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님; 음식도 맛있음;;
-난 사실 커피도 싫어하고 디저트도 싫어해 근데 중앙 카페 매일 가 맛있어!
-헌터 니들만 이렇게 좋은 거 알고 살았냐! 더럽고 치사하다!!
-아~ 게이트 앞으로 오등가 ㅋ
-엥근데 지금촬영중인곳도 게이트근처라며
-엥??? 짱다 비각성자아님?
-머?????
장다온이 비각성자인데 게이트 근처에서 촬영 중이라는 말이 채팅창에 활발하게 올라오자 정태영이 직접 나서서 상황을 설명했다.
레스토랑 건물 내부의 마나 측정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여전히 안 믿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장다온과 제자들까지 나서서 게이트 근처라도 안전함을 입증하자 어느 정도 잠잠해졌다.
"드디어 밝혀지겠네요."
시청자들의 반응을 충분히 뽑아낸 정태영이 하이라이트로 남겨둔 장다온의 요리를 가까이서 촬영했다.
-이게 대체 뭘까요?
태영은 장난스럽게 볼링공 같은 요리를 톡톡 두드려보는 시늉도 했다.
요리 비주얼 분량을 뽑을 만큼 뽑은 뒤에 반을 갈라보는 시간이 찾아왔다.
-싸장님! 칼을 들어주세요!
호명된 유안이 머뭇머뭇 다가가 볼링공에 나이프를 댔다.
위에서 아래로 쭉 가르는 것이 아니라 공에 뚜껑을 만들어주듯 공 옆구리에 칼질을 시작한 모습이 엉뚱했다.
"우, 우리 사장님이지만··· 가끔 무슨 생각 하시는지 모르겠어요······."
"그러게요. 저걸 저렇게 자를 줄은 몰랐네요."
"······."
그래도 결과적으로 유안의 선택은 옳았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볼링공 내부에는 수분을 적당히 머금은 리조또가 들어 있었다.
세로로 잘랐으면 그릇 위로 리조또가 흘려내렸을 것이다.
-처음에는 양식 만들 생각이 없었는데 웬만하면 구색 맞추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해봤어요.
장다온은 한식을 만들려고 했지만 제자들이 온통 양식에 손을 대고 있어서 다온도 그쪽으로 경로를 틀었다.
기왕이면 다른 요리와도 조화롭게 어울리는 것을 만들고 싶었다.
던전산 쌀을 사용하여 리조또의 밥알이 큼직하고 윤기가 줄줄 흘렀다.
화면만으로도 침샘을 자극하는 비주얼이었다.
"저, 저번에 죽 끓이고 남은 거 얼려놨었죠···? 가, 가져올게요······."
방금 식사했지만 다시 배고파진 홍소라가 후다닥 주방으로 달려갔다.
리조또와 비슷한 게살죽이라도 먹을 생각이었다.
장다온은 리조또를 감싸고 있는 볼링공도 밀가루 반죽을 바삭하게 튀긴 것이라 먹을 수 있다고 설명하는 중이었다.
-헌터들은 던전 안에서 제대로 된 그릇에 식사하기 힘들다고 들었어요. 던전 부산물로 만든 그릇이 있긴 하지만, 아주 급할 때는 그것조차 꺼낼 시간이 없을 테니까요. 그래서 별도로 그릇을 준비하지 않더라도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들려고 했어요.
그릇을 대신하는 밀가루 튀김은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된다.
다온은 던전 안에서 빠르게 섭취할 수 있도록 묽은 질감의 요리를 선택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리고 비각성자들은 보는 재미와 먹는 재미를 함께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레스토랑의 메뉴 중 하나 정도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게 있어야 좋거든요.
지금은 리조또를 넣어뒀지만 다른 요리를 랜덤으로 넣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식당에서 경험할 수 있는 재미를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는 음식의 모습에 중앙 카페 직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
외형, 맛, 영양까지 고려하여 평가를 내리자 제1회 마스터셰프 중앙에서 최종 우승을 거머쥔 건 장다온이었다.
심사위원 만장일치의 결과였기에 다온의 제자들이 실망하는 일도 없었다.
"스승님과 겨뤄볼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역시 스승님! 경연을 다 찢어놓으셨네요!"
"흐어엉··· 스승님이 만든 음식 너무 맛있어요······."
주방에 남은 재료들로 음식을 더 만들어 모두 함꼐 식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유안은 각기 다른 요리가 담긴 볼링공 다섯 개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뽑기하는 느낌으로 하나를 골랐다.
"운이 좋네요. 이유안 사장님."
"어떤 요리가 들어있는데 그러십니까?"
다온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유안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동그란 밀가루 껍질을 칼로 잘랐다.
그런데 안쪽에서는 요리 대신 종이가 나왔다.
'포춘쿠키였어···?'
유안은 종이에 적힌 글을 확인했다.
세 명의 제자와 장다온의 서명까지 확실하게 새겨진 그것은 네 사람 모두 이 레스토랑에서 일하겠다는 일종의 계약서 같은 것이었다.
