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9화 (129/137)

"···공유했어."

이 인간은 정말 왜 이러는 걸까?

기청해는 반말에 환장한 사람처럼 유안이 반말을 쓰면 무척 만족하며 무슨 부탁이든 들어주곤 했다.

친구 없는 게 여기서 티가 났다.

[바다의 부름(S급→B급)]

육신을 잃은 영혼에 바다를 깃들게 해 종속으로 쓸 수 있다.

단, 시전자 역시 바다의 부름을 받게 될 것이다.

기청해의 스킬을 확인한 유안은 자연스럽게 청해의 등을 퍽 때렸다.

손이 아팠지만 한 대 더 때렸다.

"등급 하나 더 떨어졌으면 바로 보고를 해야지, 왜 말 안했습니까?"

유안의 생명선 회복이 퍼센트로 나타나는 것과 다르게, 기청해는 상어 요리를 먹을수록 [바다의 부름] 스킬의 등급이 조금씩 떨어졌다.

F급까지 떨어진 후에는 완전히 소멸하게 될 거라 기대하는 중이었다.

"어제 떨어졌다고 말했어."

"술 마셨을 때 말고, 맨정신일 때 말해야죠."

"흥."

진짜 왜 이러지, 죽일까.

유안은 오늘따라 유치하게 구는 기청해를 내버려두고 헌터 디바이스 연락처를 뒤졌다.

[여진 씨★].

원래는 밋밋하게 [성여진 대표]라고 저장해뒀는데 저번에 여진이 그걸 알게 되어서··· 그렇게 됐다.

사소한 것에 집착하는 스윗박스 대표를 위해 별도 하나 붙여줬더니 무척이나 기뻐했다.

'이런 걸로 인수가 빨라지기만 하면 뭔들 못 해.'

별 말고 하트 열 개라도 붙여줄 수 있다.

이유안은 성여진에게 전화하여 이사회 회의 결과를 물었다.

안건은 당연히 중앙 카페의 스윗박스 인수에 관한 것이었다.

-그냥 투표에 붙였습니다. 반대하는 사람들 징징대는 소리 들어주기도 짜증나서.

"잘하셨습니다. 결과는요?"

-인수 계약서 초안 들고 가는 중입니다.

찬성표가 압도적이었나 보다.

이유안은 씩 웃고 여진의 점심 식사 여부를 확인했다.

성여진은 여전히 중앙 카페 음식을 좋아했고, 이곳에서 끼니를 챙기는 건 더 좋아했다.

"밥 차려놓을 테니까 조심히 오십시오."

밥만 챙겨주면 열심히 일하는 여진을 맞이하기 위해 유안이 손수 요리를 시작했다.

메뉴를 고민하다가 불고기를 만들기로 했다.

기청해가 졸졸 따라와서 귀찮게 굴기는 했지만, 재료 손질 역할을 맡기기에는 좋아서 시끄러운 조수 정도로 생각하고 그냥 두었다.

지잉-.

오늘 아침에 들어온 냉장육을 손질하는데 디바이스가 울렸다.

전화는 아니고 문자였다.

"누구야?"

"권재윤 씨입니다. 셀카를··· 보냈네요."

이 사람도 참 엉뚱하다.

유안은 수창 길드의 권재윤 헌터가 보낸 사진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 고민했다.

일단 뒷배경이 바다인 것으로 보아 심해 던전 공략을 막 끝내고 나온 듯한데.

"음···."

사진 속 밝게 웃는 권재윤은 손에 주먹만 한 크기의 새하얀 진주알을 들고 있었다.

보상 상자에서 나온 아이템인가 보다.

'잠깐, ···진주?'

유안은 순간 이질감을 느꼈다.

심해 던전을 수백 번 공략하게 시켰지만 진주는 처음 본다.

[1000회 공략 완료!]

사진 아래쪽에 작게 붙은 권재윤의 코멘트가 이제 눈에 들어왔다.

이유안은 칼을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기청해 씨, 이 아이템 아십니까?"

헌터 디바이스의 사진을 청해에게도 보여주었다.

기청해는 사진 속 백진주를 자세히 살피는가 싶더니 이내 대답했다.

"처음 심해 던전을 공략했을 때 흑진주가 나오기는 했어."

"···그건 어디에 있습니까?"

"흡수됐어."

기청해는 흑진주가 자신의 몸에 스며들었으며, 그 후에 [바다의 부름] 스킬을 얻게 된 과정까지 줄줄 설명했다.

'그걸 왜 이제 말하지?'

