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직 상무가 너무 잘함-195화 (195/196)

피날레(1)

2013년 12월 23일 오전 9시.

크리스마스 이브를 하루 앞두고 있는 뉴욕 해밀턴 하이츠.

52 F&B 미국법인을 책임지고 있는 서영호 사장과, 52 피자대표인 심철호 사장의 모습이 보였다.

서영호 사장의 집무실에 대략 6~7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집무실 중앙에는 스크린과 프로젝터가 설치돼 있었다.

“서영호 사장님! 올해 미국시장 새참만두 매출이 2,500억을 돌파했다면서요? 정말 놀라울 만한 페이스입니다.”

“으하핫! 저도 믿기지 않을 정도의 상승세입니다. 미 전역에 있는 10개의 공장을 풀가동해도 납품을 맞추기 어려울 지경이니까요.”

“정말 축하해요. 김윤재 사장께서 서사장님을 총애하는 이유가 다 이런 모습 때문 아닌가 싶어요.”

“심사장님! 사돈 남 말하기 있기입니까?”

“예?”

“심사장님도 미국시장 진출에 소프트랜딩 하셨잖아요?”

52 F&B의 새참만두 시리즈가 미국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52 피자 역시 미국시장에 안착하는데 성공했다.

“윤재 사장께서 마커스 피자와 손을 잡자고 했을 때는 갸우뚱 했거든요. 결국은 신의 한수 였다는 생각이에요.”

언제나 그랬지만 윤재는 항상 옳았다.

“김사장님 스타일 잘 아시잖아요.”

“맞습니다. 서사장님! 업계 1등은 콧대가 높기 때문에, 업계 중하위권과 손을 잡고 1등을 넘어서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윤재 사장님 주특기죠.”

마커스 피자에 52 피자는 52 소프트의 앱과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제공했고, 52 피자의 주무기인 배달용 오토바이와 배달트럭을 마커스가 도입하도록 도왔다.

덕분에 마커스 피자는 올해 1년 동안 미국에서 가장 높은 성장률을 보인 피자 체인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최단시간 배달 가능한 매장 매칭 시스템. 주문과 조리를 동시에 시작케 하는 주문 자동화 시스템 등! 52 피자의 선진 기법에 마커스 피자는 물론, 미국 피자 업계가 잔뜩 긴장하고 있어요.”

52 F&B와 52 피자 모두 미국에 진출한지 2년 가까이 지났고, 빠르게 시장에 안착하는데 성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52 F&B의 성과가 피자보다 더 눈부신 것 같습니다. 미국 사람들이 딤섬이나 덤플링이라 부르지 않고, 한국말인 만두나 저희 브랜드인 새참(New Truth와 ‘새참’ 이란 말을 동시에 이용했다.)으로 만두를 부르고 있으니까요.”

“사돈 남 말 하시네! 52 피자야 말로, 내년에 피자 트럭 출범시키면 미국 피자 시장의 게임 체인저가 될 거잖아요!”

“하핫! 제가 이래서 서영호 사장님을 좋아합니다. 디스보다는 칭찬이 버릇이시니...”

52 피자는 2013년 론칭을 목표로, 피자 트럭인 ‘AllReady’의 개발에 성공했다.

모든 것을 뜻하는 All 과, ‘벌써’를 뜻하는 already를 합친 단어였다.

초벌구이 상태에서 트럭에 옮겨진 피자를, 고객의 집에 도착하기 5분 전에 피자 트럭 올레디에서 다시 한 번 구워 배달하는 시스템이었다.

이를 위해 2.5톤 트럭을 피자 트럭 올레디로 개조하는 작업을 지난 2년 동안 추진해 왔다.

“52 피자의 올레디 트럭 덕택에 소비자들은 갓 구운 피자를, 가장 맛있는 온도를 유지한 채 받아 볼 수 있을 겁니다.”

심철호와 서영호가 서로를 띄우느라 바쁜 사이, 직원이 다가와 모든 준비가 끝났다는 얘기를 전했다.

“하하핫! 심사장님! 곧 중계 시작한다고 하네요. 우리 이제 조용히 김윤재 사장님의 쇼나 감상하실까요?”

“좋습니다. 베네치아에서 김윤재 사장님이 어떤 마법을 부리는지 한 번 지켜보시죠.”

이제 곧 이태리 베네치아의 현장이 중계될 예정이었다.

흰 스크린을 바라보는 서영호와 심철호 모두 감동을 받은 표정이었다.

“하핫! 저는 팔불출인가 봐요? 갑자기 한국에 있는 마누라와 애들이 보고 싶으니....”

“저도요. 와이프가 보고 싶네요.”

화면 중앙의 화면에 베니스의 대운하와 산마르코 광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          ◈          ◈

같은 날.

황성호는 비서와 함께 중국 상해의 도심을 누비고 다녔다.

