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6/137)

유안은 그래도 A급 헌터인 정원에게 던전 들어가지 말라는 말을 대놓고 하진 못했다.

출근 첫 날부터 알바생의 일상까지 간섭하려 드는 건 좋은 사장이 아니니까.

그래서 최대한 애둘러 표현했다.

귀한 A급 알바생을, 그것도 건조기 기능도 있는 고급 인력을 던전처럼 위험한 곳에 보낼 수는 없었다.

"위험한 일은 금지입니다."

그렇게 말한 유안은 앞으로 직원을 더 모집할 때 안전 제일을 강조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예 뽑을 때부터 말해두면 더 좋을 것이다.

다행히 정원은 유안의 말에도 불쾌한 기색 하나 없었다.

과연 던전에 들어가기 싫어서 카페 알바를 시작한 A급 헌터다웠다.

*

서정원은 확실히 요리에 일가견이 있었다.

그쪽으로는 문외한인 유안이 보기에도 대단하다 느껴질 정도로, 칼질 솜씨나 재료를 조화롭게 배합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지금도 아이스티를 종류별로 뚝딱 만들어 냈다.

다섯 개의 잔에 담긴 영롱한 빛깔의 음료.

유안은 그것들을 한 모금씩 시음해보고 순수하게 감탄했다.

달콤한 것도, 상큼한 것도 있었다.

그리고 홍차처럼 향이 진한 것도, 아예 아무런 향도 나지 않는 탄산수 비슷한 것도 있어서 취향에 따라 골라 마시기 좋을 것 같았다.

"따로 요리를 배우셨나 봅니다."

"아뇨. 그냥 혼자 오래 살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유안은 회귀 전 혼자 살았던 때를 떠올리며 정원에게 타고난 요리 실력이 있음을 다시 한 번 못박았다.

자고로 한평생 혼자 살아도 요리와 담을 쌓는 경우가 있기 마련이니.

'그래도 나 정도 실력이면 평균은 되지. 서정원 씨가 특출난 거야.'

그렇게 위안하며 유안이 메뉴판에 새로운 메뉴를 적었다.

슥슥.

-아이스티(좋아하는 맛을 말씀해주시면 추천해드립니다.)

일단 맛 별로 이름을 짓지 못했으니 그렇게만 적었다.

서정원도 그 부분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그대로 수긍했다.

"저도 작명 센스는 영 꽝이라서요. 사장님 주변에 이름 잘 짓는 분 있으면 부탁해보는 게 어떨까요?"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평범한 재료를 쓴 음료도 아니고, 일반적인 카페도 아니다 보니 특별한 이름이 필요했다.

아메리카노, 라떼와 같이 이미 굳어진 것들은 그대로 둔다 하더라도.

중앙 카페의 첫 시그니처 메뉴라고도 볼 수 있는 아이스티에는 색다른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다.

기왕이면 맛 별로 다른 이름을 말이다.

"초콜릿 이름도 지어줘야겠네요."

정원이 테이크아웃 잔 하나에 가득 담아둔 과육 초콜릿을 가리키며 말했다.

유안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작고 네모난 것들이 옹기종기 모인 모습이 썩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오늘은 일단··· 초콜릿은 팔지 말고 서비스로 나눠줍시다."

양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초콜릿을 포장할 재료가 없었다.

오늘 장사가 다 끝나면 만물 공방에 들르는 게 좋겠다.

"슬슬 영업 시작합시다."

"네, 사장님."

유안의 말에 알바생 정원이 테이블을 싹 정리했다.

손이 빨라서인지 동작이 굼뜨지 않고 시원시원했다.

중앙 카페 앞에는 이미 몇몇 사람들이 웅성대고 있었다.

장사를 언제 시작하는지 기다리는 눈치였다.

"헌터그램 인기 영상 봤어? 여기서 산 커피 들고 진짜로 던전에 들어갔던데."

"잔이 부식되지 않나?"

"멀썽하더라고! 신기하지? 나도 오늘 한 번 사서 들어가보려고."

"아, 나도 궁금한데···."

한 헌터가 카페를 흘깃대며 아쉬운 티를 냈다.

귀를 쫑긋거리며 그 대화를 듣고 있던 유안과도 살며시 눈이 마주쳤다.

헌터는 금세 눈을 피하고 제 친구에게 말했다.

"카페인만 들어가면 밤에 잠이 안 와서······."

"맞다, 너 커피 못 마시지! 여기는 아메리카노랑 라떼만 팔던 거 같은데."

"너라도 사서 와. 나는 게이트 앞에서 기다릴게."

카페인에 취약한 헌터가 던전 게이트 쪽으로 몸을 돌리려 했다.

"잠시만요, 손님."

그때 유안이 메뉴가 적힌 입간판을 들고 손님들 앞으로 다가왔다.