유안은 중요한 정보를 자꾸 나중에 밝히는 청해를 한 번 째려보고 권재윤에게 문자를 남겼다.

[쓸 곳이 있으니 함부로 건드리지 말고 두십시오.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불고기 만들기는 글렀다.

성여진은 이유안이 직접 만든 음식을 좋아하겠으나 어쩔 수 없었다.

유안은 정원에게 요리 마무리를 부탁하고 기청해의 뒷덜미를 붙잡았다.

"우리는 제주도로 갑니다. 지금 당장."

백진주

제주에 도착해서 헌터 디바이스를 켜자 성여진 대표의 연락이 빗발쳤다.

[뭡니까?]

[가게에서 만나기로 했잖아요.]

[이런 식으로 약속 어겨도 되는 겁니까?]

[이 사장, 그렇게 안 봤는데 예의가 엉망이네요.]

[실망입니다. 중앙 카페는 손님을 이런 식으로 대하는군요.]

원망과 분노만 늘어놓던 문자가 끝에 가서는 이렇게 끝났다.

[올 때까지 기다릴 겁니다.]

[진짜 안 와요?]

[제주도까지 갔다면서요. 매니저한테 위치 대충 들었으니까 거기서 봅시다.]

마지막 문자를 확인한 유안은 골치 아픈 표정으로 디바이스를 껐다.

꺼두면 전화는 피할 수 있으니까···.

"누구야?"

그러나 성여진의 집착을 피했다고 해서 기청해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이유안은 어쩌다 제 삶에 감시자가 이렇게 많아졌는지 한탄했다.

"성여진 대표입니다. 별거 아니에요."

"이따 만나기로 한 게 별거 아니야?"

"···다 훔쳐봤으면서 뭘 물어봅니까."

기청해의 키가 커서 위에서 내려다보면 다 보이기 때문에 프라이버시랄 게 없었다.

유안은 지척으로 다가온 청해의 머리를 밀어냈다.

심해 던전 근처 바닷가에는 수창 길드의 권재윤과 조서혁만 있었다.

흑등상어가 나온 것도 아니었으니 다른 공략대원들은 휴식을 취하러 돌아간 모양이다.

"재윤 씨."

"앗, 사장님~!"

이유안이 다가가자 권재윤이 물장난을 멈추었다.

"진주는 어디에 뒀습니까?"

"아, 그거 서혁이가 인벤토리에 넣어놨어요. 제 인벤토리는 자리가 없더라구요~."

유안이 손을 내밀자 조서혁이 인벤토리에서 백진주를 꺼내주었다.

진주에서는 은은하게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유안은 뒤쪽에 애매하게 서 있던 기청해를 불렀다.

"기청해 씨."

"응."

"가까이 와서 보시죠. 이거 맞습니까?"

이유안은 기청해에게 진주를 완전히 넘겨주지는 않고 코앞까지 내밀기만 했다.

함부로 넘겼다가는 흑진주처럼 스르르 스며들 수도 있기에 조심하는 것이었다.

진주의 효과가 제대로 밝혀지기 전까지는 청해가 손도 못 대게 할 생각이다.

"응, 맞아. 1회차 공략 보상으로 나온 흑진주도 딱 이런 크기였어."

"지금 몸에서 다시 뺄 수는 없죠?"

"그게 가능했다면 상어 요리를 먹지도 않았을 거야."

하긴.

유안은 빠르게 납득하고 진주를 제 인벤토리에 넣었다.

"일단 주현 씨한테 감정 받아보겠습니다. 어떤 아이템인지 알아야 하니까요."

"지금 나한테 줘도 별 문제는 안 생길 것 같은데."

"이 인간이 또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바다의 부름]보다 더 이상한 스킬이라도 얻게 되면 어쩌려고요. 안 됩니다."

"···응."

기청해는 진주를 만져보고 싶은 표정이었으나 유안의 말은 잘 들었다.

이유안은 청해의 머리를 대충 쓰다듬고 권재윤과 조서혁에게 물었다.

"그래서 공략대 다른 분들은 어디 가셨습니까?"

"비조 길드에 있어요! 거기 완전 좋아요~! 안락하고 따뜻하고!"

리모델링 작업에 들어간 비조 길드는 공략대의 아지트가 되어버렸다.

공략대가 쉴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에 바로 비조 길드를 내어 주었더니 생각보다 더 잘 써서 보람찼다.

"그럼 중앙 카페 제주점으로 갑시다."

이유안은 기청해가 보는 앞에서 단어 하나하나에 힘주어 말했다.

권재윤이 키득거리며 리모델링 언제 끝나냐고 물어왔다.

