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녀를 위해 연기하라-1화 (2/121)

1. 나비

1.

[백룡 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자 이지우, 부고(딸)로 인해 불참.]

[(단독) 영화배우 이지우의 딸 이미래 양, 교통사고로 오늘 새벽 숨져.]

오늘 딸이 죽었다.

괜찮다. 아니 괜찮지 않다.

괜찮아질 것이다.

보기 싫어도 볼 수밖에 없는 포털화면의 메인 기사. 그 꼴을 보기 싫어 얼른 몇 가지의 키워드를 검색했다.

'편하게 죽는 방법'

'고통 없는 자살'

'번개탄 자살'

쇼핑하듯 몇 가지를 비교하던 와중, 구역질이 치밀었다.

급하게 화장실로 달려갔다.

이 와중에도 편히 죽을 방법을 고민하는 스스로에 대한 환멸, 자기혐오, 역겨움 등.

'이런 감정이 구토감을 유발하는구나.'

변기를 붙잡고 토악질하는 동안, 스스로에 대해 감정을 분석하는 내가 싫다.

배우로서의 오랜 버릇이다.

감정을 느끼면 왜 이런 감정이 들고, 이 감정을 어떻게 표현했는가. 그리고 배우로서 삶의 희로애락을 어떻게 연기 할 수 있는가?

혐오감이 더욱 커졌다.

자살하려 감정조차 분석하려 드는 나에 대한 환멸이 치솟는다.

어서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무작정 차를 끌고 마트로 향했다.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진 내 얼굴. 상류층 대상의 회원제 프리미엄 마켓이라 나를 알아보고 달려드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의식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번개탄을 주워 담으며 그릴이라던가, 숯이라던가 몇 가지를 더 샀다.

한참을 달린 후 도착한 한적한 교외의 공터. 꽤 충동적인 마음으로 나왔지만 잘 고른 것 같다. 잠시 기다려봐도 지나가는 사람, 차량이 보이질 않았다.

이전에 처방받은 수면제 몇 알을 입안에 털어 넣고, 소주를 들이킨 다음 번개탄을 피웠다.

시트를 최대한 눕힌 다음 눈을 감았다.

번개탄에서 나오는 냄새 때문인지, 수면제 때문인지 몰라도 금세 몽롱해진다.

꿈을 꿨다.

주마등인가?

시간을 되감듯이 살아온 궤적이 보였다.

좋은 아들, 좋은 남편, 좋은 아빠. 뭐 하나 제대로 한 게 없다.

이 시대 최고의 배우.

얄궂은 성공.

그거 하나 빼고 모조리 실패했다.

엄마가 죽은 딸을 위로하지 못했다.

나도 슬펐음으로.

일과 돈밖에 모르는 나는, 딸의 슬픔을 돈으로 해결하려 했다. 좋은 집, 좋은 옷, 그 외 모든것을 사주었지만···.

실패했다.

슬픔과 외로움은 돈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더라.

“경찰서입니다. 이미래 양의 아버지 되십니까?”

“네? 맞습니다.”

늦은 저녁에 걸려 온 전화. 딸이 사고를 당하는 순간에도 나는 술을 마시고 있었다.

교통사고였다.

“늦은 시간인데··· 왜 이미래 양이 그 시간에 그곳에 있는지 혹시 아십니까?”

“모르겠습니다···”

늦은 시간 오지 않는 아빠를 찾기 위해 어린 딸이 밖에 나와 있었노라 차마 말하지 못했다.

내가 죽인 거나 마찬가지라 생각했지만, 그저 모르겠다고만 했다. 역겹고 또 역겹다.

시간이 다시 뒤로 감기듯 이동한다.

와이프가 죽었다.

내가 바람을 피웠지. 정확하게는 그런 기사가 났었다. 그 이전에는 도박으로 기사가 났었고. 그 이전엔 이중계약 문제··· 또 그 이전엔 소속사를 옮기며 주식을 통해 부당이득을 얻었다. 그것도 그녀의 명의로 한 부당이득이었다.

이 또한 한참 동안 떠들썩했다.

이 모든 것들이 평범한 주부였던 그녀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럴 거면 이혼해. 외로워. 나 더 이상 혼자서 못 버티겠어.”

“오늘 촬영 있어. 며칠 못 들어올 거야.”

"너는 끝까지 니 생각만 하는구나?"

선문답 같았던 그녀와의 대화. 그게 마지막일 줄은 몰랐다.

그 이후 그녀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발인하고, 그녀의 짐을 정리하는 와중에 우울증 약을 발견했다. 숨겨져 있지도 않았다. 주방 찬장 스틱커피와 나란히 있었다. 항상 아침마다 봐왔던 그 자리였다.

