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2화 (122/137)

"윤슬, 마음에 들어?"

"응! 짱이야! 나 이거, 이거 내가 가져도 돼?"

이윤슬이 힘도 별로 들이지 않고 킹크랩의 집게발을 똑 떼어내며 물었다.

안 된다고 했다가는 집게발 도둑 리턴즈를 찍게 될 것 같아서 유안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 마리 있으니까 집게발은 윤슬이 다 가져."

"우아아아! 그럼 나아, 다음에 던전 갈 때···."

"그건 안 돼."

"···치이."

윤슬이 든다면 평범한 집게발도 충분한 무기로 쓰일 수 있기야 하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몬스터 상대로 이렇게 허술한 걸 휘두르게 둘 수는 없었다.

어린이가 위험할 일은 절대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이번만 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뭘 그래. 맛있게 먹고, 다음에 또 사줄 테니까 그때 또 보면 돼. 던전까지 데려갈 필요는 없어."

"으응."

영 아쉬운 눈치이기는 했으나 긍정적인 대답을 듣긴 들었다.

이유안은 아이가 손에 쥔 집게발을 자연스럽게 기청해에게 내밀었다.

어차피 밥도 안 먹는 사람이니 윤슬의 식사 시중을 시키기에 적격이었다.

기청해도 이런 상황이 익숙한지 별말 없이 집게발을 또각, 부러트려 살을 발라냈다.

"아!"

이윤슬은 우렁차게 외치며 요리 선생님에게서 게 다릿살을 받아먹고 흡족한 표정으로 우물거렸다.

던전산 킹크랩보다야 못했으나 짭짤하게 간이 잘 배어 있고, 살이 통통하게 오른 녀석이었다.

"또오, 또 주세요."

킹크랩 맛을 본 윤슬이 본격적으로 조르기 시작했다.

유안은 마음 편하게 기청해에게 독박 육아를 시키고, 자신은 본점 직원들에게 나머지 음식을 내밀었다.

중앙 카페 뒷마당에는 다양한 해산물 요리가 한 상 가득 차려졌고, 직원들은 간만에 외식하는 분위기를 내며 멋지게 점심을 해결할 수 있었다.

*

"으, 으아··· 엄청 떨려요···. 저, 저 잘할 수 있을까요···?"

"신입 알바생 교육도 다 시키셨으면서 뭘 그래요, 소라 씨."

떨리는 일을 앞두고 머리를 쥐어뜯는 홍소라를 서정원이 부드럽게 말렸다.

'탈모 와요, 소라 씨.' 하고 무시무시하게 다정한 경고를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으···, 아악···! 그래도, 그래도 이건··· 완전 남의 사업장이잖아요···!"

"소라 씨가 그런 것까지 신경 쓸 만큼 섬세한 분일 줄은 몰랐습니다."

운전대를 잡은 유안이 백미러에 비치는 홍소라를 흘깃 보고 놀렸다.

소라는 머리 뜯던 것도 까먹고 충격 받은 표정으로 운전석을 바라보았다.

"···매, 매니저님, 사장님이 저한테 복수하시는 것 같은데요······."

"평소에 소라 씨가 사장님을 많이 놀리긴 했어요."

"가재는 킹크랩 편··· 매니저님은 사장님 편······."

"······저도 옆에 있을 테니 너무 긴장하지 마십시오."

그나마 조수석의 방재이가 홍소라를 위로했다.

중앙 카페 본점을 깔끔하게 마감한 후, 주요 직원들이 향하는 곳은 스윗박스 777호점이었다.

이번에 새로 계약을 맺은 스윗박스 지점들에 중앙 카페 기계를 채워넣으려면 며칠 정도 시간이 걸린다.

그 작업을 기다리는 동안 이유안은 본점의 천군만마를 이끌고 특별한 일을 하기로 했다.

이것도 아까 성여진에게 울상으로 호소하여 뜯어낸 계약 덕분에 가능해진 일이었다.

"두 분 먼저 들어가시면 됩니다. 저랑 정원 씨는 좀 이따 타이밍 봐서 손님으로 가겠습니다."

