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직 상무가 너무 잘함-190화 (190/196)

쩐의 전쟁(1)

2010년을 맞아 O2그룹과 52 Corp에 굵직한 변화가 일어났다.

O2그룹은 푸드를 계열분리 매각을 단행했고, O2 푸드는 바이오 부문을 O2그룹에 내어준 뒤, 52 F&B와 합병시켰다.

시장의 즉각 반응했다.

재무적 부담과 오너 리스크를 털어낸 O2그룹 계열사의 주가도 급등했다.

태우건설, 한국통운, 홈쇼핑 등 모두 어두운 터널을 벗어났다.

하지만 52 Corp의 상승세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다윗이 이겼다! 배꼽이 배를 삼키는데 성공했어!”

“무슨 소리야? 내가 보기에는 52 Corp가 O2 푸드보다 훨씬 큰 회사인데?”

“에이. 말도 안 돼! 한국 밥상을 좌지우지하는 회사와, 신생 52 F&B가 비교나 되나?”

“그건 네가 몰라서 하는 소리야. 52 F&B만 놓고 보면 네 말이 맞을지 몰라도, 52 Corp 전체를 보면 얘기가 달라. 몇 년째 정체돼 있는 회사가 O2푸드라면, 52 Corp의 최근 성장성은 눈부실 정도라구.”

길거리. 식당. 대학 강의실 등 수많은 사람들이 52 F&B와 O2푸드의 합병 소식을 주제로 설전을 벌였다.

뜨겁기는 온라인도 마찬가지였다.

=> 52 F&B도 승자의 저주에 빠지는 것 아닌가요?

┖ 그러게요. O2 그룹도 무리한 M&A 때문에 작살났는데. 이러다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새참만두 못 먹는 것 아닌가 걱정되네요.

┖ 재벌하고 연예인 걱정은 하는 것 아니라니까요. 님 취직 걱정이나 하세요.

┖ 당신이 나 알아? 나 연봉 1억이야! 오성그룹 핵심 멤버라니까.

┖ 웃기시네. 당신 방구석 백수지?

난데없이 삼천포로 빠지는 얘기들도 있었지만, 핵심을 찌르는 댓글이 대부분이었다.

=> 52 F&B의 서영호 사장이 아니라, 그 뒤의 김윤재 사장을 주목해야 합니다. 지난 7년간

김윤재 사장이 보여준 마법 같은 경영력이라면, O2 푸드와 52 F&B를 훌륭하게 조화시킬

겁니다.

┖ 맞아요. 위클리 비즈니스 인터뷰 보니까 김윤재 이 사람 보통 사람 아니더군요.

┖ 저도 그 잡지 봤어요. 총 5회에 걸친 특집이었는데, 보는 내내 감탄을 금치 못했어요.

Cafe. 피자. 소프트웨어. 미국시장 진출까지. 손대는 것 마다 대박을 터뜨렸자나요.

┖ 이번에도 그의 마법은 통할 겁니다. 우린 그저 지켜보면서 응원하면 됩니다.

┖ 52 카페 주식 당장 사야겠네!

┖ 올해 52 메카닉도 상장한다고 하네요. 장외에서 이미 뜨거운 종목입니다.

┖ 레알?

TV. 경제전문지. 대학교수 등에 이르기까지.

1월 내내 52 F&B가 O2푸드를 삼킨 이슈는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됐다.

전반적인 중론은 O2그룹과 52 Corp 모두에게 잘 된 일이라는 것이었다.

딱 한명 예외적으로 불행한 사람이 한명 있었다.

그는 O2푸드의 7개월간 CEO였던 오진탁이었다.

그는 재벌총수로서는 이례적으로 법원에서 6년이라는 중형을 선고받았다.

“죽탱이를 날릴 생각이었소.”

성수용 팀장을 공사판에 끌어다가 뭐 할 생각이었냐는 판사의 질문에 오진탁이 내놓은 답변이었다.

“피고! 죽탱이가 뭡니까?”

평생 공부만 해서 ‘죽탱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 판사가 되물었다.

“아니 판사님! 죽탱이도 몰라요?”

오진탁은 재판정에서 원투펀치로 아구창을 날리는 시늉을 해 보였다.

그의 기행과 거친 언행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노가은 관장과의 관계라뇨? 판사님! 정말 ‘삑’을 몰라서 묻는 겁니까? 허허헛! 다 큰 어르신이 삑도 모른다니.”

그러면서 검지와 중지 사이로 엄지손가락을 통과시켜 보이기도 했다.

구역질나는 행동이었다.

노가은 역시 구속돼 재판을 받았는데, 오진탁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기도 했다.

오진탁은 법정에서 노가은에게 쌍욕을 퍼붓는 패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런 오진탁의 기행 때문에 변호사들이 줄 사퇴했고, 법정모독까지 더해지며 오진탁은 중형을 받은 것이다.

워낙 독특했기 때문에 오진탁의 법정 기행은 뉴스 단골 소재였다.

그때마다 시민들은 혀를 차며 오진탁을 욕했다.

