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카페에 인수된다고 해서 스윗박스 직원들을 모조리 내치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유안은 눈물 자국이 남은 성여진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계속 말했다.
"인수 기사는 계속 나는데 명확한 입장 발표는 하지 않으니까 여기저기서 말 많이 나왔죠?"
"···예. 진짜··· 짜증나 죽겠습니다."
성여진은 이제 농담할 기력이 조금 생겼는지 볼멘소리를 냈다.
그래도 아까보다 기분이 나아진 것 같아 다행이었다.
"그럼 빨리 날 잡고 같이 인터뷰 한 번 하시겠습니까? 제가 괜찮은 기자 한 명 아는데."
"···그건······."
유안은 성여진에게 생각할 시간을 줬다가는 인수 과정이 더 복잡해질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할 거면 오늘 당장 일을 치러야 한다.
"저도 여진 씨 좋아해서 그럽니다. 중앙 카페랑 스윗박스, 같이 잘 되어야죠. 기자님 부르겠습니다."
"저, 아직 마음의 준비가···."
"어려운 인터뷰 아닙니다. 그냥 우리 둘이 친한 것 좀 보여주고, 근황 얘기하고, 인수에 대한 얘기 가볍게 꺼내면 끝날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옆에 같이 있을 텐데."
성여진이 몸에 두르고 살던 까칠함을 한 꺼풀 벗겨내고 나니 연한 성격이 다 드러났다.
유안이 강하게 밀고 나가자 거절도 못하고 고개만 주억거리는 여진은 확실히 순종적이었다.
'일 시키기 좋겠는데.'
밝은 미래가 보였다.
유능한 조력자 겸 일꾼을 얻은 유안은 손수혜 기자에게 연락하며 희미한 미소를 흘렸다.
*
"손님들이 인수 관련해서 엄청 물어보네요."
"뭐라고 대답하셨습니까?"
"음, 별말은 안 했어요."
서정원이 유안을 향해 눈웃음만 지었다.
분명 호감이 생기는 미소인데 왠지 모르게 말을 걸기는 어려운 분위기를 풍긴다.
저 미소로 수십 명의 말문을 막아버린 모양이었다.
"잘 대처하셨습니다. 곧 정식 기사 나가면 물어보는 사람도 줄어들 거예요."
"역시 대단하세요, 사장님."
"예?"
"성여진 대표님까지 꼬실 줄은 몰랐거든요."
"저도 여진 씨가 이렇게 쉬운 사람일 줄은 몰랐습니다."
유안은 농담을 편하게 받아치고 정원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앞으로 제가 좀 바빠질 텐데··· 가게에 오래 붙어있지 못하더라도 정원 씨가 잘 지켜주셔야 합니다."
"그거야 당연하죠. 그런데 사장님, 저희 더 바빠지기 전에 맛있는 거 한 번 해 먹을까요?"
"···홍소라 씨가 대신 말해달라고 부탁했죠."
"허, 허억··· 어떻게 알았어요···!"
서정원 뒤에 숨어 있던 홍소라가 튀어나오며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렇게 대놓고 숨어있는데 모르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
유안은 오늘도 엉뚱한 소라를 바라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그, 그래도···! 거절하시면 안 돼요···! 사장님 이제 바빠지면··· 언제 또 파티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럼 소라 씨가 날 잡으시겠습니까? 단골들도 다 부르고, 하루이틀 정도는 연장 근무도 합시다."
"으··· 엑, 마감하고 나서 노는 게 아니고요···?"
"곧 연말이지 않습니까."
연말 시즌에만 할 수 있는 파티가 있지 않은가.
유안은 기왕 이렇게 된 거 크리스마스를 미리 기념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올해가 끝나기 전에 스윗박스를 인수할 계획이라서 진짜 연말이 되면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것이다.
"어차피 하는 파티, 손님들도 다 즐길 수 있게 자리 만들면 좋죠."
"으으··· 일, 일이 커지겠는데···. 그래도 재밌을 거 같으니까 준비할게요···!"
"그럼 소라 씨만 믿고 있겠습니다."
유안이 씨익 웃으며 소라를 보았다.
그러자 홍소라가 질색했다.
"으, 사장님··· 얼굴로 꼬시는 거··· 저, 저한테는 안 통해요···!"
"···예?"
"여, 여우······!"
홍소라가 또 이상한 소리를 하며 주방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유안은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소라의 정신세계는 복잡하고도 다채로워서 범인이 함부로 이해하려 들면 안 된다.
"연말 파티 하면 윤슬이가 좋아하겠어요."
"친구들도 부르라고 해야겠습니다."