유안은 스윗박스 777호점 주차 공간에 차를 대고 말했다.

여전히 떨리는 표정의 홍소라가 서정원에게 등을 떠밀려 차에서 내렸고, 방재이는 말없이 유안의 옷소매를 꼬옥 잡았다 놓고 내렸다.

'손 떨리는 거 같았는데.'

재이도 담담한 척을 하지만 소라 못지 않게 긴장한 듯싶었다.

그래도 두 사람이 꼭 붙어서 나란히 걸어가니 서로에게 충분한 의지가 될 것이다.

이유안은 어느새 조수석으로 건너온 서정원을 보며 말했다.

"잘한 거겠죠."

"그럼요, 사장님. 어차피 필요한 과정인데 조금 빠르게 진행하는 거라고 생각하세요."

"···정원 씨."

"네, 사장님."

"뭐 어디까지 생각, 아니··· 다 눈치 채신 겁니까?"

유안은 잠시 소름이 돋았다.

표면적으로 홍소라와 방재이는 지금 777호점에 카페 운영 솔루션을 제공하러 가는 것이었다.

정신 없이 바쁜 와중에도 주문을 놓치지 않는 법, 던전 부산물로 만든 커피머신을 더 효율적으로 쓰는 법, 오븐 트레이를 어떻게 활용해야 가장 효율이 좋은지 등.

스윗박스 777호점에 당장 필요한 것들을 전수하러 가는 것뿐이었다.

명목상은 그렇다는 소리고.

실상은 중앙 카페 주요 직원들과 스윗박스 직원들 사이에 친분을 쌓고, 777호점 직원들을 시작으로 중앙 카페 레시피를 암암리에 전파하여 자연스럽게 인수 절차까지 밟게 하려는 이유안의 탄탄한 계략이 있었다.

"저 아무것도 몰라요, 사장님."

그런데 이 매니저가 순진한 척 고개를 갸웃거리며 시치미를 뗀다.

눈치 빠른 거야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아무런 언질도 안 주었는데···.

"혹시 손수혜 기자님한테 뭐 들은 건 아니죠?"

"둘이서 비밀 이야기라도 나누셨나 봐요. 저는 정말 들은 거 하나도 없어요, 사장님."

"······그럼 다행입니다."

정원이 거짓말하는 타입은 아니었으니, 손 기자가 유안의 인수 계획을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닌 것은 정말 아닐 테다.

순전히 제 촉으로 감을 잡은 거겠지.

서정원은 A급 헌터라서 그런지 이런 동물적인 감각에 뛰어날 때가 있었···, 많았다.

유안 입장에서는 정원이 중앙 카페의 아군이라 정말 다행이었다.

스윗박스 직원이기라도 했으면···.

'으, 끔찍한 상상은 하지 말자.'

이유안은 팔뚝을 매만지며 시간을 확인했다.

슬슬 올 때가 됐는데.

"몇 시까지 오기로 하셨는데요?"

"···눈치 진짜 빠르십니다. 정원 씨, 사실 사람 아니죠."

"아까부터 자꾸 시계 보셨잖아요. 관심 있게 지켜보면 당연히 알 수밖에 없어요, 사장님."

유안은 이제 정원에게 무엇이든 숨기지 않기로 다짐하고 차창 너머를 가리켰다.

멀리서 분홍 앞치마를 입은 인영이 우당탕 달려오고 있었다.

'잠깐. 왜 저걸 입었어?'

저 복장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이유안이 기겁했다.

"혹시··· 스윗박스 앞치마를··· 입고 계신, 저··· 분이 우리 일행인 걸까요?"

서정원도 놀랐기는 마찬가지인지 평소와 다르게 말 중간중간 호흡이 길었다.

솔루션

부정하고 싶었으나 현실이었다.

유안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맞습니다."

"신입 중에 한 분이네요. 얼굴 기억해요."

"예···."

서정원은 배움의 속도가 유독 빠르던 신입 직원을 기억하고 있었다.

