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직 상무가 너무 잘함-191화 (191/196)

쩐의 전쟁(2)

“김윤재 실장 말이야!”

“응. 김실장이 왜?”

“사실상 우리 회사 주인이잖아. 그런데 묘하게 불편하지 않단 말이야. 오재준 회장님만 하더라도 카리스마 때문에 얼마나 불편했나? 오진탁 사장은 주인이라고 어찌나 티내던지!. 그런데 이상하게 김 상무는 묘하게 친근하단 말이지.”

“엄 부사장만 그런 생각 하는 게 아니었군. 나도 그런 생각 해 본 적이 있어. 내 결론이 뭔지 아나?”

“글쎄 왜 그럴까? 나이가 어려서 그런가?”

“일단 흙 수저 출신이잖아. 사원부터 시작했다는 거야. 그리고 스스로를 자꾸 낮추잖아. 주인행세 하려고 하질 않아. 완전 신입 상무처럼 처신하고 있어. 일 하는 걸 보면 누가 통합 법인의 오너라 생각하겠어? 그게 비결 아닐까?”

“생각해 보니 그러네!”

사람은 회사의 가장 중요한 역량 중 하나.

52 F&B와 O2 푸드를 합치며 윤재가 가장 신경 쓴 부분 중 하나였다.

경험 많은 팀장이나 임원들이 나이 어린 주주 때문에 회사를 떠난다면, 결국은 회사가 손해였다.

그래서 점령군처럼 보이지 않도록 노력했고, O2 출신과 52 F&B 출신을 차별하지 않으려 애썼다.

특히 윤재는 영업출신이 아닌 임원들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빠르게 친밀감을 형성했다.

윤재 특유의 친화력과 소탈함, 그리고 업무에 대한 전문성 덕분이었다.

비전 룸 미팅을 끝낸 뒤, 윤재는 재무본부의 임원들과 따로 미팅을 가졌다.

“그러니까 김상무님께서 유상증자에 적극 참여하실 생각이라는 거죠?”

“네. 현재 기어 자동차와 셀트리올 주식을 조금 갖고 있어요.”

“얼마나 되시기에?”

“기어차가 천이백만주! 셀트리올이 천만주 조금 더 되죠.”

“처.... 처.....천만주요? 돈으로 따지면 얼마나 되는 거에요?”

재무본부장과 임원들이 서로를 쳐다봤다.

숫자를 다루는 사람들이라, 감각이 남다른지 4명 모두 대략적인 견적이 나온 모양이었다.

4명 모두 눈동자가 떨렸다.

“시가로 대략 8,500억 정도 될 겁니다.”

“8,500억이요?”

“네. 올해가 가기 전에 전량 처분할 계획이에요. 대부분 52 F&B 유상증자에 활용할 계획이구요.”

‘후덜덜’ 하다라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것이다.

4명 모두 후덜덜함을 느끼고 있었다.

재무본부의 임원 4명은 모두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 보유한 주식이 3분의 1토막 나는 경험을 한 바 있었다.

2007년부터 2008년까지 끙끙 앓다가, 3분의 1토막 난 주식이 반 토막 수준으로 올라오자 후다닥 매도했던 아픈 기억들이 있는 것이다.

재무본부에서 잔뼈가 굵었다 해서 주식투자를 잘 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또한 올해는 52 메카닉이라는 회사를 IPO할 계획입니다. 현재 주관사에서 열심히 평가 작업 중에 있어요. 기업 가치를 대략 3조 정도로 평가하는 분위기더군요.”

“삼...삼조요? 혹시 김상무 지분이 얼마나 되는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52 메카닉도 제가 최대주주입니다. 제가 1천 6백만 주를 갖고 있으니, 대략 40% 정도 되겠네요.”

“40%면....1조 2천억!”

“신주 발행 방식으로 공모할 생각이지만, 구주 일부도 기관 투자자들에 매각할 생각입니다. 52 메카닉 주식이 생각보다 인기가 많더군요.”

“헐!”

“제가 왜 유상증자 걱정하지 말라고 했는지 이제 아시겠죠?”

박영호 전무는 이미 윤재의 재산내역에 대해 대충 들은 바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놀라운 얘기이긴 했다.

“52 소프트는 올해 또 엑시트(Exit)를 준비하고 있어요. 일정 관리 앱인 ‘Werklist’를 MS에 매각키로 했어요. 1.5억 달러 수준에서 협상중이죠. ‘에버그린노트’는 구글과 매각 협상 중입니다. 5억 달러 이상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외 자잘한 것도 몇 가지 있긴 한데....”

그 외에도 전국에 윤재가 갖고 있는 부동산이 제법 많았다.

