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1화 (61/137)

"산 사람에게서··· 죽음의 냄새가 이리 지독하게 풍기는 건 처음이라, 확신할 시간이 필요했거든."

푸르고 푸른 눈동자가 서늘한 해풍 같은 미소를 머금은 채 유안의 전신을 느긋하게 훑었다.

회귀자

유안은 순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묵묵히 기청해의 눈을 마주 바라보고 있자, 다행스럽게도 상대가 먼저 침묵의 늪에서 이유안을 건져주었다.

"왜 이렇게 놀랐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뿐입니다."

"이유안 사장, 거짓말은 못 하는구나."

기청해가 웃으며 테이블 위의 도넛을 집었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이 먹는 대신 이유안에게 건네었다.

얼결에 도넛을 입에 문 유안은 달달하고 상큼한 맛에 정신이 확 깼다.

'맛은 있네.'

미각을 자극하여 자꾸 구미가 당기는 맛에 한 입씩 베어물다 보니 금세 도넛 하나가 사라졌다.

팽팽하게 당겨졌던 분위기가 조금이나마 느슨해진 것이 느껴졌다.

유안은 쓴 커피로 입가심하고 아까보다 좀 더 당당해진 시선으로 기청해를 보았다.

레몬 필링 도넛의 효과인지 일시적으로 자신감이 솟구쳤다.

누구든 다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말 모르겠습니다. 죽음의 냄새라니, 어디서 이상한 책이라도 읽고 오셨습니까?"

회귀했다는 것을 다른 누구에게 알린 적은 없었다.

그러니 기청해가 하는 말은 사람을 떠보기 위한 헛소리일 확률이 반이었다.

'나머지 반은··· 비조 길드장의 숨겨진 스킬 중 상대방의 과거를 알 수 있는 게 있다든가.'

그러나 상대의 정신을 파고드는 스킬은 제약이 많이 걸리기 마련이다.

단순히 전투력을 측정한다거나 마나량을 체크하는 것과는 다른 작업이기 때문이었다.

설사 비조 길드장에게 독특한 정신계 스킬이 있다고 해도, 그것을 발동했을 때 상대가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냥 찔러보는 걸 거야.'

유안은 거듭 그렇게 생각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기청해는 아직도 싱글거리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반질반질한 얼굴을 꼬집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이유안은 상식인답게 꾹 참았다.

웃기만 하던 기청해의 입이 다시 열렸다.

"3년."

"예?"

"그보다 약간 짧아."

"무슨 말씀이십니까."

"점점 지독해질 거야."

기청해가 주어 없이 알쏭달쏭한 말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별안간 말을 멈추고 자리에서 스르르 일어난다.

유안은 고개를 한참 올려 기청해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테이블을 사이에 둔 채, 바다를 닮은 머리칼이 유안의 어깨선 바로 위쪽에 다가왔다.

작게 코를 킁킁대는 소리가 들리자 이유안은 뺨이 간지러워지는 기분을 느꼈다.

"이것 봐. 냄새가 코를 찌르잖아."

"좀, 비키시죠···!"

이유안이 기청해의 어깨를 밀어내려 했으나 이전처럼 순순히 밀려나주지 않았다.

오히려 유안의 살갗에 코를 파묻을 기세로 굴며 죽음의 냄새를 좇던 기청해는 자신이 만족할 만큼 시향한 후에야 떨어져나갔다.

"기청해 씨, 이렇게 예의를 모르는 분일 줄은 몰랐습니다!"

불쾌해진 유안이 기청해가 닿았던 곳을 거칠게 털어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청해는 빙글빙글 웃으며 배부른 사자의 미소를 지었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냄새라서 잠시 이성을 잃었어. 미안해."

"아까부터 대체 무슨 냄새를 말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이유안 사장, 3년을 채우기 전에 제주로 와. 시기를 놓쳐서 죽게 되면 아깝잖아."

"···제가 3년 후에 죽는다는 겁니까?"

"응. 정확히는 3년 안에."

기청해는 나른하지만 단호한 말투였다.

'우연이겠지만··· 하필 회귀한 시점이랑 겹쳐서 신경 쓰여.'

유안은 제 입술에 조금 묻어 있던 도넛의 슈가 코팅을 핥으며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불안과 걱정에는 단맛이 효과가 있었다.

금방이라도 왼쪽 가슴을 뛰쳐나갈 것처럼 쿵쾅대던 것이 얌전해지자 유안은 이성적으로 기청해에게 질문했다.

"기청해 씨는 그걸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우리 스킬 얘기는 안 하기로 하지 않았어?"

"남의 죽음을 보는 스킬은 없는 걸로 압니다만."

그런 스킬이 있었으면 진작 유명해졌을 텐데, 유안은 자신이 회귀하기 직전에도 그것에 대해 들어본 바가 없었다.

"이유안 사장, 나한테는 자꾸 비밀만 만들면서 내 모든 걸 알려달라고 하는 건 수지타산이 안 맞잖아."

"제가 언제 기청해 씨한테 비밀을 만들었습니까?"

