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10/137)

초코 소라빵을 가장 먼저 맛본 손님은 연신 맛있다고 외치며 자신의 헌터 디바이스를 꺼냈다.

그리고 카페의 음료를 여러 개 주문한 뒤, 어마어마한 금액을 결제했다.

30만 원만 주면 되는데 300을 결제한 손님에게 유안은 0 하나가 잘못 붙은 것 같다고 말했으나, 손님은 맛있게 먹었으니 그 정도는 내고 싶다며 환불을 극구 거절했다.

'···좋았지.'

통 큰 손님 덕에 빵빵해진 잔고를 바라보면 흐뭇했다.

*

"사장님, 그래서 마멀레이드를 만들어 보려고요."

잠시 상념에 빠진 유안을 깨운 것은 정원이었다.

서정원은 어느새 다 깎은 과일 껍질을 모아서 길쭉하게 자르고 있었다.

"마멀레이드 말입니까?"

"잼 비슷한 건데, 과일 껍질을 설탕에 졸여서 만드는 거예요. 아이스티에는 굳이 껍질까지 넣지 않아도 되니까, 껍질로는 마멀레이드를 만들면 좋겠더라고요."

A급 헌터는 머리 쓰는 것도 A급인 게 분명했다!

유안은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서정원을 칭찬했다.

"아주 좋은 생각입니다."

"사장님도 아마 좋아하실 거예요."

"필요한 재료 있습니까?"

"아까 빵 만들 때 썼던 [마지막 잎새]만 부탁드려요."

유안은 인벤토리에서 이파리를 열 장 정도 꺼냈다.

중앙 던전에서 쉽게 채집할 수 있는 식물형 아이템이었다.

이름만 [마지막 잎새]일 뿐, 중앙 던전 대부분의 나무에 돋아난 이파리가 전부 이것이었다.

계속 아이스티를 장식하는 용도로만 쓰던 아이템인데, 서정원이 [마지막 잎새]를 태워서 가루로 만들어보곤 설탕 대용으로 쓸 수 있겠다고 말했다.

하얀 잿가루에서 진한 달콤함이 느껴진 것이다.

"사장님, 잎 더 필요해요."

"이만큼이면 됩니까?"

"더요. 설탕이 상상 이상으로 많이 들어가는 음식이거든요."

"······."

아이템을 얼마나 꺼내줘야 좋을지 고민하던 유안은 그냥 자신의 품에 이파리를 한가득 안았다.

서정원은 이제야 만족했는지 더 달라는 소리를 안 했다.

[마지막 잎새]를 한꺼번에 태우고 나온 잿가루가 전부 마멀레이드 재료로 들어갔다.

오렌지 색의 과일 껍질들이 달큰하게 졸아들기 시작했다.

마멀레이드를 끓이는 냄비는 물론 만물 공방표 아이템이었다.

"우와, 잼이에요?"

"마, 마멀레이드···."

테이블을 다 정리하고 돌아온 주현과 소라도 관심을 가졌다.

홍소라는 냄비 속 내용물을 확인하자마자 마멀레이드라는 걸 알아보았다.

"제가 만들어도 되는데요···."

"불조절하며 만들려면 제가 직접 하는 게 더 편할 것 같아서요."

"오케이, 화구 하나 접수 완료! 이 사장님, 오븐 만들고 나서 요리용 화구 작업 바로 들어갈게요!"

이제 주현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일거리를 물어 갔다.

유안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의뢰비나 선입금했다.

"잘 하시네요···. 베이킹 배우셨나요?"

"요리가 취미라서요. 그래도 마멀레이드는 처음 만들어보는 거예요. 레시피 보면서 하는 중이긴 한데, 완성되면 소라 씨가 맛 좀 봐주세요."

홍소라와 서정원은 베이킹 코드가 맞았는지 금세 친해져서 마멀레이드를 함께 만들어갔다.

알바생끼리 사이가 좋으니 유안의 입꼬리는 자꾸 올라가려 했다.

'알바생들을 잘 뽑았어.'

서정원을 고용하고 나서도 그 생각을 했는데, 홍소라도 그에 뒤지지 않게 훌륭했다.

"이 사장님, 저는 이만 공방으로 돌아갈게요! 얼른 오븐 만들어야죠."

"예, 김주현 씨. 내일 뵙겠습니다."

"네!"

활기차게 인사한 주현이 유안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마멀레이드 완성되면 제 거 하나 빼놔주세요."

그러면서 뇌물로 예쁜 유리 단지 여러 개를 찔러주었다.

모두 던전 부산물로 만든 것이라 유안의 인벤토리에 쏙 들어갔다.

눈을 찡긋거린 주현이 사라졌고, 그로부터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 서정원의 손에서 불길이 사그라졌다.

던전산 마멀레이드가 완성된 모양이었다.

냄비 안에서 뜨거운 기운을 내뿜는 마멀레이드는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촉촉하고 달콤한 던전산 설탕물을 머금은 과일 껍질에서 윤기가 흘렀다.

