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윽, 이거 너무 맛있어요···! 미쳤나 봐. 어떻게 이런 맛을 모르고 살았지···! 하! 인생 너무 대충 살았다! 오늘부터라도 더 열심히 먹으며 살아야지!"
태영은 자신이 먹는 영상도 틈틈이 찍어가며 거의 울먹였다.
정태영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중앙 카페 뒷마당에 모인 모두가 꼬치구이를 극찬하며 우걱우걱 씹어 삼켰다.
유안은 고기를 굽느라 정작 먹지 못한 서정원부터 챙기고 제 꼬치도 하나 집어들었다.
육즙이 뚝뚝 흐르는 꼬치를 입에 넣자 입안에서 축제처럼 화려한 맛이 터졌다.
아직 씹지 않았는데도 그랬다.
잘 익은 고기가 혀에 닿는 그 순간, 온몸의 감각이 열렬히 그 맛을 환영하며 움직이는 것 같았다.
'와··· 진짜 맛있어!'
유안은 속으로 감탄하며 고기 한 점을 꼭꼭 씹어 삼켰다.
침샘이 고장난 것처럼 침이 자꾸 나와서 목울대가 여러 번 움직였다.
사슴고기 다음으로는 던전산 과일이었다.
노란 반달처럼 썰린 그것을 입에 넣자 따뜻한 달콤함이 가득 퍼진다.
고기를 먹고 잠시 느끼해졌던 입맛이 싹 정화되는 것 같았다.
유안은 자신이 양손에 꼬치를 들었다는 사실을 잊을 정도로 맛있게 음식을 해치웠다.
턱관절의 움직임을 한시라도 멈추고 싶지 않았다.
"고, 고기 좋아하시나 봐요···."
홍소라가 흘긋 보고 중얼거릴 정도였다.
유안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꼬치의 마지막에 꽂힌 던전산 채소까지 깔끔하게 먹어치웠다.
익힌 채소에도 육즙이 배여서 한층 풍부한 맛이 느껴졌다.
고기, 과일, 채소.
완벽한 삼위일체에 반한 유안은 누구보다 열심히 바베큐 파티를 즐겼다.
그리고 수창 길드원들은 은근한 아쉬움을 고기와 함께 삼키는 중이었다.
"내일 지붕까지 얹고 나면 지금처럼 매일 오지는 못하겠죠오-."
술에 취해 늘어진 권재윤이 말했다.
"당연하지."
조서혁이 무뚝뚝하게 받아치자 재윤은 그 입에 꼬치를 하나 밀어 넣었다.
"기계 인간은 조용히 해~. 나는 엄청 아쉽다구!"
"던전 공략 중이 아닐 때 방문하는 건 언제든 괜찮아."
수창의 부길드장인 최미정이 재윤을 달래듯 말했다.
그러나 권재윤은 입술을 비죽 내밀며 삐친 티를 냈다.
"일 년 중에 던전 밖에 있는 날을 세는 게 더 빠를 걸요!"
"······."
거기에는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최미정은 머지 않은 미래에 권재윤의 아쉬움을 달래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던전 안에서도 맛있는 음식을 먹을 방법, 곧 생기겠지."
최미정은 진 선이 말한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수창 길드가 중앙 카페로부터 음식을 납품 받는 것.
그 계약의 성사를 위해 길드장 녀석이 몸으로 뛰고 있기까지 했으니, 좋은 성과가 있어야 한다.
미래를 기대하는 최미정의 눈빛이 화로 속 불꽃처럼 타올랐다.
정식 오픈
건물에 지붕이 생겼다.
그리고 어제 바베큐 파티를 하다가 다함께 머리 싸매고 건물 이름도 지었다.
"이름이 꼭 있어야 합니까···?"
유안은 그냥 중앙 건물, 정도로 부르고 싶어했으나 다른 사람들이 말렸다.
"에헤이-! 사장님, 건물 이름 멋지게 지어놔야 두고두고 좋죠!"
그런가?
유안은 대충 수긍하며 사람들이 짜내는 아이디어를 추합했다.
여러 의견이 나왔으나 결론은 하나였다.
[THE CENTER].
'이러면 그냥 중앙 건물이랑 뭐가 다르지···?'
유안은 그렇게 생각했으나 다른 사람들은 만족했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 그 이름 그대로 간판까지 만들어 달았다.
던전 부산물로 멋진 간판을 만들어준 건 역시 김주현이었다.
고급 아파트의 정문처럼 멋들어진 모양새를 갖춘 건물은 절로 들어가고 싶어지는 모양새였다.