홍소라와 방재이가 몇 번이나 칭찬하며 눈을 빛내곤 했다.

저··· 스윗박스 전용 앞치마 입은 직원을.

"명주 씨, 일단 차에 타시죠."

운전석 쪽 창문을 살짝 내린 유안이 말했다.

배달 지점에서 부야베스를 먹으며 돈독해진 알바생과 사장님의 관계였다.

김명주는 꼬리라도 흔들 기세로 반가워하며 차에 올라탔다.

"매니저님까지 뵙게 될 줄은 몰랐어요! 장소가 여기만 아니었어도 더 행복했을 텐데. ···거지 같은 스윗박스."

말 끝마다 중얼중얼 스윗박스 욕을 붙이는 습관은 버리지 못했나 보다.

그러면서 스윗박스 유니폼인 앞치마를 버리지 않았다는 게 의외였다.

"앞치마는··· 왜 입고 오셨습니까?"

침착하게 가장 궁금했던 것부터 묻자 명주가 눈동자를 데록데록 굴리며 대답했다.

"네? 스윗박스 가서 할 일 있다면서요···. 그래서 입고 온 건데요!"

아무래도 777호점 직원들 일손을 돕는 개념으로 이해한 모양이다.

"우리는 그런 역할로 온 게 아닙니다. 정원 씨랑 명주 씨는 따로 해주셔야 할 일이 있어서··· 일단 그것부터 벗읍시다."

"네!"

김명주는 냉큼 유안의 말을 듣고 스윗박스 앞치마를 북북 찢었다.

벗는 게 아니라 찢어버렸다.

애초에 찢어져 있던 앞치마를 얼기설기 바늘로 꿰맨 것이었는지 결대로 잘 찢어졌다.

'스윗박스 퇴사하고 화나서 찢어버렸던 거였구나.'

유안은 이제 명주가 앞치마를 아직 갖고 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갈기갈기 찢긴 앞치마를 보며 매일 통쾌함이라도 느낀 모양이다.

그 정도로 스윗박스를 싫어하는 사람인데 다시 여기까지 부른 게 미안해졌다.

"음, 명주 씨. 스윗박스 방문하기 좀 그러면 지금 돌아가셔도 됩니다."

"아니에요! 재입사만 아니면 뭐든 괜찮아요! 매니저님이랑 제가 무슨 일 하면 되는지 알려주세요, 사장님."

명주가 운전석을 붙잡고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그 모습이 파양당하기 직전의 반려동물 같아서 유안은 멋쩍어졌다.

정말 스윗박스에 버리려고 한 것도 아닌데, 명주의 태도 때문에 괜히 나쁜 주인이 된 것 같았다.

"일단 이 중에 하나 골라보세요."

유안은 인벤토리에서 외형 변경 아이템 삼 종 세트를 꺼냈다.

세 개를 함께 착용하면 상급 헌터의 눈까지 속일 수 있지만, 지금은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었다.

스윗박스 777호점의 직원들은 전부 비각성자라고 했으니 그들에게만 들키지 않으면 된다.

서정원이 반지를 골랐고, 김명주가 귀걸이를 선택했다.

이유안은 자연스럽게 남은 목걸이를 차지하게 되었다.

"끼워주세요, 사장님."

"···정원 씨, 기청해랑 놀지 마십시오."

"하하, 들켰네요."

그러면서도 서정원은 손을 치우지 않았다.

유안은 어쩌다 직원들이 죄다 기청해화 됐을까 한숨 쉬며 정원의 왼손 약지에 반지를 끼워주었다.

그 대가로 서정원도 이유안이 목걸이 차는 것을 도왔다.

"사이 좋네요, 두 분!"

씩씩하게 혼자서 귀걸이를 착용한 김명주가 쾌활하게 말했다.

"우리 얼굴 지금 어떤가요? 명주 씨가 확인해주셔야 정확합니다."

셋 중 유일한 비각성자가 김명주였다.

유안이나 정원이 아이템 적용 여부를 확인하려고 해 봤자 소용이 없었다.

"앗, 아이템 효과 짱이에요! 진짜 누군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그다지 즐겁지는 않네요···."

