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7화 (37/137)

"그쪽 애 말입니다."

"제 애-."

"사장님."

유안이 무어라 말하려는데 정원이 그것을 막았다.

그러자 이유안이 작게 헛기침하더니 단호하게 답했다.

"그걸 파트장님이 궁금해할 이유는 없는 것 같습니다."

"······."

너무나 맞는 말이라 류지우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유안의 앞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협회 일은 아닙니다.

류지우는 결국 아이에 관해 어떠한 정보도 들을 수 없었다.

유안이 얼른 애를 데리고 3층으로 올라가버렸기 때문이다.

"···허."

지우는 인벤토리에 중앙 카페 메뉴를 잔뜩 채우고 나와서도 허전함을 느꼈다.

분명 카페에 온 목적은 달성했는데 뭔가 찝찝한 느낌이 들었다.

자신을 또렷이 응시하던 아이의 까만 눈을 잊을 수 없었다.

'몇 살에 애를 낳은 거야.'

아이의 생김새로 나이를 유추해 봤을 때 엄청난 결론이 나왔다.

류지우는 중앙 카페 사장이 보기보다 발랑 까진 인간이었다고 생각하며 터벅터벅 걸어갔다.

다른 직원과 함께 온 게 아니라서 차를 타고 돌아갈 수도 없었다.

걸어서 게이트 제한 구역 밖으로 나온 지우는 택시를 잡아 타고 제 집으로 향했다.

류민희는 몇십 분 전에 도착했다고 이미 메시지를 보낸 상태였다.

혼자 사는 집에 들어가자 삭막하지 않게 온 집안의 불이 켜진 모습이 보였다.

가구가 별로 없어서 휑하게 느껴지는 거실 한복판에 쌍둥이 동생이 있었다.

"이거 마음에 든다?"

민희가 지우 쪽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류민희의 시선이 거실의 유화 한 점에 고정되어 있었다.

"좋은 건 잘 알아보네."

공교롭게도 민희가 감상하던 그림은 지우가 가진 것 중 가장 가치 있는 것이었다.

"오? 이거 비싸?"

"파는 건 아냐."

"에이, 그럼 관심 없어."

돈이 되지 않는다는 말에 류민희의 관심이 빠르게 식었다.

그림 감상을 관둔 민희가 거실 테이블 쪽으로 다가갔다.

테이블 위에는 집안의 모든 술이 다 나와 있었다.

"안주 사 왔지?"

"이건 동생이 아니라 술고랜가······."

"새삼스럽게 뭘 그래? 얼른 앉아, 앉아! 오늘 이거 다 마실 때까지 못 잔다!"

"하······."

하루의 피로를 풀 겸 해서 만나자고 한 건데 오히려 피곤함이 쌓이는 것 같았다.

지우가 인벤토리에서 중앙 카페 디저트를 전부 꺼냈다.

"안주로 케이크랑 빵? 안 본 사이에 이상한 취향이 추가됐네?"

"고기도 있어."

스테이크나 생선구이는 메뉴에 없었으나 서비스로 받았다.

메뉴를 전부 구매하면서 팁까지 넉넉하게 치렀더니 홍소라가 주방에 꿍쳐둔 것을 내어주었다.

"오? 이거 맛있네?"

민희가 에그타르트를 한입에 쏙 넣더니 짤막하게 감탄했다.

술 빼고 다른 음식에는 칭찬하는 일이 없는 류민희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정도면 정말 맛있다는 것이었다.

'음식 맛은 나쁘지 않은 가게지.'

지우 역시 중앙 카페의 맛이 훌륭한 건 인정했다.

사장이 무척 의뭉스럽다는 것만 제외하면 나머지 직원들은 친절하기도 둘째 가라면 서러웠다.

"빵술 생각보다 괜찮은데?"

류민희가 자리에 앉아서 본격적으로 빵과 술을 흡입하기 시작했다.

지우도 맞은편에서 술을 몇 잔 비우다가 본론을 꺼냈다.

"요즘 작업은 어때."

"재료 수급 안 되고, 일손 맨날 부족하고, 작업 환경 열악한 정도?"

"평소처럼 지내고 있나 보네."

"그렇지, 그렇지."

류민희는 류지우의 농담을 낄낄대며 받았다.

