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이렇게 중앙 카페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에 큰 뿌듯함을 느꼈다.
"빠, 빨리 여기까지 지하철 연결됐으면 좋겠어요···."
강남점을 빙 둘러싼 작은 숲에 도착한 소라가 다리를 통통 두드리며 말했다.
열차가 달리는 본점과 다르게 강남점 지하는 아직 정리조차 끝나지 않았다.
게이트 제한 구역 바깥에서부터 걸어 들어와야 하니 번거롭고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는 했다.
"안 그래도 해민이한테 말해 뒀습니다."
환승 구간이 있어서 정리가 오래 걸린다고 툴툴거리기는 했으나 강해민이라면 빠른 시일 내로 어떻게든 해결해줄 것이다.
"해, 해민 씨··· 요즘 본점에 에스컬레이터 설치한다고 바쁘잖아요······."
"그거 끝나고 하면 되죠. 금방 할 겁니다."
홍소라가 잠시 강해민을 애도하는 표정을 지었으나 유안은 반응하지 않았다.
'어차피 해민이는 일하는 거 좋아해.'
그렇게 굳게 믿으며, 유안은 오늘 홍소라가 [던전화] 스킬을 써 줘야 하는 장소까지 걸어갔다.
홍소라의 스킬이 닿은 곳에만 던전의 기운이 머무르기 때문에 가장자리는 인위적으로 절단한 것처럼 뚝 끊겨 있었다.
"그, 그런데 얼마나 크게 하시려고요···? 지금도 꽤 넓은 것 같은데···."
그냥 둬도 쑥쑥 자라는 던전산 나무들이 우거진 숲은 강남점 건물 너비와 비등한 수준이었다.
강남점을 멀리서 보면 이미 숲 속에 지어진 저택 같은 느낌을 자랑하고 있었다.
홍소라는 이유안이 이 숲을 어디까지 키울 생각인지 궁금해졌다.
"숲길이 던전 게이트까지 쭉 이어졌으면 합니다."
"아, 아··· 좋은 생각이네요! 던전 공략하러 가는 헌터나 공략하고 나온 헌터들까지 손님으로 받을 수 있겠어요···!"
게이트 근처는 삭막하기 마련인데 푸른 녹지가 조성되어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홍소라에게는 밝히지 않았지만, 유안이 가진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나무가 빽빽하게 나면 던전 게이트가 좀 가려지겠지?'
이제 강남점에 오는 것이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늑대 숲의 미로] 던전 게이트를 정면에서 보면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일렁이는 게이트에 머리가 어지러웠던 경험도 다반사다.
유안은 게이트와 가까이 있되 근처에 없는 것처럼 의식하지 않고 지내길 원했다.
"스, 스킬 쓸게요···!"
"예, 부탁드립니다."
홍소라가 숲의 가장자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던전화]."
이전보다 훨씬 충만해진 마나가 스킬의 형태로 발산된다.
소라가 뿜어낸 마력이 꽤 너른 면적으로 퍼지며 숲의 토대가 되었다.
그리고 그 기름진 땅 위로 새 생명이 돋아난다.
수십 번은 보았지만 여전히 신비로운 광경이었다.
"소라 씨가 계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유안은 나무둥치에 새로 피어난 버섯을 본능적으로 파밍하며 말했다.
"뭐, 뭘요···. 저, 저도 사장님이랑 같이 일하게 돼서 진짜 좋아요···!"
"여기까지 온 김에 건물 구경이라도 하고 가시죠. 지난번에 왔을 때는 2, 3층 입점 전이었지 않습니까."
"좋아요···! 아, 아··· 근데 좀 어지럽네요."
"그럼 카페부터 들릅시다."
스킬을 써서 마나가 뭉텅이로 빠져나간 홍소라는 조금 비틀거리며 걸었다.
유안은 소라를 옆에서 부축하며 강남점으로 데려갔다.
"버, 버섯 꼬치에 마나 회복 효과 붙었다는 얘기 들었어요···. 저는 그거 열 개 먹을게요···!"