"명주 씨 얼굴도 거울로 한 번 보시고요."

"네에! 헐··· 헐! 제 얼굴 완전 맘에 들어요!"

김명주는 아이템으로 변한 자신의 얼굴에 반하기라도 했는지 뺨 여기저기를 매만졌다.

유안이나 정원의 눈에는 그냥 평범한 김명주가 평범하게··· 제 얼굴을 쓰다듬는 것으로만 보였다.

"일 잘 끝나면 아이템 드리겠습니다."

"으악, 너무 좋아요! 사장님 최고!"

이유안은 기청해에게 빼앗듯 빌린 아이템으로 후하게 인심을 썼다.

*

스윗박스 777호점에는 여전히 사람이 많아서 웨이팅만 한 시간을 했다.

안쪽에 솔루션 직원으로 들어가 있던 홍소라가 특혜를 주지 않았으면 세 시간은 더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으··· 고작 스윗박스 방문하겠다고 이렇게까지 줄을 서다니. 그냥 중앙 카페 방문하면 될걸 가지고."

"게이트 근처라서 번화가보다는 접근성이 떨어지긴 하니까요."

서정원은 아까부터 김명주의 스윗박스 뒷담에 다정하게 응해주고 있었다.

들어주는 사람이 생겨서 신난 명주는 777호점에 입장하는 순간까지도 입을 쉬지 않았다.

"어서오세요! 달콤한 즐거움, 스윗박스입니다!"

"으··· 싫다······. PTSD 올 것 같아요. 우리 얼른 앉아요."

명주는 스윗박스를 욕하면서도 자리로 가는 길에 있는 쓰레기들을 본능적으로 치웠다.

착착착, 손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빨랐다!

"으악! 또 이러네, 또!"

"······."

무의식이 지배하는 습관이란 정말 무서운 것이었다.

유안은 명주가 얼른 스윗박스에서 벗어날 수 있길 기원하며 자리에 앉았다.

"으으··· 두 분 뭐 드실래요? 오늘의 추천 메뉴는···, 하이씨······."

"명주 씨, 여기서 쉬고 계십시오. 정원 씨랑 제가 주문하고 오겠습니다."

김명주의 움직임을 최소화시키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유안은 정원을 데리고 카운터 쪽에 줄을 섰다.

이곳도 줄이 길기는 마찬가지였으나 메뉴를 고르며 시간을 보내기에는 괜찮았다.

"시즌 메뉴는 전부 시킬까요, 사장님?"

"좋습니다. 우리 카페에서 파는 것도 주문해 봅시다."

홍소라와 방재이가 주방에 투입되었으니 맛은 보나마나 괜찮겠지만.

"주문하시겠어요?"

지친 표정의 카운터 직원이 유안에게 물었다.

메뉴 이름을 하나하나 읊었더니 직원의 손이 점차 빨라졌다.

"그리고 조각 케이크도 종류별로 하나씩 부탁합니다."

"죄송합니다, 손님. 중앙 카페 콜라보 제품은 1인당 하나씩만···."

카운터 직원은 유안의 주문을 자연스럽게 거절하려고 했다.

하지만 곧 주방 문을 열고 등장한 홍소라 때문에 말을 멈추었다.

"앗, 홍 프로님. 무슨 일이신가요?"

홍 프로···.

유안은 이곳이 카페인지 중앙지검인지 잠시 헷갈렸다.

홍소라가 역할에 과몰입한 것 같았다.

"제, 제가 나왔다고 손님 주문 받다 멈추면 어떡해유···!"

중앙지검에서 요리 프로그램 스튜디오 됐다.

갑자기 이상한 말투를 쓰기 시작한 홍소라는 꽤 진중하게 말했다.

"주, 주방에··· 제가 전수한 비법대로만 만들면 시간이 절약되니까 두 배는 빠르게 만들 수 있어유···. 지, 지금 케이크 물량도 채워놨으니까 걱정 말고 주문 받아유···!"

소라의 말투 때문에 이유안은 웃음을 꾹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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