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3화 (63/137)

"그럼요, 사장님. 편하게 누우세요. 곧 의사 선생님 오신대요."

안 듣고 있는 게 분명했다!

신체적으로는 결함 하나 없는 유안이 억울해했으나 서정원은 그 몸 위로 이불만 착착 덮어줄 뿐이었다.

"피곤하실까 봐 병문안 오겠다는 요청도 일단 다 거절했어요. 며칠 푹 쉬세요."

입원실 시설이 좋기로 유명한 병원의 1인실은 없던 병도 낫게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유안은 어서 병원을 탈출해 중앙 카페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만 한가득이었다.

'직원들이 알아서 잘 하긴 하지만, 사장에 매니저까지 없는 건 역시 불안한데.'

지하 상가에 새로 입점하려는 사람들을 만나기로 한 일정도 있었고, 이니티움 길드가 수급해온 재료 확인도 필요했다.

'할 일이 산더미인데 누워있기만 할 수는 없잖아.'

유안은 의사가 오면 자신의 건강을 증명하고 빠르게 퇴원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이유안 환자를 그리 호락호락하게 보내주지 않았다.

"모든 수치가 정상인데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는 건··· 그만큼 과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을 확률이 높습니다. 일종의 정신적인 문제인 거죠."

"그럼 푹 쉬는 게 최선의 방법이겠죠?"

"푹 쉬고, 맛있는 거 많이 먹고, 편안한 상태를 유지하는 게 가장 좋기는 합니다. 약간의 운동도 곁들이면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될 거예요."

잘 먹고, 잘 자고, 운동하라는 소리였다.

의사는 원론적인 이야기만 늘어놓았으나 보호자 서정원은 메모라도 할 기세로 진지하게 그 말을 들었다.

유안은 자신의 병원 생활이 길어질 것을 직감했다.

"들으셨죠, 사장님? 오늘부터 저랑 같이 운동 조금씩 해요."

"운동 열심히 할 테니까 일단 퇴원부터 합시다."

"병원에 체육 시설이 잘 돼 있더라고요, 사장님."

"······."

서정원은 유안을 쉽게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검사 결과가 정상이더라도 그간 휴일 없이 일한 사장님을 이참에 쉬게 해주고 싶었다.

"윤슬···, 윤슬이가 걱정할 겁니다."

"안 그래도 좀 이따 병문안 오기로 했어요."

유안이 비장의 카드인 어린이를 내세웠지만 통하지 않았다.

"사과 깎아드릴게요, 사장님."

"···예."

"귤도 드실래요?"

"······좋습니다."

서정원의 극진한 간호를 받게 된 유안은 빠져나갈 수 없음을 인지하고 몸을 축 늘어뜨렸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푹 쉬자. 며칠 지나면 퇴원시켜주겠지.'

해치우지 못한 일들이 눈에 밟혔으나 일단은 뒤로 미루기로 했다.

마음을 비우니 몸도 편안해진다.

유안은 서정원이 직접 깎아주고 까준 과일을 야금야금 먹으며 오랜만의 휴식을 만끽했다.

*

"아저씨이··· 아프지 마아···. 죽으면 안 돼."

어린이가 무시무시한 소리를 하며 유안의 품에 안겼다.

카페를 평소보다 일찍 마감하고 중앙 카페 직원들이 병문안을 왔다.

이윤슬은 카페에서부터 한참 우는 바람에 눈이 토끼처럼 새빨개져 있었다.

"윤슬, 나 안 죽어."

"흐잉··· 근데 병원 왔잖아!"

"좀 피곤해서 온 거야. 아프지는 않아."

"피곤하지 마아······."

꼬물거리며 품을 자꾸 파고드는 윤슬의 목소리가 조금 늘어지고 있었다.

"윤슬이 낮잠 안 잤습니까?"

"······예."

유안이 직원들에게 묻자 방재이가 대답했다.

아저씨가 걱정된다며 밥도 깨작거리던 윤슬은 낮잠 시간에도 훌쩍거리느라 바빴다.

아저씨가 멀쩡한 모습을 확인하고 안심하자 아까 못 잔 잠이 몰려오는 모양이었다.

이유안은 윤슬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잠투정을 받아주었다.

찡찡거리던 어린이는 금세 색색 잠들었다.

"윤슬이는 제가 데리고 있을게요. 계속 저랑 같이 자서 혼자 자기는 싫어할 겁니다."

"네···. 사, 사장님 몸은 진짜 괜찮은 거 맞죠···?"

"멀쩡합니다."

"어후, 이 사장님 쓰러졌다는 말 듣고 얼마나 놀랐는데요!"

"큰일은 아니었는데··· 다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카페는 저희가 잘 운영하고 있을 테니 푹 쉬고 돌아오십시오."

그 뒤로는 중앙 카페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짤막한 보고가 이어졌다.

"이, 이니티움 길드가 파밍하는 재료로 강남점까지 완벽하게 커버하기는 힘들 것 같아서··· 제, 제가 강남 던전 근처에 스킬을 쓰기로 했어요."

"던전화 스킬 말입니까?"

