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7화 (67/137)

유안은 셀라에게 서빙과 치안 관리 일을 맡길 생각이었다.

좀 더 섬세한 작업을 맡기기에는 두려운 마음이 컸다.

그런데 셀라가 주방 도구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정말 의외의 일이라 유안은 할 말도 있고 셀라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이 칼 좋다. 튼튼해 보여. 여기 있는 것들 전부 그렇긴 하네! 이걸로 요리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

"···너 요리도 할 줄 알아?"

"응? 요리를 못 하는 어른도 있어?"

디저트류를 제외한 요리에는 영 소질이 없는 홍소라가 들었다면 뜨끔할 발언이었다.

유안은 놀란 마음을 속으로 삼키고 담담하게 물어보았다.

"무슨 요리 잘 하는데?"

"먹어봤던 요리는 재료만 있으면 맛 비슷하게 낼 수 있지! 그래도 역시 제일 잘 만드는 건 피자야~."

"피자?"

"응! 아, 여기 바질도 있네. 마르게리타 만들어 줄까? 나 요리 할 줄 아니까 주방 못 쓰는 룰은 끝난 거지?"

셀라는 냉장고에서 푸슬푸슬한 이파리를 꺼내며 물었다.

강남점을 둘러싼 던전 숲에서 갓 파밍한 바질은 신선한 향이 진하게 풍겼다.

식재료의 상태를 확인한 셀라가 만족스럽게 웃고 유안에게 윙크했다.

"조금만 기다려, 유안~."

"······화덕에 불 넣어줄게."

"오케이!"

언젠가 쓸 일이 있을 거라며 만들어둔 화덕이었다.

강남점 메뉴에 아직까지 화덕을 쓸 만한 건 없어서 불도 넣어두지 않았는데, 셀라가 첫 개시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유안은 강남점에서 불을 다룰 수 있는 직원을 불러 화덕을 뜨겁게 덥혔다.

직원의 손끝에서 작게 쏘아진 화염계 스킬은 서정원의 것에 훨씬 못 미쳤다.

그러나 화덕 안쪽에 쌓인 장작에 불이 옮겨 붙자 순조롭게 타닥타닥 타오르기 시작했다.

화덕이 달궈지는 사이 셀라는 속도감 있게 마르게리타 피자 한 판을 완성했다.

"어때? 맛있겠지~!"

아직 굽기 전인데도 군침이 흐르게 만드는 비주얼이기는 했다.

유안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셀라의 의외성을 다시금 느꼈다.

'토템에 부속 옵션이 달렸을 줄은 몰랐지···.'

자연재해를 막아줄 뿐만 아니라 요리까지 잘 한다니, 셀라는 정말이지 중앙 카페에 최적화된 사람이었다.

*

"사장님, 우리 이제 피자도 파나요?"

"안 그래도 수프 팔릴 때마다 피자 같은 건 없냐고 물어보는 손님들 많았어요!"

"2층이랑 3층에 이탈리안 레스토랑은 없으니까 좋은데요?"

마르게리타 한 판을 간식으로 해치운 강남점 직원들이 반짝이는 눈으로 물었다.

유안 역시 식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두 조각이나 먹은 상태였다.

'맛있긴 해.'

피자를 제일 잘 만든다는 셀라의 말이 사실이었다.

화덕에서 갓 구워져 나온 피자의 도우는 얇고 바삭하여 위에 올라간 토핑들과의 조화가 대단했다.

많이 느끼하지 않고 담백한 맛에 바질의 향이 죽지 않고 듬뿍 느껴져서 나이를 가리지 않고 인기가 많을 듯했다.

"재료 많아서 오늘 당장 팔 수도 있어! 더 만들까?"

게다가 셀라는 체력이 넘치는 S급 헌터라서 강도 높은 주방 일을 단신으로 수월하게 해낼 수 있었다.

피자를 더 만들어 오겠다며 주방으로 훌쩍 들어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리고 유안보다 더 셀라를 반기는 건 강남점 직원들이었다.

"셀라 씨가 매니저로 오는 거면 저희는 진짜 환영이에요."

