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직 상무가 너무 잘함-186화 (186/196)

베스트 엑시트

2009년 3월 27일로 O2푸드&바이오의 주주총회 날짜가 잡혔다.

가장 중요한 의결사항은 오진탁의 O2 F&B 대표이사 취임이었다.

오재준이 쓰러진 뒤로, 전문경영인을 대표이사로 선임했지만 사실상 오진탁의 꼭두각시에 불과했었다.

주주총회가 한 달 넘게 남아있는 2월 16일.

윤재는 대표이사 취임을 앞두고 들떠 있는 오진탁에게 다시 한 번 특사를 파견했다.

바로 한국 론스타의 데이비드 리였다.

“김윤재 사장께서 보낸 메시지요.”

오진탁은 데이비드가 건넨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 회사는 거덜 나기 직전인데, 대표이사 취임해서 뭐하려는 겁니까? ]

간단한 인사에 이어 곧바로 오진탁의 폐부를 찌르는 글이 이어졌다.

“당신 말이야! 당신은 뭔데 이딴 심부름이나 하고 다니는 거요?”

“역시 김윤재 사장 얘기대로, 흥분부터 하는 군요. 메시지나 마저 읽고 나서 얘기 합시다.”

과거 데이비드와 윤재의 태우건설 지분인수 제안을 거절했다 낭패를 당한 기억이 있는 오진탁.

끌어 오르는 분노를 삭이며 편지로 다시 눈을 돌렸다.

오진탁이 끝까지 편지를 읽고 나자, 데이비드 리가 말했다.

“바이아웃 행사를 1년 연장하셨더군요. 그런데 1년이 지나면 뭐가 달라질까요?”

이미 편지를 다 읽은 오진탁.

머릿속에서 온갖 계산이 오가는 중이었다.

“1.5%면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닌데, 산소호흡기로 연명한들 내년 이맘때 뭐가 달라질까요?”

“그. 그건 당신들이 상관할 바 아니요.”

오진탁은 재무적 투자자들의 연간 이익률을 1.5% 추가로 인상하는 조건으로, 옵션 행사를 1년 연장했다.

그 과정에서 오진탁 자신은 물론, 어머니와 3형제의 지분까지 담보로 제공하는 굴욕을 당했다.

“김윤재 사장이 당신에게 2번째 기회를 주는 것이오. 3번 기회는 없다는 게 김사장의 전언이오.”

“내.. 내가.. 이 따위 조건을 받을 것 같아?”

“역시 김윤재 사장의 예측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군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3번의 기회는 없을 것이오.”

“....”

데이비드 리는 오진탁의 별장을 빠져나왔다.

오진탁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창밖만 바라봤다.

태우건설 바이아웃 옵션 행사를 1년 연장하긴 했지만, 윤재의 얘기처럼 1년 뒤에 뾰족수가 나올 턱이 없었다.

그룹의 주력계열사인 O2푸드의 주가는 이미 반토막이 났고, 다른 계열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오하루가 이끄는 O2엔터가 선전하고 있었지만, 워낙 비중이 작은 회사였다.

오진탁의 손에 힘겹게 들려 있는 윤재의 편지.

[ 바이오 부문을 분할시킨 뒤, O2푸드의 지분 50%를 주당 15만원, 2조 5천억에 인수하겠습니다. 그리고 태우건설 지분 50%를 주당 1만원, 2조원에 인수하겠습니다. ]

윤재가 보낸 친서의 핵심내용이었다.

태우건설의 경우 시세보다 100% 높은 금액이었고, O2푸드는 시세보다 50% 가량 높은 금액이었다.

그다지 푸드 내 역할이 크지 않은 바이오 부문을 떼 낸 금액이므로, 사실상 50%보다 조금 더 높은 액수였다.

내용은 계속 이어졌다.

[ 현재 시세로 O2 F&B 지분을 모두 팔아도, 재무적 투자자들 손실 보상하기 힘들 겁니다. 같은 비즈니스맨으로 냉정한 판단 바랍니다. 3번의 기회는 없을 것입니다. 신사적인 방법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이오. ]

‘신사적인 방법? 어느새 이 자식이 이렇게 컸단 말인가?’

오진탁도 눈이 있고 귀가 있기에 알고 있었다.

2008년을 지나면서 윤재가 한국 재계의 떠오르는 스타가 돼 있다는 사실을.

빌 게이트. 워렌 버핀. 스티브 홉스. 마이클 주커버그. 에릭 슈바이츠 등.