"냄새 나는 이유도 안 알려줬잖아."

"······."

다른 쪽으로 기분이 나빠지는 발언이었다.

"그러니까 나도 비밀이야. 믿고 안 믿고는 이유안 사장 마음이니까 알아서 해."

"입만 열면 이상한 소리만 하시는 분이니 쉽게 믿어주기는 힘들죠."

"그래도 중앙 카페에서 거짓말한 적은 없어. 아, 바닷가 주민들 모두 문어빵을 잘 만든다고 말한 것만 빼고."

그건 분위기를 살리기 위한 농담이었다고 기청해가 덧붙였다.

*

기청해는 유안에게 폭탄을 던져놓고 제주로 훌쩍 떠나버렸다.

'죽음의 냄새가 무슨 소리인지 깊게 캐물으려면 회귀했다는 걸 밝혀야 해.'

비조 길드장을 완전히 믿을 수도 없는 처지에 회귀 사실을 드러내기에는 리스크가 컸다.

그러나 자신이 3년 안에 죽는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는데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유안은 근처의 헌터 전문 병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아저씨, 어디 아파?"

이유안의 허벅지 위에 앉아서 말랑이를 괴롭히던 윤슬이 물었다.

이제 한글 마스터가 된 어린이는 헌터 디바이스 위로 휙휙 지나가는 작은 글씨도 읽을 수 있었다.

유안은 윤슬의 뒷목을 부드럽게 주무르며 대답했다.

"안 아파. 그냥 검진이나 받을까 싶어서."

"검진이 뭔데?"

"건강한지 안 건강한지 확인하는 거."

"우음··· 내가 보기에는 아저씨 건강해!"

윤슬은 자신이 유안의 건강 검진을 마쳐 주었으니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의사 선생님한테도 물어봐야 하거든."

"그럼 조금만 기다려. 내가 얼른 의사 선생님 될게!"

어떻게든 유안과 같이 있고 싶은 윤슬은 병원 방문을 필사적으로 막았다.

유안은 윤슬이 의과대학 졸업 후 전문의가 되려면 몇 년이 걸릴지 계산해보다가 얌전히 근처의 헌터 병원 예약을 잡았다.

날짜는 윤슬이 던전 체험 학습을 가는 토요일로 했으니 조용히 몰래 다녀온다면 괜찮을 것 같았다.

중앙 카페의 시간은 평소와 크게 다른 점 없이 흘러갔으나 직원들은 묘한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

"청해 씨 있을 때 재밌었죠."

"마, 맞아요···. 회 그렇게 빨리 치는 사람 처음 봤어요."

"크라켄빵도 괜찮았어요. 재료만 감당할 수 있으면 꾸준히 만들어도 좋을 텐데요."

"······독특한 원두도 조금 나눠주고 가셨습니다."

직원들은 뒷마당 소파에 있는 유안을 은근히 바라보며 기청해의 칭찬을 쏟아내고 있었다.

유안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냈다.

'우리 직원들을 아무리 구워삶아놨어도 당분간은 안 부를 거야.'

최소한 건강 검진을 끝내고, 유안 스스로 할 수 있는 확인 작업을 거친 후에.

짧게라도 괜찮으니 고민할 시간이 필요했다.

이유안은 인벤토리에 넣어둔 크라켄빵을 꺼내 중앙 카페 직원들에게 건넸다.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 윤슬, 너도 먹을 거지?"

"응! 근데 그 파란 머리 마술사는 또 안 와?"

"집에 갔어."

"놀러 오라고 초대하면 되잖아. 아저씨 친구잖아!"

친구 아니라니까.

유안은 윤슬의 머리를 조금 거칠게 쓰다듬으며 크라켄빵을 작게 잘라서 먹여주었다.

낮잠을 자던 중앙이도 맛있는 냄새를 맡고 다가와 기어이 크라켄 다리를 얻어먹고 갔다.

기청해의 증표처럼 남은 크라켄빵을 먹던 직원들이 유안에게 자꾸 아쉽다는 시선을 보냈으나 이유안은 시종일관 무시로 대응했다.

*

건강 검진에서는 특이사항이 나타나지 않았다.

근육량이 부족하니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라는 잔소리만 들었을 뿐 걱정할 부분은 하나도 없었다.

'이럴 줄 알고는 있었지.'

죽음의 냄새 어쩌고 하던 게 신체적인 병과는 관련 없는 것임을 어렴풋이 예상했다.

그러나 찝찝한 느낌을 지울 수 없어서 검사해본 것인데 기청해에 대한 얄미움만 더 쌓는 계기가 되었다.

기청해는 그날 이후 중앙 카페를 방문하지 않고 있었다.

연락처도 남기지 않고 가서 직원들이 아무리 기청해의 재방문을 원해도 부를 방법이 전무했다.

평소 자주 연락하고 지내던 비조 길드원도 덩달아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러니 기청해를 만나려면 제주도의 비조 길드까지 찾아가는 방법만 남았다.

