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소라는 마나가 생기는 족족 중앙 카페 뒷마당에 [던전화] 스킬을 썼고, 그 결과 뒷마당에는 다양한 던전산 작물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다.
던전산 벼와 보리로 시작한 작물은 옥수수, 콩, 배추, 호박, 무, 가지, 고추 등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저것들만 수확해도 죽 재료로는 충분할 것이다.
이제 슬슬 뒷마당 공간이 부족해지기 시작한 터라 유안은 확장 공사를 하는 것도 고려하는 중이었다.
'담벼락만 허물고 새로 짓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을 거야.'
뒷마당의 식구도 늘었으니 확장이 필요하기는 했다.
유안은 근시일 내로 강해민에게 연락을 넣어야겠다고 생각하며 헌터 디바이스의 포털 사이트를 다시금 새로고침했다.
그러자 이제까지는 보이지 않던 빨간 글씨가 화면 전체에 커다랗게 떠올랐다.
특보였다.
[강남 도심 한복판에 던전 게이트 발생! 게이트 완전 개방까지 8시간, 추정 등급 B. 각 길드의 상급 헌터들 모여 게이트 앞 대기 중.]
당일 판매 원칙
기사를 확인해보니 헌터 협회에서 발빠르게 나서 인명 피해는 없다고 했다.
게이트 출몰을 예측하는 기술도 많이 발달해서 게이트가 완전히 열리기 전에 대피를 시작하기 때문에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다만.
중앙 카페의 손님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강남에 게이트 터졌다는데?"
"정확한 위치 어디야? 아! 망했네. 거기 우리 길드 건물 근처인데!"
"제한구역 반경에 들어와?"
"아슬아슬할 것 같은데···."
위치가 강남 한복판인 탓에 물질적인 피해까지 막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손님들 중 갑작스레 연락을 받고 강남으로 향하는 사람은 없어서 큰 혼란까지 오지는 않았다.
'이 근처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하급 헌터니까.'
던전이 터지면 길드에 소속된 상급 헌터부터 소집되는데, [저주받은 세계수 던전]으로 파밍 오는 헌터들은 대부분 하급이었다.
요즘 자주 방문하는 대형 길드 소속 헌터들은 이른 아침부터 헌터 협회에서 연락을 받고 중앙 카페 오픈 시간 전부터 불려간 상태였다.
'그러고 보니··· 정태영 씨도 안 왔네.'
단골 손님인 태영도 B급 헌터이다.
그리고 정태영은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중견 길드에 속해 있기에 아침 일찍 헌터 협회로 끌려갔을 것이다.
유안은 문득 제 옆에 있는 서정원을 바라보았다.
"서정원 씨는 헌협에서 연락 온 거 없습니까?"
"저는 길드 소속이 아니라 중앙 카페 소속이잖아요. 연락 와도 사장님이 던전 들어가지 말라고 했으니까 안 갈 거예요."
"예. 잘 생각하셨습니다."
지금 터진 던전은 [늑대 숲의 미로]라는 이름을 가졌다.
아직 던전 이름을 공식 발표하지는 않았으나 유안은 알고 있었다.
강남 한복판에 생겨난 그 게이트는 [저주받은 세계수 던전]의 뒤를 이어 엄청난 효율을 자랑하는 파밍용 던전이 될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유안은 안전이 제일이라고 생각했다.
파밍은 서정원 말고 다른 헌터들이 많이 할 테니, 경매장에 물량이 잔뜩 올라올 것이다.
"절대 들어가지 마십시오."
유안은 서정원에게 한 번 더 충고하고 [문베어의 숨겨둔 식량]을 잔뜩 뿌린 요거트를 한 입 떠 먹었다.
달콤한 맛이 느껴지자 거칠어졌던 호흡이 조금 가라앉는 것 같았다.
강남 근처에 거주지를 둔 손님들은 일찍이 집에 돌아가는 추세였다.
특히 길드에 소속되어 있는 하급 헌터들이 불안해하며 카페를 떠났다.
뒤숭숭한 분위기에 중앙 카페도 오늘은 조금 일찍 마감하기로 했다.
'어쩔 수 없긴 하지.'
던전이 처음 등장하고 20년.