던전산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면 간혹 특수한 효과가 붙고는 하는데, 홍소라는 마나 회복 효과가 붙을 때마다 환호하며 그 음식을 열정적으로 섭렵했다.
맨 처음 마나 회복 효과가 붙었던 위브 잼을 비롯해 지금까지 다섯 개 정도의 음식에 비슷한 효과가 붙었다.
강남 던전의 버섯으로 만든 꼬치에도 위브 잼과 동일한 효과가 붙어서 잼에 슬슬 질려가던 홍소라에게는 희소식이었다.
"본점으로 돌아가기 전에 버섯을 좀 챙겨 드리겠습니다. 레시피는 정원 씨가 알고 계실 거예요."
늑대 버섯이라 불리는 식재료는 홍소라가 만들어준 숲에서도 잘 자라기 때문에 굳이 던전에 들어가지 않아도 파밍이 가능했다.
덕분에 유안의 인벤토리에도 오랜만에 갓 파밍한 던전산 식재료가 들어왔다.
그리고 서정원은 며칠 전 강남점에 방문해 본점에서는 팔지 않는 메뉴의 레시피들을 전부 숙지해갔다.
강남점의 시그니처 메뉴를 본점에서 판매하지는 않더라도 알아두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이유에서였다.
덕분에 강남점에 갑자기 인력난이 생기더라도 자체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구조가 갖춰졌다.
'순조로운데. 이제 강남점 매니저만 정하면 되겠어.'
강남점 매니저 뽑기.
그것만 해결하면 지금처럼 바쁘지는 않을 것이다.
유안은 홍소라가 주문한 버섯 꼬치를 서빙하는 직원과 홀 곳곳을 오가는 직원들을 평소보다 유심히 살폈다.
*
"등급이나 실력이 비슷하니까 고민은 좀 되네요."
본점 매니저인 서정원이 이력서를 재차 확인하며 말했다.
유안도 정원의 손에 들린 이력서를 다시 살펴보고 비슷한 감상을 내놓았다.
"서정원 씨처럼 모든 업무에 특화된 분을 뽑고 싶은데··· 쉬운 일은 아니라는 걸 압니다."
"제 소중함을 아셨나요, 사장님?"
"원래 알고 있었습니다."
이유안은 담백하게 인정하며 강남점 직원들의 이력서 말고 이전에 받아둔 다른 이력서까지 꺼냈다.
이번에도 잽싸게 시선을 잡아끄는 건 예의 그 S급 프리 헌터의 이력서였다.
"연락이라도 해 볼까요?"
"······어떤 사람일지 궁금하기는 합니다."
"상급 헌터가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있어서 나쁠 것도 없기는 해요. 혹시 모를 헌터들 간의 분쟁에 대비할 수 있으니까요."
서정원이 차분하게 S급 매니저의 이점을 설명했다.
다 맞는 말이기는 했기에 유안도 고개를 끄덕이며 부정하지 않았다.
"연락해봅시다. 일단 면접이라도 보고 판단하는 게 나을 것 같군요."
"네, 사장님."
큼직하게 적힌 헌터 디바이스 코드로 연락하자 상대가 쾌활하게 전화를 받았다.
정원은 곤란한 듯한 눈웃음과 함께 귓가에서 헌터 디바이스를 살짝 떼어냈다.
스피커 모드가 아닌데도 상대방의 목소리가 유안에게까지 전부 들렸다.
-무슨 일이야? 모르는 사람 씨!
억양이 조금 특이했다.
'외국인인가?'
유안은 면접 일정을 설명하는 서정원의 나직한 음성을 들으며 자신의 헌터 디바이스를 꺼냈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S급 프리 헌터는 한 손에 꼽을 정도로 그 수가 적다.
대부분 길드에 들어가 안정적으로 던전 공략에 나서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었다.
'S급 프리 헌터 중에 외국인··· 한 사람밖에 없지 않나?'
검색을 돌려보던 유안은 헌터 디바이스 화면을 강렬하게 차지한 정보값에 입을 살짝 벌렸다.