미국의 스타 CEO들과 윤재가 만날 때마다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52 소프트의 서비스인 레이버후드, 채터, 스타그램, 애드가를 사들이기 위해 돈 보따리를 들고 줄을 선다는 뉴스였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빅애플의 앱스토어 누적 다운로드 1위를 달리고 있는, 오이 메신저는 미국과 한국인이 가장 즐겨 이용하는 메신저가 돼 있었다.

‘커피. 피자. 만두. 어묵. 52소프트까지! 론칭한 회사마다 메가 히트를 치고 있으니!’

사면초가라고 해야 하나?

오성그룹에 손을 내미는 것도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고, 김윤재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은 더더욱 용납되지 않았다.

O2 F&B를 지난 몇 년간 얼마나 괄시했던가?

오진탁은 사태가 최악으로 치닫게 되자, 비로소 O2 푸드의 가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어떤 식으로든 망하게 생겼다. 결국은 어떻게 망하느냐 인데....’

오진탁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리고 윤재의 편지를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씨발. 이렇게는 못 죽는다. 남은 1년 동안 승부를 보겠어.”

오진탁은 끝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패착과 악수에 눈길을 주고 있었다.

◈          ◈          ◈

싸움은 말리고 흥정을 붙이라고 했다.

2008년 윤재는 빅애플. 구글. 페이쓰북. 야후 등을 순회하며 영업을 뛴 적이 있다.

그 뒤 소문이 퍼져 나갔고, 일본의 손정이, 아마존, 오라클 등의 기업들 까지 경쟁대열에 뛰어 들었다.

덕분에 52 소프트의 매물은 눈 뜨면 상종가를 달리고 있었다.

“뭐라고요? 1.5조? 작년만 해도 5천억 아니었나요?”

분당 52 소프트 본사를 찾아온 페이쓰북 CEO 마이클의 눈동자가 확대됐다.

“그새 스타그램은 대대적인 업데이트가 단행됐어. 단순 SNS가 아니야. 사진 필터링과 편집 기능이 추가 됐거든. 유저들 반응이 폭발적이네. 당신도 스타그램 놀이라는 신조어가 생긴 것 알고 있지?”

“아무리 그래도 우리 회사 주식을 20%나 달라는 것은....”

“싫음 말고.”

“1조원에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1.5조!!”

“그럼 지분을 15%로 낮추면 안 될까요?”

“20%!!”

“17.5%라도 안 되겠습니까?”

“다시 한 번 얘기하는데, 내년에 다시 나를 찾아 왔을 때는, 스타그램의 주인이 바뀌어 있을 거야. 만약 내가 지키고 있다해도 가치가 2배 정도 더 올라가 있겠지.”

당장 그 많은 돈을 마련할 수 없는 마이클 주커버그.

쓰린 속을 달래며 빈손으로, 미국행 비행기에 올라타야 했다.

윤재는 분당에서 그런 식으로 거물들과 연쇄 회동을 가졌다.

숱한 사람들의 애간장을 태운 뒤, 원래 자신의 계획대로 3가지의 서비스를 매각했다.

모바일 광고 엔진 에드가!

140자 단문 SNS 채터!

그리고 블루 칼라 노동자들과 구인자들의 플랫폼인 레이버 후드가 그 주인공이었다.

분당에서 에릭 슈바이츠와 만났을 때의 일이다.

“2 Billion Dollars! 축하합니다. 드디어 억만장자가 되셨군요?”

“하하하. 저는 이미 억만장자였습니다.”

3개의 서비스를 구글에 넘기는 대가는 2조원이 넘는 거액이었다.

“애드가는 구글의 핵심 사업과 시너지가 있을 거라 자신합니다. 그리고 채터로 SNS 시장에서 페이쓰북과 일합을 겨룰 수 있겠죠. 레이버 후드를 손에 넣었으니, 그걸로 MS와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을 거구요. 때문에 이번 딜의 승자는 제가 아니라 구글입니다.”

“물론이죠. 우리를 선택해 줘서 고맙소. 미스터 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에릭 슈바이츠는 깜작 놀랐다.

구글이 왜 3가지의 서비스에 눈독 들이는지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에릭은 3개 서비스의 인수에 만족하지 않고, 추가적인 오퍼를 제시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미스터 김!”

“네?”

“오이 메신저 미국 버전과 스타그램도 우리가 인수하고 싶은데.”

“그건 곤란합니다.”

