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만족하셨다니 다행입니다."
유안은 선 자리에서 커피 한 잔을 전부 비우는 손님들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들은 텅 빈 잔을 건네며 리필을 외쳤다.
"이거 돈 많이 내야겠어요! 사장님 장사하러 여기까지 재료 들고 오는 것도 힘드셨을 거 아녜요."
"맞아, 맞아. 어우, 나 같으면 돈 준대도 절대 못할 것 같은데."
헌터 손님들이 가볍게 잡담하며 유안의 커피를 기다렸다.
그들의 목소리가 꽤 컸기에 주변에서 힐끔거리기만 하던 다른 헌터들도 슬금슬금 모여들었다.
어느새 유안의 중앙 카페에는 열 명 남짓한 사람이 줄을 서게 되었다.
"일찍 오길 잘했다! 늦었으면 커피 구경도 못 할 뻔했네요, 사장님."
첫 손님이 너스레 떨며 유안에게 새로운 커피를 받아 갔다.
그리고 자신의 헌터 디바이스를 내밀었다.
결제 창이 열린 디바이스는 10만이라는 숫자를 띄우고 있었다.
함께 온 손님도 마찬가지였다.
한 잔에 5만 원.
각자 10만 원씩 낸 손님들이 말했다.
"사장님, 최소 오만 원은 받으셔야 해요! 어차피 돈 많이 버는 헌터들 상대로 장사하시는 거잖아요."
"커피 맛도 좋고, 여기까지 와서 장사하는 수고가 있으니까 프리미엄 잔뜩 붙여도 돼요!"
유안은 돈을 많이 벌어서 기분 좋음과 동시에 얼떨떨함을 느꼈다.
'오천 원도 비싸다고 느끼는 게 아이스 아메리카노인데··· 그 열 배를 이렇게 턱턱 낸다고?'
그러나 손님의 말대로, 상대는 돈 많이 버는 헌터들이었다.
그들이 직접 선택한 가격이기도 했으니 유안은 그것을 존중하기로 했다.
"감사합니다."
유안은 첫 손님들에게 인사하고 다음 손님을 맞이했다.
중앙 카페 앞에 들어선 줄은 어느새 스무 명을 넘어가고 있었다.
*
첫 장사를 성공적으로 마친 유안은 텅 빈 테이블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라인더랑 드리퍼 부식되는 거 아닌가 걱정했는데···.'
다행히 커피 팔리는 속도가 훨씬 빨라서 기구들이 망가지기 전에 장사가 끝났다.
오늘 하루 고생해준 드립커피 제조 기계들을 정리하고, 유안은 자신의 헌터 디바이스를 확인했다.
헌터 뱅크 어플을 켜자 첫 장사로 번 돈의 총액이 떴다.
'0이 대체 몇 개야···.'
잔고를 확인하던 유안의 눈이 점점 커졌다.
100잔 정도를 팔아서 이만큼의 돈을 벌었으니 장사는 엄청난 호황이라고 볼 수 있었다.
헌터들은 돈이 많은 만큼 씀씀이가 좋았다.
"역시 괜찮은 사업 아이템이었어."
유안은 제 안목을 믿었던 것을 뿌듯해하며 세계수 테이블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그러면서 인벤토리에 남은 밀림 던전의 커피콩 수량을 확인했다.
과거의 유안은 파밍에 미쳐 있었기에 오늘 사용한 정도로는 줄어든 느낌조차 없었다.
회귀 전의 제게 감사를 느낀 유안은 만물 공방으로 향했다.
*
"어, 유안 씨! 시간 딱 맞춰서 잘 오셨네요!"
주현은 작업하던 것을 내려놓고 유안을 반겨주었다.
"···저게 뭡니까?"
유안은 공방 작업대의 심상치 않은 물체를 가리켰다.
검게 빛나는 그것은 철로 만들었다고는 믿을 수 없는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다.
주현은 씨익 웃으며 자신이 만들던 것을 자랑했다.
