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도 우리 가게 욕하는 놈들은 제가 다 밟아버릴게요! 맡겨주세요!"
밟는 거라면 F급 헌터인 소라보다는 A급인 정원에게 맡기는 게 더 합리적일 것 같았다.
그러나 홍소라의 얼굴이 너무 결연해 보여서 유안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나저나, 욕이 있었나?'
자신이 읽은 댓글 중에는 중앙 카페를 욕하는 내용이 없는 것 같았다.
아마 몇 개 보지 않아서 발견하지 못했나 보다.
*
만물 공방에서 막 중앙 던전으로 출발하려던 주현은 유안의 연락을 받았다.
"네에- 이 사장님! 아, 그게 더 필요하시다고요? 가공해둔 게 있기는 한데··· 두 개밖에 못 했거든요. 완성해서 한꺼번에 다 가져다 드리려고 했죠. 네에, 그럼 두 개라도 먼저 갖다드릴까요?"
주현은 통화를 이어가며 공방 금고를 열었다.
유안이 넘겨줬던 [고대 포식자의 핵]이 금고 안에 수두룩하게 쌓여 있었다.
그 중에서 가공을 마친 두 개를 꺼냈다.
"바로 가지고 갈게요. 좀 이따 봬요, 이 사장님."
유안과 통화를 끝낸 주현은 마지막으로 핵을 점검했다.
흠집 하나 없이 완벽했다.
"급하게 필요한 곳이라도 생겼나?"
가공된 핵 두 개를 인벤토리에 넣은 주현이 중얼거렸다.
이유안은 항상 제작 시간을 여유롭게 주는 의뢰인이다.
그래서 이렇게 다급한 요청을 받은 건 처음이었다.
그러나 주현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긴커녕 도전 정신이 활활 타오르는 눈을 했다.
'촉박한 시간을 견뎌냈을 때 희대의 역작이 탄생하는 법!'
만물 공방의 주인은 오랜만에 기분 좋은 두근거림과 긴장감을 느끼며 미소했다.
"오늘은 날 좀 새야겠는데."
*
김주현이 오븐을 만들어 왔다.
몸을 웅크리면 사람 하나도 들어갈 것 같은 크기에 유안이 입을 벌렸다.
'김주현··· 뭐든 크게크게 만드는 걸 좋아하는구나.'
저번 커피 머신 때도 느끼긴 했지만, 큼직한 기계류를 만드는 게 취향인 것 같았다.
홍소라는 빵을 한꺼번에 많이 구울 수 있다고 좋아했으니 다행이었다.
오븐을 가장 많이 쓰게 될 알바생이 합격 사인을 보낸 것이다.
"반죽 만들어둔 거 있으니까 바로 굽기 시작할게요···!"
"처음 사용할 때 불은 정원 씨가 붙여주셔야 해요. 안에 마석을 넣어서 화염 유지 기능이 있지만, 이 마석도 다 떨어지면 충전해야 하고요. 사실 급하게 만드느라 완성도가 좀 떨어져요! 나중에 쓸만하게 새로 만들어 드릴게요."
김주현은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게 무슨 말인지 잘 모르는 것이 아닐까.
'여기서 더 완벽해지면 오븐이 스스로 반죽을 집어넣겠는데.'
유안은 그런 생각을 하며 오븐 내부에 불씨를 집어넣는 정원을 바라보았다.
서정원은 어제 한 번 빵을 구워봤다고 이제 소라가 말해주지 않아도 적당한 온도의 불길을 알았다.
홍소라가 곧장 빵 반죽이 담긴 트레이를 오븐 속에 가지런히 넣었다.
"참, 마석을 써서 요리 속도는 확실히 빠를 거예요!"
주현의 말대로 벌써 맛있는 냄새가 조금씩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거라면 손님이 많이 와도 끄떡없을 것 같았다.
"바, 반죽 더 할게요···!"
빵 구워지는 속도가 빠르다는 걸 확인한 홍소라가 다시 일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쿠키도 만들 거라며 여러 색깔의 반죽을 만드는 속도가 무척이나 빨랐다.
서정원은 오늘치 아이스티 재료를 잔뜩 준비하고, 커피 머신의 전원을 켰다.
그러자 오픈 준비가 완료되었다.
"오늘도 열심히 해봅시다."
이미 카페 바깥으로 길게 늘어선 줄을 바라보며 유안이 말했다.
"네, 사장님."
"네, 네···!"
"네에- 이 사장님! 오늘도 좀 도와드리다 갈게요."
알바생들이 차례로 대답하는 것을 듣던 유안은 김주현의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끼어있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 장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만물 공방의 주인을 구석으로 데려갔다.
"김주현 씨, 오늘은 카페 일 돕지 말고 다른 걸 부탁드립니다."
"음, 어떤 거요?"