"네, 네···. 스킬 숙련도가 많이 올라서 더 넓게 쓸 수 있게 됐거든요···!"

홍소라가 뿌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강남점 근처에 소라의 던전화 스킬을 쓰면 자체적으로 재료 수급이 가능해진다.

홍소라는 [늑대 숲의 미로] 던전과 비슷한 환경을 조성해서 식재료를 원활하게 파밍할 계획까지 세워두었다.

소라의 보고가 끝나자 김주현이 손을 들었다.

"저는 강남 던전 부산물 확인 마쳤어요! 독특한 게 꽤 있어서 새로운 아이템도 많이 만들 수 있겠더라고요. 아, 미로 벽이 엄청 단단해서 그걸로 중앙 카페 강남점 담벼락 세우기로 했어요! 해민 씨한테 제안했더니 좋은 생각이라고 하더라고요!"

"잘하셨습니다."

"······강남점만의 시그니처 메뉴를 개발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새로 뽑은 바리스타 분과 함께 연구 중입니다."

"부족한 재료가 있으면 얼마든지 구매하셔도 됩니다."

중앙 카페는 유안이 없어도 훌륭하게 굴러가고 있었다.

믿음직스러운 직원들을 보니 하루빨리 병석을 털고 일어나야겠다는 마음이 샘솟았다.

직원들을 돌려보낸 후에도 병문안 행렬은 계속 이어졌다.

협회에서 퇴근하고 바로 찾아온 류지우가 어색한 위로의 말을 건넸고, 패션 위크 준비 중이던 휴멜의 대표 디자이너는 양손으로 들기에도 힘든 크기의 꽃바구니와 함께 찾아왔다.

수창과 새로 길드의 길드장들은 각각 시간차를 두고 찾아와 유안의 운동 상대가 되어주었다.

S급 길드장들의 감시 하에 체육시설을 이용한 유안은 완전히 녹초가 되었다.

달이 떠오른 시간에 찾아온 것은 기청해였다.

"저도 이제 잘 겁니다. 돌아가시죠."

"병문안 선물도 가져왔는데 너무해."

"선물만 두고 가세요. 입원한 건 어떻게 아신 겁니까?"

"카페에 찾아갔는데 이유안 사장이 없어서."

두 사람의 대화는 소근소근 작은 목소리로 이어졌다.

윤슬이 유안의 품에서 잠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 무리하지 말라는 말을 할 걸 그랬어. 후회 중이야."

기청해는 인벤토리에서 청상아리 인형을 꺼내며 말했다.

"이게 뭡니까?"

"선물이야. 배를 눌러 봐."

비조 길드장의 말대로 인형의 배를 꾹 누르자 매섭던 청상아리의 눈이 X자로 변하며 입에서 보글보글 기포가 나왔다.

"···어디서 이런 인형을 구했습니까."

"직접 만들었어. 기포는 몸에 좋은 거니까 얼마든지 삼켜도 돼."

"뭐, 어쨌든 감사합니다."

윤슬이 딱 좋아할 것 같았다.

유안은 인형의 배를 몇 번 더 눌러본 뒤에 잠든 윤슬에게 그것을 안겨주었다.

아이가 자면서 누르는 힘 때문에 청상아리는 가습기처럼 쉼 없이 기포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기청해의 말대로 기포가 몸에 닿으니 상쾌한 느낌이 들었다.

"냄새가 더 심해졌어."

인형으로 상쾌하게 만들어줬다가 별안간 불쾌감을 주는 발언이었다.

유안은 비조 길드장에게 반응하지 않기로 다짐하며 눈을 아예 감아버렸다.

"강남 던전 근처로 다가가다가 쓰러졌다고 했지. 병원에서 검사했을 때 별다른 이상은 나오지 않았고. 운동 부족 소견이 있었다면서. 이유안 사장은 몸을 좀 더 움직일 필요가 있기는 해."

"···잔소리하려고 오신 겁니까?"

유안이 눈을 게슴츠레 뜨고 기청해를 노려봤다.

달빛을 받아 푸르게 빛나는 머리칼이 잔잔한 해수면을 닮았다.

"내가 해결해줄 수 있어."

"······예?"

"생각 있으면 길드로 찾아와."

"뭘 해결한다는 말입니까?"

"냄새 말이야. 이번에 쓰러진 것도 그것 때문일 텐데."

유안의 미간이 좁혀졌다.

비조 길드장이 무얼 생각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자신은 회귀 사실을 밝히지 않았으니 대충 넘겨짚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유안은 기청해의 말에 동요하지 않고 차분하게 답했다.

"제가 개인적인 일로 비조 길드장님을 찾아갈 일은 없을 겁니다."

"단정짓지 말고, 긍정적으로 고민해줬으면 좋겠어. 자, 이건 뇌물."

윤슬의 품에 안겨준 상어 인형의 미니 버전이 유안의 손에 쥐여졌다.

크기는 손바닥만 했으나 기포는 퐁퐁 잘도 솟아났다.

귀여운 뇌물을 받는다고 해서 생각이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일단 쓸모 있는 물건이니 받아두기로 했다.

