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4화 (64/137)

"아뇨, 직원들은 1층에서 마무리 작업 중입니다."

여덟 시도 되지 않은 시각이지만 강남점 오픈을 앞두고 있으니 바빴다.

중앙 카페 본점도 오늘 하루는 쉬어가며 강남점에 인력을 지원할 예정이었다.

아무리 든든한 직원들과 함께 왔다지만, 류지우는 유안이 강남 게이트 근처에 온 자체가 여전히 신경쓰였다.

기절할 정도로 심한 트라우마인데 며칠 새에 말끔히 극복했을 리 없다.

류지우는 이유안의 안색을 꼼꼼히 살피며 되물었다.

"정말 괜찮으신 거 맞죠?"

"예, 괜찮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이상은 없는 것 같았다.

식은땀을 흘리지도, 몸을 떨지도 않았다.

일단 안심한 지우가 유안에게 자리를 권했다.

"정리가 덜 되긴 했지만 앉으세요. 사장님도 식사 전이면 같이 하시죠."

"팀원들은 언제 옵니까?"

"협회에서 마무리할 일이 있어서 그것만 처리하고 오후 중에 짐을 옮기기로 했습니다."

두 사람은 텅 빈 사무실에서 가볍게 아침 식사를 함께하며 서로의 근황을 주고받았다.

"강남점 4, 5층에 협회 부서가 들어온다고 알음알음 알려지기는 했는데··· 헌터들은 생각보다 크게 신경쓰지 않는 것 같습니다. 파트장님의 평가가 워낙 좋아서 그런 거겠죠. 다른 부서가 아니라 던전 관리 파트라서 그나마 다행이기는 합니다."

"···조용히 지낼 겁니다. 팀원들도 그러겠다고 약속했고요."

"뭐···, 계시는 동안은 편하게 지내시죠. 괜히 제 눈치 보지 마시고요."

유안은 류지우가 예상보다 더 고분고분하고 순종적으로 구니 적응이 안 되었다.

중앙 카페 강남점의 4층과 5층을 사용하기 위해서 어디까지 자신을 낮출 생각인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크게 이익을 보는 것도 없을 텐데.'

헌터 협회 전체라면 몰라도 류지우 개인이 얻는 이점은 거의 없을 것이다.

기껏해야 신선한 중앙 카페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점?

그것 말고는 좋은 일이 없는데 류지우는 누구보다 간절히 강남점으로의 부서 이전을 바라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 카페 음식이 맛있긴 하지.'

눌러 살고 싶은 마음도 완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유안도 이제 바깥 음식은 입에도 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여기서 지내시는 동안 파트장님은 커피든 음식이든 마음껏 드셔도 됩니다. 강남점 직원들한테도 말해뒀어요."

5층의 침실 중 하나를 사용하겠다고 선언한 류지우를 위한 배려였다.

집에 가지도 않고 직장 바로 위층에서 숙박하겠다는 공무원이 안쓰러워서 유안은 밥이라도 맛있는 걸 대접하기로 했다.

"···감사합니다."

류지우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래층에 뭐 들어오는지 확인은 해보셨습니까?"

"서류상으로 확인해서 상호명은 숙지했습니다. 특별히 주의 깊게 살펴야 하는 업장이 있나요?"

헌터 협회의 파트장이 당장이라도 서류를 꺼내들 기세로 말했다.

이유안은 마음속으로만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지우의 오해를 풀어주었다.

"직접 구경해 보셨냐는 소리였습니다."

"······아, 직접 보지는 않았습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4층까지 올라오는 길에 스치듯 공사 진행 정도를 살피기는 했지만, 그게 끝이었다.

류지우는 자신의 일터 외의 장소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당장 사무실에 올라가서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이니 더 그랬다.

"한동안 지낼 곳인데 어디에서 뭘 파는지는 알고 있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같이 보러 갑시다."

유안은 이미 1층 카페부터 2층과 3층의 음식점들을 줄줄이 꿰고 있었다.

중앙 카페의 사장이 직접 가이드가 되어 류지우에게 강남점 안내를 시작했다.

*

"첫날부터 장사 진짜 잘 되네요! 싸장님 대박 부자 되겠다!"

놀러 온 정태영이 강남점 메뉴를 하나씩 다 시켜놓고 외쳤다.

본점보다 부지를 넓게 잡은 덕에 강남점은 앞마당과 뒷마당에도 테이블이 여럿 놓여 있었다.