그간 터진 게이트만 수십 개이니 사람들도 어느 정도 적응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새로운 게이트가 열리는 건 재해의 영역이었다.
유안은 직원들과 함께 카페를 정리하며 남은 음식들을 특수 냉장고에 넣었다.
"워, 원래 당일 만든 건 당일 판매하는 게 원칙인데··· 이렇게 많이 남은 건 처음이에요."
"그러게 말입니다."
늘 매진되기 일쑤이던 디저트가 한가득 남았다.
덕분에 재료 창고로만 쓰이던 냉장고가 처음으로 제 역할을 하게 되었다.
홍소라는 자신이 만든 음식들이 냉장고에서 차게 식어가는 것이 아쉬워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찰칵.
슬퍼하면서도 사진 찍는 것을 잊지 않은 소라가 헌터그램을 켰다.
방금 찍은 냉장고 사진을 첨부하더니 손가락을 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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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nter_Cafe_Official
강남의 신규 게이트 이슈로 오늘 오후 영업은 쉬어갑니다.
갑작스러운 게이트 발생으로 고생하시는 모든 분들,
다치지 않고 무사하게 이 고비 잘 이겨내 봐요.
#Pray_for_Gangnam
#중앙카페오후반차 #내일은정상영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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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도도독.
빠른 속도로 헌터 디바이스를 두드리던 소라가 금세 게시물을 완성했다.
중앙 카페 계정에 글이 올라가자 순식간에 좋아요 수십 개가 붙고, 아쉽다는 내용의 댓글이 여러 개 달렸다.
그리고 #Pray_for_Gangnam 챌린지에 동참하는 댓글도 많이 보였다.
그때 유안의 디바이스가 울렸다.
화면에 크게 떠오른 이름은 정태영이었다.
'태영 씨는 지금 게이트 진압하고 있을 텐데?'
한창 바쁠 시간에 연락한 게 이상하기는 했으나, 유안은 일단 전화를 받았다.
"예, 정태영 씨."
-아! 싸장님. 저 지금 게이트 근처거든요! 강남이요. 속보 보셨죠?
"예. 봤습니다.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네! 다들 멀쩡해요! S급 헌터들도 많이 왔고, 던전이 B급이라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았어요. 지금은 게이트 바깥으로 쏟아진 몹 다 처리하고 게이트 안쪽으로 진입할 공략대 구성 중이에요.
빠르긴 빨랐다.
게이트가 최초 생성되며 그 바깥까지 쏟아지는 몬스터를 벌써 다 처리하다니.
헌터 협회의 발빠른 대처가 빛을 발했다고 볼 수 있었다.
외진 지역에서 발생했으면 진압이 늦어졌을 수도 있겠으나, 하필 길드 건물들이 모여 있는 강남 한복판에서 터진 탓에 오히려 처리 속도가 빨랐다.
그나저나 정태영은 B급 헌터였다.
B급 던전에 B급 헌터가 들어가는 건 특별한 일이 아니었지만, 그것이 최초 공략대라면 말이 달랐다.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 미지의 던전에 동급 헌터가 들어가는 건 좋지 않은 선택이었다.
"정태영 씨, 혹시 공략대에 들어가실 겁니까?"
유안은 중앙 카페의 단골 손님이자 홍보팀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는 태영이 위험에 빠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엥? 제가 거길 왜 들어가요! 여기 수창 길드장이랑 새로 길드장이랑 S급 헌터들 다 있는데!
그런데 유안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태영은 당연히 안 들어갈 거라고 외쳤다.
'수창 길드장은 해외에 나갔다더니 이번에 돌아왔나 보구나.'
유안은 정태영이 안전하게 있을 거라는 소식에 안도했다.
"예. 공략대는 S급이나 A급들에게 맡기고 정태영 씨는 게이트 바깥에 계십시오."
-네, 싸장님. 안 그래도 저는 지금 후방으로 빠졌어요. 오랜만에 스킬 좀 제대로 썼더니 힘드네요. 마나도 다 털릴 뻔했다니까요!
"조심하세요. 항상 안전제일입니다."
-그럼요.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야 중앙 카페 음식도 계속 먹죠! 아, 사실 헌터그램에 올라온 사진 보고 연락한 거거든요. 오늘 공략 다 끝나면 카페 방문하려고 했는데 일찍 문 닫으신다면서요!