세종시와 나주혁신도시 등 노른자위 땅 중, 불요 부동산을 처분하면 또 1~2천억의 평가익이 예상됐다.

‘저렇게 천문학적인 금액을 마치 껌 값인 양 얘기하는 패기라니! 국내 재벌 중에 김윤재 실장보다 현금 동원력이 높은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4명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하며 감탄만 하고 있었다.

윤재의 설명은 계속됐다.

“올해 안에 제가 동원할 수 있는 금액만 2조 5천억 정도 될 겁니다. 나머지는 워렌 버핀. 올리버 페레레. 국내외 기관투자자들의 몫이구요.”

윤재의 얘기를 모두 들은 재무본부 임원들.

생각해 보니 52 F&B의 유상증자는 실패할 수 없는 게임이었다.

다들 어서 빨리 52 F&B의 주식을 사들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윤재는 재무본부 임원들과 자리를 마련한 본론을 꺼냈다.

“52 관련사들이 제법 많습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예. 김상무님! 개의치 말고 말씀해 보세요.”

압도적인 재력과 친근감의 사이에 윤재가 있었다.

존댓말도 반말도 아닌 이상한 어투는 그 때문이었다.

“2012년까지 지주회사로 전환할 생각입니다. 관련된 프로젝트 좀 가동해 주세요.”

“알겠어요. 3년 내 전환하는 일정으로 진행해 보겠습니다.”

“하하하. 좋습니다. 공정위와 법이 원하는 대로 맞춰서 진행해 주세요. 돈 걱정, 세금 걱정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재무본부와 미팅을 마치고, 윤재가 경영기획실로 돌아갔다.

4명의 임원들은 박영호 전무 방에 여전히 남아 있었다.

“김윤재 상무에 비하면, 오재준 회장님이나 오진탁 사장은 완전 동네 구멍가게였어.”

“그러게 말이야. 돈 걱정 하지 말고, 법대로 하라니! 이 얼마나 멋진 말씀인가?”

경영권 승계과정에서 비자금을 만들고, 그렇게 조성한 비자금을 차명으로 관리하는 일은 구차하고 치사한 일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무뎌지긴 해도, 불법을 저지르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는 것이다.

회사의 안방살림을 책임져야 하는 재무본부 입장에서, 세금걱정 없이 법대로 일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었다.

◈          ◈          ◈

윤재가 통합 52 F&B의 경영기획실장으로 복직하면서, 그의 관련 회사들에 연쇄 반응이 일어났다.

대표적인 곳이 52 소프트였다.

윤재의 뒤를 이어 2대 CEO는 홍도현 이사가 맡는 것으로 잠정 결론 났다.

3월에 이사회를 마치면 홍도현은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승진할 예정이었다.

“오이 Quick에 소프트뱅크의 손정이 회장이 가장 적극적이라구요?”

“네. 사장님! 1조원을 베팅하겠다고 연락 왔습니다.”

“하하하. 그 분은 항상 뒷북이시네요.”

소프트뱅크의 손정이는 최근 2년 동안, 윤재와 52 소프트를 열심히 쫒아 다녔지만 회사 인수와 투자에는 모두 실패한 상태였다.

“그 쪽 관계자에게 매각 의사가 없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잘 하셨습니다. 오이 퀵은 저희가 반드시 키워야 할 사업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오이 퀵은 오이 메신저와 함께, 푸드 테크의 핵심 축으로 키울 생각이었다.

오늘의 회담은 홍도현과 인수인계를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윤재는 아낌없이 자신의 노하우와 비전. 전략과 전술을 인계했다.

“안타깝게도 이 바닥이 전형적인 승자독식 시장입니다. 계획했던 전략들 뚝심 있게 밀어 붙이세요.”

“아무리 그래도 1년 중개수수료 0%는 출혈이 너무 클 것 같습니다만!”

“출혈을 감수해서라도 시장을 선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스마트폰 배달 앱 하면 오이 퀵이 생각나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해요. 마켓 쉐어가 중요한 게 아니라, CMS(Customer Mind Share)가 중요합니다.”

“항상 그 부분에 신경 써 왔지만, 각별히 유념할게요.”

“하하하. 고맙습니다. 이래서 제가 홍대표님을 좋아해요.”

“대표라니요? 제 마음속에 대표님은 김윤재 대표님 뿐입니다.”

홍도현의 얘기는 단순한 아부가 아니라 그의 진심이었다.

아쉬운 것 모르고 살았던 그의 인생이 180도 달라진 순간은, 윤재의 손을 잡고 52 소프트에 합류한 이후였다.