유안과 정태영은 뒷마당의 가장 끝에 있는 단체석을 차지한 상태였다.

'던전에서 바로 공수한 아이템으로 인테리어를 해서 그런지 색다르네.'

아르네스의 흙이 깔려서 황금의 유적 느낌이 나는 본점과 다르게 강남점은 수목원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처럼 수풀이 무성했다.

유안은 절대 잊을 수 없는 [늑대 숲의 미로] 던전산 초목을 보며 심장이 가쁘게 뛰는 것을 느꼈다.

'괜찮아.'

이유안은 자연스럽게 인벤토리에서 미니 상어 인형을 꺼냈다.

주먹 안에 가두고 꾹꾹 누르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편해지고는 했다.

인형 입에서 보글보글 올라오는 기포를 맞으며, 유안은 제 목과 팔에 걸린 아이템을 다른 손으로 매만졌다.

검은 끈 형태로 된 목걸이와 팔찌는 김주현이 특수 제작한 것으로, 착용자의 불안을 잠재우는 효과가 있었다.

여러 사람, 그리고 아이템의 도움을 받아 유안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두근거리던 심장이 진정되었다 싶을 때쯤 테이블 위가 가득 채워지기 시작했다.

"주문하신··· 미로 숲 버섯 수프, 트러플 치즈 스콘, 미궁 꽃차······."

강남점 직원은 끝없이 이어지는 주문 내역을 읽느라 진땀을 뺐다.

1층 카페에서 파는 음식뿐 아니라 2층, 3층 가게의 음식들도 한꺼번에 부탁해서 양이 더 많았다.

"확인 안 해도 알아서 잘 주셨겠죠! 잘 먹겠습니다아-!"

정태영이 쩔쩔매는 직원을 깔끔하게 돌려보냈다.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음식이 눈앞에 펼쳐졌으니 오래 기다리기는 힘들었다.

"즐거운 식사 되세요. 그리고 이건··· 김주현··· 님이 사장님 가져다 드리라고 시키셨는데······."

아직 유안을 대하는 것이 어색한 강남점 직원이 쭈뼛대며 텀블러 두 개를 건넸다.

"와! 그거 굿즈죠? 중앙 카페 공식 굿즈!"

스콘 하나를 통째로 입에 넣고 꿀꺽 삼켜버린 정태영이 텀블러를 바로 알아보았다.

'주현 씨가 요즘 뭘 숨기고 만드나 했더니··· 이거였구나.'

중앙 카페 직원들이 함께 머리를 싸매고 만든 로고가 멋들어지게 새겨진 텀블러는 현재 두 가지 버전이 있었다.

"이건 본점이고, 이건 강남점인가 봐요! 와아··· 짱 예쁘다! 대량 생산 하게 되면 저도 꼭 살래요!"

"태영 씨 건 따로 챙겨드리겠습니다."

유안은 본점과 강남점의 외관이 예술품처럼 그려진 텀블러를 매만졌다.

던전 부산물로 만든 것이라 튼튼하고 인벤토리에도 들어가니 헌터들에게 팔기에는 딱이었다.

'이니티움 길드에 부탁해서 똑같이 여러 개 만들 수 있냐고 물어봐야지.'

본점 앞에 터를 잡은 파밍 길드에는 실력 좋은 제작자들이 많았다.

김주현의 실력을 따라올 만큼은 아니었으나 인원이 여러 명인 것만으로도 큰 이점이었다.

'완전히 똑같이는 아니더라도 비슷하게 찍어내면 돼.'

유안은 이니티움 길드의 비어 있는 공간에 간이 생산 라인을 만들 계획을 세웠다.

텀블러와 머그잔을 함께 팔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하는 김에 인스턴트 커피도 생산도 알아볼까. 요즘 원두도 넘쳐나는데.'

이윤슬 어린이가 던전 체험 학습으로 4주 연속 밀림 던전에 가고 있었다.

유안이 회귀 전 고생하며 땄던 커피 열매를 윤슬은 스킬 한 번에 몽땅 쓸어왔다.

자신도 아저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마냥 기쁜 윤슬은 인벤토리 한가득 붉은색 커피 열매를 채워가지고 와 유안을 자꾸만 놀라게 했다.

'이거 아저씨 다 먹어도 돼!'

'···고마워, 윤슬.'

