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날레(2)
베네치아. 한국. 베트남. 미국 등에서 윤재와 52 F&B의 쇼 케이스가 진행되고 있는 시각.
황성호와 마찬가지로 베네치아 쇼 케이스에 초대받았지만, 참석하지 않은 사내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데이비드 리.
론스타 아시아 책임자로, 비행기를 타고 핀란드를 향해 날아가는 중이었다.
데이비드 리는 눈을 감고 얼마전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하하하. 노키아까지는 무리에요. 저도 몸이 하나밖에 없고, 가정이 있는 몸입니다. 마음이야 돕고 싶죠. 대신 유능한 CEO를 한 명 추천해 드릴게요.”
윤재는 노키아 인수전에 뛰어든 론스타와 데이비드 리의 요청을 고사했다.
론스타가 인수한 노키아의 CEO가 돼 주거나, 이사회 멤버가 돼 달라는 요청을 모두 거절했던 것이다.
“유능한 CEO? 쓸만한 사람이 있나?”
“하하하. 그럼요. 저 같은 사람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률한 사람입니다.”
“그래? 갑자기 구미가 당기는 걸?”
윤재가 데이비드 리에게 추천한 사람은 MS의 CEO였던 스티브 팔머였다.
“말도 안 돼? 스티브 팔머는 MS의 CEO야! 그가 멀쩡한 회사 관두고 노키아를 경영한다고?”
“하하하. 언제는 제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만든다 해도 믿겠다더니?”
데이비드 리는 내막을 알 수 없었다.
윤재와 끈끈한 관계에 있던 빌 게이트가 윤재의 조언을 받아들인 사실을 말이다.
빌 게이트와 MS 이사회는 스티브 팔머의 은퇴를 결정했고, 신임 CEO로 샤티마 아델라를 선정하는 절차에 들어가 있었다.
그렇게 해서 론스타가 노키아를 인수할 경우, CEO직을 맡기로 한 스티브 팔머와 함께 핀란드로 가는 중이었다.
“MS는 스마트폰 전쟁에서 완전 뒤쳐졌어요. 반전 카드로 노키아에 군침을 흘리고 있어요. 노키아 쟁탈전은 피 튀기는 경쟁이 될 겁니다.”
데이비드 리는 윤재의 조언을 다시 떠올렸다.
“그러니까 윤재! 인수예상가라도 좀 알려주게나. 응? 자네와 내가 남인가?”
“최소 10조는 써야할 겁니다. 경쟁자들이 보통이 아니니까요.”
데이비드 리는 컴컴한 비행기에서 눈을 떴다.
그리고 창문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헬싱키를 조망했다.
‘윤재의 예언은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 10조에 노키아를 인수해, 스티브 팔머에게 경영을 맡긴다. 5년 정도면 최소 15조에 시장에 되팔 수 있어! 그러면 론스타 본사의 회장자리는 내 것이 된다!’
론스타펀드의 역사상 가장 큰 손실과 펀드의 해산을 가져올 결정이었다.
하지만 이를 까마득히 모르고 있는 데이비드 리는 헤벌쭉 웃고 있을 뿐이었다.
◈ ◈ ◈
“멋진 오프닝 공연을 펼쳐주신 에밀리 캠벨과 펜타시스터즈에 다시 한 번 박수 부탁드립니다.”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광장!
사람들의 열광적인 환호가 한동안 계속됐다.
기업의 신제품 쇼케이스가 아니라, 콘서트 현장 같은 열기가 이어졌다.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오늘 52 F&B의 베네치아 서비스 론칭행사를 진행할, 저는 김윤재입니다.”
“저는 행사 보조 MC를 맡은 안수애입니다.”
여기저기에서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산마르코 광장을 통째로 빌려 진행하는 52 F&B의 쇼 케이스.
객석에는 혜진과 어린 아들 딸을 포함해 선희. 창진. 장식 같은 친구들과, 올리버 페레레. 워렌 버핀. 빌 게이트 같은 파트너들의 모습이 보였다.
다들 행복한 표정으로 윤재의 진행을 감상하는 중이었다.
“2012년 1년 동안 한국의 대도시인 대전, 대구, 광주 3개 도시에 HMB 서비스를 론칭했습니다. 사업이 성공했기 때문에 제가 이 자리에 설 수 있었겠죠?”
청중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1년 동안 Home Meal Box 서비스를 신청한 유료회원이 30만 명입니다. 월 1만원의 이용료를 기꺼이 내고 이용할 정도로 서비스는 호평일색입니다.”
윤재의 멘트를 이어 받은 안수애가 대본을 소화했다.
드레스! 안정적인 발음과 고운 목소리! 여신 급 미모까지!