이름: 셀라
등급: S
주요 활동지: 지구 안에 있다면 어디든!(근데 요즘은 서울이 좋더라~)
헌터 디바이스에서 제공하는 헌터 정보의 경우, 주요 활동지는 헌터 본인이 직접 작성하게 한다.
이유안은 각성 직후에 주요 활동지를 대한민국 서울이라고 적어 낸 기억이 있다.
주요 활동지에는 자신의 출신지나 거주지를 기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셀라가 허튼 소리를 적어둔 것은 결코 아니었다.
다른 헌터들에게 관심이 없는 편인 유안도 셀라가 누구인지 어렴풋이 떠올릴 수 있었다.
'얘 걔잖아. 랭킹전 없어지게 한 프리 헌터.'
전 세계의 헌터 랭킹전이란 랭킹전은 다 참가하고 다니며 우승을 거머쥐는 바람에 다른 헌터들의 참여율이 저조해졌다.
그래도 요즘은 자숙하며 지내는 모양인지 조용했는데···.
'왜 우리 카페에 지원했지?'
평범하게 살면 만날 일 없는 헌터의 등장에 유안은 다채로운 의문을 느꼈다.
*
"챠오!"
면접 당일, 셀라는 담벼락을 거침없이 넘어 하늘에서 툭 떨어졌다.
등장부터 느껴지는 요란함에 유안이 아찔해지는 정신을 다잡았다.
셀라는 계절감 없이 민소매와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춥지도 않은가.'
구릿빛으로 탄 피부가 쌀쌀한 바람을 고스란히 맞는데도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당당하고 시원시원한 걸음걸이로 이유안의 옆에 다가온 셀라는 자연스럽게 허리를 숙였다.
쪽.
그리고 어느 외국의 인사처럼 이유안의 뺨 옆에서 가볍게 쪽쪽거리는 소리를 냈다.
입술이 직접 닿지는 않았으나 무척 당황한 유안은 기겁하며 몸을 뒤로 뺐다.
"하하, 귀여워~!"
셀라는 더 좋아하면서 이유안을 콱 끌어안았다.
S급 헌터의 품에서 E급 헌터가 벗어날 방법이란 요원했기에 유안은 그냥 힘을 풀고 낯선 포옹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스킨십을 원 없이 즐긴 셀라가 떨어져나가자 이유안은 곧장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편하게 풀고 있던 셔츠 단추도 목 끝까지 꼭꼭 채웠다.
"면접 보러 오셨으면 자리에 앉으시죠."
"너무 딱딱해, 유안! 우리 반말 안 할래?"
"···얼른 앉아."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으면 앉히는 데만 한세월일 것 같았다.
유안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초면인 프리 헌터를 십년지기 친구처럼 대하기로 했다.
셀라는 유안의 반말에 만족했는지 손키스를 쪽쪽 보내고는 중앙 카페를 제대로 둘러보기 시작했다.
"여기 좋다~! 따뜻하고 피스풀해! 나 이제 여기서 일하는 거야? 이런 곳에서 일하는 거 항상 꿈이었어!"
"여기는 본점이고, 네가 합격하면 일하게 될 곳은 강남점."
"강남? 아, 거기 알아~! 전에 랭킹전 하러 갔었어. 그러니까 일하는 것도 자신 있어!"
"셀라··· 너 지금 카페 면접 보러 온 건 알지? 카페는 랭킹전 하는 곳이 아니야."
불안해진 유안이 카페의 정의를 말해주었다.
음료와 빵을 판다는 설명에 셀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했다.
"드러그는? 원래 카페 가면 약쟁이들이···."
"여기 한국이다. 마약 불법이야."
"아하~!"
면접을 진행하면 할수록 첩첩산중이었다.
"···셀라, 한국에 계속 머무는 건 확실한 게 맞지?"
"그럼! 여기 있으면 재밌는 일이 많이 생기잖아. 약쟁이들 혼내주는 일이 아니었다니 좀 아쉽긴 한데~ 그래도 재밌을 것 같아! 사장님도 귀엽고!"
"음식점에서 일한 경험은 있어?"