정원은 마멀레이드에서 액체만 한 스푼 정도 퍼내고, 그 위에 장식하듯 껍질 한 조각을 얹었다.

그리고 소라는 마멀레이드를 만들 때 한쪽에서 따로 구워낸 플레인 브레드를 내밀었다.

한 조각의 빵과 약간의 마멀레이드.

정원과 소라는 이미 그 맛을 봤지만, 카페 사장인 유안에게 검사받을 시간이었다.

두 알바생은 완벽한 디저트를 만들어 놓고도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보나마나 맛있을 텐데.'

유안은 알바생들의 실력을 한 치도 의심하지 않았다.

푸욱.

아직 따뜻한 기운이 남은 베이지색 빵이 마멀레이드 속으로 몸을 담갔다.

촉촉하게 젖은 빵 위에 과일 껍질 한 조각이 올라갔다.

모자를 쓴 것처럼 귀여운 모양새를 보니 이대로 팔아도 될 것 같았다.

유안이 입을 최대한 크게 벌려 그것을 삼켰다.

'맛있어···!'

달기만 한 게 아니라 살짝 쌉쌀한 끝맛이 마음에 들었다.

유안은 저도 모르게 눈을 크게 뜨고 남은 빵과 마멀레이드도 단숨에 해치웠다.

서정원과 홍소라는 어느새 유안을 보고 뿌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멀레이드와 플레인 브레드를 메뉴에 추가해도 괜찮을지는, 물어보지 않아도 그 답을 알 수 있었다.

사장 이유안의 반짝반짝한 눈이 모든 것을 말해주었다.

휴튜브

[세계 최초 게이트 먹방! 게이트에서 빵 구워먹음ㅋㅋ]

눈길을 끄는 제목의 영상.

Hutube 페이지 메인을 장식한 인기 동영상은 어느 헌터가 빵을 먹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영상을 찍은 장본인, 정태영이 자신의 영상 페이지를 계속해서 새로고침했다.

초 단위로 몇 백씩 늘어나는 조회수가 마음에 들었다.

어제 저녁, 집에 돌아오자마자 급하게 편집해서 업로드한 보람이 있었다.

"이 좋은 가게를 아직 아무도 안 찍어갔다니."

헌터 일을 하면서 소소하게 먹방 영상을 찍어 올리는 사람들은 꽤 있다.

하급 헌터의 경우는 그렇게 휴튜브 활동을 하다가 아예 본업을 휴튜버로 바꾸기도 했다.

태영은 B급 헌터라 던전 공략이나 파밍만으로 버는 돈이 상당해서 본업과 부업이 뒤바뀌는 일은 없었으나, 자신의 채널에 영상을 업로드하고 구독자들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큰 행복을 느꼈다.

헌터 일에 비하면 돈이 별로 되지도 않는데 휴튜브를 놓지 못하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다.

채널 개설일이 벌써 3년 전이다.

그간 차곡차곡 쌓인 구독자가 십만을 가까스로 넘겼다.

그리고 십만 구독자를 넘기자마자 어제 올린 영상 하나가 빵 뜨면서 실시간으로 구독자가 불어나고 있었다.

이게 다 그 카페 덕분이다.

태영은 어제 먹었던 소라빵의 맛을 떠올리며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또 먹고 싶다···."

그 황홀했던 맛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입가에 침이 질질 흐를 것 같았다.

어제 중앙 던전을 공략하고 나와서 방문한 카페는 하나부터 열까지 완벽했다.

디저트류만 맛있는 줄 알았는데 커피도 훌륭했고, 알바생들이 친절했다.

특히 태영은 자신에게 소라빵 하나를 더 서비스로 주던 알바생을 잊지 못했다.

맛있는 거 주는 사람이 제일 착한 사람이었다.

"안 되겠다!"

원래 한 번 촬영한 가게는 다시 안 간다는 자신만의 철칙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원칙을 어기고 싶어졌다.

"게이트 근처에서 장사하는 건 거기밖에 없으니까."

어쩔 수 없다.

태영은 당장 옷을 헌터복으로 갈아입고 나갈 채비를 했다.

목적지는 당연히 중앙 카페였다.

*

"저, 저분 또 오셨네요···."

오픈 준비를 하는데 홍소라가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유안의 고개가 그쪽으로 천천히 돌아갔다.

'···누구지?'

유안은 묘하게 낯이 익은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면서 대체 누구였는지 떠올리려고 노력했다.

손님을 하루에 수백 명씩 받다 보니 얼굴을 모두 외우기는 벅찼다.

그런데 소라는 골몰한 유안의 표정을 보고 깜짝 놀랐다.

"사, 사장님. 저분 누군지 모르세요···?"

어떻게 모를 수 있느냐는 뉘앙스였다.

손님 얼굴도 기억 못하는 사장이 되기 싫었던 유안은 머리를 빠르게 회전시켰다.

"손님으로 오셨던 것 같기는 한데··· 아, 소라빵?"