"맞아요! 이제 안전사고도 안 나겠죠?"

"그럼요, 셀라 토템 성능이 얼마나 확실한데."

기존 직원들의 반발이 약간이라도 있을 거라 여긴 유안의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가는 순간이었다.

하급 헌터들로만 구성된 직원 일동은 S급 매니저의 등장을 진심으로 반겼다.

손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셀라가 서빙을 나오면 다들 헌터 디바이스를 들이밀며 사진을 같이 찍어달라고 부탁했고, 셀라는 기꺼이 멋들어진 미소를 지으며 촬영에 임했다.

'저런 건 진짜 자연스럽네.'

세계 곳곳을 유람하며 지낸 세월이 길어서인지 셀라는 낯선 사람에게도 거리낌 없이 다가가는 편이었다.

셀라의 타고난 성격 덕에 강남점의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단란하게 무르익었다.

곳곳에서는 피자 치즈의 고소한 냄새가 났으며, 잘 익은 토마토 소스 향기가 침샘을 자극하며 숲 사이로 퍼져나갔다.

"장사가 늘 잘 되기는 했지만··· 이 시간까지 만석인 건 처음 봐요, 사장님."

"우, 우리 앉을 자리는 있는 거죠···?"

"숲 안쪽 테이블 비워놨습니다."

"거기 분위기 좋죠! 가요, 가요!"

본점 마감을 하고 온 직원들이 앞장서서 숲 속으로 들어갔다.

유안은 윤슬의 손을 잡고 천천히 그들의 뒤를 따랐다.

"맛있는 냄새 나!"

"피자 냄새야."

"그럼 나 수프도 줘!"

"그래, 윤슬."

어차피 강남점에서 뽑아낼 수 있는 모든 음식을 한상 가득 차려둔 상태였다.

그리고 윤슬이 원한다면 뭐든 만들어줄 수 있는 직원들도 있었다.

"······피자가 아주 잘 익은 것 같습니다."

방재이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을 했다.

정말 맛있어 보일 때만 칭찬하는 바리스타에게서 합격점을 받았으니 비주얼은 더 걱정할 게 없었다.

둥근 테이블에 둘러앉은 직원들이 피자를 한 조각씩 맛보더니 순수하게 감탄했다.

윤슬도 쭉쭉 늘어나는 치즈를 재밌어하며 꺄르르 웃었다.

"그, 극락이네요···."

홍소라가 높고 쾌청한 하늘과 울창하게 우거진 숲,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르게리타 피자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셀라 토템 덕분인지 사람이 딱 살기 좋다고 느끼는 기온이 유지되고 있었다.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해서 유안은 소파에 몸을 푹 파묻었다.

"본점보다 강남점이 먼저 연장 영업을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서정원이 톡톡 튀는 스파클링 음료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저, 저희는 항상··· 일찍 문 닫고 밥 하니까요···."

본점도 손님은 항상 많았지만 마감 시간을 칼같이 지키는 이유가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굳어진 중앙 카페 저녁 만찬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서였다.

중앙 카페에 적을 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저녁 메뉴도 다양해졌다.

다들 입이 행복하다며 만족하고 있었으니 시간이 되는 사람은 중앙 카페에서 저녁을 함께하고 가는 것이 당연한 절차가 되었다.

영업 시간이 지나고 텅 빈 카페는 단골들로 채워지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저녁 지나서는 장사를 하지 않던 것인데···

"······이렇게 저녁까지 장사하는 카페가 게이트 근처에 있으면 좋을 것 같기는 합니다. 강남점이라도··· 말입니다."

방재이가 소신껏 발언했다.

강남 던전은 새롭게 떠오르는 신규 던전이라 늦은 시간까지 파밍하는 헌터들이 많다.

그래서 달이 뜨는 시각까지 장사를 한다면 그 헌터들의 수요까지 받아낼 수 있을 것이다.

저녁이 지나면 눈에 띠게 한산해지는 중앙 던전과는 조건이 다르다.

