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0화 (110/137)

아닌 척해도 은근히 끼고 싶었나 보다.

찹쌀떡의 떡 부분은 담백하고 은은한 달콤함이 느껴졌으며, 속에 든 초콜릿에서는 진하고 감미로운 단맛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떡이 모짜렐라 치즈처럼 잘 늘어나서 먹는 내내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잠깐, 잠깐···! 사진 좀 찍을게요···!"

홍소라는 이때다 싶어 헌터그램에 업르드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사, 사장님··· 웃으세요···! 사장님이 주인공인데···!"

소라가 유안에게 바짝 다가서며 말했다.

'왜 내가 주인공이지?'

의문이 들기는 했지만, 중앙 카페의 사장은 일단 찹쌀떡 접시를 들고 성실하게 미소를 지었다.

찰칵, 찰칵, 찰칵!

유안의 전신 컷을 연속으로 찍은 소라가 만족스럽다는 듯 후후 웃었다.

*

"다들 오늘은 대표실 들어가지 마십시오. 중요한 일 있으면 저한테 대신 전하시고요."

"대표님 또 기분 안 좋아요?"

"네."

"요즘 자꾸 저러시네. 무슨 일 있는 거 아니겠죠?"

"높은 확률로 개인사일 겁니다."

성여진 대표의 비서진이 쑥덕거렸다.

예민하고 까칠한 대표를 오래 모신 비서들이라 눈치가 남달랐다.

오늘 아침부터 성 대표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파악한 비서실장이 비상 체제 돌입을 알렸고, 비서진 전체가 대표 눈치를 살살 보기 시작했다.

적어도 오늘 하루는 되도록 근처에 가지 말고 마주치지도 않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

이런 날 대표와 말을 섞었다가는 별것도 아닌 일로 꼬투리를 잡힐 것이다.

"으유··· 일만 잘하면 뭐해."

"성격이 저런데 누가 데리고 살까요."

"평생 혼자 살지 않을까요?"

"큽··· 그건 그래요. 친구도 없잖아요."

"쉿, 다들 목소리 낮추십시오."

비서실장이 주의를 환기시켰다.

대표실과 비서실은 벽을 맞대고 있어서 조금이라도 큰 소리를 내면 성여진 대표가 난리를 친다.

"아유··· 그래도 오늘 외출 일정은 따로 없어서 다행,"

벌컥!

갑자기 열리는 비서실 문에 비서진 전원이 입을 합! 다물었다.

이렇게 노크도 없이 들이닥칠 사람은 한 명뿐이다.

"대표님. 필요한 거라도 있으십니까?"

"키. 특수차량으로."

"목적지 말씀해주시면 제가 모셔다,"

"얼른 줘요. 두 번 말하게 하지 말고."

성여진 대표가 짜증스러운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비서실장은 하는 수 없이 인벤토리에서 특수차량 키 하나를 꺼냈다.

그것을 낚아채듯 가져간 여진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큼성큼 비서실을 나간다.

비서실 문이 다시 쾅! 닫히자 비서실장이 마른세수하며 말했다.

"하···, 오늘 오후 일정은 내일이나 다음주로 전부 미뤄주십시오."

"네, 실장님!"

"또 중앙 카페 가려고 저러는 거겠죠?"

"아마 그럴 겁니다."

대표는 요즘 게이트 근처의 중앙 카페에 자주 들락날락거렸다.

스윗박스의 경쟁 상대가 될 수 없다며 무시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모를 일이다.

"저, 개인적으로 우리 대표님이 중앙 카페 사장님 반의 반 만이라도 닮았으면 좋겠어요."

"맞아요. 헌터그램 사진 올라오는 거 보면 직원들이랑 엄청 친해 보이던데."

"엇, 저도 중앙 카페 헌터그램 팔로잉 했어요!"

"헉, 그럼 다음에 같이 가실래요?"

"좋죠, 좋죠!"

비서실은 중앙 카페 이야기로 금세 화기애애해졌다.

비서실장 역시 중앙 카페와 그 사장에 대한 개인적 호기심이 있었기에 다른 비서들을 나무랄 수 없었다.

성 대표는 중앙 카페가 스윗박스의 경쟁사가 될 수 없다고 확언했지만···.

'그건 모르는 일이지.'

대표만큼이나 스윗박스를 잘 파악하고 있는 비서실장으로서는 중앙 카페의 성장세를 우습게 볼 수 없었다.

*

"아저씨이이이!"

"윤슬, 뛰지 마···!"