“황 사장님! 오늘 같은 날 이태리 베네치아 가시지 않고, 이 고생을 하십니까?”

“조비서! 내가 윤재 그 놈 잘되는 꼴 보고 싶어할지 알아?”

베네치아 쇼케이스에 황성호도 초대했지만, 윤재는 황성호가 오지 않으리란 걸 잘 알고 있었다.

한 마디로 부처님 손바닥 안의 손오공일 뿐이었다.

“그나저나 저희 사업이 이렇게 잘 될 줄 몰랐습니다.”

“푸핫! 모르긴 뭘 몰라? 나는 알고 있었어. 조비서 내가 어떻게 이 사업이 잘 될 줄 알았는지 알면, 자네 아마 까무러칠 걸?”

눈발이 펄펄 날리는 상해의 도심 한복판에서 황성호는 미친놈처럼 웃었다.

윤재의 아이디어를 베껴 사업으로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는 것이 너무 즐거운 것이었다.

“중국은 안착했고, 내년까지 베트남과 일본에 진출하자고. 아버지 건물 담보로 대출만 4천억을 끌어왔어! 이 사업 반드시 성공해야 해! 내가 지금 김윤재 쇼나 보러 갈 형편이 아니란 말이지.”

“알겠습니다. 사장님!”

한국에 이어 중국 북경. 상해. 청도. 선전에 스마트 폰 배터리 임대사업을 안착시킨 황성호.

베트남과 일본에도 진출하는 것으로 협상이 잘 진행되고 있었다.

“내가 윤재만큼 부자가 되진 않겠지. 하지만 베트남, 일본만 대박 터지면 나도 연간 1천억의 영업이익을 올리는 기업가가 되는 거야! 푸하핫! 매출 1조도 시간 문제지. 시간 문제고 말고!”

황성호가 너무 자신만만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상해의 겨울 찬바람이 추워서 였을까?

조비서는 순간 한기를 느꼈다.

“그런데 사장님! 혹시 저희 사업이 리스크는 없는 거죠?”

“이 친구야. 리스크는 무슨 리크스? 이렇게 사업지 잘 되는데, 괜히 초치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하이폰에 대항하는 안드로이드 진영은 배터리 교체를 최대 강점 중 하나로 어필하고 있어. 하이폰처럼 일체형 배터리로 갈 확률은 0.1% 안된다니까.”

“....”

“윤재 그 멍청한 놈! 이렇게 좋은 사업을 내게 뺐기다니. 나중에 내가 돈 더 벌면 배 아파 죽을 거다. 푸하핫!”

황성호는 미친 듯이 웃어댔다.

중국 사람들이 그를 미친 놈 보듯 힐끔거리며 지나가고 있었다.

◈          ◈          ◈

뉴욕과 13시간 차이가 나는 한국.

밤 10시가 넘어가는 시간 광주광역시 52 카페 1호점.

52 카페의 대표인 고도윤 사장과 송진영 부부.

윤재의 작은 아빠와 작은 엄마.

처갓집 식구들과 광주시내 52 카페 매장의 점장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광주 52 카페 1호점 역시 중앙에는 스크린과 프로젝터가 보였다.

“오이 메신저의 기술력 정말 대단해!”

고도윤의 얘기에 광주 1호점 점장이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전 세계 100개소를 동시에 연결할 수 있는 화상채팅 서비스는, 현재 오이메신저가 유일할 겁니다.”

“그러게 말이야. 속도. 안정성. 화질 무엇 하나 빠지는 게 없어. 참 대단해!”

“그러니까 한국 메신저 시장을 제패하고, 미국시장에서도 압도적인 1위를 질주하고 있는 거겠죠?”

밤 10시가 넘어가고 있었지만, 52 카페 1호점을 빼곡 매운 사람들의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그들도 오이 메신저를 통해 중계되는, 베네치아 행사를 지켜보기 위해 집결해 있었다.

“우리 애들이 여기 모여서 2002년 월드컵을 관람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년이 흘렀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이 모든 일이 다 김서방 덕분이에요. 참 고마운 사람입니다.”

작은 엄마와 아빠도, 장인 장모의 얼굴에도 지난 10년 넘는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돌이켜 보면 꿈인지 생시인지 어리둥절할 정도로 행복한 세월이었다.

“손주들은 이탈리아에 잘 적응하고 있을까요?”

“그러게 말에요. 고놈들 식사나 잠자리 적응 잘 해야 할 텐데.”

“강산이도 그렇고 바다도 그렇고 보고 싶네요.”

“저도요! 사돈어른! 꼬맹이 놈들이 지들 엄마 닮아서 어찌나 귀엽고 예쁜지.”

“호호호. 아네요. 김서방 닮아서 영특하고 예쁜 거지, 우리 혜진이 닮아서 그러기야 하겠습니까?”

