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4화 (124/137)

'일손을 덜겠어.'

카페로 운영하게 되면 직원들이 따로 청소하지 않아도 되니까 편할 것이다.

유안은 중앙 카페 사장의 눈으로 비조 길드 1층 홀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리셉션부터 치우고 그 자리에 바 테이블을 가져다 두면 될 것 같았다.

"여기 전층 다 리모델링 하라는 거지?"

강해민이 건물 내벽을 통통 두드리며 물었다.

유안이 짧게 고개를 저으며 건드리지 않아도 될 층을 언급했다.

"최상층 빼고. 거기는 그냥 써도 되겠더라."

최상층 아래로 몇 층 더 가정집처럼 꾸며 직원 기숙사로 쓸 생각이었다.

제주라는 지역 특성상 근처에 집을 구하기는 힘들 테니 중앙 카페에서 손수 제공해야 한다.

"얼마나 걸릴 것 같아?"

"글쎄···. 자세히 봐야 알겠는데."

"그럼 해민아, 여기 좀 보고 있을래? 나는 저 인간 데리고 다녀올 곳이 있어서."

"어? 어···, 그래."

이미 리모델링의 세계에 푹 빠진 강해민은 천장의 샹들리에 크기를 확인하느라 건성으로 답했다.

겉으로는 툴툴거려도 속은 일할 생각으로 꽉 찬 일벌레다웠다.

"기청해 씨."

"우린 어딜 가는 거야?"

"기청해 씨가 말을 너무 안 듣고 쓸모가 없어서 바다에 수장시키려고요."

"그럼 제주보다는 인천항 쪽이 좋아. 거기가 그나마 중앙 카페와 가깝잖아."

"한강 어떱니까. 수질오염 걱정되긴 하지만."

이유안은 기청해와 살벌한 농담 따먹기를 하며 차건오가 보내준 좌표를 확인했다.

차를 타고 10분 정도 달려야 나올 장소였다.

'바닷가네···. 특이한 게 나왔다고 했지.'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듯 우물대던 건오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평소에 그런 적 없던 사람인데 당황한 것도 같았다.

'던전 보상이라고 해봤자 아이템이나 스킬 정도일 텐데··· 엄청 큰 아이템이 나와서 그런가?'

유안이 [흑등고래의 요람] 던전을 조사했을 때는 주요 보상에 딱히 큼직한 건 없었다.

[얼룩 상어의 기포]처럼 가볍고 작아서 인벤토리에 수월하게 넣을 수 있는 것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네···. 아무리 큰 아이템이라도 거기 있는 S급이 몇 명인데, 충분히 들 수 있었을 걸.'

의문은 커져만 갔다.

유안은 청해가 운전하는 차의 조수석에 앉아서 헌터 디바이스로 이것저것 검색해봤다.

심해 던전 말고 다른 던전에서라도 특이한 보상이 나온 적 있는지 알아보기 위함이었는데 별다른 수확은 없었다.

애초에 회귀 전 던전 파밍을 주로 다니던 이유안이 알고 있는 정보가 훨씬 많았다.

"저긴가 봐."

그때 기청해가 차의 속도를 늦추며 모래사장 쪽으로 진입했다.

바닷가에 옹기종기 모인 공략대와··· 그 뒤쪽 얕은 바다에서 펄떡이는······.

"상어야···?"

아니, 고래인가.

푸르스름한 지느러미를 가진 심해 생명체가 난폭하게 저항하고 있었다.

*

"정보는 [흑등상어]라고 뜨긴 합니다."

"카페 사장님~, 이거 진짜 생포하기 힘들었다고요!"

"SS급입니다."

"심해에 있을 때는 더 사나웠어요. 지금은 기가 많이 죽었네요."

S급 헌터들의 설명을 들으며, 유안은 기청해를 방패처럼 제 앞에 내세웠다.

SS급 상어 몬스터라면 E급인 자신은 이빨에 스치기만 해도 사망할 걸 알았다.

독이나 저주를 내뿜는 몬스터가 아니라는 것이 유일하게 안도할 부분이었다.

"이게 갑자기 왜 나왔을까요? 던전 백 번 넘게 공략하면서 한 번도 나오지 않던 보상인데."

"···백 번이나 하셨습니까?"

"네."

실력을 믿고 맡겨둔 거긴 하지만, 단기간에 S급 던전을 그렇게까지 많이 공략할 줄은 몰랐다.

정작 공략대의 리더 차건오는 무엇이 놀랄 일이냐는 듯한 시선을 던지기만 했다.

"공략 100회 기념 보상··· 같은 게 아닐까요."

"다른 자잘한 아이템 없이 얘 하나만 덜렁 튀어나오긴 했어요."