"가공된 핵을 목걸이로 만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필요한 재료는 드리겠습니다."
"목걸이로요?"
"예. 목에 걸 수 있는 형태로, 튼튼하기만 하면 됩니다."
뜻밖의 의뢰였지만 주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유안이 시키는 일을 해서 나빴던 적은 없으니.
"공방 돌아가지 말고 여기서 만들어도 되나요?"
"···가게가 복잡해서 집중하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괜찮아요! 이번 의뢰, 좀 급한 거 아니에요? 공방까지 왔다갔다 할 시간에 빨리 만들어서 바로 드리는 게 낫죠."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저쪽 테이블 쓰시면 됩니다."
유안은 가장 구석에 있는 테이블을 가리켰다.
그나마 손님들과 떨어진 곳이었다.
그런데 곧장 테이블로 가려던 주현이 갑자기 몸을 돌렸다.
"이 사장님!"
우렁찬 목소리에 뒤를 돌아본 유안은 이어지는 주현의 말에 인상을 쓰고 말았다.
"좋아하는 분한테 선물하실 거죠? 이 사장님도 참, 은근히 로맨틱한 구석이 있으시네요."
"아닙니다."
"커플 목걸이잖아요!"
"절대 아닙니다."
선물용으로 의뢰한 건 맞지만, 주현이 생각하는 그런 의미는 절대 아니었다.
유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시 몸을 돌렸다.
"받는 분이 홀랑 넘어갈 정도로 예쁘게 해드릴게요!"
주현의 목소리가 등을 따갑게 만들었지만 무시했다.
누나들 그게 아니고
완성된 목걸이에는 각각 이니셜이 새겨졌다.
유안이 괜찮다고 세 번을 말했으나 주현은 듣지 않았다.
결국 지친 유안이 목걸이 주인들의 이니셜을 말해주었다.
LYG.
LYW.
당연히 목걸이 하나는 유안의 이니셜일 거라 생각한 주현의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 사장님, 이분들이 누군데요?"
"···제 누나들입니다."
"와, 대박! 누나가 둘이나 있으시구나."
"예."
회귀 전에도 비슷한 대사를 들었던 것 같은데.
유안은 잠시 예전 일을 회상하며 대답했다.
어쨌든 주현이 오해를 풀었으니 다행이었다.
"커플 목걸이 아닙니다."
"그럼 가족끼리 나눠 끼려는 거예요? 사장님 건요?"
"저는 각성자니까 괜찮습니다."
"아, 누님들이 비각성자시구나! 카페에 한 번 초대하려고 선물하시는 거예요?"
"그런 것도 있고···."
유안은 아직도 간헐적으로 진동이 느껴지고 있는 자신의 헌터 디바이스를 애써 모르는 척했다.
휴튜브에 올라온 영상을 본 작은누나가 아침부터 계속 연락하고 있었다.
큰누나에게도 소식이 전해졌는지 웬만하면 연락하는 일이 없던 큰누나에게서도 문자 한 통이 왔다.
[막내, 저녁에 집에서 보자.]
중앙 던전에 카페를 시작한 이후, 유안은 누나들과 살던 집에서 나와 중앙 던전 근처에 방을 하나 얻었다.
집은 무조건 직장과 가까운 것이 최고이다.
그래서 한동안 본가에 들어갈 일이 없었는데···.
작은누나도 아니고 큰누나가 연락할 정도면 더는 미룰 수 없었다.
'전부 알고 부르는 거겠지.'
유안은 자신이 무슨 사업을 시작했는지 밝히지 않았으나 큰누나인 유경에게 그걸 알아내는 일쯤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휴튜브에 올라온 영상 댓글만 가지고 추측해도···.
'아, 오랜만에 잔소리 듣겠다.'
유안은 누나들을 만날 일에 긴장하며 목걸이를 잘 챙겼다.
주현이 혼신의 예술 혼을 쏟아부어 아름답게 만든 목걸이였으니 이걸 받고 기분이 좀 나아지길 바랄 뿐이었다.
*
유안과 주현이 목걸이를 가지고 대화하는 사이 정원과 소라는 카페를 마감했다.
쉴 새 없이 움직이며 하루를 하얗게 불태운 알바생들은 피로에 찌든 모습이었다.
'얼른 새 알바생을 뽑아야겠어.'
이제 슬슬 두 명으로는 벅차다.
메뉴도 다양해졌고, 앞으로 더 번창할 일만 남았으니 그에 따라 직원도 더 필요했다.
'서정원 씨와 홍소라 씨처럼 뛰어난 사람이 왔으면 좋겠는데.'
모든 업무를 잘하진 못하더라도 한 분야에 특출난 사람을 고용하고 싶었다.
과일이 들어가는 음료는 서정원, 디저트류는 홍소라가 꽉 잡고 있으니 남은 건 커피 종류였다.
