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8화 (128/137)

"저 술 안 마십니다!"

"이건 약이야."

"무슨 헛소··· 우으읍!"

고삐 풀린 S급은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

유안은 눈물이 핑 도는 것을 느끼며 하는 수 없이 술까지 다 받아 마셨다.

정말 끔찍한 경험이었다.

"윽."

헛구역질이 올라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고 있을 때였다.

이유안의 눈앞에 붉은색 상태창이 띠링 떠올랐다.

[당신의 생명선은 끊어져 있습니다. 남은 수명: 3년 미만]

그리고 뒤이어 푸른색 상태창도 하나 더 올라왔다.

[SS급 몬스터를 섭취해 끊어진 생명선이 일부 회복됩니다!]

카페의 주정뱅이

담금주는 도수가 높은 편이었다.

평소 술을 즐기지 않는 유안이 느끼기에는 더욱 그랬다.

벌써 취해서 빨갛고 파란 상태창들이 두 겹, 세 겹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윽······."

"이유안 사장, 술에 약한가 봐."

"···더."

"응?"

"더 주십시오. 아니, 아예 통째로 주세요. 잔 이런 거 필요 없습니다."

이유안은 기청해의 손에 들린 와인잔을 빼앗아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챙그랑!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와인잔이 산산조각··· 나지는 않았다.

던전 부산물로 만든 거라 튼튼했다.

바닥에 날카롭게 부딪혔으니 흠집 정도는 났겠으나 깨지지는 않았다.

"술 내놔."

유안은 술기운에 뭉개진 발음으로 명령하며 기청해의 멱살을 잡았다.

하우카르틀은 끔찍했지만 술은 그나마 액체라서 코를 막고 마시면 괜찮을 것 같았다.

둘 다 생명선을 회복하는 효과가 있다면 술을 마시는 게 백 번 천 번 나았다.

"이런··· 이유안 사장이 주정뱅이가 될 줄은 몰랐어."

"술이 마음에 드셨어요, 사장님?"

멀찍이 떨어져서 구경만 하던 서정원도 다가왔다.

부축해주는 사람이 둘로 들어나자 유안의 행동은 더 거칠어졌다.

"빨리이··· 정원 씨, 술. 술 주시죠."

"하하, 사장님. 지금도 취하신 것 같은데 나머지는 내일 마시는 건 어떨까요?"

"안 됩니다! 지금 마셔야 합니다."

유안은 서정원의 멱살도 붙잡고 짤짤 흔들며 술을 내놓으라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생명선 회복 효과가 붙은 음식이 내일까지 멀쩡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특수 효과가 붙은 음식의 경우 오래 보관하면 그 효과 자체가 사라져서 평범한 음식이 되기도 한다.

음식마다 효과가 사라지는 기간은 천차만별이지만, 지금의 상어 요리는 유통기한이 무척 짧을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사장님, 너무 취하셨어요. 곧 윤슬이도 오니까 오늘은 이만 들어가서 쉬시는 게···."

"다들! 제 마음··· 하나도 모릅니다······."

생명선이 끊어졌다는 걸 밝히지 않은 건 유안 본인이었으나 술이 들어가서 그런지 억울하고 속상했다.

말하지 않아도, 눈빛만 스쳐도 알아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간 함께 일한 세월이 얼만데.

"정원 씨··· 밉습니다."

"···네?"

서정원이 갑자기 미움 받고 놀라는 사이, 유안은 잽싸게 테이블 아래의 담금주 통을 챙겼다.

꼭 끌어안은 채 놓지 않았더니 서정원도 기청해도 어이없어 하며 유안을 말리지 못했다.

억지로 빼앗으려고 하면 또 미움을 사게 될 것이다.

"다아··· 다 제 겁니다. 기청해 씨는 저거나 먹어요. 이건··· 제가 다 마실 거니까."

"응, 알았어."

기청해는 주정뱅이 말리기를 포기하고 유안이 시키는 대로 하우카르틀 식사를 시작했다.

처음 한 번이 어려웠지, 악취에 코가 마비된 후로는 살점을 씹어 삼키는 게 그리 힘들지 않았다.

"저도 같이··· 옆에 있어드리죠."

취한 유안은 비틀거리며 기청해의 옆자리에 앉았다.

정신이 없는 상태로도 의리는 저버리지 않는 사장이었다.

뽁!

담금주 뚜껑이 경쾌하게 열렸다.

