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화 (9/137)

우웅-.

진동이 짧게 끊어지는 것으로 보아 알림이었다.

유안이 곧장 디바이스를 꺼내 확인해보자, 과연 그 구인 게시글에 누군가 댓글을 달아 놓았다.

[소라빵: 알바 모집 아직 안 끝났죠? 오늘 면접 보고 싶습니다.]

누가 봐도 홍소라일 게 분명한 아이디.

중앙 카페의 사장이 저돌적인 손님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소라는 언제 소심하게 굴었냐는 듯 해맑은 얼굴로 유안을 마주보았다.

홍소라의 입이 소리 없이 움직였다.

'알바 면접. 지금 볼게요.'

다 알아 들었지만 왠지 외면하고 싶었다.

*

알바생을 서정원 하나만 뽑고 끝낼 생각은 아니었다.

분명 처음에는 여러 명을 고용하려 했는데.

'서정원이 혼자서도 너무 잘하는 바람에···.'

다른 알바생 뽑을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서정원이 일당백을 하니 인력이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오늘은 김주현까지 나서서 카페 일을 도왔다.

덕분에 유안은 하루 종일 카운터만 지키며 계산 업무만 도맡았다.

주현은 앞으로도 공방 일이 한가할 때마다 도와주러 오겠다고 약속했다.

좋은 게 좋은 것이었기에 유안은 새끼손가락까지 곱게 걸어주었다.

"죄송하지만, 당장은 인력이 더 필요하지가 않···"

"저, 저 빵 잘 만들어요! 디저트 같은 거요!"

홍소라를 공손히 돌려보내려 했으나 그 말을 듣고 멈칫하게 되었다.

디저트?

아직은 이르다고 생각한 메뉴였다.

당장 있는 던전산 과일로 생 초콜릿을 만들어 파는 것까지는 가능해도, 본격적인 디저트류는 손이 많이 가니까.

음료 메뉴부터 더 늘리고 천천히 디저트를 추가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까 잠깐 헌터그램으로 이 카페 후기 찾아보고 그랬는데요. 커피랑 아이스티 맛있어서 만족한 손님들의 육십 퍼센트 정도가 입이 심심하다는 뉘앙스의 코멘트를 달았더라고요. 절반 이상의 손님이 서비스로 받은 생 초콜릿만으로는 배가 차지 않아서 아쉽다고 했고요!"

"숨은 쉬고 말하세요···."

유안은 갑자기 말을 더듬지도 않고 무척 상기된 홍소라를 진정시키기 위해 생 초콜릿 하나를 건네주었다.

소라가 그것을 입에 넣고 음미하는 동안, 유안은 홍소라가 분석한 내용을 천천히 곱씹어 보았다.

'확실히··· 던전 파밍 후에 방문한 손님들은 배고프다는 말을 많이 했지.'

던전 파밍이라는 것이 얼마나 강도 높은 육체 노동인지는 잘 알았다.

게다가 중앙 던전은 계속 삽질하거나 호미질해야 하는 극한 파밍 환경이었다.

그런 일을 몇 시간이나 하다 나온 한창 때의 헌터들이 배고프지 않을 수는 없었다.

"재료만 있으면 뭐든 만들 수 있어요!"

어느새 초콜릿을 다 먹은 홍소라가 호기롭게 외쳤다.

"밀가루 같은 게 필요한 겁니까?"

"네, 그리고 빵에 넣을 속재료랑··· 오븐도 필요하겠네요!"

"오븐은···."

"저한테 맡겨주세요, 이 사장님. 커피 머신도 만들었는데 오븐 정도야 뭐어."

김주현이 시원하게 웃으며 제 가슴을 탕탕 쳤다.

믿음직스러웠다.

"일단 오늘은 오븐이 없으니 제 스킬을 쓰면 되겠어요, 사장님."

서정원은 [사막의 열기] 말고도 다양한 화염 계열 스킬을 보유하고 있었다.

전투 중에도 쓴다는 불꽃은 무척 뜨거웠으나 서정원의 의지대로 불 세기 조절이 가능했다.

김주현이 제 인벤토리에서 넓은 철판을 주섬주섬 꺼냈다.

"이 트레이 쓰세요!"

빵 반죽을 올려둘 공간도 확보했으니 이제 정말 만들 일만 남았다.

"밀가루 있나요?"

홍소라는 기대감 어린 목소리로 유안에게 물었다.

유안은 자연스럽게 제 인벤토리를 뒤져 밀가루 비슷한 가루를 꺼냈다.

[화염꽃의 가루]는 던전 내부에서만 자생하는 꽃이 스스로 타오르며 재가 된 흔적이었다.

평범한 잿가루와 다르게 흰색을 띠었고, 입자가 고왔다.

"음, 이거 살짝 달콤한데요! 설탕 많이 안 넣어도 되겠다."