1층에 통유리를 설치해서 카페 내부가 훤히 보인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손님들이 멀리서도 보고 찾아올 것 같았다.
"건물 세웠으니까 그거 해야죠, 그거!"
재밌어 보이는 절차는 다 따지는 김주현이 인벤토리에서 무언가 꺼냈다.
던전산 꽃줄기를 길게 엮어 만든 끈이었다.
"자, 여기 가위도 받으세요!"
건물 공사에 참여한 핵심 인물들이 가위를 건네받았다.
유안과 해민은 가운데에 섰다.
지나가던 헌터들이 걸음을 멈추고 완공 기념 리본 커팅식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유안은 그렇게 생각하며 주현의 사인이 떨어지는 순간 가위를 움직였다.
서걱.
꽃줄기가 부드럽게 잘리자 주변에서 손뼉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약간의 환호도 함께였다.
"축하해요, 이 사장님! 이제 진짜 건물주 되셨네요!"
"······감사합니다."
머쓱하게 고개를 숙인 유안은 가위를 주현에게 돌려주었다.
그리고 카페 알바생들에게 말했다.
"오늘 영업 준비합시다."
오픈하기에는 조금 이른 시각이지만, 새로운 건물과 주방에 적응하려면 일찍 시작하는 게 나을 것이다.
중앙 카페 직원들은 우르르 건물 안쪽으로 몰려가 자신이 있어야 할 위치를 확인했다.
1층 주방에는 서정원, 홍소라가 자리를 잡았고, 커피 머신 근처에 방재이가 섰다.
최선진은 홀 곳곳을 돌아다니며 김주현이 오늘 새로 만들어 온 테이블과 의자를 설치했다.
인원이 많아서 순식간에 오픈 준비가 끝났다.
'그래도 파트타이머 몇 명 뽑긴 해야겠지.'
네 명의 직원을 매일 풀타임 출근시킬 수 없는 노릇이니.
유안은 건물에 며칠 적응하고 나서 새 알바생 뽑을 계획을 했다.
"야."
잠시 생각에 빠진 유안을 해민이 불렀다.
고개를 돌리니 강해민이 사람을 시켜 커다란 화환을 건물 앞에 설치하고 있었다.
던전 부산물로 만든 조화였다.
해강특수건설 강해민.
번창을 기원합니다.
"고마워."
기념 화환까지 놓으니 정말 정식 오픈한 기분도 들었다.
가볍게 미소 지은 유안이 해민을 이끌고 3층으로 올라갔다.
"사무실 가서 얘기 좀 하자."
3층에 낸 방 중 하나를 사무실로 꾸몄다.
사업 규모가 커지면 문서 처리할 일도 많이 생길 테니 만든 방이었다.
해민을 그곳으로 데려간 유안은 공사 비용 내역서를 요구했다.
"···수창 길드원들이 무보수로 일하겠다고 해서 인건비는 안 나왔어."
"응, 그건 얘기 들었어."
수창의 상급 헌터들은 색다른 경험 즐거웠다며 돈을 받지 않겠다고 나섰다.
사실 그 뒤에 길드장에게서 제대로 뜯어내려는 속셈이 있었지만, 유안은 알 길이 없었다.
어쨌든 덕분에 인건비는 거의 들지 않았다.
"그리고··· 건축 자재도 네가 다 제공했고."
"많이들 도와줬지."
해강특수건설이 보유하고 있는 던전 부산물을 끌어올 필요도 없이, 대부분은 유안의 인벤토리에서 나왔다.
부족한 것들은 수창 길드원들이 곧장 파밍해 오거나, 정태영 같은 헌터 손님들이 기부해줬다.
아무런 대가 없이 중앙 카페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다행이었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돈 많이 안 들었다. 내가 너라서 싸게 해 주고 그런 게 아니라, 진짜 돈이 별로 안 들었다고."
"응."
유안은 어째 밑밥을 잔뜩 까는 해민을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강해민이 한숨을 푹 내쉬더니 품에서 종이 하나를 꺼냈다.
"···천천히 줘도 돼. 정식 오픈했으니까 돈 들어갈 곳도 많을 텐데 나중에 줘도 되고······."
"음?"
진짜 이것밖에 안 나왔다고?
내역서에 찍힌 숫자는 유안이 예상한 금액에서 0이 세 개는 빠져 있었다.
"해민아, 이거 잘못 쓴 거 같은데."
"제대로 쓴 거 맞거든!"
"······."
"이리 내놔!"