중앙 카페 메뉴판의 다른 메뉴가 여럿 추가되는 동안에도 커피 메뉴는 두 종류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메리카노와 라떼.
유안도 전문 바리스타가 아니라서 모든 메뉴에 능통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커피 지식이 풍부한 알바생을 뽑아볼 생각이었다.
유안은 지체없이 헌터그램을 켰다.
원래 헌터그램 계정은 만들 생각이 없었는데, 오늘 홍소라가 유안을 부추겼다.
'워, 원래 홍보에는 헌터그램이 최고예요···!'
그렇게 말하며 중앙 카페 오피셜 계정을 만들어주기까지 했다.
'직원을 뽑을 때도 여기에 공지하는 게 더 낫다는 거지.'
소라의 말이 맞았다.
헌터그램 계정에 사진도 몇 개 올리지 않았는데 벌써 많은 헌터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Huntergam+
Center_Cafe_Official
중앙카페
❀던전에 지친 헌터들의 유일한 쉼터❀
중앙 던전 게이트 앞
⊙am 9:00 ~ pm 6:00
|5 게시물|1,693 팔로워|1 팔로잉|
다섯 개의 게시물은 방금 홍소라가 작성한 것이었다.
유안은 이런 SNS를 운영해본 적이 없었기에 홍소라가 나서서 도와주었다.
홍소라는 능숙하게 헌터 디바이스 카메라를 실행시켰다.
그리고 정원에게 카페 메뉴를 하나씩 받아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찰칵!
경쾌한 셔터 소리가 들릴 때마다, 헌터그램에서 잘 먹히는 특유의 감성을 듬뿍 담은 사진이 탄생했다.
사진 후보정까지 순식간에 마친 소라는 헌터그램에 게시물을 업로드할 때도 망설임 없이 손가락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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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밀가루 NO사탕수수설탕
부드러운 쉬폰케이크 사이에 상큼한 마멀레이드가 레이어드 되어 입이 즐거워지는 #마멀레이드쉬폰
밀가루와 사탕수수설탕 대신 던전에서 직접 파밍한 재료들을 사용해 피로 회복에도 좋습니다 :)
던전 공략, 파밍 직후 지친 분들은 꼭 드셔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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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 엄청 빠르네.'
손가락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유안은 아예 홍소라의 헌터 디바이스에도 카페 계정을 로그인 시켜두었다.
앞으로 수당 따로 챙겨주며 홍소라에게 헌터그램 관리를 일임하기로 했다.
소라 덕분에 순식간에 팔로워가 불어난 계정에 알바 모집 글을 올리려니 괜히 긴장되었다.
게다가 헌터그램은 사진을 반드시 첨부해야 게시글을 쓸 수 있어서 유안은 어떤 사진이 좋을지 한참 고민했다.
헌터 디바이스 내의 앨범을 뒤져보아도 던전 파밍 중에 찍은 풍경 사진밖에 없었다.
그런 유안에게 소라가 슬그머니 다가왔다.
그리고 신메뉴 개발에 집중하고 있는 정원 쪽을 가리킨다.
"사, 사장님. 서정원 씨 찍으세요."
"예? 아무리 그래도 본인 허락 없이 그러는 건···."
"헌터그램 계정 만들었다고 하니까 서정원 씨가 먼저 사진 찍어가도 된다고 허락하셨어요···. 으, 은근히 즐기시는 것 같아요···."
"······."
본인도 허락했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유안은 헌터 디바이스의 카메라 어플을 실행시켰다.
찰칵.
서정원은 던전산 재료 연구에 몰두하느라 자신이 찍힌 줄도 몰랐다.
한 폭의 그림처럼 중앙 카페 모습과 잘 어우러진 서정원의 사진이 유안의 헌터 디바이스에 저장되었다.
"아, 알바 몇 명 뽑으실 건가요···?"
"일단 두 명 정도 생각 중입니다. 한 명은 바리스타 자격증이나 카페 경력 있는 사람으로 뽑고 싶습니다."
"그, 급여는···?"
"지금처럼 파티 기여도 시스템을 사용할 생각입니다."
홍소라는 게시물을 대리 작성해주기 시작했다.
유안이 적었으면 밋밋하게 공고 내용만 적혔을 게시물이 소라의 손에서 감성적으로 변했다.
적재적소에 이모티콘을 배치하는 손길이 분주했다.
서정원의 사진과 글이 어우러져서 그런지 어느 잡지에 실린 칼럼 같기도 했다.
'SNS 전문 마케팅 업체가 괜히 있는 게 아니었구나!'
게시물을 업로드하자마자 다이렉트 메시지 요청이 마구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
"저, 저도 같이 확인해드릴게요···."
소라가 나서주지 않았으면 일일이 확인할 엄두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