아직 커피 맛을 모르는 어린이는 어른들이 커피를 마실 때마다 한 입씩 달라고 조르기는 했지만, 쓴맛을 본 후에는 언제나 얼굴을 찌푸렸다.

그래도 얼른 커서 커피를 아무렇지 않게 마실 거라고 선언하는 아이의 모습이 귀여웠다.

"1층 홀에 진열장 있잖아요! 거기에 굿즈 전시하면 딱이겠다!"

정태영이 버섯 수프를 호록거리며 의견을 냈다.

"인벤토리에 들어가는데 예쁘기까지 한 텀블러랑 머그잔이면 너도나도 사려고 할 걸요!"

"주현 씨에게 말해 보겠습니다."

"네, 꼭이요! 저 그럼 방송 할 때마다 중앙 카페 굿즈만 쓸게요!"

"그래주시면 고맙죠."

태영은 돈도 받지 않고 꾸준히 중앙 카페 홍보를 해주고 있었다.

덕분에 신메뉴가 나오거나 독특한 이벤트를 할 때면 카페에는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

"아까 휴튜브에 쇼츠로 음식 영상 올렸는데 벌써 난리났어요. 싸장님 곧 알바생 더 뽑으셔야 할 것 같은데!"

유안도 자신의 헌터 디바이스를 꺼내서 휴튜브를 확인했다.

정태영이 짧게 촬영해서 업로드한 강남점 영상의 조회수가 실시간으로 빠르게 치솟고 있었다.

당분간은 눈코 뜰 새조차 없이 바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

'예상했던 것보다 더 바쁘잖아!'

유안은 잠까지 줄여가며 본점과 강남점을 오가는 생활을 했다.

윤슬의 눈에도 피곤해 보였는지 오죽했으면 그 고사리 같은 손으로 유안에게 밥을 떠먹여주려고 했다.

"윤슬, 나 혼자 먹을 수 있어."

"아냐··· 아저씨 지금 늪에 빠진 콩나물 같아!"

늪에 빠진 콩나물···.

며칠 전에 채소가 많이 자라는 던전에 보냈더니 독특한 묘사를 배워 왔다.

유안은 어린이의 성화에 못 이겨 윤슬이 떠주는 밥을 몇 숟갈 받아먹었다.

"먹고 죽은 귀신이 때도 곱다고 했어. 많이 먹어야 돼, 아저씨!"

"때 아니고 때깔이야, 윤슬. 어쨌든 고마워. 이제 내가 알아서 먹을게."

"응!"

슬슬 귀찮아졌던 윤슬은 유안의 숟가락을 미련 없이 돌려주었다.

유안은 토마토 버섯 스튜 한 그릇을 빠르게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녀올게. 윤슬, 이따 선생님 오면 말 잘 듣고. 낮잠 자기 전에 양치질 꼭 하고."

"귀찮은데···."

"선생님이랑 같이 해."

"음, 그럼 그건 좋아!"

유안은 잠시 후에 올 강해민에게 육아를 은근슬쩍 떠넘기고 강남점으로 향했다.

강남점 1층의 카페는 금세 자리를 잡고 알아서 잘 굴러갔지만, 2층과 3층의 음식점들은 아직까지도 우왕좌왕하는 경우가 많아서 지켜볼 필요가 있었다.

'그래도 던전산 식재료로 요리 많이 해 본 다온 씨가 도와줘서 다행이었지.'

지하도에서 레스토랑을 하고 있는 장다온의 전문 코칭이 아니었다면 가게 두어 개는 진작 나가 떨어졌을 것이다.

가까이에 레스토랑 전문가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강남점에 도착한 이유안은 헌터들로 북적거리는 1층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받았다.

"사장님 오시면 드리려고 만들어 뒀어요! 이거 제일 좋아한다고 하셔서."

"···재료가 본점에만 있을 텐데 어떻게 구하셨습니까?"

"아이, 사장님이 좋아하는 음료 재료인데 당연히 미리 준비했죠! 서정원 님한테 부탁하니까 잔뜩 가져다 주시던데요?"

"······잘 마시겠습니다."

본점의 시그니처 메뉴가 되어버린 버터 핫 초콜릿을 강남점에서도 만나니 반갑기는 했다.

한 모금 마시는 순간 찌르르 울리는 달콤함이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떨어졌던 당이 급속도로 충전되는 느낌이 들었다.

유안은 빨대를 쪽쪽 빨며 2층으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에 탑승했다.