양주 한 병을 금세 비운 민희가 이제 진짜 용건을 말해보라는 듯 턱을 까딱인다.

"그래서 왜 불렀는데? 맨날 부탁할 거 있을 때만 부르지 않냐?"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뭐?"

"2호선 지하도에 숨을 만한 공간 있어?"

뜻밖의 질문에 민희가 어깨를 으쓱했다.

"구체적으로 말해야 알아듣겠는데? 무슨 숨을 공간?"

"사람이 몸을 숨길 만한··· 비밀 통로나 장소 같은 거."

"아하! 있지, 있지!"

"얼마나?"

"일단 네가 하루 동안 처리하는 서류 수보다는 많을 것 같은데?"

류민희가 또 킬킬 웃었다.

지우는 민희의 빈 잔에 독한 술을 따라주며 이어 질문했다.

"정확한 위치 기억하고 있지?"

"어떨 것 같은데?"

민희가 술을 원샷하고 씨익 웃는다.

"정보 넘기면 괜찮은 인력 하나 소개해줄게. 재료도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고."

"에이, 기분이다! 종이 한 장 가져와 봐!"

"한 장이면 돼?"

"어어, 큼직한 걸로다가!"

류민희가 호탕하게 웃으며 병나발을 불었다.

지우는 속으로만 한숨을 내쉬며 큰 종이를 찾으러 갔다.

*

"정말 같이 있어드릴 수 있어요, 사장님."

서정원이 이유안을 향해 말했다.

유안은 뒷마당에서 중앙이와 술래잡기 하는 아이를 잠깐 바라보고 고개를 저었다.

"잠만 재우면 되니까 저 혼자서도 괜찮습니다. 정원 씨도 퇴근하셔야죠."

다른 직원들은 뜻밖의 류지우를 견뎌내느라 급격하게 피로감을 얻은 채 우르르 퇴근했다.

그런데 서정원은 아이와 유안만 남겨두는 것이 불안하다며 이 늦은 시각까지 남아 있었다.

"주현 씨가 이것저것 많이 만들어두고 갔으니 괜찮을 겁니다."

"내일 일찍 출근할게요."

"아뇨, 평소대로 오셔도 괜찮습니다. 애들은 원래 늦게까지 자니까요."

"음··· 저 아이가 평범한 애들처럼 늦잠을 잘 것 같지는 않아서요."

"······."

그렇기는 했다.

유안은 할말을 잃고 잠시 고민하다가 결정을 내렸다.

"···그럼 오늘은 이만 퇴근하시고, 내일 한 시간만 일찍 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네, 사장님."

서정원은 아이가 자지 않으려 할 때의 팁 몇 개를 알려주고 중앙 카페를 떠났다.

유안은 조금 착잡한 마음으로 애를 데리러 뒷마당에 나갔다.

"이상한 고양이이이!"

이 주변에 다른 집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아이는 자꾸 사이렌 같은 소리를 내며 중앙이를 쫓아다녔다.

작은 포식자는 동상 형태에서 깨어난 뒤 처음으로 삶의 고단함을 체험하고 있었다.

"꼬맹아, 잘 시간이야."

"싫어! 안 졸려! 안 자!"

아이가 빼액 소리쳤다.

그러나 이 정도 투정은 충분히 예상했다!

유안은 인벤토리에서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페데릭 백작 저택] 던전에서 파밍한 초대형 곰인형.

거기에 만물 공방 장인의 손길이 닿았다.

팔다리와 눈코입이 자유분방하게 달려 있던 인형을 보기 좋게 수선하니 아이의 장난감으로 딱이었다.

중앙이를 엄청난 속도로 뒤쫓던 아이가 곰인형을 보고 몸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우아······."

꼬맹이가 입을 벌리고 다가와 인형에게 팔을 뻗으려 했다.

하지만.

휘익!

아이의 손이 닿기 전, 유안은 곰인형을 인벤토리에 도로 집어넣으며 말했다.

"침대에 누웠을 때만 만질 수 있는 인형이야."

"···자러 가면 나 주는 거야?"

"응."

"진짜로? 거짓말 아니구?"

"처음부터 네 거였어."

"우와아······."

유안은 아이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3층으로 천천히 이끌었다.