강해민은 왜인지 모르게 얼굴이 빨개져서 씩씩대고는 내역서를 다시 가져가버렸다.
"됐어! 이깟 푼돈 그냥 주지 마!"
"···응, 그래."
도통 종잡을 수 없는 해민의 감정기복에 유안은 그냥 무시하는 쪽을 택했다.
강해민은 발을 쿵쾅대며 사무실을 나가버렸다.
"왜 저래······."
어쨌든 돈이 굳었으니 좋은 일이었다.
*
오픈 첫날이니만큼 많은 손님들이 다녀갔다.
그리고 그 중에는 유안이 부른 헌터 협회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과 친분이 있어서 부른 건 당연히 아니었다.
"특수건물 등록과 안정성 적합 판정, 특수음식점 영업 허가까지 한꺼번에 받겠습니다. 아, 그리고 전투 금지 구역으로도 지정해주세요."
헌터가 이용하는 시설의 경우 헌터 협회가 그 관리를 전담하고 있었다.
그래서 여러 기관에 연락할 필요가 없다는 점은 편리했다.
이제 번듯한 건물이 있는 유안은 꿇릴 것도 없으니 당당했다.
갑자기 해일 같은 일을 부여받은 헌터 협회 직원이 잠시 당황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직원은 어딘가로 연락했고, 잠시 후 특수차량 한 대가 더 센터 건물 앞에 등장했다.
차에서 내린 사람은 유안도 일전에 본 적 있는 얼굴이었다.
류지우.
빠듯하게 한 달 시간제한 미션을 던져준 사람.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하러 왔습니다."
류지우는 여전히 삐딱한 태도였다.
정말 건물이 떡하니 생긴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쯧, 하고 혀를 차기도 했다.
그래도 마나 측정기를 성실하게 들고 건물 구석구석 제대로 측정하기는 했다.
[고대 포식자의 핵]을 덕지덕지 바른 건물이니 당연하게도 어느 곳에 측정기를 가져다 대든 수치 0이 떴다.
"흠."
류지우는 이럴 리가 없다는 듯 의심스러운 눈을 하고 다시금 측정기를 썼다.
그래도 결과는 같았다.
마나 분포도 0.
"건물을 대체 뭘로 지으신 겁니까?"
"마나를 없애주는 던전 부산물을 썼습니다. 어떤 재료인지는··· 건설업체의 영업비밀이라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아직 건물 1층에 있던 강해민이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지었지만, 유안은 무시했다.
능력 있는 친구를 두니 도움 받을 일이 많아서 좋았다.
"특수건물 등록, 안정성 적합 검사, 특수음식점 영업 승인은 드릴 수 있습니다, 만··· 전투 금지 구역 지정은 최소 세 개의 길드가 동의해야 가능합니다."
그 부분은 유안도 알고 있었다.
전투 금지 구역.
그건 곧 경쟁 길드끼리도 전투가 불가능한 지역이라는 소리였으니, 길드들의 동의서를 받아야 지정할 수 있었다.
전투 금지 구역으로 지정할 장소와 가장 깊게 연관이 있는 세 길드를 헌터 협회에서 임의로 정해주는데···
"중앙 카페에서 동의서를 받아야 할 길드는 수창, 새로, 비조 세 군데입니다."
"······."
유안은 매우 심한 욕을 가까스로 삼켰다.
수창, 새로, 비조.
순서대로 국내 1, 2, 3위 길드였다.
게다가.
"비조 길드는 제주도가 거점인데 제 카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중앙 카페가 있는 서울과는 관련 없는 길드였다.
그런데 지우는 묘하게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쪽 길드장이 카페에 다녀가셨더라고요. 그것도 여러번."
"···예?"
"새로 길드도 마찬가집니다. 길드원들이 중앙 카페에 거의 매일 방문하고 있던데요. 철저히 숨긴다고 숨기고 있었겠지만 헌협의 레이더망을 빠져나갈 순 없죠."
"예?"
유안은 정말 처음 듣는 소리였다!
다양한 대형 길드에서 명함을 흘리고 가긴 했지만, 그 중에 새로나 비조는 없었다.
그만한 길드에서 방문했으면 유안도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대체 언제 왔다 간 건데!'
한껏 억울해진 유안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류지우는 빙글빙글 웃으며 얄미운 말을 덧붙였다.
"서류 제출 기한은 일주일 남았습니다."
"······예."
유안이 이를 악물고 답했다.
*
"오픈하고 바로 자리를 비우게 될 줄은 몰랐는데··· 잘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