*

유안은 성공적인 퇴원을 위해 약간의 거짓말을 지어냈다.

이유안의 친누나들이 듣는다면 단번에 거짓인 걸 알았을 테지만, 일단 여기에 이유경과 이유월은 없으니 괜찮았다.

"그, 그러니까··· 사장님이 어릴 때 개한테 물렸었다는 거죠···?"

"그것도 늑대처럼 커다란 개한테 말이죠, 사장님."

"예, 맞습니다. 그래서 커다란 개나 늑대 같은 동물이 무섭습니다."

"트라우마 같은 거네요. 그래서 강남 던전을 꺼리셨구나."

"······사실대로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직원들은 유안에게 고생 많았겠다고 하며 이해심 넘치게 반응했다.

"그, 그래도 물린 흉터가 남지는 않아서 다행이에요···."

홍소라가 유안의 왼팔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유안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변명이 잘 먹혀들어서 다행이었다.

직원들은 사장님의 말을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다들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어서 오히려 미안해질 정도였다.

'완전히 거짓말은 아냐. 회귀 직전에 여기저기 다 물리긴 했으니까.'

그래도 성공적으로 강남 던전 근처에 가지 않을 명목을 얻은 유안은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강남점 오픈 준비는 제가 많이 신경쓸게요, 사장님."

"감사합니다."

서정원은 이유안을 대신해서 강남점에 몇 주 정도 출장을 가겠다고 자처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정원이 오픈을 도와준다면 유안도 안심이었다.

"인테리어는 저한테 맡기세요! 민희도 같이 도와주기로 했어요!"

공간을 아름답게 꾸미는 일을 좋아하는 김주현이 나서준다니 강남점도 고유의 특색을 갖춘 카페가 될 것 같았다.

게다가 주현은 한 가지 약속을 더 했다.

"재료 배합을 잘 하면 심리적인 안정을 주는 아이템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사장님도 편하게 강남점을 오갈 수 있도록 준비해둘게요!"

혼자서 이겨내기 힘든 상처라면 아이템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을 것이다.

유안은 주현이 만들어준다는 아이템을 기대하며 언젠가 강남점을 제 눈으로 확인할 수 있기를 기약했다.

중앙 카페 사장의 퇴원 기념으로 뒷마당에서는 소소한 퇴원 파티가 열렸다.

메뉴는 밀푀유나베로, 강남 던전에서 직접 공수한 버섯이 듬뿍 들어간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 인벤토리에도 [늑대 숲의 미로] 던전 파밍 아이템 많을 텐데.'

지금까지는 그 던전에서 나온 아이템을 정면으로 마주하기도 힘들어서 꺼낼 생각을 않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커다란 냄비 속에서 보글보글 익어가는 버섯을 보니 먹음직스럽다는 평가 말고는 별다른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이제 이 정도는 괜찮아진 건가.'

시간이 지난 만큼, 자연스럽게 조금씩 극복하고 있기는 했다.

유안은 인벤토리 맨 가장자리에 밀어두었던 버섯들을 꺼냈다.

"이니티움 길드가 전해줬던 겁니다. 부족하면 이것도 쓰시죠."

자신이 직접 파밍했다는 사실은 숨기며 태영에게 버섯을 건넸다.

"와! 버섯 더 많아졌다! 좋아요!"

정태영이 싱싱한 버섯들을 한아름 들고 주방으로 향했다.

깨끗하게 세척한 버섯은 냄비 속으로 퐁당퐁당 들어갔고, 국물이 스며들어 맛있게 익었다.

유안은 오목한 그릇에 담긴 표고버섯 하나를 집었다.

버섯 등에 별 모양으로 칼집을 낸 서정원의 작품이었다.

'진짜 아무렇지도 않네.'

회귀 전, 강남 던전에서 이 버섯을 잔뜩 따다가 죽음을 경험한 것인데도··· 괜찮았다.

유안은 이제 단순한 식재료로만 느껴지는 버섯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향긋함을 만끽했다.

"싸장님, 버섯 진짜 맛있죠!"

"고, 고기도 맛있어요···!"

"이 국물이라면 매일 먹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중앙 카페에 모인 사람들의 유쾌한 감상에 유안도 동의했다.

버섯은 정말 맛있기만 했다.

강남점 오픈

똑똑-.

중앙 카페 강남점 4층 문을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팀원들보다 먼저 이동해 있던 류지우가 새 사무실의 문을 열었다.

바깥에는 이유안이 있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이유안이 쓰러졌던 것은 벌써 며칠이 지난 일이지만, 주변 사람들은 여전히 유안을 걱정하고 있었다.

류지우도 그중 하나였기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침 안 드셨을 것 같아서 가져왔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지우는 유안이 건네는 음식들을 받고 은근하게 이유안의 곁으로 붙어 섰다.

혹시라도 기절하면 바로 부축하기 위해서였다.

"저 이제 멀쩡합니다. 안 쓰러져요."

이유안이 과보호에 불퉁하게 반응하며 류지우에게서 두어 걸음 멀어졌다.

"여기까지 혼자 오신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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