52 카페 1호점에도 사돈 남 말하기가 시전 중인 가운데, 중앙에 설치된 스크린에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하나 씩 숫자가 줄어들 때마다 카페에 함께 앉아 있는 사람들이 카운트다운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9! 8! 7! 6! 5!....

◈          ◈          ◈

분당의 52 소프트 본사와 미국 52 소프트 지점.

베트남의 FMM공장에도 직원들이 컨퍼런스 룸에 집결해 베네치아 행사를 대기하고 있었다.

군산의 52 메카닉 공장에는 김민기 사장 가족과 직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52 Farm 본사에도, 미소천사 은행도 마찬가지였다.

52 Corp의 모든 관계사들의 대표와 임원들이, 행사를 관람하기 위해 늦은 시각까지 집에 가지 않고 대기중이었다.

원래는 O2 푸드 본사였지만 지금은 52 F&B의 본사가 된 여의도 사무실도 마찬가지였다.

대표이사와 사장단은 이탈리아 베네치아 현장에 모두 출장 가 있었고, 남은 임원들이 행사 시청을 위해 모여 있는 것이다.

“장동석 상무님! 감회가 남다르시겠어요?”

“하하. 조상무님! 저만 그렇겠어요? 다들 마찬가지시겠죠.”

“그래도 김윤재 부사장을 발굴하고 키운 사람이 장상무님 아닌가요?”

O2그룹의 오하루가 그랬듯, 윤재 역시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어느새 회사 내 윤재의 직책은 부사장으로 승진해 있었다.

“하하. 진짜 감회가 새롭긴 하네요. 하지만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라고 했습니다. 김윤재 부사장님은 제가 품기에는 너무 큰 인물이었어요. 20대 중반부터 어지간한 사람들과는 이미 다른 사람이었죠.”

장동석은 12년 전의 뜨겁던 여름날의 추억을 떠올렸다.

폭염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며, 백화점 앞에서 유도 봉을 돌리던 윤재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랬던 윤재가 이젠 52 F&B의 이름으로 세계시장에 출사표를 던지기 위해, 베네치아에 가 있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상무보의 지위에 오른 오석진.

신임 영업3팀장으로 발령 받은 차명수도 갑자기 보고 싶어졌다.

모두 그리운 얼굴들이었다.

52 F&B 본사 대강당에 특히 눈에 띄는 사람이 3명 더 있었다.

한명은 오하루였는데 그녀는 52 F&B의 협력사를 대표해 자리해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이자, O2 푸드의 대표였던 오재준도 강당 앞줄 중앙을 차지하고 있었다.

얼굴빛이 제법 좋았는데, 그의 건강이 많이 좋아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참..석..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차..태..영 회장님!”

오재준의 말은 조금 어눌했지만,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준으로 호전돼 있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장님!”

O2그룹과 52 Corp의 주거래은행이자, 윤재와 각별한 인연이 있는 차태영.

그 역시 윤재의 초대를 받아 행사장을 지키고 있었다.

오재준은 이미 눈시울이 붉게 충혈 돼 있었다.

돌이켜 보면 큰아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은 자신의 잘못이었다.

선대의 피와 땀이 묻어 있는 회사의 몰락을 속절없이 지켜봤던 일과 윤재에게 지분을 넘겼던 기억은 뼈아픈 것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분하고 후회만 남은 것이 아니었다.

오재준은 오른쪽에 앉아 있는 큰 딸 하루의 손을 잡았다.

“아빠!”

“네가 있어서 다행이다. 우리 너무 낙담만 하고 있지는 말자.”

“낙담이라뇨? 회사도 많이 좋아졌습니다. 3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실적이 좋아요. 그러니 너무 걱정 마세요. 실망시키지 않을 게요.”

그녀의 씩씩한 답변에 오재준은 마음이 한결 놓였다.

그룹의 체질을 개선한다는 것은 오진탁의 비전이었지만, 이를 현실로 만들어갈 사람은 오하루였다.

그 때였다.

카운트다운이 끝나고 화면에 등장한 사람을 알아본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앗! 에밀리 캠벨이다.”

“와! 오프닝을 맡은 사람이 에밀리 캠벨이였어?”

“응? 저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 아냐?”

“맞다! 저 여자들 펜타 시스터즈야! 에밀리 캠벨과 함께 무대에 올랐나 본데?”

펜타 시스터즈와 에밀리의 얼굴을 확인한 오하루가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에게도 에밀리와 누님들은 반가운 사람들이었다.

“52 F&B의 서비스 론칭 쇼가 아니라, 그래미 어워즈를 보는 것 같아. 엄청난 공연이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여가수가 된 에밀리와, 한국에 트로트 열풍을 일으킨 펜타시스터즈의 공연으로 쇼 케이스가 시작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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