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9화 (89/137)

"아저씨, 이거 맛이 이상해···."

"삼키지 마. 여기 뱉어."

유안은 자연스럽게 손바닥을 펼쳐 윤슬의 입가에 가져다 댔다.

퉤, 하고 고기 덩어리를 뱉은 이윤슬은 어리광을 부리며 옆에 있던 기청해에게 몸을 치댔다.

"미술 선생님이 맛있는 거 만들어 주세요···."

"처음부터 그렇게 하는 게 나을 거라고 했잖아."

"그래도 밖에서 사먹으면 맛 어떤지 궁금했단 말이야!"

"이제 궁금증은 다 풀렸어?"

"응··· 집에 갈래요."

비조 길드는 이미 윤슬의 두 번째 집이 되어 있었다.

'윤슬, 아주 잘 하고 있다.'

유안은 속으로만 윤슬을 마구 응원했다.

호적상 자신이 윤슬의 아빠로 되어 있으니 기청해가 윤슬에게 비조 길드를 넘기면···.

'간판부터 바꿔 달아야지. 중앙 카페 제주점으로.'

3호점은 수창도 새로도 아닌 비조 길드에 지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제주도는 외국인 관광객도 많은 섬이니 중앙 카페를 해외까지 알리기에도 딱 좋을 것이다.

유안은 외국 유명 길드에서 중앙 카페 입점을 원하는 모습을 상상했다가 입꼬리를 슬금슬금 당겨 웃었다.

바다에서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논 윤슬은 점심을 먹고 잠시 낮잠에 빠졌다.

아이를 침대에 눕힌 뒤 1층으로 내려오자 기청해가 유안에게 낚시대 하나를 건넸다.

"애도 잠들었으니 어른들끼리 시간을 보내 볼까."

"윤슬이 그렇게 길게 안 잡니다."

"낚시터가 바로 이 앞이니 괜찮을 거야."

비조 길드장이 미리 점 찍어둔 낚시 스팟은 길드 건물에서 5분 거리였다.

윤슬이 아까 물장난을 치던 곳과도 가까웠다.

바다 낚시는 처음인 유안이 낚시대를 들고 헤매자 유능한 가이드가 빠르게 도와주었다.

"취미가 진짜 낚시이신가 봅니다."

"가장 즐기는 일이기는 해."

"뭘 제일 많이 잡으시는데요?"

"상어."

"예?"

유안은 하마터면 낚시대를 놓칠 뻔했다.

"여기서··· 상어도 낚입니까?"

"아니, 상어는 던전에서 낚이지. 이유안 사장은 보기보다 순수한 구석이 있어."

"······."

제주 앞바다에서 상어가 낚일 일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이상한 질문을 해버렸다.

뺨이 살짝 달아오른 유안은 그 후로 잠자코 낚시에만 집중했다.

기청해가 압도적으로 많이 낚기는 했으나 스코어에 별 관심은 없었으니 괜찮았다.

유안은 잠시 일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에 만족했다.

부웅-.

이유안의 마음처럼 잔잔하던 고요를 깬 것은 우렁찬 트럭 소리였다.

빵빵!

시끄러운 경적도 울렸다.

그런데 완전히 낯선 것이 아니었다.

어디서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은···.

"아니···, 저걸 여기까지 어떻게 끌고 왔어."

고개를 돌려 모래사장 쪽을 바라본 유안이 탄식하듯 말했다.

강남 던전이 터졌을 때 이후로 쓰지 않던 푸드 트럭에 중앙 카페 사람들이 우글우글 탑승해 있었다.

"사장님!"

조수석에 탄 김주현이 창 밖으로 얼굴을 내밀며 손을 흔들었다.

뜻밖의 방문이었지만 나쁘지 않은 기분이라 이유안도 잡고 있던 낚시대를 놓고 마지못해 인사해 주었다.

"예상보다 일찍 도착한 걸 보니 마감을 빨리 한 모양이야."

"···직원들이 올 줄 알고 있었습니까?"

유안의 물음에 기청해는 능청스럽게 미소 지으며 낚시대를 정리했다.

정말이지··· 사장만 쏙 빼놓고 진행되는 일이 너무 많았다.

낙지호롱구이와 야시장

운전대를 잡았던 서정원은 푸드 트럭에서 내리자마자 유안에게 다가왔다.

제주 바다를 배경으로 서 있던 이유안이 뚱한 표정으로 정원을 보았다.

"카페는 어쩌고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마감은 잘 하고 왔으니까 걱정 마세요, 사장님."

"내일도 오픈하는 거 알고 계시죠?"

"그럼요. 저녁만 해드리고 바로 돌아가려고 했어요."

중앙 카페 직원들은 말 그대로 유안에게 저녁을 대접하러 제주까지 방문한 것이었다.

사장님이 삐치자 비상 대책 회의를 진행한 결과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으로 뽑힌 게 바로 이것이다.

"이 사장님, 윤슬이는 어디 있어요? 지금 잘 시간인가?"