서정원은 끝까지 이유안의 과음을 막아보려 했으나 이제 기청해가 만류했다.

"서정원 매니저, 그냥 둬도 돼. 이유안 사장도 괜히 이러는 건 아닐 테니까."

"···사장님 몸에 안 좋을까 봐 걱정돼서 그래요."

"아니, 좋을 거야."

청해는 유안의 목덜미 근처 냄새를 킁킁 맡아보고 판단을 내렸다.

상어 요리 냄새에 뒤덮여서 정확한 측정은 불가능했으나, 이전보다 확실히 죽음의 냄새가 줄어든 게 느껴졌다.

"이유안 사장, 남기지 말고 다 마셔."

"응."

"···이제 완전히 말 놓기로 한 거야?"

"왜. 기청해 너는 반말하는데 나는 안 되냐? 웃기고 있어."

술기운의 영향으로 한껏 불량해진 유안은 기청해를 비웃으며 담금주를 꿀꺽꿀꺽 삼켰다.

"크으···. 청해야, 안주."

유안은 청해가 꼭꼭 씹어먹던 하우카르틀을 갈취하기까지 했다.

기청해는 금세 안주 시종으로 전락해 이유안이 담금주 한 모금 마실 때마다 하우카르틀 한 조각 내미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유안 사장··· 생각보다 비위가 좋구나."

"야, 살려면 뭔들 못 하겠냐. 너처럼 흘러가는 대로 사는 사람은 내 심정 이해 못 해!"

"응···. 맞아."

청해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하우카르틀이나 포크에 찍어서 내밀었다.

취한 이유안 상대로 뭔가 반박했다가는 무시무시한 보복을 당하게 될 것 같았다.

지금은 그저 얌전하고 고분고분하게 시키는 일이나 하면 된다.

"캬··· 더럽게 맛 없어. 정원 씨는 무슨 생각으로 이딴 걸 만드셨습니까?"

"하하, 하······. 사장님이 이렇게 많이 드실 줄은 몰랐거든요."

"앞으로도 많이 먹을 거니까 더 만드시죠."

"···정말요?"

"예. 매일 먹고 마셔야 합니다."

유안은 조금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담금주 한 모금, 하우카르틀 한 조각씩 섭취할 때마다 상태창은 눈치도 없이 띠롱띠롱 울리고 있었다.

[SS급 몬스터를 섭취해 끊어진 생명선이 일부 회복됩니다!]

이 끔찍한 음식들이 생명선을 회복할 방법이라면 어쩔 수 없다.

흑등상어가 형님, 할 때까지 먹어줘야지.

*

"으욱, 물···."

"물 여기."

"···기청해 씨?"

유안은 구역질이 날 것 같아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눈을 떴다.

이곳이 어딘지 파악하고 나자 강한 불쾌감이 몰려왔다.

'나 왜 여기서 잤지.'

미술관의 기청해 침실이었다.

이유안은 일단 청해가 내미는 찬물 한 잔을 깔끔하게 비우고 입을 열었다.

"저 왜 여기 있습니까?"

"이제 다시 존댓말 쓰는 거야? 반말할 때가 훨씬 편해 보였는데."

"예? 제가 기청해 씨한테 반말을 왜 합니까."

유안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청해를 보았다.

이 인간이 또 이상한 수작을 부리려는 게 분명하다.

장난으로 몇 번 반말 비슷한 걸 한 적은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유안은 모든 사람에게 예의를 지키는 사회인이었다.

"이유안 사장, 어제 일은 전혀 기억이 안 나?"

"어제··· 아, 맞다. 잠시만요!"

청해 덕분에 어제 먹은 요리가 떠올랐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이 어떤 효과를 지니고 있었는지도 생각났다.

유안은 다급하게 제 상태창을 열었다.

[SS급 몬스터를 섭취해 끊어진 생명선이 일부 회복되었습니다. 회복 진행률: 13%]

"···기청해 씨."

"응."

"어제 담금주랑 하우카르틀 먹고 남은 거 있죠?"

끔찍한 맛이었으니 분명 아무도 먹지 않았을 것이다.

먹방 휴튜버인 정태영도 마다할 맛이었다.

그러니 아직 한가득 남아있을 것······.

"아니, 안 남았어."

"···예? 왜요?"

"이유안 사장이 다 먹었잖아."

"······."

유안은 이제 어렴풋이 떠오르기 시작한 어제의 기억 조각을 읽었다.