“저거 완전 망나니 새끼였구만. 생긴 건 멀쩡하게 생겼는데, 대가리가 완전 썩었어!”

“O2 푸드 고추장이나 사식으로 넣어 줘야겠네. 저 새끼 6년이나 깜방에서 썩으려면 입맛도 없을 텐데.”

“저 미친놈이 왜 저러는지 아는가? 욕을 많이 먹어야 오래 산다잖아. 6년 교도소에서 사는 세월은 허송세월 아니냐고? 낭비한 6년만큼 더 살려면 욕을 먹어야 하니까 저러는 거야.”

“그래? 그럼 우리 욕이나 한바가지 퍼부어주세!”

◈          ◈          ◈

2009년 O2 푸드 임시 주주총회가 끝난 후 회사는 규정을 정비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내용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겸업금지’ 조항을 폐기시킨 것이다.

모두 윤재의 O2 푸드 복귀를 위한 조치였다.

각자대표만 3개. 소프트. 최대주주로서의 역할 등 윤재가 할 일은 너무 많았다.

어쨌든 윤재는 7년 만에 푸드로 복귀했다.

52 F&B 경영기획실장 상무 김윤재!

36세의 나이로 임원 뱃지를 달았으니, 나름 금의환향이었다.

“김상무! 축하하네. 먼길 돌아 다시 회사로 복귀했구만!”

전생보다 10년 가까이 앞당긴 상무진급이었다.

돌고 돌아 다시 김상무가 됐지만, 그 의미는 완전 다른 것이었다.

비로소 회귀한 삶의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초석을 깐 것이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하핫! 이거 왠지 쑥스러운 걸. 대주주님을 부하로 두고 있으려니 말이야.”

“그러게 말입니다. 임원들이 조심해야겠어요. 김상무 열 받으면 주주총회 소집할 것 아닙니까?”

“하하하하.”

신년 경영전략 회의에 참석한 비전 룸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52 F&B가 5년 가까운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온 게 여기저기서 느껴졌다.

합병을 끝낸 통합법인의 최대주주는 단연코 윤재였다.

하지만 CEO 자리에 오르지도 않았고,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지도 않았다.

오로지 산더미처럼 쌓인 일들을 처리할 생각뿐이었다.

통합 52F&B의 출범에서 특이한 점 하나는 인사발령이었다.

거의 5년 동안 찬밥신세를 면치 못했던, 친윤재 list의 인물들이 2010년 인사에서 대거 약진에 성공한 것이다.

영업본부장 부사장 류중정.

GX부문장 상무 조영우.

마케팅 개발실장 상무 임나영.

소매영업부문장 상무 장동석 등.

오로지 윤재와 친하다는 이유로 천대받던 사람들이 대거 승진인사에 포함됐다.

임원뿐이 아니라 사원인사도 마찬가지.

대부분의 직원들은 지난 암흑의 시기에 대한 보상을 톡톡히 받았다.

김윤재 효과였다.

만두와 어묵시장을 평정한 서영호 사장 역시 사실상 승진대열에 합류했다.

비록 직급은 사장에서 전무로 2단계나 강등됐지만, 통합 52 F&B의 생산총괄 본부장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반면 된서리를 맞은 사람들도 있었다.

미래전략실 팀장들이 대표적인 인물들.

재판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포함해, 미래전략실 팀장 5명은 모두 스스로 옷을 벗었다.

윤재는 원한다면 그들에게도 김삼식과 똑같은 기회를 줄 생각이었다.

◈          ◈          ◈

웃음꽃이 만발하던 회의실이 갑자기 집중모드로 변했다.

윤재가 직접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푸드 내에서 역량을 펼쳐 보이지 못한 걸 만회하겠다는 듯, 윤재의 보고는 거침없이 이어졌다.

“Home Meal Replacement! HMR 시장의 퍼스트 무버가 됩니다.”

원래는 아무리 늦어도 3년 전에는 시작했어야 할 비즈니스였다.

하지만 결코 늦은 것도 아니었다.

“압도적인 시장 1위 제품인 햅반을 베이스로 한 가정식 간편식을 출시해야 합니다.”

회사를 떠난 뒤로도 윤재는 꾸준히 O2푸드를 모니터링 했다.

그리고 자신의 비전과 전략을 가다듬어 왔다.

“즉석 밥, 즉석 면류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HMR 역시 세계 시장을 염두에 두고 중장기 전략을 짜야 합니다. 미국. 중국. 유럽. 러시아 등 현지 시장 진출을 위한 전략을 준비했는데, 다음 세션에서 조영우 상무님께서 발표할 예정입니다.”

중세 암흑기처럼 어두웠던 회사에 생동감이 넘쳐흘렀다.

나상길 CEO부터 시작해 임원들 모두의 눈빛이 반짝 반짝 빛나고 있었다.

“다음 주제는 새참 만두의 북미시장 진출에 대한 보고입니다.”

O2푸드에서 내일식품을 거쳐 다시 52 F&B로 통합된 새참만두.

쓰레기 만두 파동을 겪으며, 서영호라는 걸출한 인물을 영입하는데 성공했고 강한 회사로 거듭났다.