"커피 머신이에요. 아직 완성은 아니고, 내부 부품만 만든 거긴 한데··· 아! 유안 씨, 철 말고 플라스틱도 좀 샀어요. 다행히 싸게 파는 분이 있어서 유안 씨가 주신 돈으로 충분히 가능하더라고요."
"예, 재료비 부족하면 얼마든지 더 드릴 테니 그건 말씀만 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이 크기는···."
유안은 이렇게 큰 머신을 요구한 적이 없었다.
고작해야 세 잔 분량의 원두를 갈 수 있는 작은 그라인더 정도를 생각했는데, 주현이 만들어낸 것은 대형 카페에서나 쓰일 법한 5구짜리 머신이었다.
유안이 장사를 하고 돌아온 게 다섯 시간도 되지 않았으니 그렇게 짧은 시간 만에 이 정도 크기의 물건을 만들어낸 것부터가 놀라웠다.
하지만 주현은 이것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으쓱거렸다.
"기왕 할 거 크게 만들면 좋잖아요. 어차피 카페는 점점 커질 거고. 맞죠?"
"···그건 그렇습니다만."
오늘 장사를 해봤으니 게이트 앞 카페가 대박날 것을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유안은 작업대 가까이에 다가가서 머신의 크기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세계수 테이블 위에는 충분히 올라갈 것 같았다.
"던전 부산물로만 만드신 거 맞습니까?"
"네! 주재료는 철이에요. 거기에 제가 갖고 있던 재료를 좀 섞기는 하긴 했는데··· 인벤토리에 무리 없이 들어가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겉면은 플라스틱으로 덮을 생각인가요?"
"정확히는 강화 플라스틱이요. 고열과 고압에도 변형이 일어나지 않아서 던전 부산물 중에는 완벽물질로도 불리는 재료인데요-"
주현은 신이 나서 모셀 광산 던전의 강화 플라스틱이 얼마나 완벽한 물질인지 설명을 늘어놓았다.
유안은 그것을 배경음처럼 들으며 커피 머신을 좀 더 살폈다.
그 짧은 시간에 기계 몇 개를 뜯어보기라도 했는지 정말 나무랄 데 없는 형태였다.
볶은 원두만 넣으면 에스프레소가 알아서 추출되는 머신은 커피 만드는 속도를 크게 높여줄 것 같았다.
유안은 만족하고 머신을 톡톡 두드렸다.
그리고 고생한 주현에게 추가금을 좀 보내기로 했다.
"플라스틱 사는 데 보태라고 드리는 겁니다. 강화 플라스틱이면 비쌀 텐데요."
"어··· 근데 이렇게 많이는 안 주셔도 돼요! 저도 오랜만에 새로운 물건을 만들 수 있어서 즐거웠거든요."
"받아두세요. 더 의뢰할 게 생길 것 같습니다."
머신이 이 크기라면 테이블도 몇 개 더 필요할 것이다.
유안은 헌터 디바이스로 주현에게 돈을 송금했다.
그리고 카페에 필요한 테이블과 의자 몇 개를 더 의뢰했다.
"감사해요, 정말···. 유안 씨가 손님으로 안 오셨으면 공방을 접게 되었을 수도 있는데······."
"그럴 일은 없었을 겁니다. 주현 씨의 실력은 확실하니 꼭 제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이 그 실력을 알아봤겠죠."
그것은 미래에 진짜 있을 일이었다.
주현은 계속 고생만 하다가 공방을 접기 직전에 거물급 손님을 만나게 된다.
그 손님이 어떤 사람인지는 자세히 듣지 못했으나, 어쨌든 주현이 공방 일을 관두는 일은 없다는 걸 유안은 알았다.
유안은 미래의 정해진 사실을 말했을 뿐이었으나, 그가 미래에서 회귀했다는 걸 모르는 주현은 크게 감동하고 말았다.
"감사해요! 이거 얼른 완성할게요."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아녜요, 여기 앉아서 좀만 기다리세요!"
주현은 유안에게 감사를 표할 방법으로 빠른 작업을 택했다.
자신이 당장 유안에게 도움을 주려면 이것이 가장 좋을 것 같았다.
