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물 최종 점검 때문에 먼저 와 있던 강해민이 유안을 반겼다.
"···멀미했냐?"
"응."
"찬물 줘?"
"응···."
이유안은 해민이 건네는 물을 받아 마시며 메스꺼운 속을 달랬다.
시원한 게 들어가니 그래도 살 것 같았다.
"···해민아, 너 차 있지."
"어, 저기 있는데 왜? 필요하면 가져."
강해민이 냉큼 차키를 넘기려 했다.
일반 차량이라서 소유권을 양도하는 데 일말의 아쉬움도 없었다.
그러나 유안은 친구 차를 빼앗고 싶은 게 아니었다.
"이따··· 나 좀 본점까지 태워다 주라."
오토바이를 한 번만 더 탔다가는 멀미 때문에 저승사자와 상견례하게 될 것 같았다.
거친 운전 때문에 속이 열두 번은 뒤집어졌다.
뒤에서 욱욱거리는 소리를 분명 들었을 텐데, 셀라의 친구는 멈추지 않았다.
"태워다 주는 거야 어렵지 않은데··· 그, 뭐, 우리 둘만 타고 가냐?"
"해민이 너랑 같이 온 사람들 없어?"
"없어. 혼자 왔다."
저쪽에 옹기종기 모인 해강특수건설 사람들이 보이는데···.
그래도 차가 여러 대이니 알아서 잘 돌아갈 것 같았다.
유안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물 한 병을 다 비웠다.
강해민의 얼굴이 발그레해지건 말건 멀미를 달래는 게 우선이었다.
"마이 스윗 홈~!"
저쪽에서는 셀라의 친구가 건물을 향해 팔을 벌리고 있었다.
건물 준다는 소리까지는 안 했는데 이미 제 집처럼 대한다.
유안은 피식 웃고 친구의 옆구리를 물병 끝으로 쿡쿡 찔렀다.
"네가 원하던 대형 수조도 넣었으니까 들어가 봐. 아쿠아리움에 있는 것보다는 작겠지만."
"와! 너무 좋아!"
셀라의 친구가 유안은 콱 끌어안고 건물로 들어갔다.
일반 가정집처럼 꾸며진 내부에 큼직한 수조 몇 개가 보였다.
이미 물이 채워진 그 안에서 던전산 물고기들이 유유자적 헤엄하고 있었다.
"사장님은 뭘로 먹고 싶어?"
"···뭐?"
"저기 봐. 꼬리 샛노란 놈. 맛있어 보이지. 저걸로 할까?"
"먹으려고··· 넣어달라고 한 거였어?"
관상용이 아니었다니.
유안은 적잖은 충격을 받고 셀라의 친구를 야만인 대하듯 노려보았다.
"부야베스 해줄게~."
사장님이 째려보거나 말거나 B급 헌터는 맨손으로 생선을 붙잡았다.
그리고 집에 딸린 주방 쪽으로 건들건들 걸어 들어갔다.
'요리할 줄 아는 건 좀 의외네.'
생각보다 괜찮은 실력자였다.
유안은 요리 삼매경에 빠진 셀라의 친구 대신 건물을 마저 확인하고 바깥으로 나왔다.
해강특수건설 사람들끼리 모여 일 얘기를 하고 있었다.
"여기는 이제 됐고, 다른 지점들 마무리 점검만 끝내면 이번 프로젝트도 끝입니다."
강해민이 그 중심에서 앞으로 할 일을 짚어주었다.
유안은 친구의 일 타임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다가갔다.
"건물 잘 확인했어. 안쪽도 잘 꾸며놨더라. 여기 있는 건 주유소지?"
"어. 그리고 저건··· 네가 이번에 부탁했던 주방 건물."
해민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 네모 반듯한 건물 한 채가 있었다.
본점 앞에 있는 것만큼 큰 주방은 아니지만, 저기서도 어느 정도 대량 생산은 가능할 것 같았다.
"창고로 쓸 수 있게 지하실도 만들어 놨다."
기특해라.
유안은 해민에게 버터 핫 초콜릿 한 잔을 선사하고 주방 건물을 확인하러 걸어갔다.
"아, 지금 안쪽에 사람 있다."
"새로 뽑은 알바생이지?"
"어··· 넓다고 좋아하더라."
이번에 카페 경력자들을 많이 뽑아서 배달 지점의 주방을 곧바로 채울 수 있었다.
이곳에 배치된 인력은 마침 근처에 본가도 있어서 출퇴근이 수월하다며 기뻐했다.
오늘은 알바생도 앞으로 쓰게 될 주방을 최종 점검하러 방문한 것이다.
'면접 때 보고 바빠서 제대로 만난 적이 없으니까, 오늘 식사라도 같이 하면 되겠다.'
유안은 알바생과 친해질 생각으로 얼굴에 미소를 장전하고 주방 건물 문을 열었다.
그러자 안쪽에서 커피 머신을 조작하던 신입 알바생이 습관적으로 꾀꼬리 같은 목소리를 뽐냈다.
