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4화 (44/137)

정태영은 그새를 못 참고 인벤토리에서 쿠키 몇 개를 꺼내 오독오독 씹는 중이었다.

"어! 짱다온~!"

출구 근처에 서 있는 사람을 발견한 태영이 남은 쿠키를 꿀꺽 삼키고 손을 흔들었다.

태영의 친구이자 미식가, 그리고 휴튜브에서 짱다TV를 운영 중인 장다온이 마주 인사했다.

"옆에는 누구?"

"중앙 카페 싸장님이셔!"

"아. 안녕하세요."

"예, 반갑습니다. 이유안이라고 합니다."

"장다온이에요."

다온은 안경을 치켜올리며 유안과 가볍게 악수했다.

구김 없는 옷차림과 높게 올려 묶은 뒷머리가 장다온의 성격을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

"태영이한테 얘기를 듣기는 했는데, 정말 지하도 전체가 안전한 것 맞나요?"

"예. 헌터 협회에서 인증서도 받았습니다."

유안은 비각성자인 다온에게 문서 하나를 보여주었다.

류지우가 빠르게 처리해준 마나 프리 존 인증서였다.

그리고 혹시 모르니 유안은 제 인벤토리에서 명함 한 장을 꺼냈다.

보라색 펄이 영롱하게 들어간 명함은 김주현이 한 장 한 장 공들여 만든 것이었다.

중앙이가 준 선물을 예쁘게 세공한 뒤 가루 내서 명함 종이에 솔솔 뿌리니 그 자체로 마나를 막아주는 아이템이 되었다.

'비각성자들에게 매번 세공된 핵을 주기에는 번거로우니까.'

이제 유안의 명함을 지니는 것만으로도 게이트가 뿜어내는 마나로부터 안전할 수 있는 것이다.

"제 명함입니다. 마나를 막아주는 효과도 붙어 있습니다."

"고마워요. 항상 가지고 다녀야겠네요."

안전하다는 것이 증명되자 긴장을 푼 다온이 자신의 명함도 유안에게 한 장 건넸다.

요리연구가 장다온

KFU-CDC-E1

유안의 것보다 훨씬 단조로운 디자인의 명함에는 기본 정보만 짤막하게 적혀 있었다.

뒷면은 아예 백지였다.

'그나저나 요리연구가라니··· 대단한 사람이었잖아.'

정태영이 이야기한 것만 들었을 때는 유명한 미식가 휴튜버 정도로 생각했는데 그 이상이었다.

전문적으로 요리 관련 일을 하는 거라면 자신의 레스토랑도 갖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안은 요리연구가를 중앙 카페로 안내하며 알게 모르게 긴장했다.

'서정원 씨도 아귀찜은 처음 만들어보는 것 같았는데···.'

인터넷에 레시피를 검색해가며 가벼운 마음으로 만들 생각이던 저녁 식사를 요리연구가에게 대접하게 될 줄은 몰랐다.

중앙 카페의 저녁 만찬은 실패하는 법이 없었으나 미식가의 입에는 또 다를지 모른다.

"저 건물입니다."

앞장서서 지하도를 빠져나온 유안은 더 센터 건물을 가리켰다.

장다온이 고개를 끄덕이며 유안의 뒤를 따랐다.

"예쁜 건물이네요."

"···감사합니다."

다온이 별다른 저의 없이 칭찬을 해도 심사위원에게 평가를 받는 것 같았다.

정태영이 긴장한 유안을 보며 웃었다.

"싸장님, 짱다가 미식가이긴 해도 사람은 안 먹으니까 긴장 좀 푸세요!"

"사람 고기가 제일 맛있다는 말도 있긴 하지만 저는 식인종이 아니니까요."

"······."

다온이 덧붙인 농담에 유안의 등골은 더욱 서늘해졌다.

이유안은 그냥 뒷마당에 도착할 때까지 말을 줄이기로 했다.

장다온을 데리러 가기 전까지 물고기 형체가 남아 있던 초롱아귀는 어느새 여러 덩이의 살점이 되어 있었다.

가시를 전부 바르고 먹을 수 있는 부위만 남기자 부피가 많이 줄었다.

