 순애보적인 사랑'이 맞긴 하지···

그런데 그렇게 따지면 한용운 스님의 [님의 침묵]은 스님이 상투 튼것과 동급의 궤변 아니냐?

혹시라도 집 앞에 빨간 마티즈 찾아오면 이태환 감독이 시킨 거라고 할 거다.

읍읍, 저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대본에 있는 대로 연기한 죄밖에 없, 읍읍.

아직 빨간 마티즈가 나오려면 몇 년 남았다는 게 유일한 위안이랄까.

그나마 다행이라고 느껴지는 점은 대본이 현주의 손을 거치며 지문이 많이 바뀐 것이다.

대사와 각본의 골격은 그대로지만, 감정처리를 하는 지문의 느낌이 바뀌었다.

날카롭고 사나웠던 주인공 '대한'이 좀 더 부드러워졌다고나 할까?

그리고 샴쌍둥이였던 형제가 분리 수술받고 장애를 얻는다는 아이디어도 현주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했다.

원래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주인공에서 다리를 다친 내가 촬영을 하게 되자, 급하게 바꾼 각본에 그녀의 아이디어가 더해진 것이다.

사실 이 부분에서 영화가 가져다주는 메시지가 깊고 풍부해진 것은 사실이다. 거기에 반골 기질이 가득했던 영화가 로맨스 비슷한 향기를 내게 된 건 현주의 영향이 컸다.

내가 괜히 그녀보고 천재 운운한 게 아니다.

원래의 영화와 바뀐 영화의 차이 모두를 알고 있는 나만 아는 사실이지만.

마지막 촬영 후 회식은 시대를 불문하고 국룰이다.

어지간히 촬영장 분위기가 작살나지 않는 이상 이런 회식은 꼭 있다.

[폭력의 사슬]은 내가 다치는 바람에 회식을 못 했었다. 그렇기에 이번 생에서는 처음 맞이하는 회식이었다.

그렇게 분위기와 상황을 즐기던 중이었다.

이태환 감독이 다가왔다.

"이지우 씨 수고 많았어요."

"뭘요, 감독님이 고생하셨죠. 이제 편집만 남았네요. 방영이 10월이라고 했죠?"

"네. 편집은 천천히 하려구요."

"왜요?"

"일찍 가져다 주면 다른 작품 찾을까봐요. 방송 펑크나기 직전에 가져다 줄겁니다."

으... 저 신사 같은 얼굴로 저런 악독한 말을.

3월 한 달은 폭력의 사슬 재촬영으로 정신없이 바빴고, 4, 5월은 병원 신세였다. 그리고 6월 초부터 시작했던 [민주를 기다리며] 촬영은 6월 둘째 주에 끝났다. 촬영한 일수만 계산하면 1주일이 안 된다. 편집과 후반부 작업이 남았긴 하지만 이태환 감독을 겪어보니 알 것 같다. 자신을 혹독하게 몰아붙여 일을 끝내는 스타일이었다.

영화 촬영 전부터 마르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아주 피골이 상접할 지경이었다.

"고마워요. 이지우 씨."

"네?"

"사실, 이번 영화 고민이 많이 됐었어요. 제작사에서는 계속 압력 주지, 방송사에 이런 거 보내 줘도 되나 뒷감당도 걱정되고."

"로맨스 영화잖아요. 뭘 그렇게 걱정하십니까."

나는 모르는 일이다. 왜? 맞잖아 로맨스 영화. 감독 네가 로맨스 영화라며.

"영화가 좀··· 그렇잖아요."

"하··· 하하. 좀 그런가요?"

그저 웃고 말았다.

나한테 뻔뻔하게 로맨스 영화라 우기더니만. 자기도 아닌 건 아는가 보지?

사실 좀 그렇긴 하지. 한 시간 좀 안 되는 시간에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욱여넣은 영화이니. 영화가 바라보는 근현대사의 관점이 그리 곱지만은 않고.

그래서 이 영화가 가지는 화제성도 의외의 곳에서 터진다.

"처음에 이지우 씨, [폭력의 사슬]에서 봤을 때 반신반의 했어요. 깡패 역할 잘하긴 하는데, 이런 것도 잘할까? 뭐 그런 거 있잖아요. 연기는 잘하지만 다른 연기도 잘할까? 그런 걱정. 그래도 현실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캐스팅이라 제안해 드린 거고요."