김주현이 윤슬이 줄 선물을 만들었다며 아이를 찾았다.

유안이 비조 길드 건물 꼭대기를 가리키자 주현은 곧장 그쪽으로 달려갔다.

'···안 그래도 깰 시간 돼서 데려오려고 했으니까.'

육아를 분담할 사람이 늘어나니 몸과 마음이 편해지기는 했다.

제주에 오니 윤슬이 평소보다 더 망아지처럼 날뛰어서 기청해와 단둘이 돌보기에는 약간의 피로감을 느끼던 유안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본점 직원들이, 특히 서정원이 와 주었으니 이제 걱정은 없다.

"메뉴가 정해진 게 아니라면 내가 재료를 제공하고 싶어."

기청해가 직원들 사이에 은글슬쩍 끼어들며 말했다.

푸드 트럭을 모래사장 위에 단단히 설치하던 방재이가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저희도 해산물 요리를 생각하고 오긴 했습니다."

"방재이 씨와 의견이 일치했다니 기뻐라."

"······제 의견이 아니라 매니저님의 생각이었습니다."

"어차피 중앙 카페 직원들은 한 몸이나 다름 없잖아. 나도 좀 끼워줬으면 좋겠어. 가끔은 질투가 난단 말이야."

"재이 씨한테 말 걸지 마시죠."

유안이 나서서 기청해의 만행을 차단했다.

서정원이나 홍소라는 받아주지 않으니 일부러 순진한 방재이를 타깃으로 잡은 게 분명하다.

'재이 씨는 너무 착해서 웬만한 건 다 받아주니까.'

이유안이 이글거리는 시선으로 기청해를 째려보며 재이 앞에 섰다.

비조 길드장은 가증스럽게도 무해한 척 양팔을 들어올리며 결백을 주장했다.

"······감사합니다."

큰 덩치를 구깃구깃 찌그린 채 유안 뒤에 숨어 있던 재이가 가냘픈 목소리로 감사를 표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기청해와 직원들을 놓고 본다면 유안은 완벽하게 중앙 카페 직원들 편이었다.

최선진의 정체를 알려주지 않고 자신의 반응을 지켜본 것만 생각하면 아직도 괘씸하지만, 그래도 소중한 직원들임은 변함이 없었다.

"비, 비조 길드장님···? 그래서··· 재, 재료 뭔데요···?"

저녁 재료를 담당하겠다는 기청해의 말에 홍소라가 눈을 빛내며 다가왔다.

요리는 어차피 서정원이 대부분 하게 되겠지만, 요즘은 소라도 간단한 재료 손질 정도는 도울 수 있게 되었다.

오직 디저트만 만들 수 있던 예전을 생각해 보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홍소라의 질문 덕분에 모두의 시선이 기청해에게 쏠렸다.

청해는 남들의 관심을 달갑게 받으며 여유 넘치는 표정으로 인벤토리에서 낙지를 꺼냈다.

"이유안 사장이 오기 전까지 배낚시를 하고 있었거든."

던전산 낙지였다.

크라켄에 비하면 귀여운 크기이기는 했으나 기청해의 얼굴을 다 덮을 정도는 되었다.

유안은 살아 움직이는 신선한 요리 재료를 바라보며 물었다.

"몇 마리 잡으셨습니까?"

인원이 인원이다 보니 한두 마리로는 턱도 없다.

무엇보다 여기에는 성장기 어린이도 있다.

"수조가 있었으면 좋겠어."

기청해는 꿈틀거리는 산낙지를 인벤토리에 다시 집어넣으며 말했다.

양이 상당하다는 의미였다.

"그, 그럴 줄 알고 준비했죠···!"

홍소라가 기다렸다는 듯 푸트 트럭 뒤쪽을 개방했다.

장소에 맞추어 개조된 트럭은 이동식 초밥집 형태를 띠고 있었다.

대형 수조가 트럭 가장자리를 빙 둘러 감싸고 있어서 던전산 해산물을 보관하기에는 제격이었다.

"중앙 카페 직원들은 항상 준비가 완벽해서 좋아."

수조 크기에 만족한 기청해는 인벤토리에서 낙지를 우르르 쏟아내기 시작했다.

자연산과는 크기와 색깔이 다른 낙지들이 금세 수조를 가득 채웠다.

"지, 진짜 많이··· 잡으셨네요···."

끊임없이 이어지는 낙지의 향연에 홍소라가 작게 감탄했다.

그런데···.

'안 끝나?'

기청해가 끝도 없이 낙지를 부어대는 통에 수조 자리가 모자랄 지경이었다.

처음에는 감탄하던 홍소라도 점차 사색이 되었다.

"이, 이거 오늘 요리 다 못해요···!"

"선물이야."

비조 길드장은 제 마음이니 꼭 받아줬으면 좋겠다며 수조 속을 낙지 밭으로 만들었다.

물 반 낙지 반을 넘어서서 수조 안에 낙지의 산이 쌓였다.

맨 아래에 깔린 녀석은 압사해 죽어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비주얼이었다.