무시무시한 외관이 사라지자 홍소라도 뒷마당으로 복귀했다.

"여러분! 제 친구예요! 이름은 장다온! 얘도 중앙 카페 음식 엄청 좋아해요!"

정태영이 다온을 모두에게 소개했다.

장다온과 가볍게 인사를 나눈 사람들이 다시 초롱아귀를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었다.

"이, 이걸 이제 어떻게 하죠···?"

"제일 큰 사이즈 냄비에 넣으면 들어갈 것 같긴 한데, 그 전에 양념이랑 재료 이것저것 준비해야 하지 않아요?"

"찾아보니까 해물 육수를 따로 내면 더 맛있대요."

서정원이 헌터 디바이스의 아귀찜 레시피를 확인하며 말했다.

그런데 초롱아귀에서 나온 초롱불을 바라보던 장다온이 중앙 카페 직원들의 대화에 자연스럽게 참여했다.

"그냥 아귀가 아니고 심해 아귀인가 보네요. 이건 생각보다 별 맛이 안 나요."

다온은 기계처럼 건조한 음성으로 아귀찜에 쓰는 일반 아귀와 초롱아귀의 차이점을 줄줄 읊었다.

저 많은 정보를 머릿속에 다 저장하고 다닌다는 게 신기했다.

"양념장을 좀 진하게 만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육수랑 부재료도 일반 아귀찜과 다르게 하는 게 좋을 거고."

"우, 우와···. 다, 다온 씨 요리 잘하시나 봐요······."

"웬만한 요리는 다 해봐서 레시피를 외운 것뿐이에요."

"다 외우고 있다는 게 진짜 대단한 거죠! 아귀찜은 만들어본 사람이 없어서 우리끼리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전문가가 오셔서 다행이에요."

홍소라와 김주현이 능숙하게 치켜세워주자 요리연구가 장다온은 자연스럽게 셔츠 소매를 걷어올렸다.

"주방이 어느 쪽인가요?"

저녁만 먹으러 왔던 미식가가 자발적으로 조리 과정에 참여했다.

*

국물이 진하게 우러나도록 육수에는 초롱아귀 머리와 뼈도 함께 썼다.

그리고 언젠가 쓰이지 않을까 싶어서 한데 모아둔 던전산 보리 껍질이 요긴하게 사용되었다.

"향긋하네요."

일반 보리와 다르게 특유의 향을 머금고 있었기에 생선 비린내를 잡는 데 탁월했다.

장다온의 지시대로 육수를 내고, 생각지도 못한 식재료를 넣어 아귀찜을 익히기 시작했다.

서정원의 환상적인 불조절로 금세 맛있는 냄새가 솔솔 피어올랐다.

"이제 먹어도 되나요?!"

정태영이 팔팔 끓는 솥 안쪽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장다온이 익숙하게 태영의 얼굴을 밀어내며 말했다.

"오 분만 더 끓이고."

정확히 오 분을 더 기다리자 아귀찜의 국물이 자작하게 졸아들면서 먹기 딱 좋은 형태로 완성되었다.

"잘 먹겠습니다아!"

정태영은 사람 수대로 넣은 던전산 낙지를 가장 먼저 시식했다.

탱글탱글한 낙지 다리를 깨무니 얼큰한 국물이 스며나온다.

"맛있워··· 최고··· 짱······."

태영은 감동적인 맛에 거의 울면서 낙지 한 마리를 흡입했다.

그리고 국자로 커다란 살점 한 덩이를 퍼내어 한 입에 넣어버린다.

"흐워······."

입천장이 까질 것처럼 뜨거웠지만 태영은 B급 헌터였다.

뜨거움 정도는 등급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

구수함과 향긋함이 더해진 맛에 태영은 살점을 몇 번 씹지도 않고 삼켰다.

집 나갔던 입맛도 순식간에 돌아오게 만드는 요리였다.

다른 사람들은 태영의 먹방을 흥미롭게 지켜보다가 수저를 들었다.

정태영은 먹방 전문 휴튜버답게 보는 사람까지 배고파지게 만드는 능력이 있었다.