흰색 가루를 손가락으로 콕 찍어먹어 본 소라가 만족한 듯 웃었다.

본격적으로 빵 반죽을 시작한 홍소라는 필요한 재료가 생길 때마다 유안에게 말했다.

유안은 제 인벤토리를 뒤적여 홍소라가 요구하는 것들을 쏙쏙 찾아내었다.

"사장님, 주머니에서 뭐든 나오는 고양이 같네요."

"···파밍을 열심히 했을 뿐입니다."

"언제 한 번 이 사장님 인벤토리 전부 구경해보고 싶어요! '왓츠 인 사장님 인벤토리' 해주세요!"

"던전 부산물만 잔뜩 있어서 별로 재밌진 않을 겁니다."

정원과 주현의 말에도 가볍게 대꾸해주며 홍소라가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어느덧 그럴싸한 소라 모양의 빵 여러 덩이가 철판 위에 얌전히 자리를 잡았다.

"이제 굽기만 하면 돼요!"

홍소라가 적당한 온도를 말해주었고, 서정원은 자유자재로 불을 다루기 시작했다.

금세 고소하고 달콤한 빵 굽는 냄새가 게이트 근처에 넓게 퍼졌다.

소라빵과 마멀레이드

저녁 시간이 가까워진 중앙 던전 게이트 근처는 한산한 편이었다.

한국의 헌터들은 밥 시간대를 피해서 파밍을 오기 때문이었다.

게이트 근처에는 끼니를 해결할 공간도 없으니 더욱 그랬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파밍을 끝내고 게이트 밖으로 나온 헌터들은 저녁 식사를 위해 집에 돌아가는 대신 발걸음을 멈추었다.

자연스럽게 그들을 이끈 것은···

이곳이 게이트 근처라는 것도 잊게 만드는 빵 냄새였다.

갓 구운 빵.

콧속에 감미롭게 흘러 들어와 침샘과 식욕을 자극하는 그것.

냄새를 맡은 한 무리의 헌터들이 웅성댔다.

"야, 여기서 왜 맛있는 냄새가 나냐?"

"그니까. 여기 카페 생긴 건 아는데··· 빵도 만드나?"

"게이트 근처에서 빵을 어떻게 만들어, 인마."

"커피도 만드는데 빵은 못 만들 게 뭐야?"

배고픈 헌터들의 추측이 이어졌다.

그들은 홀린 듯 중앙 카페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왔다!'

유안은 아직 따끈따끈한 빵을 바라보며 손님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홍소라가 만든 빵은 유명 프랜차이즈에서 파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설탕을 따로 쓰지 않아도 단맛을 내는 [화염꽃의 가루] 덕분일까, 인공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달콤함이 느껴지는 빵이었다.

게다가 홍소라는 그 짧은 시간에 두 종류의 빵을 만들어냈다.

던전산 과일을 빵 안에 넣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한 것이다.

그 말에 서정원은 기다렸다는 듯 [피오네 큐브]를 건넸다.

홍소라는 작은 정육면체 형태의 과일을 손에 들고 유심히 살폈다.

[피오네 큐브]는 씨가 없고 과육이 단단하여 높은 열을 가해도 손상을 입지 않았다.

서정원이 간단하게 과일에 대해 설명했다.

"생 초콜릿을 만들 때 쓰는 과일이에요. 건조하지 않고 그대로 반죽 속에 넣으면 좋을 것 같네요."

"타버릴 수도 있어요."

"그건 걱정하지 마시고요."

화르륵.

서정원의 손에 불길이 일었다.

한여름의 태양처럼 붉은 불은 서정원의 의지대로 이리저리 춤을 췄다.

그 모습을 감상하듯 바라보던 소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A급 헌터의 스킬 제어력을 믿고 맡긴 결과는 훌륭했다.

빵 반죽은 고루 익었고, 정가운데에 심은 [피오네 큐브]가 먹기 좋은 정도로 녹아내렸다.

초코 퐁듀를 잔뜩 머금은 소라빵이 철판 트레이의 반을 차지했다.

나머지 반은 식사 대용으로 가볍게 먹을 수 있도록 표면에 과일즙만 살짝 뿌렸다.

바 테이블 근처에 다가온 손님들은 소라 모양의 빵을 보고 군침을 삼켰다.

냄새만 맡아도 허기가 졌는데 그 모습을 직접 확인하자 참을 수 없는 충동이 솟구쳤다.

"이 빵, 파는 거 맞죠?"

헌터 손님이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오늘은 시식용으로만 조금 준비해둔 겁니다. 정식 판매는 내일부터예요."

유안은 손님들에게 빵을 하나씩 건네며 말했다.

"먹어보고 어떤지 말씀해주세요."

영업용 미소도 잊지 않았다.

손님들은 빵을 정말 공짜로 받아도 되는지 우왕좌왕했다.