안수애 전 아나운서의 모습은 산마르코 광장에 있는 사람들을 홀리기에 충분한 매력을 뽐내고 있었다.
“저곳 하늘을 보십시오. 52 메카닉의 드론들이 오늘의 쇼 케이스를 세계 100여 곳에, 오이 메신저를 통해 중계하고 있습니다.”
“와우!”
사람들이 하늘을 올려다보니 수십 대의 드론이 산마르코 광장 위에서 현장을 촬영하고 있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습니다. 52 F&B의 HMB 서비스의 시연장면을 함께 보시죠!”
산마르코 성당 앞에 설치된 초대형 스크린에, 카스텔로 지역의 5층 주택이 등장했다.
주택에 있는 사람이 스마트 폰의 ‘52 Quick’ 앱을 통해, 한국 돈으로 5만원 상당의 식자재 등을 주문했다.
“하하하. 저 분이 용케도 새참만두와 핵불닭 라면도 쇼핑목록에 포함시켰네요.”
윤재의 너스레에 초대받은 사람들이 다시 웃었다.
유럽에서도 새참만두와 핵불닭 라면의 인기는 대단하긴 했다.
“52 F&B는 스위스 최대의 유통체인인 Koop와 제휴를 마쳤습니다. 소비자의 주문이 어떻게 접수되고 배송되는지 보시죠!”
이번에는 안수애의 멘트였다.
그녀는 윤재와 멘트를 주고받으며, 한때 최고의 여성 아나운서가 공짜로 된 것이 아니었음을 입증해 보였다.
52 메카닉의 자동화 기술로 재설계된 KooP매장!
베네치아 인근에 있는 카발리오에, 윤재는 쿠프의 손을 잡고 10만평의 매장을 건립했다.
한국에도 10만평 매장을 속속들이 개장시키는 중이었고, 초대형 마트와 물류센터는 52 F&B의 HMB(홈밀박스) 서비스의 성공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이었다.
“카빌리오 쿠프 매장에는 50대의 로지(Logi)라는 로봇이 있습니다. 이 로봇들이 매장을 오가며, 고객이 주문한 상품이 진열돼 있는 트레이를 직원에게 가져다줍니다.”
화면에 로봇청소기처럼 생긴 로지라는 로봇이 등장했다.
축구장보다 50배가 넓은 매장을 오가며, 각종 물품들이 적재돼 있는 트레이를 포장원의 앞으로 끌어다 줬다.
“로지를 통한 물류 시스템을 재구축한 덕에, 한국의 52 마트와 이곳 Koop 매장은 분류시간을 기존 90분에서 15분으로 대폭 단축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와우!”
다시 사람들의 탄성이 터졌다.
시간 절약을 통한 배송시간 단축의 훌륭한 사례였던 것이다.
포장원이 규격화된 패키지 상자에 고객이 주문한 물건을 담자, 길고 긴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패키지가 출하장에 도착했다.
“소개 합니다. 저 10Kg급 드론이 저희 회사가 자랑하는 드론, 로지(logi) 플라잉입니다.”
출하장의 패키지를 로지 플라잉이 날아와 하단부에 결합시켰다.
“자석과 걸쇠로 고정하는 로지 플라잉은 15Kg의 패키지까지 배송이 가능하며, 평균 35분의 비행이 가능합니다.”
35분이 가능하다는 드론의 비행시간에 참석자들이 다시 탄성을 터뜨렸다.
당시만 해도 10분 넘게 연속 비행이 가능한 상업용 드론도 없던 시절이었다.
“이 자리를 빌어 저희에게 배터리 원료를 공급해 주는, 콩고의 카바니 대통령께 감사 말씀 전합니다. 최고급 원료와 52 메카닉의 배터리 기술 덕분에, 현재 52 메카닉은 세계에서 가장 오랜 시간 비행할 수 있는 드론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저희의 드론 파트너인 패럿 사에도 감사말씀 전합니다.”
윤재의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로지 플라잉이 고객이 주문한 패키지를 싣고 베네치아 해변 위를 비행하기 시작했다.
“현재 52 F&B의 로지 플라잉 서비스는 4층 이상의 건물에만 적용하고 있습니다. 다만 앞으로는 1층까지 배송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보완할 계획입니다.”
안수애가 윤재의 바통을 이어 받아 멘트를 날렸고, 사람들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화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드론이 카스텔로 지역에 있는 주택에 도착하자 베란다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태우건설은 드론이 도착할 시간에 맞춰, 베란다가 자동으로 열리는 시스템을 시공했고, 베란다에 밀 박스(Meal Box)를 시공하는 일을 담당했다.