"장다온 씨, 제자들과 함께 일하는 건 싫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유안은 다온을 어떻게 설득하면 좋을지 고민 중이었다.
'갑자기 먼저 제안하는 이유가 뭐지?'
다온의 심경이 왜 변한 것인지 궁금했다.
장다온은 제 요리를 황홀한 표정으로 먹고 있는 제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주방에 들어가보니 혼자 일할 규모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셰프를 구하는 것보다는 실력 확실한 사람들을 쓰는 게 모든 면에서 나을 거고요."
"스승님!"
"역시 저희를 믿어주셨군요!"
"허어엉, 감동이에요······!"
제자들이 다온의 말에 곧장 반응했다.
다시 한바탕 스승님 찬양을 시작한 제자들 사이에서 유안은 슬그머니 빠져나왔다.
'누나들은 아직 식사 중이고··· 아까 주현 씨한테 연락이 왔었는데.'
방송 중이라 받지 못한 전화가 한 통 있었다.
유안은 헌터 디바이스에의 부재중 전화 목록에서 김주현을 찾아냈다.
-이 사장님!
주현은 평소보다 세 톤은 높은 목소리로 우렁차게 유안을 불렀다.
이유안은 귀에서 헌터 디바이스를 살짝 떼어내며 답했다.
"예, 주현 씨. 무슨 일로 연락하셨습니까?"
-열차 완성됐어요! 지금 가져가고 있어요!
"···예? 벌써 말입니까?"
-네! 류지우 파트장님이랑 민희 씨도 같이 가는 중이에요! 금방 도착해요!
아침까지만 해도 마무리 단계라고 들었는데, 몇 시간 사이에 열차가 완성된 모양이었다.
유안은 기대와 긴장이 섞인 눈빛으로 철길 쪽을 바라보았다.
곧 중앙이를 닮은 열차가 저 철길을 달려 눈앞에 나타날 것이다.
중앙 카페행 열차입니다.
지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마친 유안은 지상으로 올라왔다.
중앙 카페에 들러 직원들을 데려오기 위해서였다.
'브레이크 타임에 맞춰서 다행이네.'
여유 있는 시간이라서 모두 함께 열차 구경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유안은 카페 정문을 활짝 열고 들어갔다.
"아저씨!"
1층 홀에 있던 윤슬이 로켓처럼 튀어나와 유안의 다리에 매달렸다.
유안은 윤슬을 자연스럽게 받아 안고 직원들이 모여 있는 대형 테이블에 다가갔다.
"뭐 하고 계셨습니까?"
식사는 이미 마친 것 같은데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대답은 윤슬이 해 주었다.
"저기에 아저씨 엄청 많이 나왔어! 맛있는 것도 많이 나왔어! 나도 줘!"
"아······."
방송 봤구나.
이제 보니 테이블 가운데에 큰 화면의 기기 하나가 놓여 있었다.
생방송이 끝나고 바로 올라온 다시 보기 영상을 다함께 돌려 보는 중이었다.
때마침 유안의 얼굴이 화면 가득 나타났다.
이유안은 차마 자신이 나오는 방송을 보기가 민망해서 시선을 어색하게 허공으로 돌렸다.
"나도 줘!"
"어떤 거."
"동그란 거!"
어린이의 눈을 사로잡은 건 역시나 장다온이 만든 음식이었다.
유안은 인벤토리에 챙겨온 요리들을 꺼내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동그란 밀가루 튀김 다섯 개를 윤슬이 요리조리 살펴보기 시작한다.
"화면 잘 받으시던데요, 사장님."
"다, 다른 사람인 줄 알았어요···."
"······사장님은 카페 말고 다른 일도 잘 하실 것 같습니다."
분명 칭찬인데 놀림 받는 기분이 들었다.
유안은 머쓱한 표정으로 뒷목을 매만지고 열차 소식을 전했다.
"방금 주현 씨한테 연락 받았습니다. 열차가 완성됐다고 합니다."
"열차?"
"응, 열차."
윤슬은 자신이 전에 살던 곳도 지하철이라서 관심을 보였다.
유안은 윤슬의 입가에 묻은 튀김 조각을 떼어주며 제안했다.
"윤슬, 같이 구경하러 갈래?"
"응!"
이제 먹을 게 눈앞에 있어도 욕심을 부리지 않게 된 윤슬은 밀가루 튀김 네 개를 그대로 내버려 두고 순순히 유안을 따랐다.
직원들도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났다.
"다른 분들도 부르는 건 어떨까요, 사장님?"
서정원의 말에 유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카페에 자주 오는 단골들에게는 연락을 돌릴 생각이었다.
아쉽게도 최선진은 연락을 받지 않았지만 다른 단골들은 바로 오겠다는 대답을 들려주었다.
"수, 수창 길드장님도 부르는 건 어때요···?"