그러나 곧 허기를 이기지 못하고 소라빵을 크게 한 입 베어물었다.

하압.

그 순간, 초코 소라빵을 먹은 손님의 눈이 동그래졌다.

유안은 사람 눈이 저렇게까지 커질 수 있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

입가에 초콜릿을 살짝 묻힌 손님이 빵을 몇 번 씹지도 않고 삼켰다.

그리고 감상평을 말하고 싶은데 우물거림을 멈출 수 없는지 계속해서 빵을 입에 넣었다.

'엄청 잘 먹네···.'

먹방 전문 방송인이라고 해도 믿을 만한 모습이었다.

유안도 아까 소라빵을 맛보기는 했지만, 손님이 먹는 모습을 보니 다시 입이 심심해졌다.

보는 사람도 배고파지게 만드는 손님의 식사가 순식간에 끝났다.

소라빵 하나가 마술처럼 사라진 것이다.

이제야 손님의 목소리를 다시 들어볼 수 있었다.

*

"대박, 소라 씨 손재주 완전 좋네요! 공방 하셔도 잘하시겠다."

"아, 아뇨···. 저는 디저트 종류만 잘 만들어요."

베이킹을 끝내자마자 다시 소심해진 소라는 손가락을 꼼지락대며 주현의 말에 대답했다.

김주현은 아까부터 홍소라를 공방 장인의 세계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홍소라가 생각보다 단호한 인간이었다.

디저트 외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다.

"식사류는 정말 간단한 것도 못 만들어서··· 바, 밥도 다 사먹거든요."

"요리나 베이킹이나 비슷한 느낌 아닌가요?"

"베이킹은 재밌지만 요리는 지루하다구요!"

"아하···."

주현은 소라의 말을 최대한 이해한 척했다.

두 사람의 대화를 잠자코 듣던 유안은 생각했다.

'요리는 못 해도 괜찮아. 디저트를 호텔급으로 만드니까.'

어차피 당장 카페에 필요한 건 김치볶음밥이 아닌 소라빵이었다.

유안은 소라를 정식 알바생으로 채용하기로 마음먹었다.

"홍소라 씨, 내일부터 출근하시면 됩니다."

"네? 네, 네에···!"

"주현 씨는 의뢰 하나만 더 받아주세요."

"던전 부산물로 만든 오븐, 맞죠?"

이제 김주현은 척하면 척이었다.

"맞습니다. 필요한 재료는 제게 청구하시면 됩니다."

"에이, 오븐 정도야 지난번에 광물 사고 남은 걸로도 뚝딱 만들죠! 내일 카페 오픈 시간 맞춰서 배달해드리면 될까요?"

"···그게 하루도 안 걸려서 완성됩니까?"

"제 속도에 적응하실 때도 됐잖아요, 이 사장님."

김주현은 정말 최고의 공방 장인이었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속도에 맞출 줄 알았다.

유안은 아주 만족스럽게 웃으며 주현에게 의뢰금을 보냈다.

그런데 아까부터 서정원이 지나치게 조용했다.

바 테이블 안쪽에 작게 마련된 간이 주방에서 나오지 않고 있었다.

'뭘 만드는 거지?'

던전산 과일을 잔뜩 들고가는 건 보았는데.

유안은 정원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서정원 씨? 아까부터 뭘··· 아이스티 재료를 미리 만드시는 겁니까?"

서정원은 던전산 과일을 무더기로 쌓아놓고 있었다.

단도를 든 정원의 손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과일 껍질이 시원하게 벗겨졌다.

'그런데 아이스티 재료는 껍질 안 벗기지 않나?'

이상함을 느낀 유안이 시선을 떼지 못하자 정원이 입을 열었다.

과일 껍질을 깎는 손은 절대 멈추지 않으며.

"다들 열심히 하시는데 저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요."

유안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오늘의 파티 기여도를 확인했을 때 정원의 수치가 제일 높았는데.

"서정원 씨도 열심히 하셨습니다."

"네, 사장님도 오늘 고생 많으셨어요."

"······."

"좀 전에 빵 시식한 손님이 그러더라고요. 다 좋은데 같이 먹을 수 있는 잼 같은 게 있었으면 좋겠다고."

서정원은 갑자기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과일을 열심히 깎고 있던 이유가 그것인 것 같았다.

유안도 그 손님의 말을 듣긴 들었다.

그러나 크게 불만 섞인 목소리는 아니었고, 이런 게 있었으면 더 좋았겠다, 정도였기에 마음에 두지 않았다.

하나 서정원은 신경 쓰고 있었나 보다.

"[피오네 큐브]가 들어간 빵을 먹은 손님들은 괜찮았어요."

정원이 덧붙여 하는 말에 유안도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맨 처음에 시식한 사람도 만족하다 못해 영상까지 찍어갔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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