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알고보면 어마어마한 양아치 아니냐?
6.
[폭력의 사슬]의 촬영이 시작되었다. 과거 여러 영화에 출연했던 경험을 반추해봤을 때, 여긴 정말 개판이다.
이미 일정 자체가 아주 많이 어그러진 사전제작 표를 수정할 엄두도 못 내고 임기응변식으로 한다니 말 다했지.
거기에 원래 내 배역하기로 했던 배우가 대본 리딩까지만 참여하고 빠진 터라 추가적인 리딩 없이 바로 현장으로 투입됐다. 덕분에 나는 다른 배우와 스태프들의 얼굴도 모르는 상태였다.
반대로 이런 열악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필모그래피 하나 없는 내가 캐스팅될 일도 없었으니 오히려 다행이랄까.
봉고차 몇대에 장비와 함께 나눠 탄 사람들. 언뜻 짐을 옮기는 모양새가 딱 노가다판 아재들과 별 차이가 없다.
실제로 이 중 몇몇은, 촬영 없는 날에는 일용직을 전전하고 있을 것이다. 고된 노동을 견디고, 배우를 꿈꾸며, 혹은 영화인을 꿈꾸며.
20여 년 전 나처럼 말이다.
그 중심에 있는 이수한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약간의 차이라면 노가다 아재와 노가다 반장 정도로 다른 느낌? 만약 내가 이수한 감독의 얼굴을 몰랐다면 감독이라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이지우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일찍 오셨네. 곧 리허설 들어가니 잠시 다른 배우들이랑 합 좀 맞춰보고 계세요. 어이, 조감독! 배우님 안내해 드려라."
지시받은 조감독의 못마땅한 표정. 감독에게 다가가 소곤거렸고 안타깝게도 소란스럽고 정신없는 상황이라 목소리 톤 조절에 실패했다.
"쟤가 그 고삐리?"
생각보다 컸던 목소리에, 주변에 있던 모든 스텝과 배우들의 이목이 쏠렸다.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는 배우부터 인상을 찡그리는 스텝까지.
여기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 영화에 대한 열정 하나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니까. 저들 대부분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지금의 생활을 하고 있을 테니.
대타로 들어온 사람이 경험 없는 고등학생이라면 화가 날 만하다. 검증 안 된 고등학생의 발연기 때문에 영화의 평이 갈릴 수도 있지 않겠나.
그들의 염려와 의심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빡'
"이 새끼야, 졸업했다니까. 어디 우리 배우님한테, 콱."
이수한 감독이 조감독의 엉덩이를 소리 나게 발로 찼다.
구시렁대는 조감독의 안내를 따라 이동하여 오늘 촬영 있는 배우들과 인사하고 촬영 준비했다.
내가 탐탁지 않다는 듯한 눈빛들.
전생에서도 비슷한 상황을 숱하게 겪었다. 경력에 문제가 있는 배우가 작품에 참여했을 때 쏟아지는 부정적인 시선들.
그런 시선들을 받으며 연기하는 것이 일상이었으니.
익숙하다.
배우는 결국 연기로 자신을 증명하기만 하면 된다.
전생에서 수시로 신문 사회면을 장식하고도 계속 연기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증명했기 때문이니까.
그리고, 대중들이 원했기 때문이니까.
얼마나 기다렸을까. 촬영이 시작되기 직전 촬영장으로 건들대며 오는 익숙한 얼굴.
이 영화의 주인공, 김범이었다.
한 손은 주머니에 넣고, 한 손에는 담배를 들고 오는 모습이 딱 주인공 '진태'의 모습이었다.
양아치 같았다는 말이다.
어차피 노상에서 하는 촬영.
거기에 이수한 감독을 비롯한 몇몇 스텝을 제외하곤 생초짜들의 영화다.
거창한 대기용 천막이나, 커다란 벤을 기대할 수도 없는 상황.
배우용 의자만 몇 개가 덩그러니 있었다.
"안녕하세-"
김범은 내 인사를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나를 위아래로 힐끗 보더니 내 옆에 풀썩 앉는다.
뒷주머니에 아무렇게나 쑤셔 박아놓은 대본을 꺼내 읽는다.
이렇게 보니 한편으로 반갑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잘 모르는 배우다. 내가 워낙 주변을 신경 쓰지 않고 살기도 했고, 겹치는 작품도 없었기에 친분도 없었다.
기 싸움이라도 할 생각인가?
내가 마지막으로 본 얼굴에서 20년은 젊어진 그의 얼굴을 보니, 뭐랄까···. 귀엽네.
예전이야 동년배 배우였겠지만, 지금에 와서는 나와 경력을 비교할 수조차 없는 애송이니. 저런 유치한 기 싸움에 어울려 줄 생각은 없었다.
분장을 끝내고, 스텝들이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촬영 시작합니다!"!
가볍게 리허설을 마치고, 촬영이 시작됐다.
[폭력의 사슬]이 작품은 폭력에 대해 꽤 심도 있는 고찰을 담은 작품이다.