"연말 전에 끝날 겁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오픈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어요."

그 말을 들은 권재윤이 파티하자며 날뛰었다.

조서혁이 머리를 한 대 쥐어박고 나서야 얌전해진다.

시끌벅적한 수창 길드 페어 덕분에 비조 길드까지 가는 길이 심심하지는 않았다.

이유안은 오랜만에 여유를 느끼며 중앙 카페 제주점 앞에 차를 댔다.

"이 사장."

그리고 차에서 내리기가 무섭게 야차 같은 표정의 성여진이 유안을 맞아주었다.

'정원 씨가 위치를 여기로 알려줬구나.'

바닷가까지 찾아오지 않은 게 다행이기는 했지만, 이건 이것대로 곤란했다.

성여진의 팔짱 낀 모습을 보니 이유안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오늘은 또 어떤 까칠함에 찔리게 될까···.

*

최상층에서 자체적으로 바베큐 파티를 하던 헌터들이 우르르 1층 홀로 내려왔다.

먹을 것도 바리바리 싸 들고 와서 이유안도 간단하게 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다.

"이 사장."

물론 아까부터 으르릉거리며 분노를 표출하는 성여진도 함께였다.

유안이 여진에게 음식을 내밀었지만, 성여진은 이유안이 만든 불고기가 아니면 먹지 않겠다며 이상한 단식 투쟁을 했다.

"본점 돌아가면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자, 약속."

성여진의 나이를 10살 정도로 낮추어 잡고 대하자 마음은 편했다.

여진 본인도 이런 취급을 받는 게 기분 나쁘지는 않은지 새끼손가락을 거는 얼굴이 퍽 행복해 보였다.

'그래··· 화만 풀렸으면 됐다.'

여진을 해결하고 나자 남은 건 기청해였다.

이제 음식도 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 S급 친구들 사귀라고 바베큐 파티 현장에 풀어놨더니 십 분도 안 돼서 시무룩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육아는 힘들다.

윤슬이가 천사였다는 걸 뼈저리게 깨닫는 순간이었다.

"기청해 씨는 왜 그러십니까."

"재미없어."

"다들 재밌게 놀고 있습니다만."

"이유안 사장이 없잖아. 진주도 없고."

청해는 아까부터 보석에 눈 돌아간 사람처럼 백진주만 찾아댔다.

아이템에 사람 마음을 홀리게 하는 효과가 붙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 끝나고, 안전한 거 확인되면 드린다고 했잖습니까."

"응······."

"자꾸 징징대지 말고 이거나 드세요. 맛있습니다."

유안은 청해의 입에 가리비 치즈 구이를 넣었다.

불판에서 바로 꺼낸 거라 뜨겁긴 하겠지만 S급이니 괜찮을 거다.

"···그러니까, 여긴 이런 식으로 꾸미면 별로라니까요? 인테리어 배웠다는 분이 요즘 트렌드도 파악 안 합니까. 어디서 십 년 전에 유행하던 컨셉을 가져와서는······."

"리모델링은 제가 맡았으니까 제가 알아서 할 겁니다. 성 대표님은 신경 끄시죠?"

기청해에게 잠깐 한눈을 팔았더니 성여진이 또 난리였다.

어디 갔나 했더니 강해민에게 시비 거는 중이었나 보다.

비각성자 일꾼1, 2의 싸움을 중재하기 위해 유안이 나섰다.

"무슨 일입니까?"

"야, 이유안. 이 사람이 자꾸···."

"이 사람? 내가 누군지 알고···!"

성여진이 자연스럽게 성질을 부리려는 걸 이유안이 손으로 막았다.

"해민아, 네가 이해해 줘. 여진 씨가 좀··· 좀 그래."

"······스윗박스 대표잖아. 그새 친해졌냐?"

"같이 일하다 보니까 그냥저냥."

"그러냐···."

해민은 어쩐지 아쉬워 보이는 목소리로 대답하고 휙 뒤를 돌았다.

그래도 싸움 무대에서 한 사람이 빠졌으니 다행이다.

이유안은 성여진의 입을 막고 있던 손을 떼어냈다.

"후으-, 이유안 사장! 날 이런 식으로 막 대하려고···!"

"대표님도 이거 드십시오."

적당히 식은 관자 버터 구이를 여진의 입에 넣었다.

기청해나 성여진이나 뭘 먹으면서 말하는 타입은 아니라 다행이었다.

"바빠 보이네요, 유안 씨."

"알면 잘하시죠."

"저야 늘 잘하고 있는데요."

이번엔 류지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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