배가 별로 고프지 않았던 강해민도 제 그릇에 살점 한 덩이를 올렸다.

유안은 아귀찜에 가득 넣은 콩나물을 집었다.

던전산 식재료는 조리 후에도 제 색을 유지하는 힘이 강해서 눈에 잘 들어왔다.

간이 잘 밴 살점에 콩나물을 비롯한 채소들을 함께 올리고 한 입에 넣자···

'이거 진짜 맛있잖아?'

생선은 구웠을 때가 가장 낫다고 생각하던 유안의 인생에 혁명적인 맛이었다.

맛과 향, 그리고 식감까지 좋았다.

서정원이 장다온의 지시에 맞추어 불조절을 한 덕분이었다.

평소와 같은 저녁 만찬이지만 요리연구가 장다온이 함께하자 던전산 식재료로 낼 수 있는 최상의 맛을 찾을 수 있었다.

유안을 비롯한 모두가 오랜만에 대화도 없이 식사에만 집중했다.

정말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만 벌어지는 진풍경이었다.

다들 양껏 먹자 그 많던 아귀찜이 금세 바닥났다.

윤슬은 매워하면서도 계속 먹어서 입술이 빨갛게 퉁퉁 붓기까지 했다.

서정원이 그런 윤슬에게 연유 얼음을 주었다.

"중앙 카페 사장님."

"예?"

유안도 오랜만에 과식하여 뒷마당 소파에 늘어져 있는데 장다온이 다가왔다.

다온이 먼저 말을 걸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해서 약간 당황하고 말았다.

유안이 자세를 고쳐 앉으며 다온을 마주보았다.

장다온은 어쩐지 좀 비장한 표정이었다.

"던전산 식재료로 하는 요리는 처음인데 상상 이상으로 다채로운 맛이 나더라고요. 다양한 재료로 많은 요리를 해 봤지만, 제가 원하는 맛을 정확하게 낸 건 오늘 쓴 식재료가 처음이었어요."

"···예, 그러셨습니까."

유안은 순간 요리연구가의 뒷말을 예측하고 말았다.

스승님!

이건 분명했다.

무언가 바라는 게 있을 때만 나오는 눈빛!

유안은 장다온이 던전산 식재료 납품 이야기를 꺼낼 것이라 100% 확신할 수 있었다.

'우리 쓸 것도 모자라다고 거절하는 게 제일 무난하겠지.'

사실 여기저기서 공짜로 받는 재료가 많아 넘치는 감이 있었으나 다온에게 그것을 팔아줄 수는 없었다.

요리연구가 장다온이 던전 부산물로 제대로 요리를 시작하면 중앙 카페가 밀리게 될 수도 있다.

잠깐 봤을 뿐인데도 느껴지는 다온의 요리 실력이 워낙 확실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드는 경계심이었다.

'경쟁 업체가 될 수도 있어.'

유안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어떻게든 거절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말인데요. 저도 이 카페 주방에서 일할 수 있을까요?"

"······예?"

다온의 입에서 나온 말은 유안이 예상한 것과 달랐다.

장다온은 중앙 카페에서 꼭 일하고 싶은지 곧은 자세와 단호한 표정을 유지하는 중이었다.

"저희 카페에서··· 말입니까?"

"네. 메뉴판을 보니 지금은 카페 메뉴가 대부분이지만 식사류로 확장해도 수요는 충분히 나올 것 같아요. 어차피 헌터 상대 장사죠? 그럼 더 수월할 거라고 생각해요."

"예, 맞는 말씀이기는 합니다."

게이트 근처의 헌터들은 늘 배고프다.

유안이 중앙 카페를 시작하고 매일 느끼는 감상이었다.

그렇기에 식사류를 메뉴에 추가한다고 해서 기존 메뉴가 덜 팔리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식후 커피가 더 불티나게 팔리겠지.'

유안도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당장 식사까지 겸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

일단 자리가 부족했다.

더 센터 건물 1, 2층을 통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요즘은 웨이팅이 매일 생기는 추세였다.

테이크아웃 손님이 훨씬 많은데도 그랬다.