"이해합니다. 저야 필모가 전혀 없었으니까요."

"제작사는 어차피 배우한테 빠지는 돈 아는 사람 꽂으려고 그러지, 각본 이대로 가면 안 된다고 자꾸 손대려 하지··· 하하. 이런 말 하기 민망하지만,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힘드셨으면서··· 왜. 이 영화를 찍으려고 하신 것에요?"

영화 촬영 중에도 몇 번을 묻고 싶었던 말이다.

내 기억이 맞았다면 이태환 감독은 [민주를 기다리며] 이전에도 이후에도 예술영화만 찍는다. 순수예술을 지향하던 그 필모그라피를 아는 난 그가 이런 사회 반영적인 영화 찍었기에 의아하던 차였다.

사실 그렇지 않나. 아무리 방송가와 영화계가 따로 돌아간다고 하지만, 굳이 척을 질 필요는 없잖은가.

영화계에서 커리어를 착실히 쌓으면 될 그가 이런 무리한 일을, 공영방송에 빅 엿을 먹이는 이유, 그것도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한참을 고민하던 이태환 감독이 입을 열었다.

"아버지가 군인이셨어요."

"네?

"혹시 제가 법대 다니다 말았다는 걸 말했던가요?"

"아뇨, 그런데 알고는 있었습니다. 어디서 들었던 것 같아요."

그가 말하지는 않았지만 알고는 있었다. 영화판에서 서울 법대를 자퇴한 사람이 영화를 한다고 하면 금방 유명해질 테니. 미친놈이라고. 아···. 그러고 보니 전생에도 이태환 감독은 미친놈으로 유명했었군. 나도 풍문으로 이태환 감독이 서울 법대를 자퇴하고 영화판으로 뛰어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대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하나회라는 걸 알게 됐어요··· 할아버지는 친일파라더군요. 요즘 이렇게 말하면 모르려나?"

"아··· 네··· 뭐···"

알지만 모르는 척할 수밖에 없었다. 저 얼굴에 대고 '아이고, 아주 그냥 대대로 역적놈의 집안이셨군요.' 할 수는 없잖은가.

"알고 나니까 대학을 더 다닐 자신이 없었어요.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오긴 했는데, 부끄럽더라고. 판사하고 검사하기가. 그렇게 방황하고, 가출하고, 군대에 가고··· 그러다 글을 쓰고, 그러다 영화 찍고. [민주를 기다리며]는요 제 부끄러운 근현대사를 조롱하기 위해 만든 거예요."

"그렇군요."

"방송사에는 미안한 말이지만, 많은 사람이 봐줬으면 했어요."

"음··· 영화를 찍어서 개봉하시면 되죠."

"그 생각도 안 했던 건 아니지만··· 이런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돈 주고 팔고 싶지는 않았어요."

뭐, 연출자의 자존심인가? 아니면 아직 자신의 역량에 대해 확신이 없었을 수도 있다.

한 20년 후쯤에 [민주를 기다리며]와 비슷한 주제를 담은 영화가 많이 나오지만, 그건 20년 후니까.

"그런데 ‘대한’을 연기하는 이 배우를 보고 많이 느꼈습니다. 많이 배웠고요."

"네?"

술을 먹어서 그런 걸까. 어쩐지 바싹 마른 그의 얼굴이 평온해 보였다.

"고마워요. 이 배우가 연기하는 ‘대한’은 뭐랄까··· 저항하고, 열망하고, 그리고 끝내 행동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고마워요. 결말을 열어줘서."

원래의 엔딩컷은 쓸쓸히 암전하는 조명 아래 혼자 쭈그리고 앉아 오지 않은 ‘민주’를 기다리는 '대한'의 모습을 담으며 끝이 난다.

어쩌면 그 좌절한 주인공의 모습은 이태환 감독의 자전적인 모습을 투영한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현주가 조금씩 만들어 놓은 캐릭터의 감정선은 조금 달랐다.

고뇌하며 피우는 담배와 전화를 걸까 수십 번 고민하며 시간을 확인하고, 자신의 처지를 좌절하고 고민하는 모습 등.

대사에는 나오지 않은 지문에서 그녀를 그리고 그녀가 생각했던 캐릭터를 느꼈다.