이윤슬은 궁중 떡볶이 냄비를 손에 들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아슬아슬한 상태로 미술관에서 본점까지 도도도 달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기겁한 유안이 버선발로 달려 나갔으나 아이는 결국···.

삐끗!

발을 헛디딘 윤슬의 몸이 휘청거리더니 그대로 무너지는가 싶었다.

그런데 차건오가 선물했던 요정 날개 아이템이 빛을 발했다!

팔랑, 파르륵···.

어린이가 넘어지려는 순간 등에 달린 날개가 저절로 움직이며 부상을 막아주었다.

냄비 안의 떡볶이도 가까스로 무사했다.

"히이··· 이거 신기하다!"

윤슬은 자신이 크게 다칠 뻔했다는 것도 모른 채 기분 좋게 날개만 파닥거렸다.

아이에게 빠르게 다가간 서정원이 냄비를 가져갔다.

정원보다 한 발짝 늦게 도착한 유안은 아이의 발목 상태부터 살폈다.

다행히 이상은 없었다.

"뛰지 말라고 했잖아."

안심한 이유안이 짧게 나무라며 윤슬을 꼭 끌어안았다.

"그치마안, 아저씨한테 빨리 자랑하고 싶었단 말야."

"자랑하는 건 좋은데 다치면 속상해."

"으응, 알았어···. 이제 안 뛸게!"

"약속."

"웅, 약속."

비슷한 종류의 구두계약만 여러 번 했으나 유안은 적당히 잔소리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사실 진짜 혼나야 할 건 윤슬이 아니다.

"기청해 씨, 애한테 냄비를 주면 어떡합니까."

"조리하기 전이라서 데일 위험은 없었어."

청해가 변명했으나 유안은 그 말을 콧등으로 들었다.

"어쨌든 기청해 씨 때문에 애가 다칠 뻔했으니 인벤토리에 있는 거 열 개 내놓으시죠."

스무 개쯤 가져가려고 했는데 반으로 깎아줬다.

유안은 뻔뻔하게 손을 내밀어 청해에게 고급 재료 아이템 열 개를 받아내고 만족했다.

'매일 조금씩 털어가야지.'

'기청해의 전재산 갈취'라는 최종 목표 달성을 위해 할부로 야금야금 뜯어갈 생각이었다.

"아저씨이, 근데 나도 대왕 찹쌀떡 먹고 싶어!"

"아. 그거 봤구나, 윤슬."

"우응, 요리 선생님이 보여줬어!"

헌터그램에 올라간 사진을 본 모양이다.

윤슬은 유안의 품에 안긴 채 양손으로 커다란 동그라미를 그렸다.

실제보다 과장이 더해진 크기가 아이의 기대감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유, 윤슬이 건 당연히 남겨놨지···!"

뒤늦게 정문 앞으로 나온 홍소라가 말했다.

제 몫이 있다는 소리에 윤슬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좋아했다.

"그럼 아저씨, 우리 친구들도 많이 많이 부르자! 요리 선생님도 어엄~청 큰 떡볶이 만들었거든!"

"응?"

윤슬이 들고 온 냄비가 요리의 전부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엄청 큰 떡볶이···?'

유안이 흔들리는 동공으로 기청해를 보았다.

그러자 청해가 싱긋 웃으며 제 인벤토리에서 욕조보다 커다란 냄비를 꺼냈다.

안쪽에는 성인 팔뚝 만한 굵기의 밀떡이 기다랗게 똬리를 틀고 있었다.

간장색 국물이 자작한 초대형 궁중 떡볶이는 반조리 상태인지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솔솔 풍겼다.

"이윤슬 어린이가 맛있는 건 크면 클수록 좋다고 해서 만들어 봤어."

"···수십 명은 먹겠는데요."

"친구들 다 부르면 돼!"

어린이가 간단하고 깔끔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 그래도 좀··· 남을 것 같은데···."

홍소라가 머리를 빠트릴 기세로 냄비 속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그러자 기청해가 비밀 이야기를 하듯 속삭였다.

"사실 하나 더 있어."

"기, 길드장 관두고 분식집 하시려고요···?"

"한 종류만 먹으면 물릴 것 같아서 말이야."

기청해가 궁중 떡볶이 냄비를 여유롭게 한 손으로 받쳐 들고 인벤토리에서 빨간 국물 떡볶이 냄비를 꺼냈다.

만백성을 먹일 양이었다.