중앙 카페가 헌터들 사이에서 필수 방문 코스가 되었는지 매일 빼놓지 않고 방문하는 단골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카페만으로도 이런데 여기서 식사 메뉴까지 추가하면 더 센터 건물로는 감당이 안 된다.

"장다온 씨가 중앙 카페 직원으로 들어오는 건 당연히 환영입니다. 훌륭한 실력을 가지셨으니까요."

"네. 그런데 다른 문제가 있나요?"

"따로 건물이 하나 더 필요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유안은 그 말을 하며 은근히 강해민 쪽에 눈치를 주었다.

후식 커피를 마시던 해민은 이유안을 바라보다가 눈이 마주치자 먼저 피했다.

'해민이를 닦달해서 건물을 하나 짓는다고 해도 문제야. 직원이 훨씬 많이 필요할 테니까··· 급하다고 아무나 막 뽑을 수도 없고.'

다온을 주방 직원으로 영입하는 건 좋지만 뒷받쳐줄 직원도 더 많이 필요했다.

장다온은 바로 장사를 시작하고 싶은 것 같은데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건물을 굳이 지상에 지을 필요는 없지 않나요?"

그런데 장다온이 새로운 제안을 했다.

"아까 오면서 보니까 지하도가 무척 깨끗하더라고요. 지하 점포가 몰려 있던 자리는 공간도 꽤 넓게 나 있고."

"···그렇기는 합니다."

"저 같은 비각성자들도 오고가게 하려면 지하에서 장사하는 게 훨씬 나을 거예요. 아무래도 거기는 곳곳에 마나 측정기도 있으니까요."

사방이 막힌 지하라서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는 것도 있었다.

"그리고 이 건물은 이미 헌터들의 성지로 알려졌거든요. 휴튜브에서 워낙 유명해졌어야죠. 아무리 전투 금지 구역 지정이 됐다지만, 어떤 비각성자가 상급 헌터들 우글거리는 곳을 가고 싶어하겠어요. 대부분은 몸 사리기 바쁘죠."

장다온은 상급 헌터에 대한 공포보다 던전산 식재료로 만든 요리에 대한 기대가 더 커서 오늘 만찬에도 참여하기는 했지만, 세간에서는 여전히 비각성자들이 각성자를 두려워하는 분위기가 보편적이었다.

헌터는 헌터끼리 어울리고, 비각성자는 비각성자끼리만 어울리는 것.

가진 힘의 격차로 자연스레 벌어진 이분화 현상이었다.

던전이 처음 생겨난 이후 오랜 시간이 흐른 만큼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잡기도 했다.

'단숨에 해소될 수는 없겠지.'

중앙 카페에서 하급 헌터와 상급 헌터가 차별 없이 어울리는 것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각성자와 비각성자뿐 아니라 등급간 분열도 심각한 문제 중 하나였으니까.

"지하에 식당을 차리면 자연스럽게 비각성자들을 끌어올 수 있을 거예요. 일단 제가 비각성자이니 안전하다는 믿음도 생길 거고요."

"···장다온 씨는 그렇게까지 하시려는 이유가 뭡니까?"

"말했잖아요. 던전산 식재료야말로 제가 원하는 맛을 낼 수 있는 최상의 재료라고. 좋은 요리를 할 수 있는 경험을 놓칠 수는 없죠."

장다온이 안경 너머의 눈을 반짝 빛내며 말했다.

다온이 가지고 있는 요리에 대한 열정이 함께 반짝거렸다.

*

"일거리를 끊임없이 주냐."

"그래서 좋지?"

"···그냥 일하는 건데 좋고 싫고가 어딨어."

좋으면서.

유안은 해민이 가져온 건물 도면을 살피며 피식 웃었다.

단기간에 완성할 수 있는 도면이 아니라고 투덜대더니 며칠 걸리지도 않았다.

넓은 지하 공동을 채울 건물은 여러 채였다.

일단 가장 큰 건물 한 채를 먼저 짓고, 나머지는 차근차근 늘려가기로 했다.

하는 김에 지하철 내부에 조립식 건물도 넉넉하게 들일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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