덕분에 새참 만두는 국내 어떤 만두 회사보다 고객선호도가 높았고 수익성이 좋았다.

“북미 시장은 이미 중국회사들이 앞 다퉈 진출하고 있습니다. 교자. 딤섬. 덤플링 등의 이름으로 현지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죠.”

“김상무! 질문이 있는데 중국하면 인해전술 아닌가? 새참만두가 국내에서 인기 있는 건 알지만, 미국에서도 통할까?”

“하하하. 역시 날카로운 질문이시네요. 새참만두의 북미시장 진출을 위한 SWOT분석을 준비했습니다. 함께 보시죠.”

윤재는 원래 프레젠테이션의 달인이었다.

52 Corp에서 사장이나 각자대표. 최대주주의 자리에 있었음에도, 윤재는 실무진과 2인3각으로 뛴다는 생각으로 일해 왔다.

덕분에 윤재의 프레젠테이션은 훨씬 부드러우면서도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다.

“미국 시장에 진출해 있는 중국 업체들의 약점이 저희에겐 기회가 될 겁니다. 두껍고 텁텁한 만두피. 인색한 만두 속. 중국의 레시피와 똑같은 제품들. 이게 저희에게 기회가 될 겁니다.”

이미 52 F&B의 새참만두는 얇고 쫄깃한 만두피. 꽉찬 속. 다양한 맛으로 국내 만두시장을 휩쓸고 있었다.

“미국 남부의 경우 남미시장과 접해있고, 멕시코의 영향이 있어 향신료에 익숙합니다. 텍사스에는 고수 맛의 만두공장을 설립하는 방식으로, 현지화에 나서야 합니다.”

“만두에 고수를 넣는다고? 그걸 누가 먹나?”

“중국 제품이 그래서 큰 재미를 보지 못했습니다. 얇은 피와 꽉찬 속이라는 정체성을 지키되, 철저하게 현지 입맛에 맞춰 저희를 변화시킬 생각입니다.”

현지화 전략과 더불어 미국 전역에 20개 이상의 공장을 설립해야 한다는 것이 윤재의 논지였다.

“김상무! 다 좋은데 그 많은 돈은 어떻게 조달할 계획인가?”

52 F&B로 통합하는 과정, 태우건설 바이아웃의 고리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3조원에 가까운 돈이 들어갔다.

HMR 사업을 추진하고, 미국 만두시장 진출에 최소 1조원 이상의 자금이 필요했다.

그 뿐 아니었다.

하얀국물 라면의 성공이후 윤재가 회사를 떠났고, 오진탁이 푸드를 핍박하며 정체돼 있던 라면사업도 다시 박차를 가할 생각이었다.

52 F&B에 쩐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대대적인 유상증자에 나설 생각입니다.”

“유...상..증자?”

“네. 워렌 버핀과 이탈리아의 페레레가 이미 유상증자에 참가할 뜻을 굳혔습니다. 국내에서는 대진증권과 외국환은행을 포함한 기관투자자들이 대기 중입니다.”

“규모는 어느 정도나 생각하고 있는 건가?”

“자본시장에서 5조를 조달할 생각입니다.”

“5....5....조!!!”

2010년 현재 윤재가 52 F&B의 경영에 참여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O2푸드의 주가는 폭등했다.

그리고 52 F&B와 합병한 이후에도 주가는 강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52 F&B의 시가총액은 약 5조원 규모.

시가총액에 버금가는 유상증자를 단행한다는 얘기였다.

“HMR, 북미 만두시장 진출, 라면시장 재도약을 위해 천문학적인 자금이 필요합니다. 유상증자는 반드시 성공합니다. 돈 걱정 마시고 사업부별로 전략 실행에 집중해 주시면 됩니다.”

통합 52F&B 법인은 사실상 윤재의 회사나 마찬가지가 돼 있긴 했다.

하지만 5조원은 엄청난 돈이었다.

유상증자 발언에 누구보다 당황해야 할 사람은 재무본부장이었다.

하지만 재무본부장 박영호 전무는 여유 넘치는 얼굴이었다.

윤재는 이미 박영호와 의견 조율을 마친 상태였다.

‘나도 김윤재 상무를 만나기 전에는 미처 몰랐다. 그가 얼마나 위대한 사람인가를... 36세의 나이에 동원 가능한 현금이 4~5조원에 육박하다니! 김윤재 상무가 O2 푸드를 얻은 게 아냐. O2푸드가 김윤재라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것이다.’

박영호 전무는 열변을 토하고 있는 윤재와, 당황한 표정의 대표이사와 임원들을 바라봤다.

‘김상무의 글로벌 No.1 푸드 회사는 단지 구호가 아니다. 그와 함께라면 더 이상 꿈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어. 조만간 다른 임원들도 느끼게 될 거야.’

20명에 달하는 임원진!

유독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류중정. 조영우. 장동석처럼 윤재와 직접 근무한 사람들은 미동도 없었다.

함께 일해 본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윤재가 해내지 못할 일을 입에 담지 않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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