대사가 전체적으로 많지 않고 액션이 강조되는 영화다. 그리고 그 액션을 통한 폭력의 원초적인 근원을 조명하고, 한편으로 클리셰적인 내용인 폭력은 다시 폭력을 부른다는 스토리.
조직폭력배에게 형을 잃은 고등학교 일진 출신 양아치 역의 주인공 ‘진태’. 결국 ‘진태’는 형을 죽인 조폭에게 복수를 하는 것이 영화 전체의 시놉시스이다.
그 직후, 영화의 결말부에 주인공 ‘진태’가 학창시절부터 괴롭히던 ‘석환’의 칼에 맞아 죽는것으로 끝이난다.
그리고 내가 맡은 역할이 영화 말미 주인공을 칼로 찌르는 ‘석환’의 역할이었다.
그리고 오늘 찍을 장면은 초반부, 그 중, 주인공과 내가 맡은 역이 뒷골목을 전전하며 학생들 삥을 뜯는 장면이었다.
이름 모를 스텝이 친 클래퍼보드.
단숨에 배역에 몰입한다.
내 역할은 일진 출신을 자랑으로 여길 만큼 한심한 양아치. 온전히 감정을 표현할 줄 아는 것은 분노밖에 없다. 없느니만 못한 부모. 그 학대에 쌓아온 분노를 더 약자에게 푸는 피해자이자, 가해자.
이러한 유년기의 비극적인 경험이 극단적인 피해망상과 충동성, 폭력성을 야기시킨다.
폭력의 사슬, 그 방점을 찍는 역할. 주인공이 쌓아 올린 서사, 영화 말미에 주인공을 죽이면서 영화의 주제 의식을 대변하는 존재.
이미 쌓아 올린 캐릭터에 감정을 부여했다.
그는 왜 그렇게 행동했는가?
불안하므로.
자연스럽게 어깨가 안으로 조여들고 등을 살짝 굽힌다. 어색하지 않게 턱이 들리고 거북목처럼 살짝 나온 얼굴.
긴 시간 학대로 온 미미한 불안증세. 초점이 살짝 비워진 시선이 위협을 찾는 듯이 이리저리 흔들리다. 작은 소리, 작은 움직임에도 시선이 움직인다.
과하지 않게, 과하지 않게···
카메라 워크에 맞춰진 동선에 최대한 벗어나지 않게끔 움직이며 표현한다.
"야, 오랜만이다. 인마."
수수해 보이는 교복을 입은 학생. 원래 아는 동생을 만나는 듯 자연스럽게 어깨동무하고.
"조용히 따라와."
속삭이듯 말한다.
그리고 골목으로 유도한다.
'촥-'
일단 뺨부터 후린다. 왜? 나도 겁나니까. 괜히 소란스러워져 오지랖 넓은 꼰대라도 붙으면 피곤해지니까.
불안감을 폭력으로 해소한다.
"센타까서 나오면 뒤진다. 있는 거 다 줘봐."
꼬깃 나오는 천 원짜리 몇 장.
그리고 분노.
분노의 이유? 없다. 부모, 사회 모든 것이 분노의 이유이기에, 도리어 분노의 초점이 흐릿하다. 그저 분노할 뿐.
그리고 곧 등장하는 이 영화의 주인공 ‘진태’.
나를 막아서고, 웃는다.
마치 너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양아치 새끼야, 그만하고 가자. 학생은 조심해서 들어가고. 얼굴 봐놨다."
말단 조폭 주제에 협객 노릇하는 주인공. 뭉개진 자존심에서 비롯한 열등감이 치솟는다.
하지만 감히 표현하지 못한다.
방금까지 약자에게는 강자처럼 굴던 나는 다시, 주인공 앞에서 약자가 된다.
'퍽!'
뒤통수를 한 대 더 맞는다. 이건 예정에 없던 건데 애드리브?
당황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주인공 사각. 그리고 카메라 방향으로 살며시 얼굴을 튼다.
대사 한 마디 없어도 표현할 건 많다. 이 캐릭터가 확실하게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은 분노밖에 없으니까.
'카악-퉤···' 그리고 감정을 담는다. 영화관에 이 씬이 등장한다면 0.5초는 쓰일까? 아니 아예 안 쓰일 수도 있겠지. 상관없다. 돌아서는 주인공을 바라본다.
분노를 담아.
"컷!"
"수고 하셨습니다."
꾸벅 인사를 하고 고개를 드는 순간, 김범과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
"뭘 그렇게 계속 봐?"
촬영감독이 이수한 감독에게 다가와 물었다.
"어? 아, 아까 촬영분 좀 걸리는 게 있어서."
촬영이 끝나고 몇 없는 스태프들이 뒷정리하는 동안, 이수한 감독은 카메라 옆 보조 모니터를 붙잡고 한참을 쪼그려 앉아 있었다.
조그마한 모니터 속에는 오늘 촬영했던 장면이 재생되고 있었다.
리버스 앵글로 주인공과 ‘석환’을 동시에 보여주고, 그다음 씬은 하이앵글로 ‘석환’을 보여준다.