홍소라가 유안의 연락처를 함께 살피다가 뜻밖의 이름을 말했다.
'굳이···?'
수창 길드장과는 여전히 어색했다.
꼭 친해져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니 유안은 그냥 이 정도 사이를 유지하고 싶었다.
그곳의 길드원들이 던전 부산물을 많이 챙겨주고 있기는 했으나 그건 그 사람들 개인에게 고마운 일이었지, 수창 길드 전체에 감사를 느끼지는 않았다.
'수창의 다른 사람들이면 몰라도 길드장은 좀 그렇지.'
전보다는 나쁜 이미지가 많이 희석되기는 했으나 유안은 그 첫인상을 잊을 수 없었다.
전 중앙 카페 알바생인 최선진이 울면서 했던 말이 머리에 깊게 각인된 탓이었다.
그런 이유로 수창 길드장을 부르기는 께름칙했다.
유안이 영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자 홍소라도 더 권유하지는 않았다.
서정원은 뒤쪽에서 은은한 미소를 띠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부를 사람은 다 부른 것 같으니 우리도 내려갑시다."
"네, 사장님. 윤슬아, 안아줄까?"
"응!"
윤슬은 이제 익숙하게 팔을 뻗을 줄도 알았다.
쑥쑥 크고 있다지만 여전히 가볍기만 한 아이를 정원이 능숙하게 안았다.
카페 사람들을 모두 이끌고 지하로 내려가자 계단 근처에서 기다리던 무리가 보였다.
언제 왔는지 강해민도 함께였다.
"해민아, 어디 갔다가 이제 왔어?"
"반대쪽 철길 최종 점검. 이상 있는 곳은 없었다."
철길의 제작과 설치는 해강특수건설에서 맡아 주었기에 믿음직스러웠다.
던전 부산물로 철길을 만드는 게 처음인데도 헤매지 않고 뚝딱 완성해서 시간도 많이 단축되었다.
해강과 강해민의 실력만큼은 그 까다로운 류지우도 인정할 정도였다.
'앞으로도 많이 부려··· 아니, 많이 부탁해야지.'
유안은 강해민과 친구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무리의 맨 앞에 섰다.
"지하철 타러 갑시다."
주현은 게이트 제한 구역 바로 앞의 역으로 도착할 것이다.
이유안은 사람들을 이끌고 그곳에 미리 가 있을 생각이었다.
*
"공방 처음 열었을 때 이후로 이렇게 떨리는 건 처음이야!"
"으하하! 나도 내가 만든 차 폭발했을 때랑 비슷하게 떨려!"
"민희야, 열차는 안 터지겠지?"
"걱정 마!"
열차를 만들며 친해진 김주현과 류민희는 말도 놓고 편한 친구처럼 지냈다.
류민희가 운전하는 차에 타서 중앙 던전 근처로 오는 내내 쉬지 않고 떠들었다.
조용한 건 뒷좌석에 홀로 앉은 류지우 뿐이었다.
"파트장님도 기대되시죠! 다 완성된 건 못 보셨잖아요!"
"야야, 쟤는 원래 기대, 기쁨, 희망, 행복, 이런 감정이 없어."
"······."
"민희 네가 파트장님이랑 쌍둥이인 거 진짜 안 믿긴다. 성격이 이렇게 다를 수가 있구나."
"그래서 어릴 때는 많이 싸웠지!"
"···네가 일방적으로 시비 건 거였잖아."
지우가 작게 투덜거리자 민희가 자동차 경적을 빵빵 울리면서 그것도 맞다고 인정했다.
벌써 게이트 제한 구역 근처라서 허허벌판이었기에 요란한 차 소리에도 놀랄 사람은 없었다.
류민희는 생각보다 부드럽게 차를 세웠다.
지하도로 이어지는 계단 앞이었다.
"가자!"
"그러자!"
신이 난 두 사람은 차키도 뽑지 않고 우당탕탕 내려가버렸고, 혼자 남은 류지우가 한숨을 쉬며 뒷정리했다.
류민희는 비각성자였다.
쌍둥이인 지우가 S급으로 각성하여 헌터로서 활약하는 동안 민희는 평범한 비각성자의 삶을 살았다.
큼직한 기계 부품을 만지는 것이 어릴 때부터의 특기였기에 진로도 그쪽으로 정했다.
철강업에 잠깐 종사하다가 자동차 생산 라인으로 넘어가 수천, 수만 대의 차량을 만들었다.
중형차라면 눈 감고도 도면을 전부 떠올릴 수준이 되었기에 던전 부산물로 만드는 특수차량이 떠오르기 시작했을 때 누구보다 빠르게 선두에 나설 수 있었다.
그래도 처음에는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지만 S급 헌터인 지우 덕분에 재료가 부족할 일은 없어서 원 없이 제작 연습을 할 수 있었다.
이제 평범한 특수차량은 류민희 혼자 힘으로도 만들 수 있었다.
"주현이 네가 와 줘서 진짜 다행이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