무사히 3층 침실에 들어온 뒤에는 아이의 겉옷부터 벗겼다.

'한두 시간 전에 씻긴 거 같은데··· 왜 탄광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됐지?'

얼굴은 물론이고 몸 곳곳에 시커먼 먼지 자국이 생겨 있었다.

정말이지 어린애는 통제불가의 생명체였다.

유안은 서정원이 했던 것을 떠올리며 아이와 함께 간단한 목욕을 마쳤다.

다 씻고 나오니 진이 빠져서 머리만 대면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인형 줘!"

"누워야 주지."

"으응, 근데 아저씨도 나랑 같이 자?"

"응."

"왜? 아저씨 혼자 못 자? 겁쟁이네!"

"······."

유안은 대답을 포기하고 곰인형이나 넘겨주었다.

아이는 제 몸보다 큰 인형을 좋다고 끌어안으며 눈을 감았다.

'제발 아침까지 푹 자라.'

이유안은 간절히 바라며 아이의 몸을 토닥였다.

새근새근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릴 때까지 기다린 뒤에 자신도 잠을 청했다.

*

유안은 제 품에 안긴 푹신함을 느끼며 깨어났다.

육아 강도가 높았던 탓에 평소보다 한 시간 늦게 일어났는데 곁에 아이가 없었다.

"인형도 두고 어딜···."

중얼거리던 유안은 어제 자신이 한 말을 떠올렸다.

'침대에 누웠을 때만 만질 수 있는 인형이라고 해서 두고 나간 건가?'

그래도 아이는 아이인지 순진한 구석이 있었다.

유안은 인형을 인벤토리에 넣지 않고 침대에 잘 앉혀둔 뒤 침실을 나섰다.

1층으로 내려와서 곧장 뒷마당 문을 여니 다행스럽게도 아이와 서정원이 보였다.

"좋은 아침이에요, 사장님."

"왜 이렇게 일찍 오셨습니까."

오픈까지 두 시간도 넘게 남았는데 벌써 애를 보고 있는 서정원에게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다.

유안은 헌터 디바이스의 파티 시스템을 켰다.

육아를 도맡아준 보답은 제대로 할 생각이었다.

"사장님, 아침 식사 아직이시죠?"

"예. 서정원 씨도 안 드시고 오셨으면 제가 간단하게 차리겠습니다."

폭주기관차처럼 뛰어다니는 아이를 보는 것보다야 요리가 훨씬 편했다.

유안은 간단히 씻고 나와서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러고 보니··· 요리 마지막으로 한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나네.'

마나로 작동하는 화덕에 불을 켜며 생각했다.

요리 잘하는 직원들이 많아서 입과 몸이 행복한 생활을 해 왔다.

타악.

유안은 낯선 기분을 느끼며 던전산 새알을 깼다.

치이익-.

기름을 두른 팬에 흰자가 넓게 퍼지며 맛있는 소리를 냈다.

가운데의 샛노란 원은 볼록 튀어나온 채 신선함을 자랑했다.

유안은 깨지지 않은 써니 사이드 업을 세 장 부치고 접시에 옮겨 담았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훈제 베이컨을 꺼냈다.

서정원의 스킬로 통나무에 불을 붙이고, 거기서 나오는 연기로 긴 시간 훈연한 것이었다.

따로 굽지 않고 그대로 먹어도 되지만 유안은 따뜻한 베이컨을 선호했다.

아이가 좋아할 법한 맛이기도 하니 일부러 여러 장을 구웠다.

짭짤하게 스며나온 베이컨 기름에 식빵도 몇 장 구워 접시에 올리니 간단하고도 든든한 아침 식사가 완성되었다.

온도를 보존해주는 던전 부산물로 만든 접시라서 음식이 식을 걱정도 없었다.

1층의 4인용 테이블에 식사를 차렸다.

아이가 마실 따뜻한 우유와 어른용 커피 두 잔을 준비하는데 풍경 소리가 났다.

딸랑.

'아, 문 잠가놔야 했는데.'

바깥에 닫힘 팻말을 걸어두어도 굳이 문을 열어보는 손님들이 간혹 있었다.

유안은 아직 오픈 전이라고 정중하게 말할 생각으로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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