'본점에도 에스컬레이터 있었으면 좋겠다.'

아예 없을 때는 몰랐는데 강남점에서 진하게 겪고 나니 본점의 계단을 오르내리기 귀찮아졌다.

'해민이한테 부탁해야지.'

이유안은 근시일 내로 중앙 카페 본점에도 에스컬레이터가 생기게 될 것을 꿈꾸며 2층 식당가에 발을 디뎠다.

2층에서 가장 넓은 공간을 차지한 가게는 한식당이었다.

음식이 정갈하고 깔끔하게 나오는 것으로 유명해서 식사하기 애매한 시간임에도 빈 자리를 찾아볼 수 없었다.

'여기는 항상 장사 잘 되니까 걱정할 거 없고.'

유안은 한식당 앞을 부드럽게 지나치려 했다.

그런데 가장 눈에 띠는 창가 자리에 앉은 두 사람을 발견하고는 다리가 딱 굳어버렸다.

'뭐야, 저 사람이 왜 여기 있어···?'

시금치 크림 커리

유안은 류지우와 눈이 마주치는 것만으로 끝낼 수 있었다.

‘절대 티 내지 마십시오.’

이유안은 그런 눈빛을 보내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지우가 어색하게 시선을 돌리는 것이 느껴진다.

그래도 다행히 류지우의 앞에 앉은 나효숙은 유안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했다.

유안으로서는 천만다행인 일이었다.

‘그나저나 협회장이 왜 여기까지 오는데. 바쁘다며!’

자연스럽게 뒷걸음질로 후진한 유안은 그대로 3층에 올라가버렸다.

마주칠 일이 없으려면 탁 트인 1층 카페나 북적북적한 2층보다는 3층 구석에 찌그러져 있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께름칙한 사람이라 가까이 가기도 싫어.’

그런 나효숙과 식사하는 류지우가 안타까울 뿐이었다.

신성한 점심을 직장 상사와 함께한다니··· 류지우가 오늘처럼 불쌍하게 보인 날이 없었다.

유안은 3층의 가구점에 숨었다.

어차피 잘 굴러가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는 가게였으니 겸사겸사 잘 된 일이었다.

던전 부산물로 좀처럼 부서지지 않는 가구를 만들어 파는 매장이었다.

이니티움 길드원 중 제작 쪽으로의 독립을 희망하던 세 명의 헌터가 함께 운영하는 곳으로, 중앙 카페의 김주현이 오픈 전 많은 도움을 주었다.

가끔 한정판으로 주현이 만든 가구도 전시할 예정이라고 했다.

수요가 있을까 걱정하던 초반과는 다르게 지금은 상급 헌터들이 꼭 들르는 명소 같은 곳이 되었다.

“이 침대 진짜 안 부서지나요? 제가 잠버릇이 좀 험해서 부서먹은 침대만 서른 개거든요.”

“A급 부산물로 만들어서 웬만한 힘은 다 견뎌요, 손님.”

“저기요! 여기 그릇들 떨어뜨려도 진짜 안 깨져요?”

“네! 상급 헌터의 악력으로 설거지해도 깨질 일은 없습니다!”

여기저기서 제품의 성능을 물어보는 헌터들이 많았다.

중앙 카페 본점에서 던전 부산물 가구를 미리 써 봤던 유안은 직원의 말에 절대 거짓이 없음을 알았다.

‘커피잔이 안 깨진다고 재이 씨도 진짜 좋아하셨지.’

A급 헌터인 서정원의 손에도 멀쩡한 잔인데 F급인 방재이가 그것을 깰 수는 없었다.

덕분에 재이가 설거지를 아무리 박박 해도 잔만 백옥처럼 깨끗해질 뿐 금이 가지는 않았다.

“안녕하세요, 손님. 뭐 보러 오셨··· 헉, 사장님?!”

“조용, 조용히 해주세요.”

“네, 네···. 여기서 만나니까 너무 반가워서요!”

“예, 저도 반갑습니다.”

“안 그래도 오늘 오후에 본점 놀러 가려고 했었는데!”

유안과 안면이 있는 이니티움 길드원이 바짝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지금은 매장 직원으로 일하고 있어서 희고 검은 유니폼을 입은 채였다.

직원이 손님 한 명에게 반가운 티를 내니 시선이 쏠리는 것은 각오해야 했다.

‘얼굴 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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