그리고 첫 촬영을 하며 내가 캐릭터가 된 듯한 몰입.

그 순간에 결말이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고 느꼈으니까.

아무튼, 현주가 잘했다.

***

"어머니 치킨 좀 드세요."

좁고 지저분한 골목을 지나 들어온 우리 집.

회식을 한 곳에서 치킨 한 마리를 포장해왔다.

"여기 닭 다리. 매번 저한테 양보하지 말고 오늘은 닭 다리 드세요."

큼지막한 닭 다리를 꺼내 어머니 접시에 올렸다.

"아냐 괜찮아 우리 아들 먹어. 엄마는 퍽퍽 살이 좋아."

"에이, 매번 그렇게 말씀하셔도 닭 다리 좋아하는 거 다 알아요. 저는 많이 먹고 왔으니까 다리 드세요."

"아니야, 진짜 나 퍽퍽 살 좋아하는데?"

"아··· 맛있게 드세요. 어머니."

뇸뇸뇸

지금 어머니에게 필요한 건 닭 다리보다 여유 있는 삶이라는 것을 잘 안다.

내가 일을 돕고, 간에 좋다는 실리마린이라던가, 각종 비타민이라던가 사드리고 억지로 먹이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폭력의 사슬]이 성공해야 하고. 투자금이 걸렸으니.

'띠리리리'

이수한 감독의 전화. 살짝 고민했다. 어머니와의 시간이 방해받는 것도 좀 싫고, 무엇보다도 손 씻기 귀찮은데.

그래도 영화가 성공해야 하니까.

-시간 있냐,

전화를 받자마자 인사도 생략된 질문. 피로가 가득히 묻어나는 목소리.

"네?

-편집 끝났습니다. 투자자 대상 상영회 하려는데 시간 어떠신지요 투자자님.

힘겹게 농담을 던지는 그였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편집. 그것도 눈치를 보며 아는 선배의 다른 팀의 작업실에서 밤에만 더부살이하며 편집한다고 한다. 참으로 짠내 나는 영화 인생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처지를 아는 마당에 늦은 시간 전화 온 그를 탓할 수가 없었다.

"아! 감독님 당연히 가야죠. 지금 가면 되나요?

***

어두컴컴한 편집실. 거기에 이수한 감독이 혼자 앉아있었다. 보랏빛 연기가 채 사라지지 않았고, 종이컵에 수북이 쌓인 담배꽁초가 그가 얼마나 고심하고 고생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재떨이를 치우고, 간단한 주전부리와 맥주 4캔과 내가 마실 콜라를 조그마한 테이블 위에 깔았다.

"고생하셨어요."

"뭘··· 내 일인데."

그저 일이기만 했으면 그가 이렇게 몸을 축내며 영화를 만들었을까.

웃으며 맥주캔 하나를 따서 건넸다.

"잘 나온 거 같아요?"

"어? 사실 잘 모르겠다. 나는 하도 많이 봐서. 사실 그래서 너 부른 거야. 솔직한 감상을 듣고 싶어서."

원래 창작자는 잘 모르는 법이다. 20년을 연기한 나도 내 연기를 보면서 되묻는다.

‘이게 맞아?’

하물며 이수한 감독은 이제 입봉작. 자신의 가치를 잘 모를만 하다.

그의 맥주와 내 콜라가 툭 하고 부딪치며 건배하고, 영화를 틀었다.

1시간 30분짜리 독립 장편영화.

투자자와 제작사를 구하지 못해 이수한 감독이 전 재산을 털어 넣고 직접 발품을 팔아 만든 작품.

태생이 짠내가 나는 작품이라 그런 걸까. 주인공들의 삶과 고통, 그리고 폭력이 고스란히 담겼다. 투박하게 말이다.

그 투박함을 세련되게 담았다.

그의 연출적 역량이 기대를 상회했다. 흔들리고 불안한 청춘이 폭력으로 타오른다. 그리고 단말마와 같은 회광반조를 보여주며 영화가 끝난다.

아직 엔딩크레딧을 만들지 않아 암전돼버린 모니터를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20만? 이거 잘만 만지면 100만도 가능하다.

장하다. 이수한. 영화제를 네 손으로 정복해 버리렴.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