재이의 말을 귀담아 들은 유안은 연장 영업으로 여전히 북적북적한 강남점 건물을 잠시 돌아보았다.

셀라가 양손에 피자판을 든 채 바쁘게 뛰어다니며 서빙하고 있었다.

'셀라도 고용했으니까··· 직원을 더 뽑아서 영업 시간을 늘려볼까?'

유안은 달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윤슬의 사과 주스 잔으로 시선을 옮기며 진지하게 고민했다.

*

"나야 좋지! 내가 다른 건 다~ 잘 해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건 영 자신 없거든."

"그럼 오후 출근 괜찮다는 소리지?"

"응! 늦게 퇴근하는 것도 괜찮아. 여기는 밤에 더 좋더라~."

어제 자정 근처에 마감한 셀라는 재밌는 사람도 많이 만났다며 즐거워했다.

셀라 덕분에 헌터그램에는 #중앙카페강남점 #셀라보유점 해시태그 릴레이가 이어지는 중이었다.

유안은 셀라가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확인하고 곧장 본점의 인사 담당 직원에게 연락했다.

헌터그램에 채용 공고를 올릴 때는 홍소라가 글 전문을 작성해주곤 했지만, 이력서 확인과 면접 일정을 잡는 직원은 따로 있었다.

지난번 이메일로 온 문의를 처리해주던 알바생이 자연스럽게 그 역할을 맡게 되었다.

평소에는 서빙 직원으로 활약하다가 사람 구할 일이 생기면 빠릿빠릿하게 나서주니 인사 문제로 골머리 썩힐 일은 없었다.

'저녁에 일할 직원을 따로 뽑고··· 더 해야할 일이 있으려나.'

본점도 밤늦게까지 영업한 적은 없어서 무얼 더 준비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저녁 손님의 원활한 유치를 위해 셀라가 만드는 요리는 저녁에만 판매하기로 결정했지만, 뭔가 조금 부족하게 느껴졌다.

'흠··· 뭐지.'

메뉴와 직원이 늘어났음에도 찜찜한 이유는 셀라가 시원하게 밝혀주었다.

"술이 없잖아! 알코올!"

"···응?"

"피자에는 원래 맥주, 피맥 몰라, 유안?"

셀라가 머그잔을 들더니 꼴깍꼴깍 술 마시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놀라운 말 하나를 더 얹었다.

"나 홈메이드 비어 만들 줄 아는데. 여기 지하실 있어?"

"···수제 맥주를 만들 줄 안다고?"

"응! 어른 되기 직전에 다들 배우잖아~."

셀라가 알고 있는 어른의 기준은 세간의 것과 많이 다른 듯했다.

수제 맥주

셀라가 맥주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들을 영어로 알려주었고, 강남점 직원 중 하나가 그것을 통역하여 본점 쪽으로 알렸다.

[재료는 다 있어요, 사장님.]

본점 뒷마당에 자라는 던전산 식물을 확인한 서정원이 금방 긍정적인 연락을 해 왔다.

보리와 홉을 수확해서 가져오겠다는 말에 대답하면서도 유안은 아직 어안이 벙벙했다.

'이렇게 갑자기··· 술을 만든다고?'

셀라가 피자를 만들 줄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도움이 되었기에 만족하고 있었는데, 맥주까지 손을 댈 줄은 몰랐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배운 게 조금 많아~."

세계 곳곳을 여행한 셀라는 다양한 사람을 많이 만난 덕에 이것저것 알게 되었다고 한다.

"맥주 만드는 법은 그··· 독일? 응, 거기서 배웠다! 위트 비어랑 IPA 배웠어. 그런데 스타우트도 시도는 해볼 수 있을 거야."

"음··· 그래서 지하실이 필요하다고?"

술에 관심이 없는 유안은 셀라의 말이 무슨 암호처럼 들렸다.

그래도 침착하게 셀라가 필요하다고 했던 지하실을 물어보았다.

인간 토템은 테이블 위에 걸터앉은 채 다리를 까딱대며 말했다.

"있으면 좋지~. 없어도 되긴 해! 근데 여기 주방에서 맥주까지 만들기에는 좀 좁을 걸?"

