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9화 (119/137)

'너희도 갑자기 노예 한 명 생겨 봐! 얼마나 당황스러운데.'

제 일 아니라고 하하호호 웃어대는 친구들이 오늘따라 무척 얄미웠다.

*

"푸, 읍···."

"큭···."

"······흡."

"웃지 마시죠?"

유안이 제법 사납게 경고했으나 본점 직원들은 입꼬리를 씰룩씰룩 가만 두지 못했다.

'그래···. 웃어라, 웃어.'

그냥 포기하고 고개를 홱 돌렸더니 홍소라의 웃음보부터 팡 터져서 다른 직원에게도 전염되었다.

강남점에 출근하기 전 본점에 놀러 온 셀라도 킥킥거리며 유안의 머리를 꼬옥 안았다.

"유안, 이제 사장님 아니고 주인님이야?"

"이상한 말 하지 마, 셀라."

"이번에 스윗박스에서 일하던 사람들 많이 들어왔다며. 그럼 걔들도 다 똑같은 거 아냐?"

"···끔찍한 소리 마."

"주인님~."

진짜 짜증난다.

유안은 자꾸 엉겨붙는 셀라를 밀어내려고 부질없는 저항을 했다.

탄탄한 S급 몸은 꼼짝도 안 했다.

'더럽고 치사한 등급···.'

각성 직후에나 했던 생각을 다시 하며, 유안은 셀라의 손등을 손톱으로 꼬집었다.

그래도 자국 정도는 남았다.

"근데 소라랑 재이, 신입 알바생들 교육시킬 때 봤을 거 아냐. 그때는 몰랐어?"

셀라가 유안을 인형처럼 안고 흔들다가 뜻밖의 정곡을 찔렀다.

그렇다.

신입 교육은 홍소라와 방재이가 맡았다.

그때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면 이 사달까지 나지는 않았을 텐데.

"어, 어··· 일 잘하고··· 마, 말도 한 번에 알아듣고··· 좋던데요···?"

"······버터 핫 초콜릿 레시피를 한 번에 외웠습니다."

"좋은 조교들을 뒀네, 유안~."

얘는 출근 안 하나?

유안은 헌터 디바이스를 확인하고 아직 셀라의 출근까지 두 시간이나 남은 것에 망연자실했다.

"그런데 스윗박스에서 그만한 인력이 한꺼번에 빠졌으면 타격이 컸을 텐데요. 따로 기별은 없는 게 이상하네요, 사장님."

"기, 기사 같은 것도 안 났어요···!"

그건 확실히 이상했다.

배달 지점의 노예···, 신입 알바생도 2년이나 일한 경력자였고, 이번에 뽑은 신입 다수가 그랬다.

중앙 카페 입장에서는 운 좋게 경력 있는 신입이 와르르 생긴 것이지만, 스윗박스 측은 비상일 거다.

'중앙 카페에서 정원 씨, 소라 씨, 재이 씨가 한꺼번에 퇴사하는 거랑 비슷한 느낌일까.'

상상도 하기 싫었다!

유안은 몸서리치며 셀라의 품에서 드디어 벗어났다.

갈 곳이 생겼다.

"직접 확인하고 와야겠습니다."

스윗박스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납품 계약을 맺은 상대이고, 무엇보다 중앙 카페에서 꿀꺽하기도 전에 상해버리면 곤란했다.

스윗박스는 계속 승승장구하며 해외 지점을 늘려가다가 곱게 중앙 카페로 인수되어야 했다.

*

스윗박스 777호점으로 출발하기 전, 유안은 몸단장부터 새롭게 했다.

정체를 들키면 안 되니 기청해에게 외형 변경 아이템도 하나 뜯었, ···빌렸다.

함께 가 주겠다는 직원들의 마음을 사양하고 홀로 차를 몰았다.

'진짜 번화가에 있네.'

신입 알바생이 2년간 몸 담았던 스윗박스 777호점은 딱 봐도 유동인구 많을 것 같은 대로변에 있었다.