"비조 길드장님을 산타로 분장시키는 건 어떨까요, 사장님?"
"정말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유안은 당장 인터넷 쇼핑몰을 뒤져 산타 분장 세트를 주문했다.
기청해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았다.
먹여주고 재워주는데 시키면 해야지 어쩔 것인가.
"비조 길드장님 하니까 생각난 건데요."
"예."
"완성된 음식이 있거든요."
"음식이라면··· 신메뉴라도 만드셨습니까?"
"아뇨. 저번에 묻어둔 거 있잖아요."
유안은 잘 생각이 나지 않아서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그러자 서정원이 화사하게 웃으며 유안의 손을 잡아당겼다.
본점 매니저에게 이끌려 간 곳은···.
"여기, 지난번에 상어 머리 묻었던 곳 아닙니까."
흑등상어의 무덤이었다.
*
이유안은 무덤에서 멀리멀리 도망쳤다.
서정원의 모습이 작은 점으로 보일 때까지, 정말 멀리 떨어졌다.
'S급은 후각도 예민하다고 들었는데 정원 씨는 아닌가?'
여기까지 와도 아직 쿰쿰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는데, 서정원은 흑등상어 무덤을 파헤쳐 아무렇지 않게 숙성된 살점을 꺼냈다.
'하우카르틀···.'
상어 요리를 검색했을 때 만들어지는 기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 포기한 음식이었다.
그런데 본점 매니저는 포기하지 않았다!
기청해에게 무슨 원한을 가졌는지는 몰라도, 저렇게 고약한 음식을 꼭 먹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무덤에 함께 순장했던 상어 뼈 담금주도 함께 꺼내는 것으로 보아 제대로 작정한 듯싶었다.
'저런 걸 어떻게 먹어. 먹으면 죽는 거 아냐?'
흑등상어라는 몬스터 자체에 독이나 저주는 없었지만, 숙성과 발효를 거치며 없던 독도 생겼을 것 같았다.
'내가 먹을 게 아니니 됐나.'
그나마 다행인 건 기청해를 위한 음식이라는 것이다.
유안은 상어 요리의 타깃이 자신이 아님에 감사하며 미술관으로 걸음을 돌렸다.
서정원이 저 악마 같은 음식을 완성하는 동안 기청해를 데려올 생각이었다.
윤슬이 던전에 가는 날이라 육아에서 벗어나서 여유를 즐기던 기청해는 이유안에게 딱 붙잡혔다.
"이유안 사장의 표정을 보니 불길해지는데. 내게 좋은 일은 아닐 것 같아."
"아뇨, 좋은 거 맞습니다. 기청해 씨 오래 살고 싶다면서요."
"정확하게는 이유안 사장과 백년해로 하고 싶다는 거였지."
"그게 그거죠. 아무튼 몸에 힘 빼고 얌전히 따라오십시오. 다칩니다."
당신 말고 내가.
유안은 오늘도 E급 몸을 알뜰하게 활용하고 있었다.
청해는 울상을 지으면서도 순순히 몸에 힘을 풀고 본점 뒷마당으로 끌려왔다.
"소라 씨, 여기에 냄새 차단 아이템은 왜 쓰셨습니까?"
"매, 매니저님이 부탁하셔서요···!"
아직 상어 무덤에 있는 본점 매니저는 준비성까지 철저했다.
홍소라는 서정원의 부탁대로 뒷마당에 있던 손님들을 다른 자리로 피신시키고 있었다.
"나쁜 예감이 들어. 이런 건 틀린 적이 없는데 말야."
"오늘은 틀렸네요. 색다른 경험도 해 보고 좋으시겠습니다."
"···대체 뭘 하려고 이러는 거야?"
"그래도 그간의 정이 있으니까, 나 몰라라 하고 도망치진 않겠습니다."
냄새 정도는 숨 참으면 되니까.
유안은 기청해가 상어 요리를 제대로 먹는지 안 먹는지 감시할 겸 이 자리에 남기로 했다.
시간이 좀 지나자 서정원이 나타났다.
'윽, 냄새···.'
음식은 인벤토리에 넣었는지 손에 들고 있지 않았지만, 정원의 몸에 밴 냄새만으로도 끔찍했다.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냄새였다.
호기심 많은 어린이가 던전에 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윤슬이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이 냄새를 맡았다면 필시 울어버렸을 것이다.
"이유안 사장···."
"도망갈 생각 하지 마십시오."
기청해도 슬슬 상황을 파악했는지 몸을 움직이려고 했다.
유안은 빠르게 청해를 붙잡고 서정원에게 눈짓했다.
시작합시다.