며칠간 발효도 시켜야 해서 자리 차지를 오래 할 거라고 한다.

셀라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유안은 강남점 4층으로 올라갔다.

'지하실 만들어도 되는지 바로 물어보면 되지.'

류지우와 팀원들은 약속한 대로 죽은 듯이 조용하게 지내서 평소에는 그들이 있다는 걸 실감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헌터 협회의 허가가 필요할 때마다 멀리 가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편했다.

유안은 '던전 관리 파트'라는 임시 팻말이 붙은 문을 두드렸다.

안쪽에서 인기척이 우르르 나더니 문이 열렸다.

"무슨 일이세요, 사장님?!"

협회의 직원들은 유안이 항상 맛있는 걸 갖다주는 사람이라고 학습했는지 오늘도 눈이 반짝거렸다.

'이럴 줄 알고 가져오긴 했지.'

갓 구운 페퍼로니 피자를 인벤토리에서 꺼내자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사흘은 굶은 것처럼 피자에 달려드는 모습이 야생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팀원들에게 피자 여러 판을 전해준 유안은 곧장 파트장실로 들어갔다.

밖에서 이런 소란이 벌어졌는데 류지우는 꼼짝도 하지 않고 일에 집중하는 중이었다.

'자체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있나.'

심지어 유안이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도 문서에 집중하느라 찌푸려진 미간이 펴질 줄을 몰랐다.

결국 이유안은 손을 들어 류지우의 데스크 위를 톡톡 두드렸다.

"파트장님."

"···아, 이유안 사장님. 언제 오셨습니까?"

"밖에서 불 나도 모르시겠습니다."

"아··· 오래 기다리셨어요? 죄송합니다. 확인할 게 있어서 집중하느라."

"방금 왔습니다. 피자 드실래요?"

지우의 몫으로 남겨둔 피자 박스에는 셀라가 만든 여러 종류의 피자를 한 조각씩 담았다.

피자 버라이어티 팩을 받아든 류지우의 미간이 슬며시 풀어진다.

"잘 먹겠습니다. 매번 이렇게 챙겨주지 않으셔도 되는데···."

"별거 아닙니다. 그보다 파트장님, 이 건물 지하에 뭐 지나가는 거 없죠?"

"···예?"

"건물 세울 때 일부러 지하철 노선 피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맞는지 다시 확인하러 왔습니다."

유안의 말에 지우가 눈을 깜빡이더니 뒤쪽 책장에서 공사 도면 하나를 꺼냈다.

도면이 테이블 위에 펼쳐졌다.

"아슬아슬하긴 했습니다."

"그러게요. 어쨌든 아무것도 없다니 다행입니다."

건물 지하 바로 옆으로 강남역 노선이 있었다.

몇 미터만 삐끗했어도 지하를 뚫으면 지하철을 만나게 됐을 것이다.

"파트장님, 이 건물 지하로 몇 층만 더 만들어도 됩니까?"

"예?"

"계약서에서도 지상으로 몇 층 쌓을지만 정했고 지하 얘기는 없었지 않습니까."

유안은 대놓고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류지우를 박박 긁으면 한숨을 내쉬면서 들어줄 수도 있다.

지하실을 만드는 게 죽어도 안 된다고 하면 건물 근처에 작은 창고 건물을 하나 더 짓는 쪽으로 협상하면 된다.

"갑자기 왜···. 5층이면 충분하다고 하셨잖아요."

그땐 맥주를 만들어 팔게 될 줄 몰랐을 때다.

지금은 상황이 정말 많이 바뀌었다.

그리고 강남점은 셀라 토템 보유 건물이니 무슨 일을 벌여도 잘될 확률이 높다.

미신을 안 믿는다고 자부하던 유안은 생애 처음으로 민간신앙의 짜릿함을 느끼고 있었다.

"지하 저장고가 필요해졌습니다. 만드는 음식이 많아지다 보니 주방에 있는 냉장고만으로는 감당이 안 되네요."

"지하 저장고면 아래로 한 층만 얕게 파도 괜찮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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