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화 (35/137)

쏘옥.

나쁜 말을 하느라 벌어져 있던 집게발 도둑 입에 초콜릿이 들어갔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우음···."

인정하기는 싫지만 맛있어서 짜증이 났는지, 아이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꿀꺽.

입에서 살살 녹는 초콜릿은 금세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먹을 걸 준다고 내가 용서- 우읍, 음···."

유안은 또 냉큼 과일 젤리를 꺼내서 아이의 입에 넣어버렸다.

집게발 도둑이 조용히 입만 우물거린다.

아이의 집

간식 덕에 얌전해진 아이를 바라보며 차건오가 말했다.

"헌협에 알리는 게 좋겠죠?"

게이트 근처에서 알짱거리던 아이이고, 어린 몸으로 각성하기도 했다.

던전과 관련해 복잡한 문제가 생길 경우 헌터 협회에 보고하는 게 가장 깔끔하다.

그러나 유안은 아이에게서 얻을 정보가 있었다.

헌터 협회가 애를 데려가면 물어볼 기회를 놓치게 된다.

"제가 아는 꼬맹이니까 일단은 제가 데려가겠습니다. 협회에 보고도 제가 하겠습니다."

"이 아이를 알고 계신··· 아, 설마 카페 음식을 훔치기라도 했나요?"

차건오는 아이의 행색을 보고 유추해냈다.

유안은 여전히 간식에 집중하고 있는 아이를 확인하고 작게 답했다.

"···비슷합니다."

새로 길드장은 자세한 내막을 듣지 않아도 어떤 상황인지 알 것 같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이의 뒷덜미를 놓아주었다.

이유안의 인벤토리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간식의 향연에 홀린 아이가 전의를 완전히 상실한 채 도망조차 가지 않았다.

차건오에게서 아이를 넘겨 받은 유안은 가장 먼저 무기부터 거두기로 했다.

"위험하니까 집게발은 이리 줘."

유안이 한 손에 화이트 초코 케이크를 들고 말했다.

홍소라가 오늘 아침 출근하자마자 구운 것이었다.

아침잠이 덜 깨서 손이나 풀 겸 만든 것치곤 장식의 정교함이 상당했다.

아이는 유안의 손에 들린 화이트 초코 케이크를 홀린 듯 바라보며 순순히 집게발을 넘겼다.

유안은 무뎌진 집게발을 제 인벤토리에 넣고 아이에게 케이크를 건네주었다.

작은 손으로 케이크를 낚아채듯 가져간 아이가 입을 크게 벌렸다.

"으움···."

"많이 있으니까 천천히 먹어."

조각 케이크라면 인벤토리에 종류별로 있었다.

그리고 유안은 차건오에게 줄 만한 음료도 발견했다.

"혼자 순찰하느라 피곤하실 텐데, 이거 받으세요."

인벤토리에 있던 아메리카노를 전부 꺼내서 건오에게 건넸다.

텀블러에 담은 음료라 들고 다니기도 편할 것이다.

"감사합니다."

건오는 지친 몸에 아메리카노를 포션처럼 부어 넣으며 감사를 표했다.

텀블러 한 병을 금세 비운 차건오가 유안에게 약속했다.

"이번 공략 끝나면 카페 들를게요."

"예, 자주 오세요. 중앙이가 매일 기다립니다."

이중앙은 거의 차건오바라기였다.

새로 길드장이 더 센터 건물 근처에만 와도 그 발소리를 알아채고 우다다 달려간다.

"소 좀 잡아서 가야겠네요."

차건오는 고대 포식자가 사랑하는 생 소고기를 구하기 위해 [라탸나 고원 던전]을 가볍게 돌기로 했다.

"카페에서 뿔소 우유 많이 쓰시죠? 고원 던전 가는 김에 우유도 많이 파밍해 드리겠습니다."

"귀찮으실 텐데··· 감사합니다."

뿔소가 번개를 맞을 때까지 기다렸다 사냥해야 우유가 나오니 정말 번거로운 작업이다.

그래서 경매장에도 [번개 뿔소의 우유] 아이템은 씨가 마른 상태였다.

그것을 차건오가 구해준다니 고맙지 않을 수 없었다.

'고마우니까··· 뭐 더 줄 만한 게···.'

유안은 인벤토리를 꼼꼼히 살피다가 음료 하나를 발견했다.

던전산 초콜릿을 정량의 두 배로 넣은 버터 핫 초콜릿이었다.

나중에 마시려고 아껴둔 거긴 하지만, 자신은 방재이에게 또 만들어 달라고 하면 되니까 괜찮았다.

유안이 인벤토리에서 음료를 꺼내 건오에게 건넸다.

"핫초코 같은 거예요?"

"예, 맞습니다."

"그럼 저는 괜찮습니다. 이 사장님 드세요."

자신은 아메리카노를 더 좋아한다며 초콜릿 음료를 받지 않았다.

유안은 음료를 다시 제 인벤토리에 넣으며 약간 안도했다.