어제 저녁, 소라빵을 유독 맛있게 먹던 손님이 떠올랐다.

그때는 모자를 쓰고 있어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 자세히 확인해 보니 동글동글한 눈매가 딱 그 손님이 맞았다.

고난도 퀴즈의 정답을 맞힌 기분이 들었다.

유안은 당당한 표정으로 소라를 바라보았다.

"허, 허얼···. 진짜 모르시나 봐······."

그런데 홍소라는 제 입을 가리며 작게 감탄했다.

"···어제 소라빵 먹고 가신 분 맞지 않습니까? 그 후에 커피 여러 잔 시키고 헌터 디바이스로 동영상 촬영까지 하시던 분."

이제 생각해보니 시원하게 300만 원이나 결제하고 간 손님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게 쑥쓰러웠다.

'모자 때문이야, 모자.'

모자만 아니었어도 바로 알아봤을 거다.

유안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소라가 속삭였다.

"태, 태양TV 모르세요, 사장님? 먹방 휴튜버요."

"태양TV요?"

먹방이나 휴튜버가 무엇인지는 당연히 알았다.

즐겨 보는 편은 아니지만, 유안도 가끔 잠이 안 올 때 던전 파밍 ASMR 영상을 틀어두기는 했다.

그런데 먹방 쪽은 관심이 없어서 따로 찾아본 적이 없다.

"유명한 분인가요?"

"네, 네. 당연하죠, 사장님. 실시간 인기 동영상에 저분이 우리 카페 찍은 거 올라갔잖아요···."

"예?"

금시초문이었다!

유안은 어안이 벙벙해져서 곧장 헌터 디바이스를 확인했다.

아직 순위권에 있는 영상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세계 최초 게이트 먹방! 게이트에서 빵 구워먹음ㅋㅋ]

홀린 듯 영상을 클릭하자 먹음직스러운 소라빵이 화면을 한가득 채웠다.

영상은 많이 흔들리고, 초점이 잘 맞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초콜릿이 눅진하게 흘러내리는 빵의 단면만큼은 제대로 찍혔다.

소라빵의 맛과 냄새가 화면 너머까지 전해지는 것 같았다.

단순히 소라빵 맛집을 찍은 영상이었다면 실시간 인기 동영상에 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이 태양TV의 영상에 주목한 이유는 그것을 찍은 장소가 게이트 근처이기 때문이었다.

유안은 자연스럽게 스크롤을 아래로 내려 영상에 달린 댓글까지 확인했다.

-게이트 근처에서 빵을 굽는다고? 신박하긴 하네;

ㄴ물리적으로 가능함···? 게이트 마나 때문에 일반 기계는 다 부식되잖아

ㄴ던전 부산물로 만들면 가능합니다.

-근대누가사머금? 게이트근처에서하면 손님도업을텐대

ㄴ너 헌터 아니지

-중앙던전이죠? 저기 가봤는데 커피도 맛있어요~

ㄴ저는 아이스티 추천

ㄴ아이스티도 있어요?

ㄴㅇㅇㅇ이번에새로나옴

-주작ㅋㅋ

ㄴ태양TV 얘 헌터 맞긴 한데 빵 굽는 장면 1도 없으면서 영상 제목으로 어그로만 끄네 ㅋㅋ

ㄴ잘 알지도 못하면서 주작주작 거릴 줄만 알지 니 손가락으로 소시지빵 만들어버리기 전에 닥쳐

ㄴ윗댓 왤케 화났어···? 저기 사장이야?

-여기 알바생 좋아요

ㄴ??머가여?

ㄴ아무튼 좋아요 헌터면 가보세요

중앙 던전 게이트 근처에 카페가 생겼다는 것은, 헌터들 사이에서는 이미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었다.

헌터그램에도 게시글이 여러 개 올라갔고, 중앙 던전이 워낙 인기 있는 던전이다 보니 그랬다.

그러나 던전에 갈 일이 없는 비각성자들 사이에서는 아니었다.

던전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었으니 그쪽 소식에 느렸다.

'비각성자 대상 홍보는 나중에 차근차근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휴튜브에 올라온 영상 때문에 비각성자들에게도 중앙 카페가 알려지고 말았다.

비각성자를 게이트 근처로 오게 하려면 좀 더 준비해야 할 게 있었다.

지금 이 상태로는 안 된다.

'···일정을 좀 당기긴 해야겠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고, 유안은 영상이 뜬 시기를 놓치지 않고 단물을 쪽쪽 빨아먹을 생각이었다.

유안이 머릿속으로 필요한 것들과 계획을 정리했다.

홍소라는 그런 유안을 바라보다가 머뭇머뭇 말을 걸었다.

"사, 사장님. 영상 보셨어요?"

"예, 봤습니다. 오늘 좀 바빠지겠습니다."

"그, 그···! 영상에 달린 댓글도 다 보셨나요, 그럼?"

"몇 개는 봤습니다."

홍소라의 표정이 좀 이상해졌다.

낯빛을 붉으락푸르락 하더니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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