“그래도 저희는 오이 메신저 통해 수익기반이 있기 때문에, 비교적 수월하게 밀어 붙일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알겠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가맹점들과 소비자들에게, 1년 뒤에는 중개수수료가 유료화 된다는 것을 알리는 겁니다. 줬다 뺏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중간 중간 공지해 주시면 될 겁니다.”

“네. 걱정 마세요.”

“5년 내 오이 메신저와 52 Quick은 북미, 유럽, 중국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우리의 시장은 세계이고, 우리의 경쟁자는 구글, 아마존 같은 글로벌 공룡들임을 잊지 말아주세요.”

향후 5년 동안 가장 집중해야 할 사업인, 52 Quick에 대한 정리를 끝냈다.

이제 52 소프트의 향후 5년을 책임질 거시 전략을 논의할 차례였다.

“앞으로 이걸 참고하십시오.”

윤재는 약 30페이지 분량의 문서를 건넸다.

향후 5년간 유망한 IT 서비스와, 스마트폰 용 어플리케이션을 정리한 보고서였다.

한눈에 봐도 대박, 중박이 가능한 아이템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었다.

일종의 마법 보따리인 셈.

“홍대표님께 한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뭡니까? 사장님!”

“참고를 하시되 너무 제 문서에 경직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이미 52 소프트는 한국 최고의 인재들을 확보하고 있어요. 홍도현 부사장님께서 그 중에서 탑이죠. 그러니 제 보고서를 참고해서, 직원들이 끊임없이 소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런데 사장님 부탁이 있는데요!”

“뭐든 말씀하십시오.”

“애프터서비스는 3년은 해 주시는 거죠?”

“하하하. 부사장님 역량이면 AS가 아예 필요 없을 겁니다. 직원들도 1~2개월이면 제 존재를 잊게 될 거에요.”

“그런 말씀 마세요. 절대 그런 일 없을 겁니다.”

홍도현의 엄살과 달리 윤재는 52 소프트의 이사회 멤버로 계속 역할을 할 예정이었다.

회사를 아예 떠나는 것이 아닌 만큼, 홍도현 대표와 인수인계는 그 정도로 마무리 됐다.

홍대표와 얘기를 거의 마쳤을 무렵, 윤재의 비서인 이세영이 내선을 연결했다.

“사장님! 친구 분 찾아오셨습니다.”

“들어 오시라 해요.”

◈          ◈          ◈

홍도현과 얘기를 마치자, 황성호가 오묘한 표정을 한 채 대표실로 들어왔다.

어떤 표정인지 알 것 같았다.

“성호야! 우리 투자 안 받겠다고?”

“응. 괜히 친구한테 민폐 끼치기 싫어서.”

황성호의 독사 같은 속마음은 윤재가 이미 모두 간파하고 있다.

친구에게 폐 끼치는 것 싫다고 했지만, 이미 숱하게 많은 친구들에게 금전적 피해를 끼친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윤재야! 진짜 네 얘기처럼 배터리 임대나 판매 사업이 제법 시장성이 있을 것 같더라.”

“내가 얘기 했잖아.”

“하여튼 고맙다. 네 덕분에 나도 그렇고, 아버지도 완전 재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우리 투자 받으면 좋았을 텐데. 쩝! 왠지 아쉽네.”

황성호는 자기 밖에 모르는 스타일.

윤재가 잘 되면 자다가도 배가 아픈 사람이었다.

투자를 받으면 회사의 지분을 윤재에게 넘겨야 하는데, 결코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오해하지 않았으면 하는데! 초기에 너무 사업을 키우지는 마. 리스크 관리도 해야지.”

“응. 그래 알았다.”

역시 황성호의 성향을 역으로 이용한 멘트였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덤벼들 것이 뻔했다.

“그..그런데 말이야. 오늘은 회의 더 없니?”

“오늘은 한가한데. 오랜만에 나가서 밥이나 먹을까?”

“아. 아냐! 나 이만 가볼게. 바쁜데 시간 뺏어서 미안하다.”

배터리 임대사업 아이디어를 훔친 이후로, 황성호는 잊을만하면 한 번씩 사무실을 찾아왔다.

그리고 올 때 마다 윤재가 회의를 가는지 여부를 물었다.

윤재가 자리를 비우면 또 뭔가 돈 되는 아이템을 훔칠 생각이었던 것이다.

특히 윤재가 CEO에서 물러나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거란 생각에 부랴부랴 찾아온 것이었다.

‘하하하. 내가 네 놈 시커먼 머릿속을 모를 것 같지?’

세계의 스마트 폰 제조사들이 대부분 일체형 배터리로 전환하는 것은 2015년.

그때까지 황성호는 무리하게 회사를 키울 것이 뻔했다.

이대로 가면 2015년에 폭삭 망할 운명이건만, 자신의 운명을 모르는 황성호는 그저 득의양양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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