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화 (14/137)

그게 괜찮은 건가?

유안은 직원들의 건강과 안전을 누구보다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장이었다.

건강해야 오래오래 일을 해준다.

카페 내에서 홍소라가 하는 일의 막중함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절대 몸이 안 좋아져서 관두는 일은 없어야 한다.

스르륵-.

유안이 자신의 손가락에 걸려 있던 반지를 빼내기 시작했다.

'이 반지가 정말 필요한 건 홍소라 씨니까.'

사람 한 명의 건강이 달린 일이었다고 설명하면 누나들도 이해해줄 것이다.

그런데 반지가 거의 다 빠졌을 때, 김주현이 손을 번쩍 들고 인벤토리에서 무언가 꺼냈다.

"소라 씨! 일단 임시로 이거라도 들고 다니세요!"

···[경이롭게 가공된 고대 포식자의 핵]이었다.

"나중에 키링 같은 걸로 만들어 드릴게요!"

"주, 주현 씨··· 감사해요···!"

홍소라의 마나 저항력 문제가 해결된 것은 무척 기쁜 일이었다.

'···다행이네.'

이유안은 자신의 반지를 도로 왼손 약지에 끼우며 쓴웃음을 지었다.

*

"그런데 여기에는 어떤 씨앗을 심은 건가요? 인벤토리에 넣어도 정보를 확인할 수 없다고 뜨네요."

서정원이 홍소라의 머그잔 화분을 가리키며 물었다.

톡톡.

정원의 손끝이 연녹색 줄기를 살살 건드렸다.

떡잎부터 시작한 식물은 하루 장사를 진행하는 사이 무럭무럭 자랐다.

벌써 손가락 길이가 된 식물이 살랑살랑 움직인다.

"저, 저도 잘은 모르겠지만··· 위브 잼으로 마나를 충전하고 쓴 스킬이니까 위브 덤불이 자라지 않을까요···?"

"흠, 덤불이 자라는 모양새는 아닌 것 같아요."

두 알바생은 머그잔 속 식물에 대해 좀 더 의견을 나누었다.

그러나 결국 식물의 정체를 밝혀낼 수는 없었다.

"아예 팍! 뽑아서 인벤토리에 넣으면 정보가 뜰 수도 있지 않을까요?"

카페 테이블 위에 무언가 늘어놓고 만들던 주현이 말했다.

"아, 안 돼요! 제 소중한 첫 스킬의 결과물이에요···."

소라가 머그잔을 소중하게 안았다.

식물 주인이 저렇게 나오니 다 자랄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두 명의 알바생과 한 명의 명예 알바생이 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유안이 시간을 확인했다.

슬슬···.

"지원자들이 면접 보러 올 시간입니다."

알바생 면접을 보기 위해 카페 문도 한 시간 일찍 닫았다.

아쉬워하는 손님들에게는 오늘 팔고 남은 빵을 하나씩 쥐여주었다.

그들은 빵 맛을 보더니 내일 또 오겠다고 약속하며 카페를 떠났다.

"좋은 분이 와야 할 텐데요."

"저, 제가 SNS에서 사람 보는 눈은 좀 있어서··· 괜찮을 거예요···!"

수백 건의 알바 문의를 읽고 최종 지원자를 추린 홍소라가 말했다.

이유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저 멀리, 게이트 제한구역이 시작되는 쪽을 바라보았다.

동그란 점 하나가 이쪽으로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형체를 드러낸 사람은···

몸집이 곰 만했다.

비유적 표현이 아니었다.

정말 야생의 곰 한 마리를 풀어둔 것처럼, 탱커 포지션 S급 헌터처럼 생긴 사람이 중앙 카페를 향해 거침없이 걸어왔다.

'지원자들··· 둘 다 F급 헌터라고 하지 않았나?'

유안은 마른침을 삼키며 지원자 이력을 다시 확인해보았다.

직원 면접

방재이는 넓은 어깨를 최대한 웅크리고 있었다.

그가 앉은 카페 의자는 표준 크기임에도 작아보이기만 했다.