보상 상자를 깠는데 몬스터가 나왔다.

공략을 마친 줄 알고 모두가 긴장을 풀고 있을 때라 위험하긴 했지만, 진 선과 차건오의 완벽한 호흡으로 몬스터를 덫에 몰아넣을 수 있었다.

난폭한 녀석을 출구로 몰아가는 것도 한참이 걸렸지만, 어쨌거나 해냈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혹시 몰라서 죽이지 않고 산 채로 두긴 했지만, 유안이 왔으니 결정을 내려야 했다.

몬스터의 기습 공격에 대비해 S급 헌터들은 각자의 무기를 손에 든 채였다.

이유안이 죽이라는 신호 한 번만 보내면 일제히 달려들어 상어의 숨통을 끊어낼 것이다.

'···어떻게 하지.'

왠지 저 몬스터가 실마리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섣불리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계속 이 상태로 방치할 수도 없다.

심해에 사는 몬스터가 이렇게 얕은 바다에 갇혀 있으면, 그아무리 SS급이라 하더라도 서서히 죽어갈 것이다.

지이이잉! 징! 지잉!

고민이 이어지는데 유안의 헌터 디바이스가 시끄럽게 울었다.

화가 잔뜩 난 것 같은 소리에 놀라서 화면을 확인하자 발신인이 윤슬이었다.

일어났나 보다.

-아저씨이이이!

"응, 윤슬."

-또, 또 나만 빼놓고 놀러 갔어!

서정원에게 맡겨두고 오긴 했지만, 윤슬이 깨어나기 전에 제주로 와버린 건 사실이었다.

"윤슬, 미안해. 급한 일이 생겨서 그랬어. 먹고 싶은 거나 갖고 싶은 거 있어? 내가 다 사갈···."

-나도! 갈 거야!

"···응?"

-죄송해요, 사장님. 윤슬이가 울어버려서··· 못 말리고 데려왔어요. 곧 도착해요.

울부짖는 아이 대신 정원이 전화를 넘겨받았다.

'어딜 도착한다는 거지?'

불길해진 유안은 주변을 슥슥 둘러보았고, 이내 서정원의 튼튼한 검은색 차량과 눈이 마주쳤다.

-윤슬이 디바이스로 사장님 GPS 추적이 가능하더라고요.

미아 방지용으로 설치해둔 어플이 이런 식으로 쓰일 줄은 몰랐다.

어린이에게 역추적당한 유안은 일단 통화를 끊고 흑등상어를 다시 확인했다.

철썩철썩!

아직 팔팔한 몬스터가 무시무시한 기세로 물장구를 치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10살 어린이가 소비하기에는 자극적인 컨텐츠였다.

유안은 윤슬이 도착하자마자 눈부터 가릴 생각을···.

"우아! 상어 친구!"

차에서 내리자마자 도도도 돌진하는 윤슬 때문에 검열에 실패했다.

이유안은 어린이가 몬스터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도록 붙잡아 안았다.

"윤슬, 저거 위험해. 친구 아니고 몬스터야."

"저렇게 큰 상어 처음 봐! 저번에 미술 선생님이랑 아쿠아리움 갔었는데, 거기도 상어 친구 많았다? 근데 쟤가 더 커! 대장인가 봐!"

SS급 상어를 본 아이는 이미 흥분해서 유안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친구우!"

"······."

친구 아닌데 어쩌지.

이유안은 놓아달라고 바동대는 아이를 더 세게 안고 말을 골랐다.

고민하던 유안은 윤슬의 등급 및 스킬을 떠올렸다.

여기서 저 상어와 일대일로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건··· 모순적이게도 가장 어린 이윤슬뿐이었다.

"윤슬, 속박 스킬 있지."

"상어 친··· 응?"

스킬 이야기를 하니 아이의 눈이 또랑또랑 밝아진다.

윤슬은 여전히 아저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기꺼워했다.

"속박 스킬, 저 상어 몬스터한테 써줄 수 있어? 윤슬이 힘 안 참고 세게 해도 돼."

어제의 친구는 오늘의 식재료

유안의 말에 윤슬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그러더니 당장이라도 울 것처럼 그렁그렁해진다.

"친구··· 한테···, 스킬을 써···?"

무시무시한 SS급 몬스터 흑등상어와 이미 소울 메이트가 되어버린 윤슬은 엄청난 충격을 받은 듯했다.

'어떡하지···.'

아이가 울 것 같아서 덩달아 당황한 유안이 이도저도 못 하고 있을 때, 기청해가 다가왔다.

"나한테도 쓴 적 있잖아."

"그건··· 아저씨가 부탁했으니까······."

"지금도 이유안 사장이 부탁하는 거야."

