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 만드는 것은 무리라고 느낄 때, 김주현이 구세주처럼 나타났다.
"지우 저 녀석은 너 같은 인재를 소개도 안 해주고 꽁꽁 숨겨놓고 말이야!"
"파트장님은 이 사장님 말고 다른 사람들이랑은 대화도 거의 안 하시거든. 그래서 난 파트장님한테 동생 있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어."
"알지, 알지. 또 신비주의 컨셉이었겠지."
"······."
오는 길에 기력이 다 빨린 류지우는 반박을 포기하고 철길 상태나 체크했다.
이상이 있는 곳은 없었다.
"저기 온다!"
열차는 주현의 인벤토리에 있었다.
그것을 아직 꺼내지 않았을 때 반대쪽 어둠에서 유안과 중앙 카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열차는 어디 있습니까?"
유안은 오자마자 본론부터 꺼냈다.
김주현이 기다렸다는 듯 인벤토리를 열어 거대한 열차를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중앙이를 닮은 열차 앞머리가 슬며시 모습을 드러낸다.
무게가 상당하니 상급 헌터 여럿이 다가가 철길에 열차 올리는 것을 도왔다.
새로 길드장 차건오와 수창의 S급 길드원 몇이 금세 도착해서 다행이었다.
"후아··· 인벤토리 없었으면 절대 못 옮겼을 거예요."
주현이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닦으며 말했다.
"우아! 엄청 커다래!"
열차의 외관에 가장 먼저 반응한 건 윤슬이었다.
정원은 발을 바동거리는 윤슬을 바닥에 내려주었다.
검은색 무늬가 있는 열차 안으로 윤슬이 도도도 달려 들어간다.
내부는 일반적인 지하철과 다르게 옆이 아닌 앞을 보고 앉게끔 되어 있었다.
'사파리 차 같아.'
유안은 솔직한 감상을 가슴 속에만 묻어두고 윤슬의 뒤를 따라 열차에 올랐다.
좌석에 앉아보니 표면 재질은 차가운 플라스틱 같은데 신기하게도 푹신푹신했다.
"최첨단 기술을 많이 적용했어요! 민희가 참신한 기술을 여러 개 알고 있더라고요!"
김주현은 좌석을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었는지 자세히 설명했다.
"여기 좋아! 내 집 할래!"
윤슬은 벌써 열차 한 량을 제 집으로 선포해버렸다.
지하철을 집으로 쓸 수는 없다고 몇 번이나 설명했지만 여전히 열차를 보면 눈이 돌아가는 윤슬이었다.
"오, 꼬맹이 보는 눈 좀 있네!"
"꼬맹이 아닌데?"
"꼬맹아, 여기 마음에 들면 내가 따로 열차 한 대 뽑아줄까?"
"···응, 그건 좋아."
윤슬의 솔직한 대답을 들은 민희가 아이의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그 거친 손길에 윤슬이 꺄르륵 숨 넘어갈듯 웃는다.
"일단 자리에 앉아. 그래야 열차 만들어줄 거야!"
"우응."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윤슬을 마지막으로 하여 모든 승객이 착석했다.
좌석마다 달린 벨트까지 매자 운행 시작 안내음이 자동으로 울렸다.
-이 열차는 중앙 카페, 중앙 카페행 열차입니다. 안전을 위해 승객 여러분께서는 좌석에 비치된 안전 벨트를 매 주시기 바랍니다. 출입문 닫힙니다. 열차 출발합니다.
과거의 향수를 불러오는 안내음이었다.
유안도 어릴 때 몇 번 타 봤던 지하철이 떠올라 기분이 묘해졌다.
"출발한다!"
운전대를 잡은 류민희가 쩌렁쩌렁 외쳤다.
민희가 기어를 만지자 기다란 차체가 첫 걸음을 내디뎠다.
천천히 달리는 열차의 차창 밖으로는 완공된 지하 건물들이 보였다.