던전 부산물로 만든 의자라 웬만해서는 부서질 일이 없다는 게 그나마 다행인 일이었다.

"방재이 씨, 맞으십니까?"

"···예."

"F급 헌터이시고요?"

"······예."

젋은 사장으로 보이는 유안이 기본 인적사항만 물었을 뿐인데 재이의 등에는 땀 한 줄기가 주르륵 흘렀다.

"등급 높다고 해서 채용에 불이익 있는 거 아닙니다. 여기 있는 서정원 씨도 A급이에요. 솔직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F급, 맞습니다."

사장이 대단한 오해를 한 것 같았으나 재이로서는 오히려 고마운 착각이었다.

그 뒤에는 기본적인 문답만이 이어졌다.

카페 알바 경력, 바리스타 자격증, 손님 응대 방식 등에 대해 유안이 물었고, 재이가 성실하게 답했다.

"바리스타 1급 자격증이 있으시군요."

"···예."

"좋습니다."

그 말에 방재이는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을 느꼈다.

아니, 실제로 이곳 카페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숨 쉬기가 불편했는데··· 지금은 멀쩡해졌다.

젊은 사장은 방재이의 덩치나 키에 대한 우려는 하나도 표하지 않았다.

카페 바리스타 일을 구할 때마다 늘 듣던 소리가 생략되니 조금 어색하기도 했다.

유안은 방재이의 이력서를 마지막으로 한 번 점검하고, 서정원과 홍소라에게도 눈짓을 주었다.

계속 함께 일할 사람이니 그들의 의견도 중요했다.

다행히 두 사람 다 재이가 마음에 들었는지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합격입니다. 출근은 내일부터 하시면 됩니다, 방재이 씨.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유안이 합격을 통지하자 재이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허리를 푹 숙였다.

"···감사합니다.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저렇게까지 인사하지는 않아도 되는데···.

조금 민망해진 유안은 덩달아 허리 숙여 인사했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과한 예의를 차리는 모습에 다른 알바생들이 웃었다.

한참 후에 재이와 유안이 동시에 굽혔던 허리를 펼쳤다.

둘 다 일어서 있으니 덩치 차이가 더 실감났다.

유안은 허니비 던전에서 자신을 죽일 기세로 따라오던 문베어를 떠올렸다.

'좀 닮은 것 같기도···.'

재이가 화를 내거나 표정을 굳히면 더욱 문베어가 떠오를 것 같다.

유안은 그럴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겠다 생각하며 새로운 알바생을 배웅했다.

재이가 떠난 카페에는 크나큰 공허함이 느껴졌다.

부피를 많이 차지하던 사람이 빠지니 그랬다.

김주현은 방재이가 앉았던 카페 의자를 살펴보다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큰 사이즈 의자도 몇 개 만들어야겠다."

재이가 일하다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도 필요했고, 탱커 포지션 헌터라면 대체로 덩치가 크니 그에 맞는 크기의 의자가 있으면 좋을 것이다.

아예 소파를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주현이 새로 만들 물건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는 동안, 중앙 카페의 직원들은 일제히 시간을 확인했다.

"다, 다른 면접자 분은 좀 늦네요···."

넉넉하게 5시 30분까지 오라고 했는데 벌써 6시를 넘긴 시간이었다.

유안은 알바생들에게 말했다.

"먼저 퇴근들 하세요. 다른 면접자는 저 혼자 기다려도 됩니다."

보통의 알바생이라면 먼저 퇴근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 안색이 활짝 펴져야 하는데, 서정원과 홍소라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저, 저 오늘 시간 많아서 괜찮아요···."

"기다리면서 내일 쓸 재료라도 손질하고 있을게요."

퇴근을 싫어하는 직원들이라니.

자발적으로 집에 가지 않겠다고 하니 유안은 더 말리지 않았다.

모두 함께 기다리기를 십 분, 드디어 저 멀리에서 인영이 보이기 시작했다.

*

"썅! 내가 그래서 저주 저항 아이템도 갖고 가랬지!"