“드론과 주택에 설치된 홈밀박스는 레이저와 GPS로 서로의 위치를 공유합니다. 덕분에 하늘을 나는 드론들은 동선이 겹치는 일 없이, 정확하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베란다 문이 열리자 에어컨 실외기 사이즈 정도 되는 홈밀박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카스텔로 주택의 경우 베란다 천장에 홈밀박스가 달려 있었는데, 기어와 암이 자동으로 작동하며, 홈밀박스를 베란다 거치대에 안착시켰다.
드론이 베란다 앞에도착하자 홈밀박스의 뚜겅이 완전 개방됐고, 그 자리에 드론이 싣고 온 패키지가 정확하게 배달된 것이다.
“와우! 휙! 휙!”
배송이 성공된 영상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박수와 함성, 휘슬을 불어댔다.
완전 축제의 현장이었다.
“냉장기능을 기본 탑재했고, 아이스크림 등 냉동보관이 필요한 상품을 주문하신 경우에는 홈밀박스가 자동으로 냉동모드로 전환됩니다. 스마트폰 앱 또는 웹페이지와 KooP의 전산. 그리고 드론은 모두 완벽하게 동기화 돼 있습니다. 저희 홈밀박스를 냉장고로 만들어준 한국의 NC전자에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윤재의 손을 따라가니 NC전자 대표가 산마르코 광장의 객석에 자리해 있는 게 보였다.
참가자들이 NC전자 대표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줬다.
“배송을 마친 드론은 홈밀박스 위에서 10분 동안 충전을 마치고, 마트의 물류센터로 귀환합니다. 이것이 바로 52 F&B가 자랑하는 Home Meal Box 서비스입니다.”
윤재의 설명이 모두 끝나자 사람들이 열광적인 박수와 함성으로 화답했다.
“이곳 베네치아는 수상도시입니다. 그러다 보니 세계에서 가장 교통이 좋지 못한 도시 중의 하나이죠. 사람은 물론 물건의 배송까지 모두 수상 운송수단에 의지해야 했습니다. 이제 베네치아는 기존의 수상 운송에 이어, 혁신적인 배송 수단을 추가하게 됐습니다. 바로 52 F&B의 로지 플라잉(Logi Flying)과 홈밀박스입니다.”
경영 역사에 길이 남을 쇼 케이스였다.
신제품 공개 행사를 거의 예술의 경지로 끌어 올린 것이었다.
오프닝 쇼부터 서비스의 발표에 이르기까지 흠잡을 곳이 하나도 없었다.
세계 각국에서 초대받은 사람들은 물론, 베네치아 현지인들과 관광객들까지!
1만 명이 넘게 운집해 있는 산마르코 광장은 말 그대로 열광의 도가니였다.
윤재는 무대에 남아, 사람들의 열광을 잠시 지켜봤다.
그 때 무대 제일 앞에 앉아 있던 VIP들이, 윤재를 향해 앞 다퉈 소리치는 것이 보였다.
“미국의 홈데포 더스튼 존 사장입니다. 52 F&B의 로지 플라잉 서비스와 홈밀박스를 도입하고 싶습니다. 미국시장 진출은 홈데포와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일본의 론손 사의 스즈키 나카모토입니다. 일본은 저희 론손과 손잡고 서비스를 도입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김윤재 부사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프랑스 오르샹의 파비앙입니다. 우리는 단순 진출이 아니라, 52 F&B와 공동투자 및 지분공유까지 생각하고 있소. 제발 프랑스 진출의 파트너로 저희 오르샹을 선택해 주시오. 제발!”
미국. 일본. 중국. 베트남. 인도. 유럽의 주요 선진국들까지.
VIP초대석을 메운 수많은 유통재벌들이 윤재에게 러브콜을 보내며 애원하고 있었다.
“오늘은 베네치아 쇼케이스일 뿐입니다. 베네치아에서 저희가 진행하고 있는 사람과 드론이 함께 하는 배송이 성공하면, 세계 어느 곳에서도 성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52 F&B와 손잡고 서비스를 하고 싶다면....”
족히 100명이 넘는 유통업체 대표들이 윤재의 입만 바라볼 뿐이었다.
“한국으로 오세요. 그곳에서 협상을 시작하도록 하죠.”
윤재는 마지막 멘트를 끝으로 무대에서 내려갔고, 윤재의 뒤를 이어 안수애가 무대 전면에 나섰다.
“이로서 쇼케이스를 마칩니다. 마지막 순서는 피날레 공연입니다. 52 메카닉의 드론들이 펼치는 에어 드론 쇼를 소개합니다.”
산마르코 광장 위로 불꽃놀이가 펼쳐졌고, 형형색색의 레이저 광선이 하늘을 수놓는 가운데, 52 메카닉의 드론들이 하늘을 날고 있었다.
@K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