리버스 앵글에서 주인공을 좌측, 그리고 ‘석환’은 우측에 담는다.
주인공 역할을 맡은 배우가 뒤통수를 때리면서 조연의 고개가 틀어진다. NG가 날 법한 상황에서의 연기.
조그마한 보조용 모니터로 비치는 '고삐리 배우'의 바스트샷. 그 배우의 눈빛을 보자 이수한 감독은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아! 쟤 기억났다. 그때 '나중에 봬요?' 걔네?"
"아는 애야?"
이수환 감독이 그나마 돈을 쓴 스텝 중 하나가 촬영감독이다. 김철영 촬영감독. 베테랑 중 베테랑이었고 영상의 퀄리티를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나마도 다른 촬영 하고 있는 걸 짬 내서 도와주는 것이었다.
"아니. 아는 애는 아니고, 고구마 팔다 마주쳤어."
"에라이, 너 아직 고구마 파니? 쯧."
이수한 감독은 촬영감독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모니터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왜 몰랐을까···'
모니터 속의 눈빛을 보니 바로 알 수 있었다.
얼핏 보면 평범한 눈. 쌍꺼풀이 없는 큰 눈에 유난히 큰 동공. 단순히 눈이 빛난다, 맑다는 느낌이 아니었다. 이런 걸 깊다고 해야 하나?
"형형, 첫 씬 찍을 때부터 느낀 건데··· 얘 연기가 좀···"
"누구? 고삐리?"
"어···"
"어··· 이상해. 양아치 연기가, 연기처럼 안 보여. 이 새끼 알고 보면 진짜 존나 어마어마한 양아치 아니냐?"
이수한 감독은 베테랑이라고 모셔 온 이 촬영감독에 준 돈이 아깝기 시작할 때쯤, 촬영감독이 말을 이었다.
"농담이고, 탈 좋네. 그리고 마지막 그거 니가 디렉션 넣은 건 아니지? 애드리브 맞지? 신인 맞냐? 바로 시선 처리 안 했으면 NG 날 뻔했는데 딱 맞게 들어오네."
이수한 감독은 촬영감독과의 관점과 자신 관점의 괴리를 느꼈다.
이는 각본까지 모두 쓰고, 연출하기 위한 모든 장면이 머릿속에 들어가 있는 감독이기에 생기는 차이였다.
촬영감독이 한 말에 틀린 말이 없지만, 그때 오디션의 연기를 보아서 그랬을까. 이수한 감독의 눈에는 그 이상이 보였다.
동선 처리, 발성, 캐릭터의 이해 모든 게 비정상적이었다. 아니 비상식적이라 해야 하나. 작품의 후반부에 '석환'이 돌발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개연성을 단 몇 컷만으로 납득시키고 있었다.
분명 오디션이 처음이라고 했었다. 그러면 영화 촬영도 오늘이 처음이었을 텐데. 신인답지 않은 연기다.
[폭력의 사슬]이 첫 입봉작이라 해도 이미 이수한 감독은 여러 감독 밑에서 조감독을 수년간 했었다.
그만큼 대작 소리 듣는 작품도 많이 참여했었다. 배우들도 당대 최고라는 여러 배우와 숱하게 작업했었고.
그런 이수한 감독도 이 정도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연기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이수한 감독보다 이 바닥에서 오래 구른 촬영감독이 진짜 양아치 아니냐고 착각할 정도면 말 다했지.
아니, 단순히 캐릭터에 대한 이해를 넘어 시나리오를 쓴 이수한 감독 본인보다 더 이 영화에 대한 이해가 깊은 느낌이었다.
물론 그런 경우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아주 경험 많은 배우는 촬영이 진행될수록 역할에 몰입한다. 그리고 촬영의 중후반부를 넘어 배역에 심취한 배우는 때때로 각본가나 감독보다 캐릭터에 대한 이해를 넘어서는 경지가 온다.
오늘 하루의 촬영. 그리고 첫 촬영임에도 불구하고 이지우의 캐릭터와 영화에 대한 이해는 노회한 명배우의 완벽한 몰입의 상태. 그것과도 같았다.
다만 조연, 그리고 오늘 하루 찍은 분량이 얼마 되지 않기에 다른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까지 하는 이수한 감독은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석환'이라는 캐릭터가 주연을 씹어먹고 화면 위로 튀어나오는 것을.
그만큼 감정에 대한 묘사가 세밀했다. 거기에 더해 알 수 없는 이 미묘한 감정처리는, 뭐랄까···
"캬, 눈빛 죽이네···"
"아!"
촬영감독의 말에 이수한 감독이 작게 탄성을 내뱉었다.
영화 전체를 보는 감독과, 피사체에 집중하는 촬영감독과의 또 다른 관점의 차이.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던 감정처리의 비밀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촬영감독의 말대로 감정이 선명히 담긴 눈빛. 행동이나 표정으로 과하게 감정을 표출하는 연기가 아니, 마치 눈빛으로 감정을 토해내는 듯한 연기.
'그··· 눈알로도 연기가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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