"어서오세요! 달콤한 즐거움··· 아차······."
어디서 많이 들어본 리듬감의 인삿말에 유안도 어깨를 흠칫 떨며 놀랐다.
부야베스와 주인님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지?'
유안은 제 귓등을 손톱으로 긁적이며 강해민 쪽을 보았다.
해민 역시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제대로 들었나 보네.'
멀미 때문에 환청을 들은 건 아니었다.
그러니까··· 저 신입 알바생은 스윗박스에서 넘어온 것이 맞다!
'왜 그만뒀지.'
이유안은 신입 알바생의 이력서를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분명 경력란에 2년이라고 적혀 있던 것 같은데, 대기업인 스윗박스의 특성상 그 정도 일했으면 복지나 월급이 꽤 괜찮았을 것이다.
게다가 저 알바생은 각성자도 아니니 중앙 카페보다는 스윗박스에서 일하는 게 훨씬···.
"실수예요, 사장님! 입버릇이 돼서··· 아, 진짜 실수예요!"
알바생은 울먹이며 자신의 머리칼을 쥐어뜯으려 했다.
커피머신은 알바생 마음도 모르고 위이잉 돌아가며 뜨끈한 에스프레소를 쏟아냈다.
"···스윗박스에서 일하다 오신 분인 줄은 몰랐습니다."
"으악! 죄송해요!"
유안은 사실적시를 했을 뿐인데 알바생이 무릎이라도 꿇을 기세로 휘청인다.
신입 알바생은 자신이 잘리는 게 아닌가 걱정하며 비틀비틀 이유안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덥석, 팔을 붙잡고 간절히 부탁했다.
"자르지만 말아주세요. 저 진짜··· 그 지옥으로 다시 가고 싶지는 않아요! 아, 혹시 제가 뭐 스파이··· 산업 스파이? 그런 걸로 의심되는 거면 신상 다 털어가셔도 돼요! 제 SNS 계정 보여드릴까요? 스윗박스 욕밖에 없긴 한데 이거라도 증거가 된다면 얼마든지······."
"아뇨, 됐습니다."
유안은 이상한 쪽으로 흥분해서 열을 올리는 알바생의 어깨를 턱 붙잡았다.
진정시킬 필요가 있었다.
분명 커피머신 앞에서 커피 내릴 때는 이런 이미지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식사 아직이죠?"
"네? 네, 네?"
"배 안 고프십니까."
"어··· 네! 슬슬 출출하긴 한··· 아니, 밥 안 먹어도 돼요! 안 먹고 일할 수 있어요!"
"아니, 그게 아니고···."
과장 좀 보태서 중앙 카페 직원들과 단골 손님들의 엉뚱함을 모두 합친 것보다 눈앞의 신입 알바생이 열 배는 더 엉뚱했다.
알바생의 생각이 도대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어서 유안은 마른세수했다.
돌려 말하지 말고 직설적으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신입 알바생에게는 질문보다 명령이 효과적이겠다.
"주방 정리하고 나오시죠. 같이 밥이나 먹읍시다."
"어어······, 네, 네!"
그래도 동작 하나는 정말 빨랐다.
신입이 이리저리 샥샥 움직이니 주방이 금세 말끔해졌다.
몇 분 정도 걸릴 것을 예상하고 밖에 나가 기다리려던 건데, 정리를 초 단위로 하니 그럴 필요도 없었다.
"어디로 가나요? 아, 제가 아직 퇴직금 받기 전이라 너무 비싼 곳은 좀 부담스러운데···."
별 이상한 걱정을 다 한다.
유안은 대답 없이 성큼성큼 걸어서 옆 건물로 들어갔다.
셀라의 친구가 벌써 요리를 완성했는지 짭짤하니 군침 도는 냄새가 집 전체에 풍기고 있었다.
"사장님~ 이것 좀 도와줘!"
"응, 금방 갈게."
그릇에 옮겨 담는데 일손이 부족한 모양이었다.
이유안이 자연스럽게 대답하고 다가가려는데 알바생이 선수를 쳤다.
달리기 관련 스킬이 있는 헌터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속도였다.
총알처럼 달려나간 알바생이 빠른 손놀림으로 요리를 착착 옮겨 담았다.
"오··· 대단한데?"
셀라의 친구도 감탄했다.
부끄럽다는 듯 웃은 알바생이 부야베스 그릇 네 개를 한꺼번에 드는 묘기를 부렸다.
스윗박스에서 일할 때는 손님들이 엉망으로 두고 간 트레이를 탑처럼 쌓고 계단도 오르내리곤 했다.
"다치면 어쩌려고··· 조심하세요."
"어··· 네에······."
그런데 당연히 칭찬을 들을 거라 예상한 것과 다르게 중앙 카페 사장님은 인상을 살풋 구겼다.
"앉아 계세요. 나머지는 제가 합니다."
묘기에 가까운 음식 세팅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듯 의자를 빼고 자신을 앉히기까지 했다.
왜··· 왜 싫어하시지!