"스킬을 써서 빠르게 완성시켰어요. 자연적으로 건조시키려면 너무 오래 걸리더라고요."
본점 매니저는 비위도 좋았다.
인벤토리에서 흑등상어 머리를 비롯해 거대한 살점, 그리고 담금주까지 꺼낸 정원은 여전히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유안은··· 그냥 울고 싶었다.
"윽, 웁··· 기청해 씨, 아이템, 아이템 없습니까?"
청해가 고개를 저었다.
유안은 급한 대로 심해 던전 공략용으로 만들어 둔 호흡기를 꺼내 장착했다.
그나마 살 것 같았다.
기청해는 자신도 하나 달라는 듯 손을 내밀었지만, 아쉽게도 여분은 하나뿐이었다.
'어차피 먹어야 하는데 냄새 정도는 견뎌야지.'
이유안은 기청해를 강하게 키우기로 했다.
오래 살기 위해서는 뭐든 해야하는 거 아닌가.
"비조 길드장님,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드릴게요."
오늘만큼은 악마처럼 느껴지는 서정원이 웃으며 상어 살점을 잘랐다.
깍둑 썰기를 하자 커다란 그릇에 넘치도록 하우카르틀이 쌓인다.
인심 좋은 정원은 상어 머리도 남김 없이 썰어주었다.
"술도 같이 드세요."
상어 뼈 담금주도 와인잔에 따랐다.
잔 가득히 찰랑이는 은은한 황금빛 술에 기청해가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이유안 사장······."
"투정 부릴 생각 말고 얼른 드시죠."
호흡기 시간 끝나기 전에 먹여야 한다.
유안은 단호한 표정으로 청해에게 포크를 쥐어 주었다.
기청해는 하우카르틀을 먹어야만 끝날 전쟁이라는 걸 깨닫고는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상어 살점을 쿡 찔렀다.
"하······."
기청해가 이렇게 한숨까지 쉬며 싫어하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유안은 저도 모르게 헌터 디바이스를 들어 동영상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기청해 씨, 빨리."
"안 찍으면 안 돼?"
"예, 안 됩니다."
"나빠···."
청해는 툴툴대다가 눈을 질끈 감고 하우카르틀을 삼켰다.
목울대가 바로 움직이는 것으로 보아 씹지도 않고 넘긴 게 분명했다.
"크, 윽··· 쿨럭···!"
"음식은 꼭꼭 씹어서, 모르십니까? 이거 마셔요."
유안은 자연스럽게 담금주가 든 와인잔을 건넸다.
찰랑거리는 황금색 술 안쪽에 정체불명의 건더기가 동동 떠다니고 있었다.
기청해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잔 안의 술을 원샷했다.
"···윽."
맛은 별로인 모양이지만, 그래도 기침은 멎었으니 됐다.
유안은 쉴 시간을 주지 않고 뒤쪽 접시를 가리켰다.
"아직 많이 남았으니까 힘냅시다."
"···이유안 사장."
"예, 왜요. 아니, 잠깐만··· 그걸 왜 저한테 내미십니까? 저리 치우시죠!"
"따지고 보면··· 이유안 사장이나 나나 같은 시한부인데."
서정원이 지켜보고 있어서인지 기청해가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유안은 정원에게 제 몸 상태를 들키는 것보다 포크 끝에 찍힌 하우카르틀이 더 무서웠다.
잽싸게 도망치려 했지만, 청해가 전혀 봐주지 않고 빠른 속도로 유안을 붙잡았다.
"반찬 투정하면 못 써."
뒷덜미를 잡힌 유안은 서서히 다가오는 상어 살점에 입을 꾹 다물었다.
"이유안 사장, 억지로 벌려서 넣기 전에 입 열어."
기청해가 협박 아닌 협박을 해댔다.
'정원 씨는 뭐 하는 거야! 이 사람 안 말리고!'
유안이 눈동자만 데로록 굴려 서정원을 보았으나, 본점의 든든한 매니저는 얼렁뚱땅 굴러가는 상황이 재밌는지 은은한 미소만 짓고 있었다.
"아··· 악···!"
결국 이유안의 입이 잠깐 벌어진 틈을 노려 포크가 비집고 들어왔다.
"우욱······."
바로 뱉고 싶었지만 기청해가 입을 막았다.
먹기 전까지는 놓아주지 않을 기세라서 하는 수 없이 살점을 씹어 삼켰다.
묘사하고 싶지도 않을 만큼 역겨운 맛이었다.
"입가심도 해야지."
기청해는 멈추지 않고 와인잔에 담금주를 가득 따라 유안에게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