원래도 손이 빨랐던 주현이 마음 먹고 작업에 속도를 붙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현의 손놀림은 휴튜브 영상을 빨리 재생한 것처럼 보였다.
'오··· 이거 진짜 내일부터는 쓸 수 있겠는데.'
유안은 벌써 커피 머신 반을 덮은 강화 플라스틱을 지켜보며 속으로 감탄했다.
머신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가볍게만 하려고 했는데, 이러면 당장 내일부터 본격적인 장사가 가능해진다.
'내일 상황 보고 알바를 구하든가 해야겠다.'
5구짜리 머신에 테이블까지 늘어나면 한 번에 수용할 수 있는 손님이 많아질 것이다.
그러면 일손이 부족할 테니 직원을 뽑아야 했다.
유안은 만물 공방의 의자에 앉아서 헌터 알바생을 어떤 식으로 구해야 좋을지 고민했다.
'웬만한 E급 이상 헌터라면 던전 들어가는 게 훨씬 잘 벌릴 테니까 카페 알바에 지원할 리가 없고. 지원할 만한 사람은 간단한 파밍에도 어려움을 겪는 F급 헌터나··· 비각성자겠네.'
문제는 F급 헌터의 경우 던전 근처에 잘 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비각성자는 애초에 게이트 주변 제한구역에도 들어올 수도 없었다.
'아니지?'
유안은 제 인벤토리를 살피다가 아이템 하나를 발견하고 생각을 바꾸었다.
비각성자는 마나 저항력이 없어서 게이트 근처에 다가오면 몸이 상하게 된다.
반대로 생각하면, 마나 문제만 해결되면 비각성자도 얼마든지 게이트 근처에서 머무를 수 있다는 소리였다.
"주현 씨."
"네?"
유안은 열심히 일하고 있던 주현을 잠시 불렀다.
커피 머신 겉면을 보기 좋게 다듬고 있던 주현이 고개를 들었다.
유안은 인벤토리에서 보랏빛이 도는 돌을 꺼냈다.
[고대 포식자의 핵].
그것은 고대 유적 던전 아르네스에서 얻은 아이템이었다.
남들은 유적 던전에 몬스터를 잡으러 가지만, 유안은 삽을 들고 열심히 땅만 파다가 아주 깊은 곳에서 핵 여러 개를 발견했다.
지금은 던전에서 찾아볼 수 없는 고대 포식자.
그 몬스터들의 사체가 묻힌 곳이 바로 아르네스였다.
유안은 누구에게도 그 사실을 알리지 않고 핵을 모두 파낸 후에 만족스럽게 던전을 떠났었다.
"이게 뭔가요? 발광석도 아니고··· 생명의 돌이랑도 좀 다른 형태네요."
주현은 처음 보는 재료 아이템에 순수한 호기심을 느꼈다.
공방의 장인인 만큼 전 세계의 모든 재료를 파악하고 있다고 자부해 왔는데, 지금 유안이 건네준 것은 정말 처음 보는 물질이었다.
보라색 핵은 빛을 내고 있으나 따뜻하지는 않았다.
"특이한 기운을 가진 것도 같고······."
주현이 핵을 요리조리 살폈다.
손에 닿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묘하게 편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세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유안이 주현에게 물었다.
이런 형태의 아이템은 잘 세공하면 할수록 원래 지닌 능력에서 한층 더 성장한다.
원석을 세공하여 보석을 만들면 그 값어치가 높아지는 것처럼.
잠시 고민하던 주현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히 가능하죠. 어떤 모양으로 하고 싶은지 말씀만 하세요!"
"눈에 잘 띄지 않게 평범한 장식품처럼 세공하시면 됩니다."
화려한 물방울무늬를 생각하고 있던 주현은 좀 아쉬워졌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나 손님의 요구가 우선이었다.
"일단 커피 머신 작업부터 마무리하고 바로 시작할게요!"
그리고 주현은 핵을 자신의 인벤토리에 넣었다.
모든 아이템은 인벤토리에서 아이템 설명을 확인할 수 있다.
주현 역시 [고대 포식자의 핵]에 붙은 설명을 읽게 되었다.