빠릿빠릿하고 눈치 좋게 일하면 좋아하던데, 보통.
"해민아."
"어어, 갈게."
유안은 요리하느라 고생한 셀라의 친구까지 자리에 앉히고 강해민과 둘이서 식탁 위를 채워가기 시작했다.
신입 알바생이 움직이는 것보다는 훨씬 느렸지만 꼼꼼하고 진중한 상차림이었다.
"밥 있어야겠지?"
"냉장고에 즉석밥 있던데, 그거라도 꺼낼까?"
"응? 이거 먹으면 되는데."
이유안이 인벤토리에서 던전산 쌀로 지은 밥을 한 솥 꺼냈다.
갓 지었을 때의 온도가 유지되고 있어서 데울 필요도 없이 따뜻했다.
신입 알바생은 제가 일하지 않아도 뜨끈하고 맛있는 것들이 화려하게 차려지는 모습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여기··· 천국인가?'
*
수조 속 물고기들이 지켜보는 곳에서 생선 요리를 먹는다는 게 조금 미안했지만, 그래도 식사는 완벽하게 끝났다.
건물 안에 주방을 꼭 만들어달라고 한 이유가 있었다.
'요리가 취미였구나.'
유럽식 가정식에 통달한 셀라 친구는 앞으로도 종종 맛있는 걸 해주겠다며 자주 놀러오라고 유안을 꼬드겼다.
오토바이만 아니면 일주일에 한 번도 올 수 있었다.
"설거지는! 제가 할게요!"
"앉으시죠."
"······네에."
그리고 밥을 먹는 동안 잡다한 이야기를 좀 나눈 덕에 유안은 신입 알바생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이 시대에 이런 단어 써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알바생은 노예 근성이 심했다.
성인이 된 후에 계속 서비스업에 종사한 탓에 누군가를 대접하는 일이 지나치게 몸에 배인 탓이었다.
환경 때문에 성격이 변한 것을 하루아침에 바꾸라고 할 수도 없으니, 유안은 그냥 꾸준하게 변화시키기로 했다.
일단은 설거지 안 시키고 가만히 앉아서 남이 차려주는 후식이나 받아먹게 만들었다.
"우으··· 으···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됩니다. 가만히 계세요."
"나 설거지 하고 온다."
"오~ 나도 같이!"
설거지에는 강해민과 셀라 친구가 나섰으니 유안은 알바생 감시를 맡았다.
신입은 앉아만 있으려니 좀이 쑤시는지 엉덩이를 자꾸 들썩거렸다.
"케이크랑 쿠키 중에 어떤 거 좋아하십니까?"
"뭐든 다 감사히···."
"제 인벤토리에 디저트만 서른 종류 넘게 있습니다. 전부 먹으라고 하기 전에 빨리 고르세요."
"사장님이 주시는 거라면··· 남기지 않고 먹을 수 있게 노력을······."
말이 안 통했다.
신입 알바생을 체하게 만들 수는 없으니 유안이 직접 몇 가지를 골라 꺼냈다.
미니 베리 사블레와 조각 바움쿠헨, 머랭 쿠키 등이 알바생 앞에 차려졌다.
윤슬의 입에도 쏙 들어갈 만큼 깜찍한 크기의 디저트들이었다.
"허억··· 감사합니다! 진짜 맛있어 보여요! 이 은혜 잊지 않을게요, 사장님!"
유안은 이제 알바생의 저 정도 감탄 추임새는 매끄럽게 흘려보낼 수 있었다.
디저트를 하나씩 입에 넣을 때마다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는 것도··· 정태영을 많이 봐 와서인지 넘어갈 수 있었다.
'태영 씨도 맛있는 거 먹으면 냅다 울려고 했지.'
주변에 선례가 하나라도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이유안은 인벤토리에서 자신이 특히 좋아하는 음료 세 잔을 꺼내 알바생 앞으로 밀어주었다.
할로윈 한정으로 팔았던 펌킨 핫 초콜릿의 호박 모양 마시멜로를 본 알바생이 베시시 웃었다.
"작년 할로윈 프로모션 때 생각나네···. 개같이 힘들어서 사직서만 백 장 썼었는데······. 이제 보니까 다 추억이야! 더러운 추억!"
혼잣말 내용이 심상치 않았지만, 유안은 못 들은 척 웃어 넘겼다.
"스윗박스에 납품되는 것보다 이게 훨씬 맛있는 것 같아요! 사장님이 직접 주셔서 그런가."
"입에 맞으셨다니 다행입니다. 앞으로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뭐든지 말씀하세요."
"아··· 중앙 카페 입사한 게 제 인생에서 제일 잘한 일이에요! 여기에 뼈를 묻을게요!"
중앙 카페가 선산도 아니고··· 뼈까지 묻을 필요는 없는데.
유안은 신입 알바생의 남다른 열정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서 마른 입술만 뻐끔거렸다.
설거지 겸 거품 놀이를 끝내고 온 셀라 친구와 강해민이 어색한 표정의 이유안을 보고 키득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