산처럼 쌓여있던 하우카르틀을 포크로 푹푹 찍어서···.

갑자기 속이 울렁거리는 것 같았다.

회복 진행률이 13퍼센트까지 올라간 건 그만큼 많은 양의 상어 요리를 먹었기 때문이었다.

나눠 먹어도 됐을 텐데 미련하게 한꺼번에.

"안 말리고 뭐 했습니까."

"이유안 사장이 말린다고 말려지는 사람이야?"

"노력은 하셨어야죠."

"이래서 취한 사람 챙겨주면 안 돼.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좋은 소리는 못 듣는다니까."

기청해는 진심으로 후회하는 표정을 지으며 침실에서 떠나려고 했다.

유안은 청해를 붙잡기 위해 다급하게 제 상태를 보고했다.

"제 생명선 회복되고 있답니다. 어제 그거 먹어서요."

"알아. 나한테 몇 번이나 확인하라고 시켰잖아."

"예? 제가요?"

"······이윤슬 어린이 깨우러 갈게."

유안은 정말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파렴치한 세기의 주정뱅이 취급을 받으니 억울했다.

'아니, 그렇게 이상한 짓을 하지는 않았··· 않았겠지? 않았어야 하는데.'

불안해진 이유안은 기청해의 뒤를 졸졸 따르며 이것저것 말을 붙여보았다.

청해가 단단히 삐친 모양인지 뭘 물어도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평소라면 입 없냐고 한 마디 했겠지만, 지금은 유안 자신이 철저한 을의 입장이었다.

이유안은 삐친 기청해를 본점 3층으로 곱게 올려보내고, 자신은 1층 홀에서 직원들을 찾았다.

"정원 씨."

"아, 사장님. 속은 좀 괜찮으세요?"

"숙취는 심하지 않아서 괜찮습니다. 그냥 너무 많이 먹어서 소화가 덜 된 것 같아요."

"다행이에요. 어제 사장님이···."

"사, 사장님···! 아, 앞으로 술 금지···! 절대 금지···! 음주 결사 반대···!"

서정원이 말하는 중에 홍소라가 쏙 끼어들어 이유안의 음주에 대한 입장을 표명했다.

이번만큼은 서정원과 방재이도 홍소라의 말에 동의하는지 다들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 제가 기억이 안 나서···. 어제 혹시 무슨 실수라도 했습니까?"

"때로는 기억하지 않는 게 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수도 있어요, 사장님."

"마, 맞아요···! 그냥 앞으로··· 술 마시지만 마세요······."

"······사장님, 어제 일은 없던 걸로 하겠습니다."

직원들의 반응이 이러니 유안은 더욱 미칠 것 같았다.

이 와중에 그들이 원하는 대로 금주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 유안을 더 고통스럽게 했다.

살기 위해서는, 술을 마시기 싫어도 마셔야 한다.

*

제주 심해 던전 [흑등고래의 요람] 공략대의 일은 계속되었다.

100회 단위로 공략할 때마다 보상으로 흑등상어가 한 마리씩 튀어나오는 패턴을 학습한 후에는 공략이 더 수월해졌다.

이제 다들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 공략대를 반으로 나누어서 효율 좋게 움직이기도 했다.

"이것도 염장하면 되나요, 사장님?"

"···예."

"술도 만들고요?"

"······예."

서정원의 상어 요리도 계속되었다.

생명선을 회복할 방법으로 밝혀진 것이 상어 요리뿐이었으니, 유안은 어쩔 수 없이 하우카르틀과 상어 뼈 담금주 중독자가 되어야 했다.

"사, 사장님이 해산물 좋아하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차별 없이 모든 해양 생물을 좋아하실 줄은······."

저번에 하우카르틀 끄트머리에 혀만 살짝 대었다가 화장실로 달려간 전적이 있는 홍소라가 이유안을 기인 대하듯 바라보았다.

직원들은 유안의 몸 상태를 모르니 쌓여가는 오해는 불가피했다.

"유안아."

"아, 진짜. 그렇게 부르지 말랬죠."

"왜. 우리 서로 말 놓기로 했잖아."

"기억 안 난다고 했잖습니까."

술을 자주 마시다 보니 이런 부작용도 생겼다.

기청해가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한다.

유안은 청해에게 짜증내다가 헌터 디바이스를 꺼냈다.

"기청해 씨, 스킬 공유."

"흥."

"청해야, 빨리. 내 팔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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