3층으로 된 카페 건물이 분홍색으로 반짝반짝 빛나니 멀리서도 시선을 확 끌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내부로 들어가자 단내음이 확 끼쳤다.

'응···?'

커피 냄새도 아니고 단 냄새가, 휘핑 크림으로 거품 목욕을 하는 수준의 단 냄새가 공기 중에 폴폴 휘날리고 있었다.

"어머, 어머, 저거 봐. 이 집 사장인가 봐."

공교롭게도 이유안이 들어서자마자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도둑이 제 발 저린 유안은 모자를 좀 더 푹 눌러썼다.

그러나 손님들이 말하는 사장은 유안이 아니었다.

"사장 아니고 대표, 대표. 성여진 대표잖아."

"인터넷 뉴스에서 본 적 있어!"

"무슨 일이래?"

"알바생이 화내는 거 같은데."

"그럼 무조건 대표가 잘못한 거네!"

손님들 사이에서 빠르게 결론이 났다.

"좀 지나가겠습니다."

유안은 우글우글한 인파를 뚫고 사건의 중심으로 들어갔다.

일렬로 반듯하게 선 알바생 무리 앞에 스윗박스 음료 여러 잔이 쏟아져 있었다.

테이크아웃 잔에 담긴 것이라 유리가 깨지지는 않아서 다행이었다.

달콤한 냄새의 근원지도 바로 거기였다.

알바생들에게 대항하듯 마주 선 성여진은 골치가 아픈 표정이었다.

알바생 대표, 그러니까 777호점 매니저가 쩌렁쩌렁 외쳤다.

"이러니까 오래 일한 직원들이 다 중앙 카페로 넘어가죠! 계속 이런 식이면 저도 스윗박스에서 일 못해요!"

중앙 카페 이야기가 나오자 유안이 움찔했다.

신경질적으로 뒷목을 매만지던 성여진이 매니저 앞으로 훅 다가갔다.

미끌!

너무 화가 나서 앞뒤 재지 않고 달려들었는지 성 대표는 그대로 휘핑 크림을 밟고 넘어지려 했다.

'뇌진탕은 안 돼!'

유안은 E급 헌터의 순발력을 십분 활용해 성여진의 허리를 낚아챘다.

자세 탓에 시선을 끌기는 했으나 여진이 넘어지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뭐야?!"

그래도 위기에서 구해준 사람한테는 성질 좀 죽여야 하는 거 아닌가.

유안은 외형 변경 아이템 효과를 잠깐 해제하여 제 정체를 밝혔다.

버둥대던 성 대표가 깜짝 놀랐는지 순식간에 얌전해진다.

"지금부터 소리 차단, 시야 차단, 접근 차단 아이템을 차례로 쓸 겁니다. 지속 시간 10분이니까 그 안에 해결 봐야 해요. 너무 큰 목소리는 새어나갈 수도 있으니까 아이템 믿고 막무가내로 소리지르지는 마시고요."

"뭐··· 뭐요···?"

성여진을 이해시킬 시간은 없다.

유안은 인벤토리에서 차단 아이템을 꺼내 차례로 사용했다.

성 대표와 이유안, 그리고 스윗박스 직원들 주변으로 둥근 막 같은 것이 쳐졌다.

이제 바깥에서는 안쪽을 들여다 볼 수 없다.

"처음 뵙겠습니다. 중앙 카페 사장입니다."

유안이 외형 변경 아이템을 해제하며 스윗박스 직원들과 눈을 마주쳤다.

이 모든 일은··· 중앙 카페가 너무 훌륭한 탓에 벌어진 것이니 책임지고 해결할 필요가 있었다.

777호점

스윗박스 직원들은 역시나 상황 파악이 빨랐다.

이유안이 얼굴과 정체를 밝히자 순식간에 어질러진 바닥을 정리하기도 했다.

이제 미끄러질 일은 없다.

"주, 주, 중앙 카페 사장님이 여기까지는 무슨 일로···? 혹시 우리 납품까지 취소당하는 거예요? 물량 받으면 하나씩 빼돌리는 게 직장 생활 유일한 낙이었는데!"