"워, 워~. 자기는 다 좋은데 화가 너무 많다니까. S급 헌터가 고혈압으로 쓰러지면 헌터 신문 1면에 실릴 걸~."

제 화를 이기지 못하고 씩씩대는 사람 한 명, 그리고 여유로운 표정으로 다리를 꼬고 앉은 한 명.

앉아있는 쪽이 테이블 위의 검은색 마스크를 살폈다.

마찬가지로 검은색 마스크줄이 달린 그것은 평범한 마스크처럼 보이지만, 인벤토리에 들어가는 특수 아이템이었다.

발을 구르며 분노를 표출 중인 이가 이리저리 수소문해 힘들게 구한 것이기도 했다.

대한민국에 첫 번째 던전 게이트가 생긴 것도 벌써 20년이 되어 간다.

수창 길드는 게이트가 터지자마자 각성한 다섯 명의 친구가 모여 만든 길드였다.

그때는 운 나쁘게 게이트 근처에 있어서 목숨을 잃을 뻔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운이 좋은 것이었다.

그때 각성한 다섯은 대부분 상급 헌터로 각성했고, 두 사람은 무려 S급이었다.

그래, 어젯밤까지만 해도 S급이었다.

수창의 길드장인 진 선은 자신의 상태창을 보라색으로 물들인 저주 효과를 느긋하게 바라보았다.

[식욕귀의 새벽 정찬(저주)] 708:14:36

저주에 걸린 생명체의 등급을 낮춘다.

기존 등급이 높은 생명체일 수록 저주 효과가 비례하여 상승한다.

저주 효과에 붙은 단서 때문에 S급 헌터 진 선은 하루아침에 F급이 되었다.

무려 한 달이나 지속되는 저주.

등급을 낮추는 것 외에는 별 효과가 없는 저주이지만, 선의 직위가 직위인 만큼 등급 하락은 수창 길드 전체에 큰 악영향을 미칠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저주에 걸린 진 선은 오랜만에 휴가를 얻은 기분이라며 좋아했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부길드장인 최미정이었다.

미정은 어젯밤 선이 새로운 A급 던전 공략에 나설 때 분명 해주 아이템을 챙겨주었다.

"대체 내가 준 아이템은 안 쓰고 뭐했어?"

칠대죄를 테마로 하는 던전에는 저주 스킬을 쓰는 몬스터가 많이 등장하기로 알려져 있다.

그 중요한 사항을 진 선이 모를 리가 없는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눈에 보이는 전부를 먹어치우는 식욕귀.

선이 수창 길드원 몇을 이끌고 [식욕귀의 다이닝 테이블] 던전에 들어간 건 늦은 밤이었다.

잡몹을 대강 정리하고 보스 몬스터인 식욕귀를 만난 것은 새벽달이 뜬 시각.

최전방에서 대검을 휘두르던 진 선은 자신의 눈앞에만 떠오른 안내창을 보았다.

[식욕귀의 새벽 정찬이 시작됩니다. 정찬을 즐길 시간이 되면 식욕귀의 입안에 침샘이 활성화됩니다. 강력한 저주독을 품고 있으니 주의하세요!]

내용을 확인한 즉시 인벤토리에서 해주 아이템을 꺼내려던 진 선은 잠시 멈칫했다.

아이템을 쓰면 [식욕귀의 새벽 침샘]이라는 저주독을 온전히 얻을 수는 없게 된다.

최미정이 챙겨준 해주 아이템은 S급이라서 [식욕귀의 새벽 침샘]은 곧장 해주되고 말 것이다.

'새벽 정찬에 휘말리는 게 제일 힘들다고 했지.'

다른 시간대의 정찬이면 몰라도, 새벽 정찬은 딱 맞는 시간에 보스 몬스터인 식욕귀가 젠 되어야만 겪을 수 있는 이벤트였다.

그것을 노리고 시간을 얼추 맞춰 던전에 들어온 것이기도 했으니, 진 선은 이런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해주 아이템을 쓰지 않았다.

쩌억-.