"···소라 씨, 헌터그램에 게시글 하나만 올립시다. 손님들한테도 나눠줘야 끝낼 수 있겠네요."

"앗, 네, 네에···!"

떡볶이 사진을 두 장 찍은 홍소라가 토독토독 바쁘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

"어? 헌터그램 보세요, 중앙 카페!"

"뭐 새로 올라왔어요? 오늘 신메뉴 나오는 날도 아닌데."

"헐···! 떡볶이 파티 하나 봐요!"

"와, 진짜! 우리도 퇴근하고 가 볼까요?"

"으, 근데 거기서 대표님 만나는 거 아녜요?"

"···그건 좀 싫다."

비서진이 고민에 빠졌다.

그때 비서실장이 나서서 상황을 정리해주었다.

"대표님이 중앙 카페에 가셨어도 저녁까지 머무르진 않으실 겁니다."

웬만해서는 마주칠 일 없다는 소리였다.

비서진이 일제히 환호를 질렀다.

"실장님도 같이 가요!"

"저는 괜찮···. 아, 그래요. 같이 갑시다."

습관적으로 괜찮다고 말하려던 비서실장은 말을 바꾸었다.

이번 기회에 성 대표가 왜 그렇게까지 중앙 카페에 열을 올리는지 확인하면 좋을 것 같았다.

'미래에 경쟁사가 될 수도 있으니 살펴볼 필요는 있지.'

비서실장은 냉철하고 이성적으로 중앙 카페 방문 목적을 정했다.

그러나 아무리 목석 같은 비서실장이라도 비서진이 내민 떡볶이 사진을 보고 입안에 군침이 도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중앙 분식

떡볶이에 이어 튀김, 순대까지 등장했다.

떡, 튀, 순 삼 종 세트는 꼭 함께여야 한다는 정태영의 주장 때문이었다.

오늘도 연락을 받고 쏜살같이 달려온 태영은 당장이라도 훨훨 날아갈 것처럼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튀김 냄새 너무 좋다~!"

서정원이 즉석에서 새우, 오징어, 채소를 척척 튀겨내는 중이었다.

신선한 재료야 늘 구비되어 있으니 만드는 게 어렵지 않았다.

노릇노릇 익은 튀김이 고소한 기름을 촉촉하게 머금은 채 바삭거리는 소리를 냈다.

"우아, 저것도 짱 커!"

그리고 튀김 역시 일반적인 사이즈는 아니었다.

새우튀김 하나가 윤슬의 팔보다 길었다.

"고래랑 상어도 초대할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모든 생명체와 친구가 되고 싶은 어린이는 그 점을 아쉬워했다.

그래도 여기에는 고래와 상어만큼 먹성 좋은 헌터가 있으니 다행이다.

"윤슬, 아-."

"아?"

이유안의 목소리에 윤슬이 무방비하게 입을 벌렸다.

궁중 떡볶이에 들어 있던 당면 가닥 끄트머리가 아이의 입에 쏙 들어갔다.

적당히 식어서 먹기 좋았다.

기다란 당면을 쪽 빨아들인 윤슬이 입을 오물거렸다.

"맛있어?"

"우움··· 웅!"

"많이 먹어. 진짜 많이 있으니까."

유안은 뒷마당에서 팔팔 끓는 두 개의 냄비를 가리켰다.

정말 많았다.

속속들이 모여드는 손님들에게 한 그릇씩 퍼주고 있는데도 냄비는 바닥을 보일 줄 몰랐다.

'퍼도 퍼도 계속 나오는 요술 떡볶이냐고.'

기청해가 통도 크게 만들어버리는 바람에 중앙 카페에 방문한 손님들만 신이 났다.

카페에서 커피나 마실 생각으로 방문했는데 뜻밖의 분식 세트를 만나게 된 것이다.

"내가 먹어본 떡볶이 중에 제일 맛있어!"

"국물에 튀김 찍어먹어 봐. 환상이다."

먹을 줄 아는 손님들이 양손 가득 분식을 들고 재잘거렸다.

'그래, 손님들이 좋아하면 됐지.'

어차피 고생은 떡볶이 퍼 담는 기청해가 하는 것이었으니 상관 없다.

요리 선생님에서 분식집 주인장으로 전직한 비조 길드장이 생글생글 웃으며 종이컵에 떡볶이를 나눠 담았다.

그렇게 미리 담아둔 컵 떡볶이를 손님들이 하나씩 집어간다.

'장사 잘 되네.'

유안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윤슬이나 챙기기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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