"각성 전에 몇 번 있긴 한데~ 며칠 못 하고 잘렸어. 귀엽지도 않은 사장들이 '셀라, 꺼져!' 했다니까!"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았다.
혹시 몰라서 면접을 보기는 했는데 셀라는 카페 일에 부적합했다.
유안은 면접 결과를 문자로 전송해주겠다고 말할 생각으로 입을 열었다.
"셀라-"
"헐, 저거 진짜 셀라야?"
"미쳤네··· 한국 언제 들어왔어? 잠깐만, 셀라 여기 있으면 서울 지금 엄청 안전한 거 아니야?"
"요즘 날씨도 계속 좋잖아! 셀라 있어서 그랬나 봐."
1층 홀에서 들려오는 수군거림 때문에 유안이 멈칫했다.
중앙 카페의 토템
유안은 인터넷이나 SNS를 자주 사용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래서 떠도는 밈이나 인터넷 용어에는 약해 셀라에 대한 정보도 원론적인 것밖에 알지 못했다.
'셀라가 머무는 곳에는 자연재해도 피해간다니··· 이게 무슨 소리야?'
홍소라가 보내준 링크를 타고 들어가 보니 한 커뮤니티에서 '셀라 토템설'을 정리해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셀라가 길게 머물렀던 나라는 지진을 피해가기도 했고, 잠깐 방문한 나라에는 태풍이 허둥지둥 사라지기도 했다고 한다.
과학적으로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기에 유안은 반신반의했지만 비슷한 사례가 너무 많았다.
'우연으로 넘어가기에는 맞아떨어지는 구석이 너무 많아.'
어떤 사람은 셀라의 스킬과 기상현상의 상관관계를 논문 형식으로 길게 풀어두기도 했다.
꼼꼼히 읽어보니 왠지 다 맞는 말 같았다.
유안은 홀린 것처럼 홍소라가 보내주는 링크의 글을 모조리 독파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셀라를 강남점에 둬야겠다.'
본점에는 사장인 자신이 계속 있을 것이고, A급 헌터인 서정원도 함께이니 걱정할 부분이 별로 없다.
분쟁이나 다툼이 일어나도, 높은 등급의 진상 손님이 등장해도 중앙 카페 선에서 처리할 수 있다.
그런데 강남점은 불안했다.
본점과 거리가 꽤 돼서 일이 터졌을 때 찾아가기도 쉽지 않다.
'밑져야 본전이니까.'
유안은 셀라 토템의 효과를 시험해보고 싶었다.
"유안! 그럼 나 합격이야?"
"그래, 일단은. 사고 치면 바로 자를 거지만."
"에이~ 사고 안 쳐."
셀라는 믿을 수 없는 말을 하며 유안에게 어깨동무했다.
유안은 일단 그런 셀라를 데리고 강남점으로 향했다.
"와~ 여기가 더 크네!"
강남점 건물 크기를 확인한 셀라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공기도 좋다, 유안."
"네가 일할 곳은 1층 카페야. 따라와 봐, 다른 직원들 소개해줄게."
"새로운 친구 사귀는 거 너무 좋아!"
셀라에게서 입사 첫날의 긴장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워낙 해맑아서 누가 보면 소풍이라도 온 줄 알 것 같았다.
유안은 셀라가 어딘가로 튀어나가지 못하게 꽉 붙들고 직원용 휴게실로 향했다.
브레이크 타임을 맞아 옹기종기 모여 있던 직원들이 미어캣처럼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셀라···?"
"사장님,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우리 카페 직원으로 셀라 씨가 들어와요?"
SNS에서 유명하다는 말이 사실인지, 직원 모두가 셀라를 알고 있었다.
설명할 필요를 덜어서 편안해진 유안은 인간 토템을 데리고 카페 곳곳을 돌아다녔다.
"여긴 주방이야. 네가 들어갈 일은··· 별로 없을 것 같지만. 일단 위치는 알아 둬."
"응! 근데 나는 매니저라서 주방 쓰면 안 되는 거야? 그런 룰 있는 줄은 몰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