왜 몰랐을까···

고등학생 때부터 연애해 결혼까지, 그녀를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기사화되는 그녀의 이야기와 악의에 찬 대중의 시선들. 그리고 비어버린 남편의 자리.

매일같이 함께하며 그녀를 봐왔지만 나는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이혼이라도 해줄걸.

내 욕심이 그녀를 죽였다.

사랑하는 방식도 모르는 주제에.

많은 돈, 더 많은 돈을 가져다주는 게 더 사랑하는 법인 줄 알았다.

일찍 결혼하여 무명 시절 없이 살아 고생한 세월을 보상해주고 싶었다.

글 쓰는 재능 넘치던 그녀는 내 뒷바라지를 위해 펜을 꺾었다. 나를 만나지 않았다면 시나리오든 극작가든 성공했을지도 모르는데···

그녀의 세월을, 그녀의 꿈을 보상해주고 싶었다.

덕분이랄까. 나는 배우로서 성공했다. 늦은 나이에 성공했지만, 누구보다 높이 올라갔다.

몇 개의 천만 영화. 연간 동원 관객 2,000만 명, 극장 총 동원 관객 1억 명의 사나이.

시청률 40%가 넘는 드라마.

시상식, 그리고 트로피.

환호하는 사람들. 이면의 고통 받는 가족들.

연기에 대한 열망은 어느새 돈에 대한 욕심으로 바뀌어있었다.

연기에 대해서는 깔 수 없는 배우.

연기 빼고는 다 까도 되는 배우.

내 삶의 빛과 그림자.

그리고.

어머니.

시간이 되감겨 어머니가 보였다.

매번 바쁘다는 핑계로 피했다. 당신의 희생을 무시했다. 내 성공에 도움 되지 않는 당신의 가난을, 늙음을 존중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세 평짜리 분식집에서 평생을 벌어 자식의 뒷바라지만을 하셨다.

죽기 전에 이런 식으로라도 그녀의 모습 봐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우습게도 가족을 다 잃은 지금에서야 소중함을 느낀다.

단역을 전전할 때 촬영장에서 온 한 통의 전화.

-부연 병원입니다. 박과녀 씨 보호자 되십니까?

그 갑작스러운 연락에 바로 달려가지 못했다.

널리고 널린 게 단역배우였기에, 지금도 위태로운 배역을 놓칠 수 없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고, 이미 어머니는 돌아가신 후였다.

너무도 오랜만에 마주한 그녀의 얼굴은 남은 삶에 트라우마로 자리 잡기에 충분했다.

머릿속에 있던 모습과 너무도 다른 모습이었다. 고목처럼 검게 갈라진 피부. 간경변증이었다.

무관심과 방치 속에서도 그녀는 일을 쉬지 못했다. 부실한 식사와 쉼 없는 노동. 누적된 피로가 쌓여 죽음에 이르는 동안 나는 전혀 몰랐다.

그녀가 죽고 나서야 병명을 알았다.

"왜 이제 오셨습니까?"

"네?"

사망진단을 내리던 의사의 원망스러운 말.

"간 이식으로 충분히 건강해지실 수 있었습니다. 진단 받으신 지 오래됐는데···."

"그게 무슨, 한 번도··· 그런 소릴 들은 적···"

당황한 내 모습을 본 의사가 한숨을 쉬며 침대 시트를 어머니의 머리끝까지 올렸다.

아마 걱정할 나를 위해 숨겼던 것 같다. 혹은 큰 수술비를 감당하지 못할 나를 걱정했던 거겠지. 아니면 아들의 간을 몸에 지니고 남은 평생을 살 자신이 없었을 수도 있다.

어머니는 결국 아들의 성공을 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셨다.

슬펐지만 순간이었다. 슬픔은 곧 분노로, 분노는 돈에 대한 집착으로 바뀌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후회할지 몰랐다. 아니, 알았다면 그녀를 그리 쓸쓸하게 두지 않았을 것이다.

내 사진과 영상은 수천 수만 개도 넘지만, 그녀의 사진은 몇 장 없어 추억하기도 힘들었다. 영정사진으로 쓸 사진이 없어 한참을 고민했었지···.

시간이 계속 뒤로 간다.

가난했던 청춘, 비참했던 대학 생활이 보였다.

가난은 냄새가 난다. 숨기려 꽁꽁 싸맬수록 썩은 냄새가 번진다.

그 냄새가 퍼질까 봐 스스로 자유와 기회를 거세한 채 격리를 자처하는 아웃사이더가 된다. 부패하여 스스로 곪는지도 모르는 체.

"넌 왜 같은 옷만 입어?"

대학 동기의 해맑은 물음에 웃어넘길 수밖에 없는 내가 비참했다.