지금은 텅 비어 있지만 금세 주인을 만나 복작이게 될 것이다.
걸어서 이동할 때보다 훨씬 빠르게 중앙 카페 역에 도착했다.
깔끔하게 시범 운행을 마친 열차는 정차할 때도 흔들림 없이 매끄러웠다.
*
정리된 지하 철길을 한 바퀴 쭉 달린 후에는 중앙 카페로 돌아왔다.
브레이크 타임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손님들이 카페 정문 앞에 줄을 서 있었다.
"오, 오늘따라 손님이 많은 것 같아요···."
늘 만석이기는 했지만 웨이팅이 이렇게 길어진 적은 없었다.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늘어선 줄에 홍소라가 당황했다.
"아! 이거 때문인가 봐요!"
헌터 디바이스로 자신의 휴튜브 채널을 확인하던 정태영이 아까의 생방송에 달린 댓글 하나를 보여줬다.
-게이트뉴스GateNews✅: 오늘 방문하겠습니다! >_<
헌터와 관련된 방송을 하는 뉴스 전문 채널이었다.
헌터 디바이스 메인 화면에 표시되는 뉴스이기도 해서 헌터들이라면 모두 이 채널을 애용한다.
유안도 마찬가지였다.
소식을 빠르게 전해주기로 유명한 만큼 아까 정태영이 진행한 생방송을 벌써 '게이트 이슈' 코너에서 보도한 상태였다.
정태영의 방송보다 훨씬 파급력 높은 뉴스 채널에 중앙 카페와 지하 레스토랑이 소개되자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몰린 것 같았다.
개중에는 마나로부터 안전하다는 말을 믿고 방문한 비각성자도 몇 보였다.
'지상까지 안전한 게 맞기는 한데··· 그래도 지하를 이용하는 게 나을 텐데.'
마음이 급해진 유안이 일단은 인벤토리에서 명함을 잔뜩 꺼내 대기 중인 손님들에게 한 장씩 나눠주었다.
이거라도 갖고 있으면 안심이다.
"카페 사장님이시군요!"
그때 명함을 받은 손님 한 명이 반색하며 유안을 붙잡았다.
"···예, 맞습니다."
"바로 알아봤죠! 저는 게이트 뉴스에서 나왔습니다아-!"
게이트 뉴스의 기자는 제 인벤토리에서 거대한 촬영용 카메라를 꺼냈다.
모여봐요 게이트 앞
유안이 손을 쓰기도 전에 서정원이 나서서 카메라 렌즈를 가렸다.
"일단 들어가서 얘기하시죠, 기자님."
"앗, 네네! 사장님 보고 너무 흥분해서··· 카메라 다시 넣을게요!"
기자는 갑자기 놀라게 해 죄송하다는 말을 덧붙이며 유안과 정원의 뒤를 총총 따랐다.
3층 사무실에 도착하자 정원은 음료를 준비해 오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
"꼭 와 보고 싶었어요!"
유안은 기자와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고민하는데 다행스럽게도 상대가 먼저 말문을 터 주었다.
기자는 자신도 명함이 있다며 품을 뒤적거렸다.
"사장님 것보다는 훨씬 밋밋하지만··· 그래도 뽑은지 얼마 안 된 거예요!"
하얀 배경에 깔끔하게 검은 글자가 적혀 있었다.
게이트 뉴스 수습기자 손수혜.
수혜는 유안이 명함을 확인하자마자 와다다 말을 쏟아냈다.
"중앙 카페에는 전부터 계속 방문하고 싶었어요! 선배들이 촬영 간다고 하는 걸 제가 무릎 꿇고 반대했어요! 바닥에서 세 바퀴쯤 구르니까 질렸다는 표정으로 보내주더라고요, 히···."
"···촬영 목적 말고 손님으로 오셔도 되는 것 아닙니까?"
유안은 수혜가 그렇게까지 행동한 것을 이해할 수 없어서 대놓고 물었다.