정태영이 아쉬움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유안은 디저트로 가득한 냉장고 안을 힐끗 바라보고 답했다.
"예. 영업은 일찍 종료했습니다."
-아··· 그럼 어쩔 수 없이 내일 가야겠네요.
"······잠시만요, 태영 씨. 지금 계신 위치가 정확히 어딥니까?"
다 팔지 못해 잔뜩 남은 음식.
낯선 늑대형 몬스터들과의 전투로 지쳤을 게이트 근처의 헌터들.
'게이트 가까이로 다가가지만 않으면···.'
짧은 판단을 끝낸 유안은 유안은 냉장고의 음식들을 제 인벤토리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
조수석에 탄 유안은 몸을 틀어 트럭의 뒤쪽을 바라보았다.
중앙 카페 직원들이 커다란 트럭 짐칸에 이리저리 주방 기구들을 배치하고 있었다.
던전 부산물로 튼튼하게 만든 트럭은 도로 위를 부드럽게 달리는 중이었다.
"똑바로 앉아. 앞에 보고."
운전대를 잡은 강해민이 유안에게 말했다.
'괜히 또 심술이네. 그래도 오늘은 이 녀석 덕을 많이 보니까 봐준다.'
유안은 사포처럼 까칠한 해민의 말을 들어 자세를 바르게 했다.
사실 위험한 건 뒤쪽의 직원들이 더 위험할 텐데 해민은 자꾸 유안에게만 잔소리했다.
아무래도 갑자기 트럭 끌고 나오래서 기분이 팍 상한 것 같았다.
"해민아."
"왜."
"너 회 좋아하지?"
"···그냥 있으면 먹는 거지, 좋아하는 정도는 아냐."
"그럼 다음에 같이 제주도 가자. 거기 맛있는 횟집 있더라."
횟집은 아니고 비조 길드 건물이지만.
강해민 한 명 정도는 어떻게든 데리고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때 그 리셉션 직원이 회를 뜨던 모습을 떠올리자 입안에 군침이 돌았다.
특별히 회를 좋아하는 것도 아닌 자신이 정말 맛있게 먹었으니까, 강해민은 분명 엄청나게 좋아할 것이다.
"나 바쁘거든? 제주도까지 갈 시간 없다."
"그럼 우리 카페에서 먹을 수 있게 해 볼게. 카페 올 시간 정도는 되지?"
"······일정 확인해봐야 알아."
음, 오겠다는 소리다.
유안은 다음에 새로운 직원을 뽑을 때 우대 사항에 일식업 경험자를 넣기로 다짐했다.
그들은 지금 한강을 지나 강남으로 향하고 있었다.
정태영의 연락을 받은 유안이 강남 게이트 근처의 헌터들에게 팔지 못한 음식을 갖다주자고 말했고, 직원들은 그 의견에 흔쾌히 동의했다.
서정원과 홍소라는 주방 용품들을 나눠서 인벤토리에 챙겼고, 방재이는 조용히 커피 머신을 챙겼다.
공방 이사를 준비하던 김주현도 소식을 듣고 달려와 일일 알바생이 되었다.
최선진이 빠진 것은 아쉬웠으나 트럭 카페라면 이 정도 인원으로도 충분했다.
오히려 차고 넘치는 편이었다.
"해강특수건설에 이런 트럭이 있어서 다행이다."
그들이 탄 트럭은 평범한 차가 아니었다.
차체부터 내연기관까지 전부 던전 부산물로 만든 특수차량.
재료를 구하고 가공하기 까다로운 탓에 일 년에 몇 대 생산되지도 않는 특수차량은 헌터 협회가 대부분을 독점하고 있었다.
그러나 해강특수건설에서 공사 자재를 실을 특수 트럭 몇 대를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던전 부산물 옮길 때 일반 트럭 쓰면 금방 망가져."
해민은 툴툴대듯 설명했다.
유안은 혹시나 싶어서 강해민을 찔러보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작은 중형차라도 괜찮으니 게이트 근처에 가도 망가지지 않는 특수차량이 있냐고 물은 것뿐인데 해민이 대뜸 트럭을 끌고 나왔다.