'회귀 사실을 밝힐 수는 없어.'

회귀 후에도 나름대로 얌전히 살았다.

그래서 따로 양심에 걸리는 부분은 없었지만, 가족들에게도 밝히지 않은 일을 비조 길드장에게 말하기는 꺼려졌다.

기청해가 단순한 궁금증으로 회귀 사실을 캐내려는 건 아닌 것 같아서 더 그랬다.

"목적이 뭘까."

유독 집착적으로 구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무슨 목적 말입니까?"

때마침 사무실에 도착한 류지우가 물었다.

유안은 지우에게 제 앞의 소파 자리를 권하며 대충 둘러댔다.

"별거 아닙니다. 생각할 게 좀 있어서."

"···강남점 때문입니까?"

류지우가 오해했으나 굳이 풀어주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예, 맞습니다."

새롭게 지점을 여는 것이니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질 시기이기는 했다.

비록 이유안의 마음은 콩밭에 가 있지만, 겉으로는 중앙 카페 강남점 문제로 고민이 많은 것처럼 보이도록 연기했다.

"걱정도 되고, 조금 떨리기도 합니다. 별일은 없겠지만요."

유안이 그렇게 말하자 류지우는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럭저럭 잘 넘겼어.'

혼잣말에 대한 의심을 성공적으로 지운 유안이 뿌듯함을 삼켰다.

"저도 강남점 일로 방문한 거긴 합니다."

"예, 무슨 일이시죠?"

"전해드릴 서류가 있어서요."

"서류 작업은 다 끝났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강남 던전 게이트 제한 구역 정리는 협회에서 끝냈다.

지표면을 고르게 다져놓아서 건물이 무너지거나 할 위험은 이제 없었다.

덕분에 중급 헌터들도 자유롭게 게이트 근처를 오가며 파밍을 활발하게 하는 중이었다.

B급 헌터인 정태영도 요즘은 중앙 카페에서 도시락을 사 강남 던전으로 가는 날이 잦았다.

중앙 카페 2호점 이야기야 이전부터 나오던 것이었으니 유안은 슬슬 류지우, 강해민과 그쪽 이야기를 나누며 건물 올릴 계획을 추진하려고 했다.

며칠 전에는 류지우가 드디어 건설 허가를 내려주어서 급하게 강해민을 불러 건물 도면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제 정말 공사만 시작하면 된다.

그런데 류지우의 입에서 다른 말이 나왔다.

"추가 서류가 있어서 가져왔습니다."

"예?"

"···일단 확인해보세요."

류지우가 씁쓸한 표정으로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냈다.

다 마무리된 일인데 추가할 무언가가 생긴 것이 불안하게 느껴졌다.

이유안은 여차하면 배 째라는 식으로 나가기로 다짐하며 서류를 펼쳐들었다.

"건물 높이가 바뀌었네요."

다행히 건설 허가가 취소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유안이 기존에 신청한 3층 건물에서 5층 건물로 변경된 부분이 눈에 띠었다.

'본점이랑 같은 사이즈로 해야 허락해줄 것 같아서 3층 한 건데. 건물이야 크면 클수록 좋지.'

남는 두 층을 당장 쓸 일이 없다고 해도, 공간이 여유로워지는 것이니 좋았다.

유안은 생각보다 긍정적인 변동 사항에 화색하며 서류의 뒷장도 마저 확인했다.

사락사락 가볍게 넘어가던 종이가 어느 한 부분에서 닻을 내린 것처럼 툭 멈추었다.

[단, 4층과 5층은 헌터 협회의 소유로 한다.]

상상도 못한 단서 조항에 유안의 입매가 굳어졌다.

"파트장님, 이게 무슨 소립니까?"

"······저와 제 팀원들이 건물 4, 5층을 쓰게 될 겁니다."

"파트장님 팀원들이면 던전 관리 파트 아닙니까."

던전 관리 파트는 헌터 협회의 3대 주요 부서 중 하나였다.

던전 게이트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그 중요도가 높아지기도 했다.

'그 파트가 왜 우리 카페 위층으로 오는데!'

유안은 헌터 협회와 한 건물을 쓰고 싶지 않았다.

서류를 마저 살펴보니 4층과 5층을 올리는 데 필요한 비용은 협회에서 전부 부담한다고 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싫었다.

'생각만 해도 숨 막히잖아.'

협회의 주요 부서가 바로 위층에 있다는 게 알려지면 헌터들도 카페에 오고 싶지 않아할 것이다.

다른 부서도 아니고 던전 관리 파트라니, 헌터들 입장에서는 자신들을 언제든지 잡아 가둘 수 있는 경찰 본청이 머리 위에서 대기하는 것과 같았다.

"절대 안 됩니다."

유안은 결사반대하며 서류에 도장을 찍지 않고 류지우에게 돌려주었다.

"아니, 이유안 사장님. 잠깐 제 얘기 좀 들어보세요."

"싫습니다."

지우가 어떻게든 말을 붙여보려고 했지만 유안은 고개를 아예 돌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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