중앙 카페에 오고 싶었으면 손님으로 왔을 때 오히려 환대를 받았을지 모른다.
'기자라고 하니까 정원 씨 반응도 별로였지.'
손님 응대는 누구보다 친절하게 하기로 유명한 서정원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던 것을 기억했다.
정원은 수혜를 딱히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지 않았다.
유안도 아직은 이 수습기자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중앙 카페에 접근한 건지 확신할 수 없었으니 날카롭게 경계의 시선을 보냈다.
"진짜 가고 싶은 가게는 촬영 목적으로 방문하는 게 제 로망이거든요! 중앙 카페 생겼을 때부터 눈독 들이고 있었는데 그때는 촬영 허가가 안 났어요···. 그래도 이번에는 성공했으니까요!"
"촬영 허가라면 게이트 뉴스 쪽에서 말입니까?"
"아뇨, 헌터 협회요!"
뭐?
유안은 제 귀를 의심했다.
헌터 협회에서 중앙 카페의 촬영을 막아왔다는 건 또 처음 듣는 소식이었다.
주먹이 불끈 쥐어진다.
"협회에서 정확히 무슨 제한을 뒀던 겁니까?"
"음··· 저도 말단이라 자세하게 듣지는 못했는데요! 방송국에서 굳이 찾아가 촬영하지 않아도 SNS 같은 걸로 충분히 유명세를 타고 있으니까 촬영 허가를 내줄 수 없다고 했대요. 헌터들이 이미 몰려들고 있어서··· 더 과열되는 걸 피하는 목적이라고 그랬던 것 같기도···? 히··· 근데 사실 저는 잘 몰라요! 선배들 어깨 너머로 들은 거라서요."
어깨 너머로 들은 것치곤 정보가 디테일했다.
유안은 마침 음료를 갖고 들어온 정원에게 말했다.
"정원 씨, 기자님 데리고 내려가서 촬영 협조 좀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류지우 파트장님 좀 위로 올라오라고 전해주세요."
"네, 사장님."
서정원이라면 중앙 카페의 장점을 잘 조명해줄 것이니 믿고 맡길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 류지우가 협회로 돌아가지 않고 카페 뒷마당에 있어서 다행이었다.
유안은 사무실 전면 창으로 뒷마당의 류지우를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가만 안 둬···.'
어쩐지 카페가 아무리 유명해져도 방송국에서 연락 한 번 오지 않는 게 이상하기는 했다.
연락이 오더라도 촬영을 쉽게 허락해주지는 않았겠지만, 그 선택권이 있는 것과 애초부터 없는 것은 달랐다.
헌터 협회에서 헌터 과잉 밀집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이런 짓까지 했을 줄은 몰랐다.
류지우는 금세 올라왔다.
서정원에게는 아무 얘기도 듣지 못했기에 의문 섞인 표정이었다.
"왜 부르셨습니까?"
"파트장님."
"···네, 이유안 사장님."
"진짜 이러시깁니까?"
"······네?"
유안은 지우에게 자리를 권하지도 않고 일어선 채로 추궁하기 시작했다.
"협회에서 일개 카페 상대로 비겁한 짓은 다 하고 다닐 줄은 몰랐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는 저는 잘···."
"중앙 카페 촬영 금지 처분이 이번에야 말소됐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모르고 계셨습니까?"
"······."
류지우는 유안의 말을 듣고 잠시 그 의미를 해석하느라 시간을 쏟았다.
딱 걸렸다거나 당황했을 때 짓는 표정은 절대 아니었다.
'진짜 몰랐나?'
유안은 지우의 반응에 화를 조금 누그러뜨리고 대답을 기다렸다.
류지우가 정말 몰랐던 거라면··· 그래도 화는 나지만 지우 말고 헌터 협회 자체에 따지러 갈 생각이었다.
"언론 쪽은 제 담당이 아니라서 정말 몰랐습니다."