그가 간판을 바닥에 내려놓자, 그곳에 모여 있던 헌터들이 일제히 메뉴를 살펴보았다.

헌터그램에 퍼진 입소문을 듣고 몰려든 사람이었기에 중앙 카페의 메뉴가 아메리카노와 라떼뿐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이스티? 여기 아이스티도 해요?"

"예. 오늘부터 개시했습니다."

"레몬 맛 있나요? 상큼한 게 좋은데."

상큼···.

유안은 잠시 머릿속으로 아까 마신 음료 다섯 잔을 떠올렸다.

상큼한 것도 분명 있었다. 이름이 안 지어져서 문제일 뿐.

일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한 유안이 정원 쪽으로 눈짓했다.

멀찍이 바 테이블 안쪽에서 A급 헌터의 뛰어난 청력으로 말소리를 듣고 있던 정원은 이미 한 잔의 아이스티를 완성한 참이었다.

'빠릿빠릿해서 좋아.'

유안은 정원에게 일당을 더 얹어주기로 다짐하며 카페 안쪽으로 손님들을 이끌었다.

질서 있게 줄을 선 손님들이 기대 어린 눈으로 정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정원의 손에 들린 아이스티를.

"와··· 색깔 예쁜 거 봐라. 사진 잘 나오겠다."

"신메뉴면 아직 헌터그램에 올린 사람도 없겠지? 내가 1등으로 업로드 해야겠다!"

레몬을 말린 것처럼 생긴 던전산 과일이 듬뿍 들어간 아이스티는 모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미적 감각마저 뛰어난 정원이 '마지막 잎새' 아이템으로 예쁘게 가니쉬까지 해서 더욱 그랬다.

"아이스티 한 잔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감사합니다. 얼만가요?"

'맞다, 가격!'

유안이 손님 앞으로 다가가 자신의 헌터 디바이스를 내밀었다.

그리고 지난 며칠간의 커피 장사로 도출해낸 합리적인 가격을 말했다.

"음? 생각보다 싸네요."

가격을 들은 헌터가 고민도 없이 값을 치렀다.

역시, 중앙 던전 파밍 오는 헌터들은 씀씀이가 커서 좋다.

유안은 손님에게 자본주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정원 역시 '이 사업 아이템 진짜 괜찮은데?'라고 생각했다.

아이스티 가격을 지불한 헌터는 목이 말랐는지 곧장 음료를 들이켰다.

꿀꺽, 꿀꺽.

겨우 두 모금을 마신 헌터가 입에서 거칠게 잔을 떼어냈다.

그리고 유안을 향해 강렬한 눈빛을 쏘기 시작했다.

마나 프리 존

언뜻 억울해 보이기까지 한 눈초리에 유안은 잠시 긴장했다.

'설마 맛이 없나···?"

분명 유안 자신의 입에는 잘 맞았고, 맛있는 것들만 잔뜩 넣었는데.

유안이 마른 입술을 혀끝으로 축였다.

손님의 입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찰나의 순간이 유독 길게 느껴진다 싶었을 때.

"손님, 그 아이스티는 제가 만든 거예요.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으셨나요?"

정원이 공손하게 말을 걸어 헌터 손님의 주의를 돌렸다.

'알바생 잘 뽑았다니까.'

유안은 난감한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준 정원에게 감사했다.

여차하면 사장인 자신이 나서서 중재해야겠지만, 일단은 서정원에게 맡겨보고 싶었다.

정원이 어떻게 대응할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아이스티를 맛본 손님은 손을 잘게 떨며 물었다.

"이거··· 대체 뭘로 만든 거예요? 너무 맛있어요! 제가 마셔본 아이스티, 아니, 음료 중에 최고예요!"

손님의 외침에 유안과 정원은 자연스레 시선을 교환했다.

다행이라는 생각과 성공의 기쁨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서정원이 눈을 부드럽게 휘어 웃으며 손님에게 답했다.

"사장님이 직접 공수해오신 재료를 썼거든요. 특별한 레시피죠."

"우와, 진짜요? 저, 여기 매일 와서 마실게요!"

"감사합니다."

낮은 목소리의 정원이 매력적인 음색으로 감사를 표하자 손님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발그레해졌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유안은 입을 살짝 벌리고 감탄했다.

'어라, 이거 잘 하면···.'

좋은 홍보 효과가 될 것 같았다.

유안은 알바생 잘 뽑았다는 생각을 몇 번째인지 모르게 했다.

서정원과 함께한 첫 영업은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재료 소진으로 일찍 카페를 정리하고, 유안은 헌터 디바이스를 꺼냈다.

"오늘 일당 보내드릴게요."

"주급이나 월급으로 주셔도 돼요, 사장님."

"매일 정산하는 게 더 편해서 그럽니다."

벌어들인 돈이 돈이다 보니 하루라도 밀리면 계산이 복잡해질 것 같았다.