악의가 없기에 더 슬프다. 나라고 왜 멋져 보이고 싶지 않겠는가. 그들에게 공기처럼 당연한 것들이 나에겐 시간과 돈으로 환산된 사치행위일 뿐이었다.

취향이 없고, 선택이 없는 생존을 목표로 하는 삶.

그게 가난이다.

가난은 인간을 강하게 만드는 비료가 아니더라. 그런 낭만은 티비와 스크린에만 있는 거라 자조했다.

가난이 싫었다. 아니 무서웠다.

빠르게 뒤로 가던 시간이 완만하게 바뀌었다.

어머니도 나도 젊다.

아··· 저 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후회뿐인 삶을 다시 살 수만 있다면. 내가 밝힌 빛으로 그림자를 모두 지울 수 있다면.

과거로, 과거로··· 눈을 떴다.

눈앞의 나비 한 마리.

느리게 재생되듯 한 마리의 나비가 방 안을 날아다녔다.

추운 겨울, 방안에 나비가 돌아다녀 신기했었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주마등이 거기서 멈췄다.

나는 꿈에서 깼다.

***

그날을 기억한다.

수능을 끝내고 누웠던 단칸방. 눈을 뜨자 추운 겨울바람을 피하고자 했는지 나비 한 마리가 방 안을 날아다녔다.

이 계절에 무슨 나비람. 하며 창문을 열어 쫓아내려 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다시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 나비를 쫓아내기 위해 일어났을 때 기시감이 들었다.

이것은 주마등 속 나의 모습인가, 현실인가.

나는 가장 가까운 기억을 더듬었다.

수면제, 번개탄, 공터··· 그리고 주마등.

잠시 꿈을 생각했다. 꿈이 맞긴 한가? 아니 전생이었던가. 혹은 주마등의 연속인가. 혼란스러웠다.

사실 꿈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벌떡 일어나 거울을 봤다. 마지막 기억에서 수십 년 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십수 년은 쓴 것 같은 허름한 화장대. 그 얼룩 가득한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봤다.

40대 중반의 배우 이지우는 없고, 20살의 애송이 이지우가 있었다.

멀뚱히 서서 거울을 바라봤다. 이리저리 움직여봐도 따라 움직이는 모습이 분명히 내 모습이 맞다.

옛날과 분명히 같은 몸이지만 너무도 젊은 모습이 현실감을 떨어트린다.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 그리고 동시에 방문이 열리며 들린 어머니의 말.

묘하게 겹친 두 개의 음성.

"일어났니? 지우야. 밥 먹어라."

"이게 뭐야···"

부엌 한 칸, 방 한 칸. 단촐한 살림. 어머니가 밥상을 들고 들어왔다.

아··· 어머니.

어머니가 방 안으로 들어오자 현실감이 충만해진다. 애매했던 가상과 실제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그리고 조금 텀을 두고 들려오는 어머니의 말은 그 현실을 좀 더 현실답게 만들어 줬다.

"아들이 말대꾸?"

"...?"

등짝을 두들기는 스매싱의 고통은 이것이 현실임을 말해줬다.

"이노무 세키, 니 나이가 몇인데 반찬 투정하니? 뼈 빠지게 일해서 먹이고 재우고···."

"어머니 그게 아니라···"

어머니의 정정한 모습이 마냥 기쁘지만··· 아, 기쁘긴 한데··· 잠시, 뼈, 뼈 맞았다고··· 어? 옷걸이는 왜? 옷걸이로 때린다고? 아! 앗?

금세 부러진 플라스틱 옷걸이, 대신 아무렇게나 집어 든 허리띠는 그것대로 충격이다. 아무리 그래도 허리띠는 좀.

나를 때리는 어머니의 힘이 생각 보다 정정한 것에 놀랐다.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너무나 깊숙이 자리 잡았던 탓일까, 아니면 주마등에서 본 어머니의 고목 같은 모습 때문이었을까.

젊고 생기 넘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자 그만.

눈물이 났다.

"아들, 그거 맞았다고 울어? 허리띠는 좀 심했지?"

"어머니···"

이미 중년의 세월을 살아온 설움이 어머니 얼굴을 보고 터져 나왔다.

"어머니? 지우야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엄마한테 말해봐."

그제야 평소와는 다름을 눈치챈 것일까.

하기야 이맘때 나는 '어머니'가 아니라 '엄마'라고 불렀을 테니. 그녀는 슬그머니 들었던 허리띠를 내려두고 나를 토닥였다.

어머니의 다정한 손길이 이것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 말하고 있었다.

회귀면 어떻고 꿈이면 어떠랴. 지난 생에 못 했던 말을 했다.

"어머니 사랑해요. 진짜 사랑해."

"머리는 안 때렸는데···"

돌아가셨던 어머니를 다시 만났을 때는 이런 감정이 드는구나···

생각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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