"중앙 카페 이슈 전담하던 게 파트장님이시지 않았습니까."
"···최대한 자세하게 파악한다고 하긴 했는데 가려진 곳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죄송해요."
"······."
류지우가 저자세로 나오자 유안은 할 말을 잃었다.
사과를 들으니 화가 많이 가라앉기는 했으나 다른 부분에서 찜찜한 기분이 올라왔다.
'류지우가 모를 수 없는 사안이었어. 그런데 파악하지 못했다는 건··· 위쪽에서 일부러 숨긴 거겠지.'
나효숙의 소름 끼치는 미소가 떠올랐다.
유안은 자신도 모르게 제 팔을 문질렀다.
"휴튜브나 헌터그램 말고 방송국에서 정식으로 촬영하러 오지 않은 게 이상하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이유안 사장님이 다 거절하셨겠거니 생각하고 깊게 의심하지는 못했어요."
"······."
"어쨌든 제가 안일했던 건 맞습니다. 관련 사안 확인하러 협회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정황 파악 끝나면 말씀드리러 올게요."
"···예."
류지우가 좀 많이 달라진 것 같았다.
예전이었으면 이렇게까지 중앙 카페의 편의를 봐주지는 않았을 텐데, 무슨 심경의 변화가 생긴 건지 지나치게 협조적이었다.
그래도 헌터 협회의 높은 자리에 있는 직원이 우리 편을 들어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아마 협회장님이 손을 대셨지 싶긴 합니다. 그럴 경우에··· 제가 나설 수 있는 범위가 줄어들어요. 일단 노력은 해보겠습니다."
지우는 꽤 쓸쓸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지난번까지는 협회장과 사이가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것 같았는데, 그새 틀어지기라도 했나 싶었다.
류지우는 오늘 연차를 쓰고 나온 것이지만 큰 일이 터졌으니 어쩔 수 없었다.
정장 차림도 아닌 모습으로 출근하려니 입이 조금 썼다.
그런데 유안이 사무실을 나서려는 류지우를 덥석 붙잡았다.
"이거 드리겠습니다."
"···뭔가요?"
"카페 음료입니다."
"······."
버터 핫 초콜릿이었다.
유안에게서 건강 주스 말고 다른 음료를 받은 건 처음이라 류지우는 기분이 묘해졌다.
"좀 달긴 한데, 마시고 나면 피로가 풀릴 겁니다."
"···네, 잘 마실게요."
지우는 조금 떨떠름하게 답하며 음료를 인벤토리에 넣었다.
별일이 다 있었다.
*
게이트 뉴스에서는 중앙 카페 방송을 아예 특집으로 편성했다.
토요일 저녁 시간대, 트래픽이 가장 많을 때 헌터 디바이스로도 방송이 동시 송출되었다.
중앙 카페 사람들도 저녁을 일찍 먹고 차 한 잔씩 손에 든 채 방송을 시청하고 있었다.
"저, 정원 씨··· 지하까지 내려갔었네요······."
"장점은 확실히 보여주는 게 좋잖아요."
"열차 운전도 할 줄 아셨어요? 이건 진짜 몰랐는데!"
"면허만 있는 정도예요. 잘 하는 건 아니고요."
"······훌륭하신 것 같습니다."
서정원은 짧은 시간 동안 손 기자를 데리고 중앙 카페는 물론, 근처의 지하도까지 완벽하게 탐방했다.
잘 짜인 관광 코스를 보는 것 같았다.
열차를 한 정거장 정도 운전해서 움직이며 지하에 지어진 튼튼한 건물들을 하나하나 촬영하게 하기도 했다.
정원의 탁월한 소개 덕분에 중앙 카페와 지하도의 모습을 담은 방송은 실시간 검색어에도 오르며 삽시간에 유명해졌다.
헌터 말고 비각성자들 쪽에서 반응이 더 좋았다.
"그래도 아직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사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