"요리는 어떻게 다 하더라도 절대 우리끼리는 못 먹을 양이네요."

서정원이 침착하게 낙지 수를 가늠하며 말했다.

정원의 말대로 대규모 요리에 익숙해진 중앙 카페 직원들의 실력이라면 이 정도 되는 식재료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문제는 요리 후의 일이었다.

'이건 윤슬이 아홉 명을 더 낳아도 오늘 안에는 다 못 먹겠는데.'

일부만 요리해서 먹고 나머지는 인벤토리에 보관해도 되긴 하지만, 기왕이면 살아있을 때 신선하게 요리해 먹는 게 가장 맛있을 것이다.

유안은 짧은 고민에 빠졌다.

*

메뉴가 결정되었다.

그리고 푸드 트럭을 깔 장소 또한 정해졌다.

"지, 지역 주민들이 엄청 좋아해요···! 비조 길드 근처에 가본 적은 한 번도 없대요···."

"주민들한테 너무 못되게 군 거 아닙니까, 기청해 씨."

"무슨 그런 섭섭한 소리를. 길드 문은 항상 열어놨어."

거짓말.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찾아오면 문전박대한단 소리를 여러 번 들었다.

낯짝 두껍게 불쌍한 시늉을 하는 기청해에게서 유안은 시선을 돌렸다.

습관성 거짓말쟁이에겐 무관심이 약이다.

"그, 그리고··· 소식 듣고 찾아온다는 트럭 상인들이 많은데요···?"

"다른 푸드 트럭 말입니까?"

"네, 네에···. 우리랑 안 겹치게 하고 싶다고 메뉴 물어봐서 헌터그램에 공지해뒀어요···."

홍소라는 제 디바이스 화면을 유안에게 보여줬다.

비조 길드 앞에서 던전산 낙지 요리를 판매한다는 게시글의 좋아요가 벌써 수천 개를 넘어섰다.

이러다 제주에 사는 각성자는 모두 몰려올 것 같았다.

각성자뿐인가, 이 주변은 게이트 제한 구역도 아니니 비각성자도 잔뜩 올 것이다.

"요리 빨리 시작합시다."

마음이 급해진 유안은 팔을 걷어부쳤다.

메인 셰프는 서정원과 기청해가 되겠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는 중앙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었다.

-크웅!

정작 이중앙은 월정리 모래사장 위쪽으로 깔아둔 아르네스 모래를 밟으며 윤슬이와 함께 뛰놀고 있었다.

김주현의 선물해준 튜브와 보트 덕분에 완전히 잠이 깬 윤슬은 밤바다에 들어가겠다고 떼를 쓰다가 포기하고 중앙이와 술래잡기를 하는 중이었다.

"······낙지 손질은 홍소라 씨와 제가 하겠습니다."

방재이가 밀가루와 굵은 소금을 비장한 표정으로 들고 말했다.

어린이와 고대 포식자를 제외한 어른들이 참전한 요리 전쟁의 시작이었다.

다행히 모두의 손이 척척 맞아서 시간을 허비하는 일은 없었다.

김주현은 앉은 자리에서 낙지호롱구이용 꼬치를 몇백 개나 생산해냈다.

던전산 낙지를 모조리 구워버릴 수 있는 분량이었다.

일반인들에게 판매할 요리는 낙지호롱구이 하나뿐이지만 중앙 카페 사람들의 식사를 위해서 다른 요리 몇 개도 소소하게 만들기는 했다.

어린이도 있으니 채소 및 각종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간 메뉴들이 선정되었다.

"이거 뭐야?"

"낙지연포탕."

"으응, 그럼 저건? 볶음밥?"

"맞아."

유안은 주방 자리가 협소하다는 이유로 요리사 대열에서 퇴출당하고 윤슬을 돌보는 중이었다.

채소, 버섯과 함께 보글보글 끓어가는 낙지연포탕의 국물을 한 숟가락 떠서 아이에게 먹여주었다.

"크으, 시원하다!"

"···그래?"

어디서 배운 거지, 이런 말.

유안은 오늘만 몇 번째인지 모르게 윤슬의 어휘력에 감탄하며 낙지볶음밥도 한 술 떠주었다.

파로 기름을 내어 볶아서 입에 넣기 전부터 진하게 올라오는 향이 입안에 군침이 돌게 만들었다.

윤슬도 구미가 당겼는지 얼른 달라고 유안의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천천히, 아직 뜨거워."

"나 뜨거운 거 아저씨보다 잘 먹어!"

"······그래."

S급 헌터보다도 튼튼한 혀를 가졌으니 당연했다.

유안은 그래도 볶음밥을 적당히 식힌 후 윤슬의 입에 넣어주었다.

작은 볼이 빵빵해져서 쿡 찌르고 싶었다.

'낙지볶음은 매워할 테니까··· 이따 호롱구이 완성되면 그거나 줘야겠다.'

유안이 어린이에게 뭘 먹일지 고민하는데 푸드 트럭 옆의 테이블에서 큰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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