*

이유안은 일행이 모인 곳까지 아이를 데려가며 어느 동화의 주인공이 된 기분을 느꼈다.

몇 걸음에 한 번씩 먹을 것을 뿌려주지 않으면 아이는 당장이라도 도망갈 기세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겨우 붙잡은 아이를 다시 놓칠 수도 없으니, 유안은 잠자코 간식을 내어줬다.

저 멀리, 모두 낮잠에서 깨어나 소풍 자리를 정리하는 모습이 보였다.

해가 뉘엿뉘엿 저무는 중이었으니 돌아갈 때가 되기는 했다.

기척을 잘 느끼는 S급과 A급이 가장 먼저 유안과 아이 쪽을 돌아보았다.

"사장님?"

진 선과 서정원이 동시에 유안을 불렀다.

그러면서 시선은 유안의 허리 아래 꼬맹이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아이는 제 얼굴 만한 하트 모양 스테인드글라스 쿠키를 야금거리는 중이었다.

"에엥? 갑자기 어디서 애를 데려왔어요? 싸장님 애기 있었어요?"

"···제 애는 아닙니다."

"그, 그럼요···? 게, 게이트 근처에 어린애가 돌아다닐 리 없는데···."

"어리긴 해도 각성자입니다."

유안은 아이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했다.

새로 길드장을 만났다는 것도.

이야기를 듣는 도중, 중앙 카페 직원들이 너도나도 아이에게 먹을 것을 건넸다.

덕분에 집게발 도둑은 난생 처음으로 맛있는 것들에 둘러싸여 정신 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수창 길드장 대신 서정원이 운전하는 밴을 타고 더 센터 건물로 돌아오는 길은 평화로웠다.

"싸장님 애 아니기는 한데 왠지 좀 닮은 거 같아요!"

"마, 맞아요···."

"입맛도 사장님이랑 비슷한 것 같고~."

평소 말수가 적은 방재이까지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안은 별로 반박할 생각도 들지 않아 그냥 아이의 머리나 쓰다듬고 말았다.

아까의 그 앙칼진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작은 미트볼을 포크로 찍어 먹던 아이는 유안을 흘긋 바라보고 다시 먹는 데 열중했다.

"그래도 맛있는 거 준다고 아무나 따라가면 안 된다는 건 확실히 교육 시켜야겠어요, 사장님."

서정원이 더 센터 건물 앞에 매끄럽게 주차하며 말했다.

워낙 완벽한 운전이라서 차가 멈춘 줄도 몰랐다.

건물 앞에서 외부인들과는 작별했다.

정태영은 던전 파밍 약속이 있다며 신난 걸음으로 떠났고, 수창 길드장은 아쉬운 티를 팍팍 내면서도 더 머무를 명목을 찾지 못해 걸음을 돌려야 했다.

"사장님, 저 내일 또 와도 되죠?"

"예?"

꼬맹이의 입에 고원 땅콩 쿠키를 넣어주던 유안이 어리둥절하게 반문했다.

수창 길드장이 왜 자꾸 길드 일을 팽개치고 중앙 카페에 오려고 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수창 길드장님, 해외 던전 답사 일정은 더 없으십니까?"

유안은 '너 요즘 한가하니?'를 공손하게 돌려 말했다.

그래도 말뜻을 바로 이해한 진 선이 슬픈 표정을 지었다.

"오면 안 되는 거구나···."

"사, 사장님은 그냥··· 진 선 씨가 바쁜데 시간 쪼개서 중앙 카페 오는 걸까 봐 걱정하시는 거예요···. 마, 맞죠, 사장님?"

홍소라가 나서서 상황을 수습해줬다.

유안이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일도 모레도 올게요! 강남 던전 공략대 일정 빼면 저 요즘 엄청 여유롭거든요~."

"···예, 뭐."

손님으로 찾아오는 거야 진 선 마음이었으니 막을 수 없었다.

내일 와도 된다는 허락을 받아낸 수창 길드장이 한결 밝아진 표정으로 밴을 타고 떠났다.

운전 실력은 여전이 엉망이었다.

"퇴근하실 분은 바로 가시면 됩니다."

마감이야 아까 미리 해 뒀고, 내일 장사 준비도 충분히 했으니 더 신경쓸 것은 없었다.

그러나 유안의 해산 명령을 듣고도 중앙 카페 직원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 아이는 어떻게 하시려고요, 사장님?"

이유는 역시 꼬맹이 때문이었다.

직원들은 유안의 곁에 꼭 붙어서 프렌치 토스트를 해치우고 있는 아이에게 시선을 떼지 못했다.

"데려갈 곳이 있습니다. 헌협에 연락도 넣어야 하고요."

"아직 아이이긴 하지만 각성자이니 위험할 수 있어요. 저라도 같이 있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서정원이 제 등급을 내세워 함께 있겠다고 말하자 유안은 거부할 수 없었다.