스윗박스 777호점 매니저가 충격적인 진실을 고백했다.

그래도 중앙 카페 음식을 어디 가져다 판 건 아니고 자신에게 주는 선물로 퇴근하고 집 가서 맛있게 먹었다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납품 취소하려고 온 건 아닙니다."

유안이 달달 떠는 스윗박스 직원들을 진정시키며 성여진 대표도 똑바로 일으켜 세웠다.

바닥이 닦아지기 전에 놓아주면 또 넘어질 것 같아서 여태 붙잡고 있었더니 팔이 저리다.

여진은 넘어질 뻔한 적은 없다는 듯 도도하게 팔짱 끼고 서서 권력자 포즈를 취했다.

'상황이 이 지경인데.'

이유안은 스윗박스 직원들의 표정이 더 일그러지는 걸 보다가 여진 앞을 막아섰다.

스윗박스 임원진 회의 때라면 모를까, 노사 갈등 상황에서 성여진 대표만큼 도움 안 되는 사람도 없다.

"전 스윗박스 직원에게 얘기를 대충 듣긴 했습니다."

배달 지점의 알바생 말고도 스윗박스를 관두고 중앙 카페에 입사한 사람이 수두룩하다고 했다.

중앙 카페가 노리고 그런 것은 아니지만, 공교롭게도 배달 오픈 시기가 겹쳐 직원을 대거 충원하고 있던 게 화근이었다.

중앙 카페에서 아무리 힘들 일을 시켜도 스윗박스보다는 나을 거라고 판단한 경력자들이 우르르 이력서를 낸 것이다.

"뭐야! 알고 있었단 말이에요? 이 사장, 당신 일부러 스윗박스를 망하게 하려고 이딴 짓을 꾸민··· 읍, 웁웁!"

"성여진 대표님,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조용히 계시죠. 계속 떠들면 아예 차단막 밖으로 내쫓을 겁니다. 그리고 중앙 카페에도 방문 못하게 할 거예요."

유안은 여진의 입에 고원 땅콩 쿠키를 꾸역꾸역 집어넣으며 말했다.

덜 딱딱한 걸 주고 싶지만 하필 손에 잡힌 게 이거였다.

전부 씹어 삼키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맛있으니까 뱉지는 못하겠지.'

그 예상대로 성여진은 분노로 이글이글 불타는 눈을 하고서도 쿠키를 열심히 씹고 있었다.

동물병원 가서 으르렁대면서도 간식은 잘 받아먹는 고양이 같았다.

무심코 여진의 머리를 쓰다듬을 뻔한 유안은 손을 거두고 다시 직원들을 보았다.

"헐··· 대표님이 조련당하고 있어······."

"이럴수가!"

"드디어 상위 포식자가 나타나다니, 이런 날이 오긴 오는구나!"

유안은 깨달았다.

스윗박스 직원들은 마음이 완전히 떠났다.

그런 게 아니고서야 대표가 눈앞에서 입막음을 당하는데 다들 이렇게 초롱초롱한 눈빛만 보낼 리가 없었다.

"제가 듣기로는 777호점이 너무 바빠져서 파트타이머를 몇 명 충원했다고 하던데요."

"아, 하기야 했죠! 일주일도 못 채우고 다 도망가서 그렇지···."

"근데 도망갈만 했어요. 저도 도망가고 싶은데 남겨질 동료들한테 미안해서 남은 거니까."

"오픈하고 마감할 때까지 의자에 앉을 틈이 하나도 없어요! 직원 휴게실 있으면 뭐 해요, 아무도 못 쉬니까 그냥 창고로만 쓰이는데!"

이유안이 대화의 물꼬를 트자 기다렸다는 듯 불만이 우르르 속출했다.

"프로모션 때도 이것보다는 안 심했어요!"

"맞아요. 저도 중앙 카페 음식 엄청 좋아하긴 하는데··· 그래도 이렇게 사는 건 아니다 싶어서 차라리 납품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많아요."

중앙 카페 음식 때문에 손님이 이렇게 몰린 것이니 그런 생각이 들 법도 하다.