유안은 따로 관리자를 고용하기 전까지는 매일 급여를 지급하는 형식을 유지할 생각이었다.

마침 헌터 디바이스에서 지원하고 있는 파티 기여도 분배 시스템이 있었기에 편했다.

프리 헌터들끼리 모여 던전 하나를 공략했을 때 그 기여도를 자동으로 계산해주는 시스템.

던전 게이트 근처, 마나가 넘치는 곳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것이 카페 업무의 기여도까지 측정해주고 있었다.

'편하네.'

유안은 오늘 장사를 시작하기 전에 기여도 분배 프로그램을 실행시켜둔 보람을 느꼈다.

정확하게 계산된 급여를 서정원의 헌터 디바이스로 입금하자, 정원이 그것을 확인하고는 웃었다.

"고소득 알바였네요."

"아이스티는 서정원 씨가 다 만드셨으니 기여도가 높게 측정되어서 그렇습니다."

"이제 사장님도 만드는 법 아시잖아요."

서정원은 유안에게 최상의 아이스티 배합법을 알려주긴 했다.

그러나 이유안은 세 번 정도 시도해보곤 이 일을 정원에게 일임하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내가 만든 것도 맛이 있긴 한데··· 부족해.'

커피는 기계가 내려주니 괜찮다지만, 아이스티는 수작업이 많이 들어가는 음료였다.

서정원은 손에 계량기라도 달려 있는지 매번 정량을 넣었지만, 유안은 그렇게 하질 못했다.

그렇지만 괜찮았다.

"앞으로도 아이스티는 서정원 씨 담당입니다."

'오래, 가능하면 평생 일해주세요.'

그 말은 속으로 꾹 삼키고, 유안이 최대한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서정원은 다행히 카페 일이 마음에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

유안은 집으로 돌아가기 전, 만물 공방에 들렀다.

오늘도 퉁탕대며 무언가 만들고 있던 주현은 가게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치켜들었다.

"어, 이 사장님!"

"그냥 이름 부르셔도 된다니까요."

아무래도 회귀 전에 친구처럼 진했던 주현이라 이렇게 극존칭을 쓰는 게 어색했다.

"그래도 이젠 진짜 번듯한 사장님 되셨잖아요! 저 헌터그램에 올라온 게시물도 많이 봤어요. 오늘은 좀 바빠서 카페에 찾아가지는 못했지만."

"무슨 게시물 말입니까?"

"어? 사장님 아직 못 보셨어요? 실시간 인기 게시물에도 여러 개 올라왔잖아요. 사장님네 카페!"

헌터그램에 잘 들어가지 않는 유안으로서는 금시초문인 일이었다.

그러나 감이 잡히는 건 있었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나 보군.'

서정원을 바라보던 뭇 손님들의 뜨거운 시선을 잊지 못한다.

유안은 온종일 손님들에게 둘러싸인 정원을 흐뭇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온 참이었다.

몇몇 적극적인 손님은 정원에게 대놓고 사진을 같이 찍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서정원은 그런 쪽의 관심이 부담스럽지 않은지 환한 얼굴로 손님들의 요구에 응했다.

'오히려 즐기는 것 같기도 했지.'

나중에는 알아서 아이스티와 커피를 양손에 들고 자세까지 취해 주더라.

누가 보면 프랜차이즈 카페 광고 모델인 줄 알 것 같았다.

'A급 헌터라 그런지··· 확실히 잘생기긴 했어.'

유안은 정원의 얼굴을 떠올리며 헌터그램을 실행시켰다.

주현의 말대로 인기 게시물로 올라온 글 중에서 서정원의 얼굴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정원과 함께 찍은 사진, 혹은 정원과 아이스티만 찍은 사진을 올린 헌터들이 하나같이 이런 해시태그를 달아두었다.

#중앙던전 #카페알바 #존잘 #아이스티가친절하고 #알바생이맛있어요

'마지막 두 개는 잘못 쳤나 보네.'

그만큼 다급하게 게시글을 올린 것일 테다.

유안은 제가 뽑은 알바생의 인기를 뿌듯한 마음으로 확인하며 서정원이 나온 게시물마다 좋아요를 눌렀다.

어느새 유안의 옆으로 다가와 함께 헌터그램을 살펴보던 주현이 물었다.

"근데 알바생은 또 언제 뽑으셨어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장님 혼자셨잖아요."

"어제 뽑았습니다."

"운이 좋으셨네요, 사장님! 딱 이렇게 잘생긴 알바가 굴러 들어와주고. 일하는 건 어때요? 잘해요?"

"잘합니다."

유안은 씩 웃으며 답했다.

정말 잘했기 때문에 서정원에 대한 만족도는 최상을 찍고 있었다.

그런데 주현이 왠지 모르게 입을 비죽대며 투덜거렸다.

"에이, 내가 밀리면 안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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