"어어···, 유안 씨! 이거, 설마······."
[고대 포식자의 핵]
주변의 마나를 흡수하는 힘을 갖고 있다.
얼마나 특별한 아이템인지 눈치챈 주현이 입을 벌렸다.
유안은 슬며시 미소하며 덧붙였다.
"잘 세공해 주셔야 합니다."
"헉···! 네, 네에!"
유안은 주현의 씩씩한 대답에 만족스럽게 웃었다.
게이트 근처의 마나 문제는 해결했고, 이제 직원을 뽑을 차례였다.
직원 모집
사람마다 적성이라는 게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세상에 게이트가 생겨나고 헌터로 각성한 사람들은, 대부분 개인적인 성향에 관계 없이 던전 안으로 뛰어들어야 했다.
그것이 세상이 원하는 일이었고, 대다수의 상급 헌터가 자연스럽게 가는 길이기도 했다.
던전이 어느 정도 안정화되고 나서는 A급 이상의 헌터들이 일정 기간 내에 반드시 몇 개 이상의 던전을 공략해야 하는 제도 등이 사라졌다.
하나 이미 던전에서 얻는 수익의 맛을 본 상급 헌터들은 공략과 파밍을 멈추지 않았다.
아니,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것을 멈출 이유가 전혀 없기도 했다.
A급 헌터가 C급 정도의 던전을 공략하면 안전하게 돈을 벌어들일 수 있다.
그래서 서정원처럼 기본 능력치가 괜찮은 A급 헌터들은 눈에 불을 켜고 던전을 공략하고는 했다.
그 과정에서 회의를 느끼거나 지루함, 매너리즘에 빠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어쩌면 서정원이라는 A급 헌터가 최초일지도 모른다.
부상을 입은 것도 아니고, 헌터로서의 능력에 큰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닌데 갑작스레 던전 공략을 그만둔 것은.
이미 친해진 동료 헌터들과 간간이 중앙 던전 파밍 정도는 갔으나, 몬스터를 잡아 죽이는 것은 영 적성에 안 맞았다.
게임을 하는 것처럼 재미를 느낀다고 하는 헌터도 있었으나 서정원은 아니었다.
모든 것이 단조롭게 느껴졌다.
모아둔 돈은 충분히 있었고, 이대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살더라도 평생을 놀고먹을 수 있었다.
던전이 갑자기 미쳐 날뛰어 헌터 협회가 상급 헌터들을 강제 소집하지 않는 이상, 서정원을 억지로 던전에 들어가게 만들 요소는 그 무엇도 없었다.
회의감에 빠져 던전을 공략하지 않은 지 한 달 정도 되었을까.
종종 함께 던전에 들어가 파밍을 하던 동료 헌터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정원! 너 요즘 완전 놀고 있다며. 우리 오늘 중앙 던전으로 바람 좀 쐬러 가기로 했는데, 올래?
"됐어."
정원은 동료 헌터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그러나 동료 헌터는 쉽게 포기하지 않고 정원을 설득했다.
서정원이 전혀 상상하지 못한 이야기를 꺼내며.
-중앙 던전 게이트 앞에 카페 생긴 거 알아? 요즘 엄청 유명하대! 겸사겸사 거기도 가보자고.
"···뭐? 카페?"
-그래, 카페.
게이트 앞에 카페라니.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의 조합에 정원의 미간이 좁혀졌다.
어떤 미친 헌터가 게이트에서 카페를 한단 말인가.
게이트 근처라면 마나 저항력이 있는 헌터만 출입 가능할 테니 카페를 하는 당사자도 헌터일 것이다.
서정원은 자신처럼 던전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헌터가 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그리고 동시에, 궁금증이 일었다.
'대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한데.'
가벼운 파밍조차 못할 정도로 큰 부상을 입었으려나.
효율 좋은 던전 파밍을 두고 굳이 카페 장사를 하는 이유.
그것이 궁금했다.
"몇 시까지 가면 돼? 중앙던전."
-어? 진짜 오게? 그럼 12시까지 게이트 앞으로 와!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