유안 역시 울부짖는 스윗박스 알바생들을 보니 마음이 약해졌다.

정말 이들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납품을 그만두고···.

'최대한 빨리 중앙 카페에서 인수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도 당장 아무것도 모르고 쿠키나 먹는 고양이 앞에서 그런 말을 상의 없이 꺼낼 수는 없으니, 유안은 차선책으로 다른 방안을 제시했다.

이유안의 입이 열리는 순간 스윗박스의 기적이 일어나듯 직원들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

중앙 카페 앞, 대형 주방 건물 옆에 임시로 건물이 세워졌다.

조립식으로 뚝딱뚝딱 만든 것치곤 모습이 그럴싸했다.

강해민과 김주현의 합작품이었다.

"꿈을 너무 빨리 이룬 것 같은데요, 이 사장님."

꼭대기에 [만물 공방]이라는 간판을 달고 내려온 주현이 씨익 웃었다.

"···공방 건물 짓는 게 꿈이셨습니까?"

금시초문에 유안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했다.

"장인이라면 자기 공방 건물 크게 갖는 걸 목표로 살아가는 게 흔한 일이죠."

뭐 그리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 주현이 털털하게 웃으며 유안에게 어깨동무했다.

"진작 말하지 그러셨습니까···."

"왜요. 말하면 벌써 지어주려고 하셨어요?"

"지금이라도 가건물 치우고 해민이한테 정식으로 지어달라고···."

"급한 불부터 끄고 해요. 기껏 조립한 거 다시 해체하기도 아쉽고요. 무엇보다 해민 씨 엄청 바쁘잖아요! 자연스럽게 일 시키려고 하시네, 우리 사장님."

주현은 본점 건물 3층에서 혼자 집중하여 작업하는 것도 충분히 좋았다며 이유안의 놀란 가슴을 달랬다.

'김주현 씨한테 너무 신경을 못 써줬어.'

그렇다고 유안의 죄책감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주현이 아무런 불만 없이 공방 일에만 집중하는 사람이라서 전혀 몰랐다.

대형 공방 갖고 싶으면 5층짜리 건물도 세워줄 수 있는데 왜 말을 안 했어!

'아니, 말 안 한다고 몰랐던 내 잘못이지······.'

지금부터라도 잘해주기로 했다.

주현은 해민의 과로가 걱정된다며 일 시키지 말라고 했지만, 안 보는 틈을 타서 슬쩍 문자 하나를 넣었다.

"민희가 곧 사람들 데리고 도착한대요. 일손이 모자라지는 않을 것 같아요. 저번에 열차 만들 때 도와주셨던 분들인데, 웬만한 하급 각성자보다 힘을 잘 쓰시거든요!"

조립식 건물 안으로 들어간 주현이 어디에 어떤 물건을 배치할지 가늠하며 말했다.

김주현의 말대로 급하게 사람을 구하기 위해 공고를 내지 않아도 되는 건 다행이었다.

카페 알바생이라면 모를까, 수준급 기술이 필요한 공방 장인을 뽑을 때 날림으로 후다닥 구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 사장님, 필요한 물건이 뭐랬죠?"

"상세 목록은 주현 씨 디바이스로 보내드렸습니다. 일단 커피머신이 아주 많이 필요해요."

"얼마나 많이요?"

전국의 스윗박스 지점이 1500개를 넘어간다.

인수가 진행되는 순간 그곳들의 머신부터 교체해야 했다.

중앙 카페에서 판매하는 음료를 제조하려면 던전 부산물로 만든 기계가 필수였다.

"일단은 커피머신과 주방 용품을 종류별로 하나씩 만들어 주세요."

"아, 777호점에 배치할 거 맞죠?"

"예."

처음부터 1500개를 뚝딱 만들라고 할 수는 없으니, 차근차근 해나갈 생각이었다.

"그 지점 직원들이 진짜 좋아하겠네요. 기계만 바꿔도 효율 엄청 올라가거든요."

"주현 씨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하하, 저도 알죠, 이 사장님!"

김주현이 만든 커피머신과 주방 용품이 있었기에 중앙 카페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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