"으응, 그래두우··· 상어 친구는 선생님이랑 다르게 아프다고 말도 못 하잖아."

어쩌지···.

어린이가 반박할 수 없는 말만 쏙쏙 골라서 했다.

그 대상이 몬스터가 아닌 일반 동물이었다면 상어를 당장 바다로 돌려보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기청해는 포기하지 않고 윤슬을 얼렀다.

"이윤슬 어린이가 속박 스킬을 써 주면, 저 몬스터도 좋아할 거야."

"···그걸 왜 좋아해? 거짓말!"

"나도 좋았으니까. 생각보다 아프지도 않았어."

"······선생님이 튼튼해서 그런 거야."

"저 몬스터가 나보다 더 튼튼해."

이게 무슨 대화인가.

묘하게 연령대가 맞는 것 같아서 유안은 숨 죽이고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기청해가 제 말이 맞다는 걸 보여주려는 듯 흑등상어 쪽으로 다가갔다.

"조십하십시오!"

이유안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외쳤지만, 청해는 이미 상어의 날카로운 이빨에 팔을 베인 후였다.

"아, 진짜. 왜 사서 다치고 그럽니까? 몸 조심 안 하죠!"

"사람을 공격하다니··· 정말 나쁜 몬스터야."

기청해는 피가 뚝뚝 흐르는 팔을 지혈하며 흑등상어의 성질을 평가했다.

일부러 이윤슬 쪽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안 그래도 울상이던 어린이가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기청해에게 다가갔다.

"선생니임··· 아프지 마······."

회복계 헌터인 류지우가 기청해를 바로 치료해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아이의 행보를 잠시 지켜보았다.

파아앗!

윤슬의 손에서 밝은 빛이 터졌다.

그것이 기청해의 팔에 스미자 상처가 씻긴 듯 나았다.

피는 더 안 나지만 청해는 연기를 계속했다.

"몬스터가 갑자기 공격할 줄은 몰랐어. 나는 친구가 되려고 다가간 거였는데 말이야···."

이제 심각한 건 어린이뿐이었다.

어른들은 전부 제 얼굴이나 입가를 가리고 웃음을 꾹 참았다.

유안도 기청해의 의도를 알 것 같았다.

"맞아, 나빠! 선생님도 다치게 하고··· 나쁘은···, 엄청 나쁜 몬스터야!"

"친구라고 하지 않았어?"

"선생님 다치게 하는 건 친구 아냐!"

윤슬은 이제 흑등상어를 노려보며 앙칼진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이유안은 그런 윤슬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한 번 더 부탁했다.

"윤슬, 저 몬스터 저대로 두면 다른 사람도 공격할 수 있어. 그러니까 이제 속박 스킬로 묶어줄래?"

"응! 나만 믿어, 아저씨!"

"고마워. 든든하다."

아이는 힘을 숨기지 않고 제대로 발산할 생각인지 어느 때보다 진지한 표정으로 양손을 쫙 펼쳤다.

검은 빛이 쏟아진다.

사아아아-.

이윤슬의 주위로 어마어마한 마력의 파장이 생겨났다.

S급 헌터들은 그것을 민감하게 느끼고 깜짝 놀랐다.

던전 체험 학습을 갔을 때도 저런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어린이가 마음을 단단히 먹은 모양이야."

"팔이나 내놓으시죠. 지혈 제대로 된 거 맞습니까?"

"그럼. 누가 치료해줬는데."

"자꾸 몸 안 사리고 멋대로 굴면 진짜 비조 길드 꼭대기에 거꾸로 매달아버리는 수가 있습니다. 조심 좀 하세요."

"응."

기청해는 유하게 대답하며 웃었다.

그 미소 때문에 불쾌해진 유안은 너덜너덜해진 청해의 옷을 북 찢어버렸다.

팔뚝 부근이 찢겨나가며 애매한 반팔이 되었다.

이유안은 약간이나마 통쾌함을 느끼고 만족했다.

"우으으···."

아이는 여전히 집중하고 있었다.

마나를 얼마나 많이 쏟아부을 생각인지, 활짝 펼친 손바닥 앞에 뭉친 검은색 빛의 구체는 점점 짙어져갔다.

"윤슬, 이제 스킬 써도 돼."

"잠깐, 아저씨! 조금만··· 조금만 더 하면···."

"무리하지 마."

"응, 무리 안 해!"

이미 S급 헌터 한 명분의 마나를 넘어선 수치였다.

하지만 윤슬은 식은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힘을 계속 모으더니···.

촤아악!

꽤 큰 파열음과 함께 속박 스킬을 쏟아부었다.

속박이라기보다는 터트림에 가까운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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