눈앞의 정찬 메뉴를 단숨에 삼키려고 크게 벌어진 식욕귀의 입.

진 선은 그 식사를 방해하지 않고 자신의 몸을 식욕귀의 입안으로 내던졌다.

그리고 인벤토리에서 단검을 꺼내고,

푸욱!

식욕귀의 약점인 목젖을 찌름과 거의 동시에 [식욕귀의 새벽 침샘]을 붙잡아 자신의 인벤토리에 넣었다.

해주 아이템을 쓰지 않은 탓에 침샘을 만지자마자 저주에 걸렸으나, 식욕귀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괜찮았다.

동료들은 잡아먹힌 진 선을 구하기 위해 달려왔고, 식욕귀의 아가리 속에서 산 채로 기어나온 수창 길드장은···

F급 헌터가 되어 있었다.

"와아-, F급 되니까 몸 진짜 무겁네? 동환이한테 잘해줘야겠다~."

민동환은 수창 길드 소속 F급 헌터들 중 하나였다.

진 선, 최미정과 함께 초기 각성한 헌터이기도 했다.

함께 던전을 뛰던 상급 헌터들은 급격하게 옅어진 길드장의 마력에 경악했다.

그들은 비실비실한 길드장을 들쳐메고 출구 게이트로 달렸다.

바깥에서 기다리던 부길드장 최미정은 길드장의 상태를 보고 기절할 뻔했다.

그것이 지난 새벽의 일.

진 선은 해주 아이템을 쓰지 않은 이유를 끝내 밝히지 않았다.

"아이템 왜 안 썼냐니까? 등급 하락 말고 다른 저주였으면 어쩔 뻔했어!"

"으음, 발생할 수 있는 저주 종류는 이미 알고 갔으니까 괜찮잖아~. 식욕귀는 헌터의 등급까지도 먹어치우는 컨셉이라고 미정이가 알려줬잖아."

"인간아···."

최미정은 말이 안 통하는 F급 상사를 보며 탄식했다.

"등급 돌아올 때까지 그 마스크 절대 벗지 마. 잘 때도 쓰고 자!"

"F급은 연약해서 마스크 쓰고 자다간 호흡곤란이 올 수도 있는데."

"마음 같아서는 그냥 기절시켰다가 저주 풀릴 때 다시 깨워주고 싶으니까 닥쳐."

"흐응, 너무해~."

최미정이 구한 검은색 마스크는 착용자의 외관을 바꾸어주는 것이었다.

수창 길드의 길드장 진 선, 하면 전국 사람들이 다 알았으니 얼굴이라도 바꿔야할 것 같아서였다.

진 선의 등급이 일시 하락했다는 정보가 외부에 새어 나가기라도 하면··· 수창을 노릴 세력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길드장 하나가 빠진다고 해서 쉽게 휘청거릴 길드는 아니었으나, 어쨌든 여러 측면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받기는 할 것이다.

길드원들도 큰 혼란을 느낄 테고.

"길드원들한테는 해외 던전 답사 갔다고 둘러댔어. 그러니까 길드 근처로는 얼씬도 하지 마."

"내 집도 여기 있는데 그럼 집에도 못 들어가?"

"응, 노숙을 하든 게스트하우스 한 달 살기를 하든 알아서 해. 정체는 잘 숨기고. 헌터 뉴스에 수창 길드장 노숙자로 전락했다고 뜨기만 해 봐. 진짜 노숙자로 만들어줄 테니까!"

"흐음······."

부길드장이 단단히 화난 것 같았다.

진 선 본인도 제 잘못을 알았으니 한 달 정도는 굽히고 들어가기로 했다.

그렇게 수창 길드 빌딩에서 내쫓긴 수창 길드장은 실직자 신세로 거리를 전전하기 시작했다.

*

유안은 마스크를 절대 벗지 않는 면접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중앙 카페의 복장이야 자유이긴 한데··· 저렇게 커다란 마스크로 얼굴 절반을 가리고 있는 게 답답해 보였다.

벗어도 괜찮다고 했으나 손사레를 친 것은 저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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