김주현은 트럭을 보자마자 환호하며 '중앙 카페 푸드 트럭'이라는 간판을 달았다.
홍소라도 가게 홍보에 좋을 것 같다며 기뻐했다.
"전투에 지친 헌터들이 좋아할 거예요, 사장님."
어느새 짐칸의 주방 세팅을 마친 서정원이 성큼 다가와 말했다.
유안은 고개만 살짝 들어 정원을 마주보며 대답했다.
"예, 그러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서정원 씨, 혹시 헌터 협회 사람들이 정원 씨를 공략대에 넣으려고 하면 무조건 안 된다고 하셔야 합니다."
유안의 걱정은 그것뿐이었다.
서정원은 A급 헌터로 등록되어 있기에 헌터 협회가 무소속인 정원을 알아보고 마음대로 공략대에 배치할 수도 있다.
국가 재난 상황이라는 말로 공략대 참가를 권유하면 마음씨 착한 서정원은 홀랑 넘어가버릴 것 같았다.
"안 들어갈게요, 사장님."
서정원은 싱긋 웃으며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덧붙였다.
···유안은 솔직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게이트 제한구역 앞에 도착하면 서정원을 철저히 감시하기로 다짐했다.
*
류지우는 마나 포션을 벌컥벌컥 들이키며 게이트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헌터 협회에 속해 있지만, 그 이전에 지우 역시 S급 헌터였다.
다만 시민들의 혼란을 잠재워야 하는 역할이기에 던전에 직접 들어갈 수는 없었다.
언젠가 한 번 류지우가 던전 공략에 나섰다가 약한 부상을 입은 적이 있는데, 그때의 난리를 생각하면 류지우는 그냥 던전 밖에 있는 것이 국민 모두의 심신 안정에 좋았다.
"[생명의 땅]."
류지우는 광역 힐을 넣어주는 버프가 사라지기 전에 다시 스킬을 썼다.
그리고 포션으로 마나를 회복한 뒤에는 주변 헌터들에게 단일 회복 스킬을 부여하기도 했다.
헌터들을 통솔하면서 힐링 계열 스킬까지 쓰는 류지우는 조금 지쳐 있었다.
그러나 쉴 수 없었다.
게이트 바깥으로 쏟아져 나오던 몬스터들은 잠잠해졌으나, 공략대를 세 개 팀으로 나누어 시간차를 두고 들여보낸 뒤 부상 입은 헌터들을 치료해야 하는 일이 남아 있었다.
'오늘 잠 자긴 글렀군.'
게이트가 터지면 기본 하루이틀은 전시와 비슷한 상태로 대기해야 한다.
협회의 다른 직원들이야 교대로 잠시 눈을 붙일 수 있겠으나, 던전 관리 파트장 류지우는 아니었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건, 정신없이 바쁜 것이 혼자만은 아니라는 점.
"공략대 A팀 지원자 더 모아 봐! 무소속도 괜찮으니까 A급 방어계 헌터로!"
수창 길드장인 진 선이 전투복을 갖추어 입고 쩌렁쩌렁 외쳤다.
그 반대쪽에서는 새로 길드장 차건오가 진중한 목소리로 팀원들의 긴장을 풀어주고 있었다.
"B급 던전이니 크게 위험한 요소는 없을 겁니다. 주로 출몰하는 몬스터는 아까 보셨듯 늑대형입니다. 무리 지어 다니는 습성이 있으니 포위되지 않게 조심하시고요. 제가 맨 앞에 서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제 앞으로 나오지는 마세요."
그리고 공략대 C팀을 맡은 건 중견급 길드의 S급 헌터 한 명과 A급 헌터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B급 던전에 들여보내기는 사실상 호화로운 구성이다.
그러나 류지우가 약간의 불안함을 느끼는 이유는 하나였다.
'새벽부터 소집했으니 다들 슬슬 지쳤을 거야.'
포션이나 힐로는 해결되지 않는 것이 있다.
허기, 그리고 정신적 피로감.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한 번 들기 시작하니 순식간에 파도처럼 허기가 몰려드는 것 같았다.
그리고 동시에 류지우의 머릿속에 떠오른 가게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