꼬맹이를 힘으로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안전하긴 하다.

정원이 물꼬를 트자, 다른 직원들도 하나둘 자신이 함께해야 하는 이유를 말했다.

"저, 저는 디저트 더 만들어야 해요···."

"요즘 애들은 무슨 장난감 좋아하나 모르겠는데, 뭐라도 한 번 해볼게요! 마침 강화 플라스틱 남는 것도 좀 있거든요."

"···커피가 들어가지 않은 음료를 좀 더 개발하겠습니다."

퇴근하라고 해도 집에 안 가는 직원들에게 유안은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래도 다들 너무 늦지 않게 들어가세요."

"네, 사장님!"

직원들의 우렁찬 대답을 들으며, 유안은 일단 아이를 데리고 3층 욕실로 향했다.

*

전쟁 같은 목욕 시간이었다.

물에 빠진 고양이처럼 발악하는 아이를 씻기는 게 너무 힘들어서 결국 서정원의 도움을 받았다.

진이 다 빠진 유안은 그냥 정원에게 꼬맹이를 맡기고 소파에 늘어졌다.

"···어린 애들은 다 저럽니까?"

"워, 원래 애들은 반쯤 짐승이에요···."

세상의 모든 부모들에게 존경심을 느꼈다.

그리고 서정원에게도.

정원은 능숙한 솜씨로 아이를 다뤘다.

김주현이 임시로 만들어 준 장난감을 미끼로 하여 꼬맹이의 머리도 말리고, 옷도 입혀서 사람다운 모습으로 탈바꿈시켰다.

제멋대로 길어서 이리저리 엉킨 머리칼도 짧게 다듬었더니 아이는 그 나이대에 맞는 모습이 되었다.

"이러니까 사장님이랑 더 닮았네요. 그쵸?"

"나랑 저 아저씨가 뭐가 닮았어! 하나도 안 똑같아!"

때마침 입에 있던 사탕을 다 먹은 아이가 빽빽거렸다.

"다 된 거면 잠시 어디 좀 데려갔다 오겠습니다."

유안은 아이의 손을 잡았다.

그래도 먹을 걸로 회유해놔서 그런지 꼬맹이는 입으로 떽떽거리기만 할 뿐 유안의 손을 놓지는 않았다.

"저도 같이 가요, 사장님."

서정원이 안전을 이유로 대며 아이의 반대쪽 손을 잡았다.

두 성인에게 손을 붙잡힌 꼬맹이는 색다른 기분을 느끼며 자신도 모르게 다리를 동동거렸다.

"지하로 내려갈 겁니다. 오래 걸리는 건 아니고, 잠깐 확인할 게 있어서요."

"네."

정원은 깊게 캐묻지 않고 유안을 따랐다.

더 센터 건물에서 조금 나아가자 지하철로 통하는 계단 입구가 나왔다.

"여기 내 집인데."

아이는 손을 붙잡힌 채 꽤 익숙하게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여기가 네 집이야?"

"응. 근데 자꾸 모르는 사람들이 와서 시끄럽게 했어."

"얼마나 시끄러웠어?"

"엄청 많이. 몬스터 백 마리보다 많이!"

서정원은 아이와 대화를 잘 이어갔다.

덕분에 유안은 귀를 열고 있는 것만으로도 꼬맹이에 대한 정보를 쏙쏙 얻을 수 있었다.

얘기하며 걷다 보니 금세 그 위치에 도착했다.

"내 집!"

그동안 얌전히 잡혀준 것이었다는 듯, 아이가 무지막지한 힘을 내며 유안과 정원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벽에 박힌 열차를 향해 달려갔다.

좁게 열린 출입문으로 작은 체구가 수월하게 들어다.

"이런 곳에 열차가 있었네요."

"던전 사고로 선로에서 이탈한 열차 같습니다. 일단 우리도 들어가죠. 안쪽에 위험한 건 없었습니다."

"여기가 저 아이의 집이라는 건 어떻게 아셨어요?"

"···그럴 것 같은 정황들이 있었습니다."

꼬맹이의 인벤토리에서 텅 빈 도시락 통과 인형 4종 세트 중 세 종류가 발견되었다.

모두 유안 자신이 열차에 가져다 두었던 것이었기에 쉽게 짐작이 가능했다.

열차 출입문을 완전히 열고 이유안과 서정원도 내부로 진입했다.

아이는 벌써 가장 구석의 칸으로 이동해 옷더미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고 있었다.

"여기 내 집이야! 너희는 나한테 맛있는 거 많이 줬으니까, 진짜 엄청 가끔은 놀러와도 돼."

꼬맹이가 토끼 인형을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

서정원이 상황을 파악하고 부드럽게 물었다.

"혼자 사는 거야?"

"으웅, 이제 혼자야."

"원래 다른 사람도 같이 살았어?"

"아니! 여기는 계속 내 집이었는데? 다른 사람은 다른 곳에 살았구, 여긴 내 거야! 아무도 못 오게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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