“구글 지분 1%와 교환하는 조건이 싫단 말이요?”

당시 기준으로 구글 지분 1%면 2조원이 훌쩍 넘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팔 생각이 없어요. 구글 지분 5%를 준다 해도 팔지 않을 겁니다.”

스타그램의 주인은 마이클 주커버그로 점찍어 둔 상태.

구글로 쏠리는 걸 막고, 페이쓰북과 경쟁을 시킬수록 스타그램의 값어치가 오를 것이기 때문이었다.

내년 이맘 때가 되면 몸이 달은 주커버그가 전향적인 제안을 들고 찾아올 게 확실했다.

반면 오이 메신저는 진짜 팔 생각이 없었다.

푸드 테크로 세계시장에 진출하는데, 오이 메신저가 한 축을 담당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정 그렇다면 52 소프트가 출시할 서비스를 우리와 독점계약을 하면 어떨까요?”

슈바이츠가 한발자국 물러섰다.

“에릭? 설마 일정 관리 앱, 노트 앱, 내비게이션 앱 출시 예정인 걸 알고 하는 소리요?”

“바..방금 뭐라고 했습니까?”

에릭 슈바이츠는 신규 앱 출시 소식에 깜짝 놀랐다.

“하하하. 뭘 그리 놀라는 겁니까? 모든 회사는 지속가능한 성장이 목표에요. 우리가 애드가, 스타그램에서 만족할 수 없죠. 52 소프트의 신규 론칭 앱 역시, 핫샷 데뷔에 성공했어요. 아직 앱스토어 확인 못했군요?”

“하핫. 인수전에 열중하느라.... 미처 파악하지 못했네요.”

“저는 독점계약 같은 건 서로 좋지 않을 거라 생각해요. 시장의 평가를 받고 난 뒤에, 정당하게 협상하는 걸로 합시다.”

“미스터 김은 남들보다 2~3걸음은 앞서 달리고 있군요.”

에릭 슈바이츠는 눈앞의 젊은이가 무시할 수 없는 거물로 성장했음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앞으로도 구글과 52 소프트의 협력관계를 기대하겠습니다.”

이로서 윤재는 매크로소프트, 빅애플, 구글에 모두 뭔가를 판매한 최초의 한국인이 됐다.

50만 달러. 4억 달러. 2 빌리언 달러로 그 값어치가 폭등한 것 역시 엄청난 기록이었다.

◈          ◈          ◈

채터. 레이버 후드. 애드가를 구글에 매각한 윤재.

계약체결과 동시에 오이 메신저 PC버전으로 화상회의를 개최했다.

니콜 샐리. 조 매킨스트리. 배인수 3명의 얼굴과 윤재의 얼굴이 화면에 나타났다.

미국과 한국을 연결했음에도 화면이 끊기지 않았고, 서로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오이 메신저의 파워풀한 성능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3명 모두 지난 시절 회사와 함께 하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아닙니다. 사장님! 이렇게 기회를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회사에서 챙겨드린 것 보다, 더 좋은 연봉과 조건으로 이직하게 된 점 축하드립니다.”

구글과의 계약에 의해, 3명은 최소 2년 동안 구글에서 일해야 했다.

니콜이 레이버 후드를, 배인수가 채터를, 조 매킨스트리가 애드가의 후속지원을 담당키로 한 것이다.

“이미 여러 번 밝혔지만 저는 우리 직원들이 회사원으로만 머물기를 바라지 않아요. 구글에서 근무는 세 분을 분명 더 큰 인물로 성장시켜줄 겁니다.”

“감사합니다.”

3명 모두 감정이 북받쳤는지 고맙다는 얘기를 한 뒤, 말을 잇지 못했다.

“저는 여러분이 자신만의 회사의 오너가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하지만 2년 뒤 돌아오고 싶다면, 언제든지 52 소프트로 돌아오세요. 문을 활짝 열어놓고 기다리겠습니다.”

이번 딜로 윤재는 3마리 토끼를 잡는데 성공했다.

오진탁과 싸울 총알을 완충했고, 3명의 인재를 프로모션 시켜 회사를 옮기게 했고, 초대박 엑시트에 성공한 벤처 기업인으로 명성을 떨치게 된 것이다.

윤재의 편에 서게 될 파트너들.

서브 프라임 사태의 절정기에 사놓은 주식들.

구글에 매각한 대금까지.

전면전을 앞두고 윤재는 호흡를 가다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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